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대동여지도] 리뷰:강우석 감독과 차승원의 '역사 예능' ★★
16.09.02 11:21
[고산자, 대동여지도, 2016]
감독:강우석
출연:차승원, 유준상, 김인권, 남지현, 신동미, 공형진
줄거리
지도가 곧 권력이자 목숨이었던 시대, 조선의 진짜 지도를 만들기 위해 두 발로 전국 팔도를 누빈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하나뿐인 딸 ‘순실’이 어느새 열여섯 나이가 되는지도 잊은 채 지도에 미친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에도 아랑곳 않고 오로지 지도에 몰두한다.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들과 나누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대동여지도의 완성과 목판 제작에 혼신을 다하는 김정호. 하지만 안동 김씨 문중과 대립각을 세우던 흥선대원군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손에 넣어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는데…
한국 상업 영화의 대표적인 '장인'을 꼽으라면, 주저할 거 없이 강우석 감독을 가장 먼저 언급할 것이다.
80년대 후반 감독 데뷔 이후, 재능있는 연출력과 특유의 안목으로 현재까지 꾸준하게 신작들을 내놓는 그는 지금의 한국 영화가 꾸준하게 성장할 수 있는 '틀'을 유지한 대표적인 주역이라 할 수 있다. 그점에서 볼 때 모든 삶을 지도에 내걸었던 김정호의 이야기를 담은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영화에 미쳐있던 강우석 감독 스스로에 대한 회고와도 같다.
[고산자, 대동여지도](이하:[고산자])는 김정호의 혼과 정신이 온전히 담긴 '대동여지도' 처럼 30여 편의 작품을 연출한 강우석 감독의 흔적도 함께 담겨있다. 대중 취향을 잘 알고 있는 그답게 철저하게 흥미 위주로 진행된 전개 방식과 캐릭터의 개성이 이번 영화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도의 가치를 현시대의 '정보의 공유와 독점'으로 연결해 현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의도는 철저하게 현대적인 시각과 접근 방식을 통해 친근하고 쉬운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려는 의도가 돋보였다.
문제는 바로 영화의 모든 관점이 '지나치게 현대적'이라는 점이다.
[고산자]는 흥행 감독이자 코미디에 일가견을 보인 강우석 감독의 기존 공식을 철저히 답습한다. 시작은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기반으로 흐름을 이어가다 후반부에 들어서는 감동을 의도하는 전형적인 정서로 흘러간다. 이 부분에서는 강우석 감독이 작품마다 보여준 버릇과도 같은 두 개의 고질적인 문제가 그대로 드러낸다. 첫째는 씬/시퀀스의 호흡이 지나치게 길게 끌고 간다는 점이며, 둘째는 그 호흡에 이야기의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필요 없는 에피소드를 고집한다는 점이다. 작품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소박한 문제점 같지만, 이는 작품의 원래 의도와 흥미를 반감 시키는 심각한 문제로 연결된다.
재미를 위해 농담을 늘리고, 감동을 위해 정서적인 요인를 늘리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맛있는 음식을 과하게 먹으면 탈이 나듯이, 이러한 흥미 요소가 과하게 등장하면 정서적 낭비가 되어버린다. 처음에 재미있었던 유머가 반복된 장치에 의해 흔한 농담이 되어버리고, 지나치게 과한 감동 코드가 '최루성 신파'로 전락하게 된다.
사람이 일정한 호흡을 하듯이, 영화 또한 관객들이 완벽한 정서를 이해시켜 줄 수 있도록 일정한 호흡을 해줘야 한다. 이점을 의식한 근래 현대 영화들이 씬/시퀀스에 대한 편집과 각본내 대사의 간결함에 신경을 쏟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강우석 감독의 긴 '씬/시퀀스' 장면에는 이러한 과한 요소를 조금이라도 담아내려는 무리한 욕심에 있었다. 단순한 농담과 유머가 담긴 장면을 길게 보여주려 한 탓에 배우들은 연기가 아닌 개인기를 하는듯한 인상을 주게 되고, 눈물과 처절함이 담기는 장면은 과하게 느껴진다.
