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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홀로 휴가] 조재현 감독 "불륜 미화가 아닌, 행복에 대해 묻는 영화"

16.09.1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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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재현'이 아닌 '감독 조재현'은 여러 작품서 보여준 '카리스마'와 '강인함'이라는 수식어와는 동떨어져 보였다. 제작, 연출, 각본을 맡은 [나홀로 휴가]가 관객의 최종평가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초조함보다는 홀가로운듯 여유로워 보였다. 시종일관 재미있는 농담을 던지며 밝은 분위기를 유지한 가운데 자신의 작품관과 연출 의도에 대한 설명에서는 차분하고 진중한 모습을 보이며 작품에 대한 진심을 전달하려 애썼다. 

영화 속 강재가 시연을 향한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애절한 눈빛을 드러냈듯이, 감독 조재현 또한 비슷한 눈빛을 보여주며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이야기와 진심을 풀어내려는 것 같았다.  

결혼 생활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현대 부부들의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고 싶었던 연출 의도부터, 제작/연출자의 입장이 되어본 심경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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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휴가]를 창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2001년 SBS 드라마 [피아노]를 촬영했던 당시 오종록 감독이 최근 자기가 읽은 단편 소설이라며 내용을 들려줬다. 평범한 회사원인 중년 남성이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전 한 오피스텔에 들러 손, 발을 닦고 몇 시간 동안 가만히 누워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었다. 

바쁘고 힘든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공간과 휴식이 필요했던 현대인의 고독함을 씁쓸하고 현실적으로 그린 소설인데, 당시 나는 30대의 나이여서 그 소설에 내용에 큰 공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40대 나이가 되면서 이상하게 그 소설의 내용이 생각나고 공감되기 시작했다. 중년 남성에게 있어 오피스텔의 휴식이 행복이었듯이 우리 각자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었다.  


-친한 감독들이 많은데, 조언을 주고 도움을 준 분들이 계셨나?

절친한 전규환 감독과 김기덕 감독이 유심 있게 듣고 조언을 해줬다. 2012년 [무게]와 [피에타]가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되어서 베니스에서 둘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에게 [나홀로 휴가]의 줄거리와 컨셉에 대해 설명해줬다. 전규환 감독은 대체로 공감하면서 엔딩 부분에 대해 조언을 주었고, 김기덕 감독은 "지금 이야기는 15분 분량밖에 안된다."라며 에피소드를 추가할 것을 조언했다. 

그런데 정말 각본 작업을 진행해보니 김기덕 감독의 말이 맞았더라. (웃음) 덕분에 여러 이야기 특히 영찬(이준혁)의 이혼 이야기와 결혼관이 추가되었다. 


-가장 중요한 아내분의 반응은 어땠나?

아내가 열심히 봐주었다. 세 번이나 (웃음) 사실 영화가 아내 취향이 아니었다. (웃음) 그래도 공감은 많이 해주고 평가할 부분은 냉정하게 평가해줬다.


-원래는 감독님이 직접 주연하려 한 작품이라 들었다. 

맞다. 원래는 내가 출연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드라마 [펀치]를 촬영하면서 혁권이를 만나게 되었고, 왠지 그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의견을 구했는데, 다들 나보다 박혁권이 주연으로 제격이라 했다. (웃음) 내가 제작자이고 감독이지만 나에 대해서도 냉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결국, 옳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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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권을 주연으로 캐스팅 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나?

[펀치]에서 혁권이가 내 심복으로 등장했다. 한 에피소드에서 내가 그에게 심하게 뺨을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너무 몰입해서 나도 모르게 진짜로 세게 때렸는데, '컷' 이후 확인해보니 혁권이가 정말 많이 아파서 울고 있었다. 그때 정말 미안해서 사과했는데, 세상에 그렇게 큰 눈물방울은 처음 보았다. (웃음) 이렇게 진심으로 우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스크린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게 캐스팅을 제안하게 되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박혁권은 눈물을 가리려고 한다. 

그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일반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면 그 부분을 강조해서 보여주려고 한다. 그런데 혁권이는 따로 주문을 주지 않았는데, 자동적으로 눈물을 닦으려 했다. 좋아하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있다. 소년원 출신 권투선수의 이야기였는데, 이 친구의 아버지가 이 친구를 버리고 노숙자가 되었다. 나중에 소년은 결승에 올라왔는데, 제작진이 겨우 아버지를 찾아내 경기 전 만나게 했다. 

감동의 상봉이었는데, 두 사람이 의외로 담담하게 대화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두 사람의 옷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행동과 다르게 둘 다 조심스럽게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감정이란 직접 보여주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눈물을 과장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실생활에서는 절대 이렇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 점에서 본다면 박혁권은 진짜 현실적인 연기를 보여준 것이다. 


-배우들의 정면 샷을 비롯해 의미심장한 카메라 구도와 인물들의 시선이 등장한다.

