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에디]를 날게 한 두 주역, 휴 잭맨과 덱스터 플래처 감독
16.03.07 12:00
7일 오전 10시 40분 광화문 포시즌 호텔에서 [독수리 에디] 홍보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휴 잭맨과 덱스터 플레처 감독의 내한 기자간담회가 진행되었다.
영화에 대한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휴 잭맨과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주 메시지는 무었인지, 특히 이 영화를 위해 한국 영화 [국가대표]를 보았다는 덱스터 감독의 솔직한 반응은? 아래 기자 간담회 내용을 통해 확인해 보도록 하겠다.
Q.태런 애저튼과의 호흡은 어땠나?
휴 잭맨
영화를 촬영하기 전, 케미스트리가 잘 맞는지 보기 위해 테스트를 자주 한다. 특히 우정을 나타낸 영화는 케미가 더욱 중요하다. 이 케미 테스트를 위해서 영화 촬영 전 태런과 뉴욕에서 만났고, 매우 멋있는 배우였다고 생각했다. 연기를 굉장히 즐기면서 하는 배우였고, 그 점이 내 기대에 부합했다. 태런 에저튼은 대성할 줄 알았는데 [킹스맨]에서도 굉장히 연기를 잘해줬다. 덱스터 감독님은 감독이면서 배우셨기에 경험이 많으셨다. 촬영현장을 배우분들이 즐기면서 하기 위해 노력하셨다. 덕분에 영화가 잘 완성된 것 같다.
Q.액션이 없는 휴 잭맨이라 어색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아주 섹시하게 등장하셔서 영화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 단순한 조언자 캐릭터를 넘어서 영화에서 아주 돋보인 존재였는데, 브론슨 피어리 역할을 돋보이게 하려고 중점을 둔 부분은?
휴 잭맨
멋진 캐릭터를 연기한 것은 즐거웠다. 다른 사람이 트레이닝 하는 걸 지켜보니 재미있었다. 새벽 3시에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지 않아도 되는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피어리 같은 캐릭터는 처음 시도해보는 역할이었다. 실제 에디에게는 6명 정도의 코치가 있었는데 그들을 조금씩 다 합쳐놓은 것이 바로 브론슨 피어리다. 이를 만들기 위해 크림의 진저 베이커의 다큐멘터리를 보았고 그를 토대로 이 캐릭터를 완성했다.
Q.영화를 보면 80년대의 음악과 문화코드가 돋보였다. 감독님이 개인적으로 애착을 두시면서 영화 속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으셨던 80년대 문화 코드는 무엇인지?
감독
당시 80년대는 옷, 음악을 재현해야 했다. 이 당시는 혁신적인 시대로 옷의 컬러는 매우 밝아야 했다. 영화는 비주얼적인 부분이 돋보여야 했기에 80년대의 옷과 음악을 재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음악감독과 함께 이야기해서 전자 악기 음악이 돋보이도록 했다.
Q.촬영하면서 애로 사항은?
감독
휴 잭맨이 처음 점프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작품이었다. 약점이 많은 이 사람이 날아오르는 장면을 통해 이런 모습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스키점프 장면은 어려웠다. 휴 잭맨이 사실 실제로 점프를 하려고 했는데, 실제로 보니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촬영 당시 여러 보조적인 장치들에 의지해 스키 점프 장면을 찍어야 했다. 당시 일화로 루마니아 사람들이 스키 점프를 할 때, 두 선수들이 부딪치는 약간의 사고가 나서 스태프들이 긴장했다. 그런데도 이 사람들은 즐겁다면 웃더라. 결론은 이들은 미쳤다는 것이다.(웃음)
Q.본인이 생각하는 스키 점프의 매력은?
휴 잭맨
호주인 이다 보니 스키점프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런데 이 영화를 통해서 이 스포츠에 매료되었다. 굉장히 우아하면서도 멋있으며 위험한 스포츠라는 것을 배웠다. 2년 후 한국에서 올림픽이 진행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 여러분도 이 스포츠가 얼마나 멋있는 스포츠인지 알게 될 것이다. 영화에서는 바로 이러한 스키 점프의 매력을 잘 담았다. 이 장면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감독님께서 한국 영화 [국가대표]를 참고하셨다고 한다.
Q.[국가대표]를 보셨다 했는데 어떤 기분이 들었나?
감독
스키 점프 영화를 참고하다가 봤다. 영화가 수준이 높았다. 한국말이라 어려웠지만,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독수리 에디]는 철저히 영국적인 시각에서 완성하려 했다. 아마 그 점에서 한국 관객들이 의미 있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Q.한국 팬들에게 이 영화가 어떻게 다가갔으면 좋겠나?
휴 잭맨
관객분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당시 시대의 차이를 이해 하실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적 차이가 있었음에도 한 사람이 그를 어떻게 열광시켰는지를 흥미롭게 보게 될 것이다. 그 당시는 SNS와 같은 매체가 없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전 세계에 자신을 알린 에디는 최고의 스포츠 스타였다. 한국 팬 분들도 이 점에 중점을 두고 본다면 [독수리 에디]를 좋아할 거라 생각한다.
Q.에디는 무모한대도 도전하는 인물이다. 휴 잭맨 본인도 그렇게 무모한 적이 있으셨나?
휴 잭맨
데뷔는 호주의 TV 시리즈로 데뷔했고 뮤지컬로 작업을 하게 되었다. 배우보다는 뮤지컬로 더 알려졌는데, 호주에서는 뮤지컬 배우로 배우로 보지 않고 예능인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3, 4개월 동안 아주 힘들었다. 그러다 한 감독님께 애원하다 싶이해서 오디션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배우로 보지 않았을 때 너무나 힘들었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20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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