흥행 적으로 성공했지만, 다소 아쉬움이 남았던 전작 [이끼]와 [글러브]에서 그러한 문제점들이 등장한다. [이끼]는 다소 어두운 캐릭터들에게 인간미를 더해준다는 의도로, 인물들에게 유머 적 색채를 일일이 대입했지만, 이로 인해 원작이 지닌 분위기와 의도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실수를 범했다. [글러브]는 극 중 인물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며 느닷없이 빈 야구장에 들어와 오글거리는 교훈을 강요하는 '무리한 설정'을 가져온다.
이같은 개연성을 무시한 분량에 대한 고집은 정서적 과잉을 불러오는 실수와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문제로 연결된다. 그동안 '흥행'과 '오락성'으로 가려져 있던 강우석 감독의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점은 이번 [고산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히 김정호라는 역사적 인물의 존재와 대동여지도라는 지도가 지닌 가치를 생각해 본다면 유머는 줄이고, 과거의 작품과는 다른 진중하고 분명한 접근 방식이 필요했다.
어두운 조선 후기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희석하려는 의도로 유머 적 분위기를 가져오는 것은 알겠으나, 그것은 [왕의남자][광해,왕이 된 남자]와 같은 수준에서 그려져야 했다. 과거의 역사를 다루는 만큼 그때의 분위기와 정서에 기인하며 현대 관객을 이해시켜야 한다. 하지만 [고산자]는 그 선을 넘어서며, 영화의 완성도에 악영향을 끼치는 우를 범하게 된 것이다. 차승원에게 최근 예능 방송에서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캐릭터와 대사를 고집하는 장면과 김인권의 입을 통해 현대의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연상시키는 대목을 적나라하게 언급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웃으라고 만든 대목이지만,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다루는 의도를 강조한 영화가 메시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나치게 가벼운 요소를 조금이라도 담아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유머 코드는 해학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작품과 노골적인 패러디 영화에서나 어울릴 법한 요소다. 초반부터 과도한 유머에 적응한 관객이 이후 갑자기 벌어지는 어둡고 비극적인 상황과 마주하는 부분에서는 어떠한 인상을 받게 될까? 한없이 가벼웠던 영화가 느닷없이 진지해 지는 게 어색하면서도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것과 같다.
권력 분쟁과 종교 문제와 같은 시대상의 혼란이 본격적으로 다뤄지는 후반부는 그 점에서 산만하고 개연성을 떨어뜨린다는 인상을 가져다준다. 김정호가 분쟁의 중심에 놓여지고, 그로 인해 연속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부분에서도 쓸데없는 감정 과잉 요소를 길게 잡아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마지막 김정호가 지도의 정점을 찍으려는 대목은 개연성 부족으로 인해, 한국인 기본적인 정서에 기대려는 인상을 전해줘 아쉬움만 더한다.
주인공 차승원과 김인권의을 유머적 요소로만 낭비한 점도 안타까울 뿐이다. 다른 출연진의 캐릭터들은 특징들이 분명하지만, [고산자]의 김정호는 차승원의 예능 속 모습을 그대로 대입시켰다는 인상을 벗어나기 힘들 정도로 한없이 가볍다. 그의 오른팔 격인 바우로 출연한 김인권도 재능 많은 배우지만 웃기는 감초 캐릭터로 표현된 점도 아쉽다. 분량을 많이 차지한 두 캐릭터인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해 영화의 '정점'을 찍는 데 실패했다.
긴 글을 통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사실 [고산자]는 대중 취향적인 영화로서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흥행 공식에 기인한 전형성에 맞게 완성된 만큼 어느 정도 볼만한 수준이며, 본래 의도한 메시지를 일반 관객에게도 충분히 전달해 줄 것이다. 시대별 관객들의 취향과 정서에 맞게끔 영화를 쉽게 완성한다는 점은 강우석 감독만의 재능이며, 장기적으로 흥행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그만의 노하우가 나름 잘 담겨 있다.
다만 완성도와 소재가 지닌 역사적 가치에서 바라본 [고산자]의 결과물은 너무나 아쉽다. 영화에 대한 평과 별점도 그 점에 기인했다는 것을 알아 두었으면 한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9월 7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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