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리뷰: '그 사건'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
16.08.09 10:25
[터널,2016]
감독:김성훈
출연:하정우,오달수,배두나
줄거리
자동차 영업대리점의 과장 정수(하정우), 큰 계약 건을 앞두고 들뜬 기분으로 집으로 가던 중. 갑자기 무너져 내린 터널 안에 홀로 갇히고 만다. 눈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뿐. 그가 가진 것은 78% 남은 배터리의 휴대폰과 생수 두 병, 그리고 딸의 생일 케이크가 전부다. 대형 터널 붕괴 사고 소식에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정부는 긴급하게 사고 대책반을 꾸린다. 사고 대책반의 구조대장 대
경(오달수)은 꽉 막혀버린 터널에 진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지만 구조는 더디게만 진행된다. 한편,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은 정수가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라디오를 통해 남편에게 희망을 전하며 그의 무사생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지지부진한 구조 작업은 결국 인근 제2터널 완공에 큰 차질을 주게 되고, 정수의 생존과 구조를 두고 여론이 분열되기 시작한다.
한 대의 자동차와 한 명의 생존자가 터널에 갇히게 되는 재난 물을 표방하고 있지만, [터널]이 다루고자 하는 바는 이보다 더 큰 현실 속 사건에 대한 재조명이다. [부산행]이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을 '좀비 재앙'으로 표현했듯이, [터널] 또 한 근래의 한국형 재난 영화들이 추구하는 전례를 그대로 따르며 강렬한 무언가를 전하려 했다.
[터널]은 기본적으로 재난, 생존 물이 지닌 전형성을 충실히 따르며, 콘크리트 더미에 깔린 특수한 상황을 유연하게 다루려 했다. 느닷없이 찾아온 상황에서 주인공은 어렵게 도움을 요청하고, 기지를 발휘해 생존을 위한 여러 방식을 취하려 한다. 밀폐되고 좁은 공간에서 남아있는 물과 식량을 적절하게 아끼며, 다양한 생존 방식을 모색하는 장면은 의외의 긴장감을 불러온다. 여기에 무너진 터널의 지형과 돌발 상황, 제3의 인물을 등장시켜 예측불허의 전개를 이어간다.
라이언 레이놀즈가 출연한 2010년 작품 [배리드]를 연상시키는 상황이지만, [터널]은 그와 달리 어느 정도의 제약된 공간과 환경을 마련해 주연인 하정우가 다양한 심리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배리드]가 좁은 공간에서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긴박하게 다뤘다면, 하정우는 불안, 유머, 기지를 발휘하는 한 개인의 다양한 심리상태를 연기하며, [터널]의 다양한 장르적 변형을 스스로 완성해나간다. (마치 [더 테러 라이브] 처럼)
그의 심리적 변화로 인해 영화는 스릴러, 드라마 그리고 유머 극을 오가는 변화를 시도한다. 어쩌면 [터널]은 하정우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재능과 연기력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였다.
생존 영화의 기본을 유지한 [터널]은 정수의 아내 세현의 애절한 심경까지 부각하며 눈물샘이 가득할 가족 드라마의 여운을 남기지만, 그러한 정서적인 여운과는 거리를 둔 정반대 방향으로 시선을 두려 한다. 터널 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정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하는 언론, 이러한 여론에 묻어가려는 정부의 모습을 의미심장하게 담아내며,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풍자하고 있다.
풍자는 [터널]이 지향하는 생존 극의 특성과 함께 두 번째로 강조되는 요소로 이 영화의 핵심과도 같다. 구조 시간이 지체되면서 제2터널 공사가 지장을 받게 되고, 구조 도중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이어 발생해, 정수와 그의 가족은 여론의 싸늘한 시선을 받기에 이른다.
구조 작전의 지체로 생명에 대한 중요성이 잊히는 과정, 그로 인해 흔들리는 여론의 모습은 오늘날 '세월호' 사건의 현실을 떠올리게 해 서글픈 느낌을 불러온다. 세월호 사건의 시작과 현재의 순간을 터널 사고와 한 명의 생존자라는 테마를 통해 풀이하며, 현실적인 공감과 강렬한 주제관을 완성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의 풍자가 너무나 직설적인 탓이었을까? 서글픔과 적나라한 여운이 담긴 주제관 탓에 영화가 기본으로 유지한 생존 물의 재미는 서서히 반감되고, 묻히는 느낌을 주게 된다. 너무 많은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은 탓에 개연성이 떨어지는 설정과 산만해 지는 이야기는 영화에 정체성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여기에 최근 [부산행]으로 인해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 관객들의 정서를 생각해 본다면 [터널]의 정밀한 풍자는 새롭지 않거나 피로감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런 와중에도 생존 재난 영화의 정서와 전개를 마지막까지 유지하는 끈기있는 연출력과 배우들의 열연은 긴 여운을 남기며 영화의 후반부를 강렬하게 마무리한다. 결국 우리의 이기심이 재난을 만들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우리 안의 괴물을 경계할 것을 전하고 있다. 그 점에서 [터널]은 [부산행]과 함께 대한민국의 현실을 재난으로 표현한 인상적인 풍자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터널]은 8월 10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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