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하루] 리뷰: 우리에겐 사랑스러운 하루 ★★★★
16.08.24 19:51
[최악의 하루,2016]
감독:김종관
출연:한예리,이와세 료,권율,이희준
줄거리
배우 지망생 은희(한예리)는 연기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 길을 찾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를 만난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이상하게 대화가 이어지는 료헤이와 헤어진 후 은희는 드라마에 출연 중인 남자친구 현오(권율)를 만나러 촬영지인 남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같은 시간, 한 때 은희와 잠깐 만났던 적이 있는 남자 운철(이희준)은 은희가 남산에서 올린 트위터 멘션을 보고 은희를 찾아 남산으로 온다. 오늘 처음 본 남자, 지금 만나는 남자 그리고 전에 만났던 남자까지 하루에 세 명의 남자를 만나게 된 은희. 과연 이 하루의 끝은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
[최악의 하루]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순간을 현실적인 공감이 담긴 장면들로 표현한 영화다. 은희의 시선을 통해 단 하루 동안 만나게 된 세 남자와의 만남은 우리 인생의 쓰라린 순간을 담고 있지만, 아름다운 서촌의 풍경과 유머와 같은 가벼운 요소들이 담긴 이야기를 통해 시종일관 현실적인 공감과 깊이 있는 여운이 담긴 미장센을 선사하며, 익숙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영화는 배경이 될 서촌의 다양한 풍경을 비추며 시작한다. 화면을 통해 비치는 풍경은 일상과 낭만이 어우러진 흥미롭고 다양한 이야기의 흔적이 남겨져 있음을 암시한다. 이어서 이곳에 새로운 흔적을 남기게 될 운명적인 만남이 이어진다. 낯선 이국땅에서 온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서촌의 환경에 익숙하지만, 이곳의 지리를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방황하게 될 그녀의 오늘 하루를 암시하듯이…) 배우 지망생 은희다.
언어 소통의 불편함과 서로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는 어색한 상황에 '길치'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은 똑같은 길을 맴도는 실수를 반복하며 서로에 대한 민망함만 키우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한 이 만남은 이상하리만큼 순수하고 설레는 정서를 연상시킨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흘러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첫 만남'의 순간처럼…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남자친구 현오와의 만남은 지나치게 익숙한 만남이다. 이제 막 사랑을 꽃피워나가는 연인같지만, 서로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두 남녀는 거친 말투와 성적인 농담을 편하게 이어받다가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이어지는 세 번째 만남은 '상처'에 관한 내용이다. 과거의 연인 운철과의 만남은 안좋은 기억을 떠오르게 해 은희의 마음을 더욱 후벼 파기에 이른다.
[최악의 하루]가 지니고 있는 강점은 위의 '만남'적 상황이 말해주듯 남녀 간 관계를 단편적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주인공의 시점과 심리를 반영하면서 상대방인 남성 캐릭터들의 심리마저 동일하게 담아낸 묘사는 서로의 입장차를 비교하는 현실적인 공감을 불러오게 하는 재미를 불러온다. 상황과 인물에 따라 다른 어법을 사용하는 남녀간의 대화 장면이 바로 그러한 부분을 유심 있게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 남녀 간 연애 과정의 흐름을 '하루'라는 시간에 집약시켜 장르 영화가 지니고 있는 흥미 요소를 만들어 냈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료헤이와의 만남이 설레이는 로맨스의 시작을 상징한다면, 현오와의 만남은 연인 간의 갈등을 그리고 운철과의 만남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이뤄질 수 없는 꿈에 대한 무의미한 행동을 의미한다. 세 남자와의 만남이 로맨스 영화의 정서를 애잔하고 유머있게 그려졌다면, 이들이 한 공간에 마주하게 되는 상황은 블랙 코미디와 같은 난처한 상황을 연출하기에 이른다. 이야기의 주인공 은희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미치게' 하는 상황이지만, 스크린 밖 관객의 입장에서는 몰입도를 높여줄 재미있는 장면이다.
만약 영화가 이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모든 것을 마무리했다면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가 되었을 테지만, [최악의 하루]는 은희의 최악의 하루 속에서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기며 현실 속 관객의 일상적인 하루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진심을 전달한다. '만남'이 전자에 소개한 [최악의 하루]의 장르적 변주의 요소라면, 또 다른 요소인 '길'이 영화의 깊이 있는 여운을 완성한 중요한 상징이 된다.
은희의 난처함과 연속되는 실수는 그녀가 서촌을 넘어 남산 길을 오르고 내리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남산 길은 인생의 지름길과 내리막길 이라는 상징성을 지녔으며, 은희의 입장에서 본다면 만나고 싶은 사람과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마주하게 되는 연결점이자 피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인생의 길 한복판에서 긍정과 부정 모두를 피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그녀가 어두워진 남산 길을 묵묵하게 걷는 장면은 실수와 상처를 통해 성숙해진 인간의 모습이자, 이제 막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청춘의 성장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여운을 선사한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하루'였지만 이 날은 앞으로 은희가 겪게 될 또 다른 '최악의 하루'를 극복할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이밖에 조용한 서촌의 풍경을 반영한 은은한 분위기, 여백이 담긴 영상미, 배우들의 현실적인 연기는 서촌으로 대변되는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현실적인 판타지가 담긴 낭만적인 공간으로 표현한다. 청춘영화인 동시에 삶에 대한 메시지를 인상 깊게 그렸다는 점에서 [최악의 하루]는 관객에게 '최고의 하루'를 선사할 사랑스러운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최악의 하루]는 8월 25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CGV아트하우스/(주)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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