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휴가] 리뷰: 평범한 '아재'가 '엽기적' 스토커가 된 사연은? ★★★
16.09.20 16:13
[나홀로 휴가, 2016]
감독:조재현
출연:박혁권, 윤주, 이준혁, 김수진
줄거리
소문난 모범 가장 ‘강재’의 취미는 사진찍기다. 나 홀로 취미인 탓에 아내는 때때로 불만을 토로하지만, 출사 여행은 그녀가 남편에게 허락한 건실함에 대한 작은 보상이다. 오늘도 강재는 홀로 제주도로 떠나왔다. 꽃, 바다, 해녀들을 카메라에 담는 것도 잠시, 그의 카메라 렌즈가 단란해 보이는 한 가족을 좇고 있다. 불쑥, 클로즈업되는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 강재가 10년 전에 놓친 사랑 ‘시연’이다. 강재는 그녀를 잊지 못해 지금까지 쭉 그녀 주위를 맴돌며 몰래 바라보고 있었던 것. 그러던 어느 날, 시연이 며칠째 직장과 집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묘연한 행방에 불안해진 강재는 기어코 그녀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마는데…
배우 조재현의 첫 감독 데뷔작인 [나홀로 휴가]는 '스토킹'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다소 도발적인 작품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가 오랫동안 함께 작업한 김기덕, 전규환 감독의 개성과 색채를 생각해 본다면, 그의 이번 감독 데뷔작은 충분히 민감할 것이라 여겨졌다. 홀로 여행을 하며 한 여자의 뒤를 쫓는 주인공 강재의 모습을 일상적인 시각으로 담으려는 담담한 연출에서 '신인 감독'(?)의 모험심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그러한 예상은 강재의 정체가 드러난 다음 장면에서부터 엎어지게 된다. 스토커라는 설정 탓에 어둡고 혼자 사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주인공은 아내와 딸, 그리고 안정된 직장을 가진 평범한 가장이었다. 인간의 관음증과 같은 추악한 본성을 이야기할 것 같았던 [나홀로 휴가]는 평범한 가장이 한 여성에게 집착하게 된 사연을 통해 사랑, 행복과 같은 일상의 욕구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
[나홀로 휴가]가 담고자 한 보편적 이야기는 결혼 생활에 대한 애환과 행복 추구라는 가치에서 갈등하는 개개인의 내면이다. 스토킹은 메인이 아닌 이 보편적 이야기를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였던 셈이다. 여자 '시연'을 따라다니는 강재의 시선과 함께 비중 있게 다뤄지는 장면은 그의 일상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다. 무미건조한 부부 생활, 결혼을 '감옥'처럼 여기며 '계약제'를 외치는 남성들의 농담에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행복에 관한 어그러진 판타지가 조명된다. 남성의 시각 위주로 묘사되었다는 점에서 여성 관객에게는 다소 불편한 대사와 시각이 담겨있지만, 이는 마초적 관념의 추락을 서글프게 풍자한 묘사에 가깝다.
그 점에서 볼 때 [나홀로 휴가]는 김기덕, 홍상수 감독이 작품에서 보여준 남성적 시각의 이면을 유심 있게 찾아 볼 수 있다. 술자리에서 자신들의 본성을 드러내지만, 현실에서는 이혼과 방황을 반복하는 남성들의 모습을 관찰자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대목은 홍상수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남성들의 내면은 강재의 스토킹에 영향을 주게 되고, 이를 직접 옮기는 '엽기 행각'은 김기덕 감독 영화 세계의 판타지에 가깝다.
행복이라는 미명 속에 자신의 욕구에 충실했지만, 윤리적 관념이 지배한 현실과 충돌하면서 파국을 맞게 된 강재와 시연의 숨겨진 사연은 [나홀로 휴가]가 현대인의 욕구를 다양한 시각으로 정의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재의 스토킹은 윤리적 시각에서 범죄에 가깝지만, 인간의 욕구적 본능으로 봤을 때는 지고지순한 순수한 사랑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논란이 될 수 있는 요소지만, 어느 한쪽의 편에 서지 않은 채 현실적인 시각에서 이러한 논란 요소를 담담하게 그리려 한다.
스토킹, 불륜, 그리고 행복으로 연결되는 민감한 주제를 유머와 로맨스를 오가는 장르적 장치를 통해 표현한 전개 방식은 돋보였지만, 이 모든 요소를 전부 담으려 한 탓에 산만하다는 느낌을 가져다준다. 스토킹과 그 행위가 불러오게 되는 해프닝이 이어지는 대목은 긴장감이 있는 편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사연을 일일이 조명하려 한 탓에 [나홀로 휴가]는 무엇을 다루려 한 작품인지 분명하지 않다. 인간의 관음증, 집착, 결혼 애환, 남성 환타지 등 좋은 소재와 주제관은 많지만, 이들 모두를 비중 있게 다룬 탓도 있다.
조재현 감독의 대인관계를 나타내는 특별출연진의 모습은 대중적인 재미를 가져다주지만, 이 또한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을 보여준다. 특별출연진의 존재감과 개성이 너무 강한탓에 진중하게 바라봐야 할 일부 장면과 정서가 과장되게 느껴진 부분도 조금 아쉬운 편이다.
그럼에도 도발적인 주제와 상징적인 영상미와 장면을 완성하며, 영화에 대한 깊은 여운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인상적이었으며, 신의 한수 와도 같았던 박혁권의 캐스팅은 이 영화의 무난한 완성을 이끌어내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문제적 캐릭터이지만 이를 특유의 애잔한 캐릭터로 완성하며 공감적 정서를 불러오는 박혁권의 특유의 연기는 가히 돋보였다. [나쁜 피] [평정지에는 평정지에다]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긴 여배우 윤주도 두 작품에서 보여준 장점을 잘 섞어낸 무난한 연기를 선보이며 박혁권과의 안정된 호흡을 선보였다.
완벽하지 않지만, 작가주의와 장르 영화의 장점을 다양하게 조합하려 한 시도를 통해 감독 조재현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홀로 휴가]는 그의 인상적인 데뷔작이었다. 어두운 색체의 논쟁거리가 될 수 있었던 작품이었지만, 대중적인 시각에서 이를 그려 냈다는 점에서 무난하게 감상하며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나홀로 휴가]는 9월 22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주)수현재엔터테인먼트/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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