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리뷰: '찌질해진 남과여' 홍상수 영화의 새로운 진화 ★★★★
16.11.08 14:02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
감독:홍상수
출연:김주혁, 이유영, 권해효, 유준상, 김의성
줄거리
화가인 영수는 오늘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영수는 여자 친구인 민정이 어느 남자와 술을 마시다 크게 싸움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그날 밤 그 일로 두 사람은 말다툼을 하고 민정은 당분간 서로 보지 말자며 나가버린다. 다음날부터 영수는 민정을 찾아다니지만 민정을 만날 수 없다. 그러는 사이, 그가 사는 연남동의 여기저기를 민정 혹은 민정을 꼭 닮은 여자들이 돌아다니면서 몇 명의 남자들을 만나고 있다. 영수는 민정을 찾아 헤매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데, 그게 세상하고 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민정 혹은 민정을 닮은 여자는 영수가 두렵게 상상하는 그녀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채 “한번도 만나지 못한 그 좋은 남자”를 찾아 헤매고 있다. 둘이 다시 만나는 날, 두 사람은 어떤 식으로건 모든 싸움을 멈추는데, 그게 너무 좋아 믿기가 힘들 수 있다.
영화계 거장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 받는 거장, 그리고 매작품마다 논란을 낳는 거장. 그 기준에서 볼 때 홍상수 감독은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후자의 입장에 가깝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근래 있었던 사생활 스캔들은 제외한 채로)
물론 그의 작품이 평단의 호응을 불러오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그에 못지않은 결렬한 호불호도 존재했다. 특히 그의 작품이 언제나 페미니즘적 시각을 지닌 평단의 시선에서 곱지 않게 바라봤던 사례를 생각해 본다면, 그의 신작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 대한 반응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 대한 인물의 시선과 설정은 과거 그의 작품서 유지한 설정과 비슷하다. 남자의 시선에서 보는 여성에 대한 판타지적인 시각, 그에 부응하는 듯한 여주인공의 존재, 타인의 시선에서 정의되는 개개인의 민낯을 드러내는 과정 또한 여전하다.
하지만 순수 영화의 시각에서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근래 홍상수 영화 중 가장 특별한 인상을 남겨준 흥미로운 작품이다. 기존의 주제와 이야기는 홍상수 감독의 전작과 다르지 않지만, 이야기 흐름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이는 그동안 다양한 이야기의 변형을 선보인 홍상수의 영화가 좀 더 진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동안 1인칭 시점의 이야기를 추구하던 방식을 벗어나 이번 영화를 통해 2인칭 시점의 이야기를 추구하면서 모든것이 달라졌다. 남자 주인공의 시각에서 여성에 대한 판타지를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했던 것과 달리 홍상수 감독은 이러한 새로운 방식을 통해 남녀의 입장차를 보다 공감적으로 그려내는데 집중한다.
남자 주인공 영수는 민정과의 이별 후 급격한 외로움을 느끼고 삶의 의욕을 잃게된다. 뒤늦게야 그녀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영수를 민정을 찾아 나서기에 이른다. 영수에서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애정 결핍으로 인해 피폐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남성의 심리를 대변한다.
홍상수 작품 속 기준에서 본다면 여성의 존재가 필요한 일반적인 남성 캐릭터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가운데 일상의 남성들이 지닌 연애 판타지, 애정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 부분은 극 중 여성들의 안쓰러운 표정이 말해주듯이, 남성 중심의 사고관에 대한 옹호라기보다는 해학적인 풍자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는 영수가 아닌 권해효, 유준상이 연기하는 남성 캐릭터들의 모습에서 분명해진다. 존엄한 이미지와 활기찬 자신감을 지닌 각각의 남성관을 드러내는 이들은 여성 앞에서 본심을 드러내고,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으려 접근하려 한다. 욕망 앞에서 스스로 망가지는 '찌질한' 남성들은 홍상수 영화의 독보적인 이미지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반전'(?)상황을 도입하며 더욱 찌질한 캐릭터들로 전락시킨다.
여기까지 본다면 기존의 홍상수 영화의 모습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일 것이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이 흥미로워지는 대목은 여주인공 민정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영화손 민정은 매우 미스터리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존재인 동시에, 홍상수 감독 역대 작품 중 가장 흥미롭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영수와 이별 후 등장하는 민정의 존재는 그녀 자신이 아닌 그녀를 닮은 여성으로 설정되었지만, 달리 보면 민정 스스로가 자신을 숨기는 연기를 하고있는 여운을 담고 있다.
진정한 사랑의 존재를 찾기 위해 여러 남자를 마주하는 민정을 다람은 그녀의 방황은 홍상수 감독의 전작에서 등장한 남성들의 역할을 대신하는 설정으로 남녀의 달라진 입장차를 대변하고 있다. 여기에 수시로 자신의 정체를 번갈아 바꿔나가는 그녀를 통해 정체성에 대한 철학과 사랑에 대한 연계성을 강조한다. 불확실한 민정의 존재는 이 영화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기이한 판타지'의 기운을 갖고 있음을 자극하며, 홍상수 감독이 말하고자 한 사랑에 대한 심오한 철학과 주제관을 신비롭게 재조명하기에 이른다.
영수와 민정이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은 이야기는 남녀 모두를 통틀어 인간은 사랑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존재라는 것임을 각인시킨다. 민정의 행동에 분노를 느끼던 영수는 헤어지고 나서야 그녀 그대로의 모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게 된다. 영화의 제목인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당신이 부정적으로 생각한 연인의 본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지를 물으려 하는 감독의 질문과도 같다. "고마워요, 당신이 당신인 게!"라는 영화 속 대사는 타인의 자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의 장점을 상징하는 이번 영화의 의미 있는 주제관이다.
즉흥적으로 진행되는 배우들의 연기도 재미를 불러오는 동시에 공감대를 형성한다. 모든 배우들이 무난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냈지만, 가장 큰 일등 공신은 여주인공 민정을 연기한 이유영으로 앞으로의 홍상수 작품의 새로운 페르소나가 되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청순한 여성미, 요염함을 오가며 극중 남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오묘한 매력을 발휘하며 영화의 매혹적인 분위기를 주도한다. 홍상수의 개성만큼 그녀의 팔색조 같은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유영의 영화'라 해도 무방했다.
시종일관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술자리, 잠자리와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영화만의 주제관을 적절하게 드러내는 대목은 홍상수 감독 연출력의 변화와 특유의 개성을 느낄 수 있어서 그의 팬이라면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11월 10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주)영화제작전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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