강재와 시연이 잠시나마 사랑을 했지만, 이 두 사람이 옳은 일을 한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이 두 사람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담아내려는 의미로 그러한 카메라 구도를 설정했다. 정면 샷 외에도 정말로 중요한 타인의 시선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제주도의 한 바닷가에서 키스 하다가 소를 몰던 할아버지가 이를 바라보는 묵묵한 시선이며, 두 번째는 시연을 유심 있게 바라본 꼬마 아이의 시선이다. 

아마 그녀는 그 부분에서 어떠한 심리적 변화를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타인들의 시선이 관객에게 던져주고 싶은 질문이었다. 


-영화가 중반부터 전개가 뒤죽박죽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의도한 것인가?

촬영을 진행하다 보니 장소적, 시간적 여건이 생기면서 촬영분량이 의도와 다르게 많이 늘어나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전개상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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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자이자 제작로서의 고충은?

시나리오를 직접 쓰다 보니 이야기 전개 순서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촬영이 끝나고 편집 작업을 했을 때도, 직접 해보지 않았기에 내 체질이 아니란 걸 알았다.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저예산 영화를 많이 해본 경험이 있어서 예산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번 촬영을 준비하면서 우선적으로 추구하고자 한 것은 제작진 모두가 즐겁게 일하자는 거였다. 스태프 모두가 일하면서 잘 먹고 잘 잤으면 했다.

저예산 영화라고 맨날 김밥먹고, 부족한 장소에서 숙식해야 하나? 나는 내가 찍은 영화의 스태프들이 고생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속 야외 바베큐신과 뷔페신 작업이 끝나고 나서는 스태프 모두가 바베큐와 뷔페를 즐기도록 했다. 


-그러면 극중 제주도에 나오는 콘도에도 스태프들이 숙식했나?

그렇다. 대신 나는 일반 콘도에 잤고, 스태프들은 내가 묶은 곳보다 더 좋은 고급 콘도서 자게 했다. 거기는 내가 연간 회원으로 있는 곳인데, 내 1년 치 회원권을 다 썼다고 하더라.(웃음) 내 사람들을 고생시키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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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 시연을 연기한 윤주 배우가 어려운 연기를 선보였다. 연기 부문에 있어 특별히 강조한 게 있었나? 

윤주 씨가 총 세 번의 베드신 장면을 연기했다. 어려운 연기지만 최대한 진짜 관계처럼 보일 수 있도록 연기해달라고 부탁했다. 영화 속 섹스는 단순한 행위가 아닌 대화라고 생각하라고 주입했다. 그러다 보니 베드신에 농도 짙은 대사가 등장했다.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지만, 불륜이라는 불편한 정서가 배경에 깔려있다. 밉지도 싫지도 않은 묘한 러브스토리인데, 이러한 독특한 정서를 의도했나?

나는 불륜을 미화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여성을 비하하는 영화도 절대 아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당신 정말 행복하나요?"라고 묻고 싶었다. 그 누구도 결혼생활에 대해 물으면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부분 50이 되면 더이상 사랑의 관계가 아닌 친구 같은 사이가 된다고 한다. 내가 극중 결혼계약제 같은 농담을 깔아둔것은, 진짜로 그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자는 의미였다. 

'설렘'을 이유로 데이트와 짧은 연예 관계에 집착하고 그로인해 자신의 부인을 방치하는 일은 잘못됐고, 무의미한 행동이다. 진심으로 마음에 들은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오래 살라는 것을 말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농담처럼 결혼 계약제가 시행된다면, 사람들은 계약제를 많이 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은 새로운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만큼 오랫동안 유지된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두려운 행위다. 때문에 우려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차기작을 구상 중인지?

아마 내년에 할 수도 있다. 확실하게 정해진 건 없다. 한다 하더라도 이번 [나홀로 휴가]와 같은 작가주의 상업 영화(?)가 될 것이다.(웃음)


조재현의 감독 데뷔작이자 박혁권, 윤주 주연의 [나홀로 휴가]는 9월 22일 개봉한다.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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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모범 가장 ‘강재’의 취미는 사진찍기다. 나 홀로 취미인 탓에 아내는 때때로 불만을 토로하지만, 출사 여행은 그녀가 남편에게 허락한 건실함에 대한 작은 보상이다. 오늘도 강재는 홀로 제주도로 떠나왔다. 꽃, 바다, 해녀들을 카메라에 담는 것도 잠시, 그의 카메라 렌즈가 단란해 보이는 한 가족을 좇고 있다. 불쑥, 클로즈업되는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 강재가 10년 전에 놓친 사랑 ‘시연’이다. 강재는 그녀를 잊지 못해 지금까지 쭉 그녀 주위를 맴돌며 몰래 바라보고 있었던 것. 그러던 어느 날, 시연이 며칠째 직장과 집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묘연한 행방에 불안해진 강재는 기어코 그녀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마는데…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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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수현재엔터테인먼트/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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