[남과여]리뷰:치정극과 로맨스 사이에 선 애틋한 '성인극'★★★☆
16.02.18 18:05
[남과여,2016]
감독:이윤기
출연:전도연,공유,이미소
줄거리
헬싱키. 아이들의 국제학교에서 만난 상민(전도연)과 기홍(공유)은, 먼 북쪽의 캠프장을 향해 우연히 동행하게 된다. 폭설로 도로가 끊기고, 아무도 없는 하얀 숲 속의 오두막에서 둘은 깊이 안게 되고,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지게 된다. 8개월 후, 서울. 핀란드에서의 시간을 설원이 보여 준 꿈이라 여기고 일상으로 돌아온 상민 앞에 거짓말처럼 기홍이 다시 나타나고 둘은 걷잡을 수 없는 끌림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를 보기 전 홍보를 위해 공개된 공식 정보만 놓고 볼 때 영화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두 분류일 것이다. 한쪽은 전도연과 공유가 보여줄 아름다운 로맨스를 기대하는 쪽일 것이며, 또 한쪽은 소재만 놓고 보면 결국 불륜 아니냐며 영화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쪽일 것이다.
일탈을 꿈꾸는 게 모든 현대인들의 희망 사항이라 하지만 불륜이라는 일탈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정서다. 감수성어린 시각을 지니며 인물의 내면에 깊숙이 박혀있는 정서를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이윤기 감독은 누구나 건들기 꺼려하는 문제적 사랑을 선택했다. 과연 그의 일탈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남과 여]는 이윤기의 전작처럼 잔잔한 분위기가 깊게 깔린 배경과 간결한 대사, 두 남녀의 표정과 심리가 담긴 연기를 바탕으로 서정적인 정서를 이끌어 내려 한다. [남과 여]는 배경, 인물의 정서라는 테마에 의해 이야기가 완성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순백의 흰 눈으로 뒤덮인 핀란드 헬싱키의 자연 풍광과 빌딩 숲으로 이뤄진 대한민국 서울의 극명하게 엇갈린 환경 속에서 다른 분위기와 이야기가 연출된다.
헬싱키의 눈밭에서 만난 남녀는 이국의 공간에서 우연한 만남을 갖게 되지만, 첫 만남은 어색하기 마련. 하지만 두 사람은 핀란드의 자연이 준 기회를 통해 의도치 않은 동행을 하게 되고, 눈 덮인 숲 속의 사우나에서 외로웠던 서로의 마음속 빗장을 조금씩 열며 서로에게 몸을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외로움 속마음은 찰나의 충동과도 같았다. 충동적으로 이뤄진 관계에 남자는 사랑이라 생각했고, 여자는 스쳐 지나간 인연이라 정의하며 잊으려 한다.
이어지는 서울에서의 전개는 그러한 만남의 기회를 얻게 된 남여의 시선에 초점을 맞춘다. 남자 기홍이 사랑 앞에 적극적으로 다가서려 한다면, 여자 상민은 그의 접근을 경계하면서, 넌지시 그의 접근을 받아들인다. 기홍과 상민의 알듯 모를듯한 밀당이 급진전을 이뤄가면서 이들에게 각자의 배우자와 자녀가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면서 혼란을 가중시키게 된다.
하지만 [남과 여]는 배우자들의 존재를 통해 두 남녀에게 도덕적인 문제를 부가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배우자들은 서로에게 무뎌지고 짐이 되면서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의 관계를 소원하게 여기는 피폐해지고 메마른 정서를 유지하는 현대인들의 표본으로 묘사된다. 기홍과 상민이 서로에게 끌리게 된 것은 메마른 정서가 보편화된 도시 사회에서 유일하게 순수한 정서와 성숙한 생각을 가진 존재였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기홍의 아내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 영향으로 불안정한 행동과 충동을 저지르며 남편을 힘들게 한다. 상민의 남편은 아내에게 무덤덤한 말을 내뱉으며 부부 관계를 어색하게 만든다. 피폐한 정서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도시 생활에 지친 두 남녀는 핀란드의 눈밭에서 만든 추억을 떠올리며 위험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나가려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영화가 그려낸 두 사람의 일탈은 불륜이라는 일차원적인 시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는 공감과 위로를 나누는 관계로 정의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남과 여]는 이러한 이들의 일탈을 순수한 시각으로만 정의하려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부부의 관계에서만 일탈했을 뿐, 자신들의 영원한 족쇄인 부모의 의무에서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위치에 놓여있다. 무덤덤하고 불안전한 배우자들이 부모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기에 기홍과 상민이 부모로서의 역할을 책임지게 된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정서적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부모라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자신들의 역할과 지속되는 관계속에서 내포된 자녀에 대한 사랑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관계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보내는 요소가 된다. 부부의 관계는 포기할 수 있어도 자식에 대한 사랑과 소유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게 부모라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갈등적인 상황이 생기면서 적극적이던 남자는 그 순간 멈칫하게 되고, 여자는 거침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사랑이 진행되었던 과정과 달리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서의 남과 여의 대처 방식은 확연히 달랐다. 부모라는 굴례에 갇힌 이들이 결정한 선택은 사랑의 결실로 이어지게 될까?
추상적이면서도 이상적인 배경속에 시작된 영화는 이들의 상황을 냉정하게 부각하며 다시금 현실로 회귀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배경과 의미심장한 상징적인 주제, 공유와 전도연의 절제된 감성 연기를 통해 애틋한 로맨스를 완성한 [남과 여]는 인상적인 주제를 지닌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중후반부터 느슨해진 이야기의 흐름과 반복되는 캐릭터들의 행동으로 인해 종종 지루한 흐름을 불러오고는 한다. 인물이 지닌 정서를 아름답게 그려낸 감성적인 연출과 영화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같은 분위기가 지속하면 신비감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윤기 감독 특유의 잔잔한 정서속의 감수성어린 분위기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정서를 좋아한다면 인상깊은 로맨스로 남겨질 테지만, 지속적으로 변화되는 흐름을 추구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영상과 인간의 관계라는 의미심장한 주제를 통해 사랑에 대한 의미있는 정서를 이끌어낸 이윤기 감독의 의도와 영화만의 주제는 오랫동안 기억될 만하다고 정의하고 싶다.
[남과 여]는 2월 25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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