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판도라] 김남길 "미녀 배우들과 연이어 호흡하는 비결? 아마도…"
16.12.08 13:54
인터뷰 전 화장실에 들르기 위해 카페 지하로 내려왔을 때, 익숙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농담에 주변 사람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며 크게 웃고 있었다. 농담을 던지며 대화를 주도하는 이가 바로 오늘 만나기로 한 배우 김남길이었다. 김남길은 그렇게 연예인이라는 위치를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를 일반인이라 생각하며 타인들과 허물없이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추리닝과 공중목욕탕에 대한 예찬을 펼치며 편하게 일상생활의 일화를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판도라]의 재혁이 그냥 나온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했다. 아마 영화 시간이 더 길었다면 우리는 친근한 동네형 재혁의 모습을 더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다음은 일문일답.
-영화에서 보다 많이 홀쭉해 지셨다.
[판도라]의 모습이 많이 찌운 상태였다. 그전의 작품에서 연기했던 캐릭터가 나쁜 남자의 모습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달랐다. 주인공 재혁은 수더분하고 철없는 캐릭터이기에 관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살을 좀 찌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촬영일이 지속되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재난에 맞서 주인공이 보여준 활약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바로 그거다. 헐리웃 재난 영화와 다른 현실적인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무섭지만 따뜻한 감성을 지닌 작품이다. 아쉬운 거라면 이번 작품 속 내 캐릭터의 대사가 너무 많다는 거? (웃음) 그나마 감독님과 의논해서 캐릭터의 행동을 변화시키려 많이 노력했다.
-이번에 연기한 주인공 재혁의 모습은 정의로운 인물이라기보다는 다분히 현실적인 캐릭터다.
재혁은 영웅이 되고 싶어 하지 않은 인물이다. 누군가 그를 영웅이라 이야기하지만, 재혁은 동료애와 가족애만큼은 남다른 정감 있는 인물이다. 그 때문에 이기적인 캐릭터이지만, 유심히 본다면 인간애를 지닌 따뜻한 인물로 정의된다. 재혁이 영웅처럼 비춰지는 부분이 조금 억지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재난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있는 평범한 인물이다.
-촬영 후 발생한 경주 지진을 비롯한 지금의 여러 시의적 사태를 보면 영화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 놀랐겠다.
맞다. 사실 촬영하는 당시에도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라 생각했다. "영화 속 일이 실제 발생하겠어?" 라고 안일하게 여길 때였다. 기획했을 당시에는 근래 벌어진 후쿠시마 원전 보다는 오래전 발생한 체르노빌 사태에 초점을 두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원전 사태에 대한 현실적인 체감은 없을때였다. 나도 이번 경주 지진을 직접 느껴봐서 정말 오싹했다. 한편으로는 개봉과 관련한 고민도 있었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불안해 할까였다.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세우자는 취지로 만든 영화인데, 너무 생생해서 관객들이 무섭지 않을까 생각했다.
-전 세계 적으로 원전 재난 영화는 희귀하다. 참고할 작품 없어 생생한 방사능 고통 장면을 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영화 속 피폭 장면은 원래보다 더 낮춘 거다. 극 중 인물들이 구토하고 피부가 변하는 모습은 방사능 피폭의 초기 단계라 한다. 실제로는 피부가 아예 재생이 안 되고, 곧바로 즉사한다고 한다. 원전 폭파 당시 주변에 있던 인물들의 사진을 봤는데 그 모습이 너무 징그러워서 그대로 재현했다면 사람들이 영화를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제작진은 눈에 보이는 최소한의 느낌으로 이 장면을 표현하자고 했다.
▲[판도라] 재혁과 가족들
-재앙이 꼬리에 꼬리를 물 정도로 끊임없이 진행된다. 심리적인 압박감이나 어려움은 느끼지 못했나?
그래서 제작진이 이 부분을 세 파트로 끊어서 찍기로 했다. 원자력 발전소, 피난현장, 청와대 상황실 이렇게 나눴다. 무엇보다 청와대 쪽 하고는 마주칠 일이 없었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마무리 될 거라 생각한 순간에 엎친 데 겹친 데로 등장하는 건 이 사태가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원전을 막으면 될 줄 알았는데 그다음에는 냉각수 문제가 발생한다. 편집된 장면을 보니 굉장히 잘 완성되었더라. 촬영할 때는 몰랐는데 특수효과와 CG가 결합하니 느낌이 달랐다. 연기를 위해 기초지식을 배웠지만 이해를 못 해서 감독님이 백날 설명을 해주셔야 했다. (웃음) 그래도 너무 이해를 못하니까 나중에는 화이트 보드까지 동원해 그림까지 그려주시며 설명해주셨다. (웃음) 감독님과 정진영 선배님이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박정우 감독님과 많이 친한것 같다. 그래서 에피소드가 많았겠다.
감독님과 나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처음 영화로 기획되기 전 감독님 집에 가서 원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그다음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눴다. 그러다 서로의 가족사를 이야기하다 똑같은 공감을 같게 되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가족의 치부를 드러낸 사연까지 이야기해서 가족 욕만 하고 끝났다. (웃음) 결국 그러한 투덜거리는 모습을 본 감독님이 그 모습 그대로 재혁의 캐릭터를 완성하라고 요구하셨다. 촬영 때는 감독님과 함께 캐치볼과 당구를 함께 치며 놀았다. 한번은 내가 다음날 촬영을 쉬는 날이어서 여유 있게 당구를 치고 있었는데, 감독님은 다음날 촬영해야 하는 것도 깜빡 잊고 새벽까지 당구를 치셔서, 피곤한 상태서 영화 촬영을 지휘해야 했다. (웃음) 그리고 감독님은 보기와 다르게 꽤 스타일리시한 사람이다. 이번 촬영때 옷을 10벌 이상이나 갖고 오시더라 (웃음). 촬영때도 최신 패션으로 무장하고 촬영하시는 재미있는 분이시다. (웃음)
-그에 비해 남길씨는 이번 영화서 추리닝만 입고 나오는 시골 청년이다. (웃음) 그런데 추리닝이 너무 잘 어울린다.
영화속의 그 추리닝은 사실 내꺼다. (웃음) 나는 진짜 추리닝을 좋아한다. 추리닝도 잘 입는 방법이 있다. 한번 꽂히면 그 상태로 3, 4년 정도 입고, 겨울에도 입는다. 그래서 친구들이 나에게 추리닝 잘 입는 방법을 물어본다. (웃음) 내가 원래 패션에 크게 관심이 없다. 행사때도 정장 입고 가는 걸 귀찮아 할 정도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이 나에게 "너는 배우인데 옷 좀 잘 좀 입어라."라고 충고할 정도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배우는 자유롭고 편안해야 한다고 항변한다. 그래도 내 패션에 불만을 갖는 그들을 위해 깔맞춤 추리닝 패션을 고려할 계획이다. (웃음)
-그전 캐릭터를 보면 느낌이 오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다르다.
[해적]을 했을 때 연기에 대한 정체기가 왔었다. 코미디 장르여서 편안하게 하려 했는데, 사람들 반응이 평소 내 모습이라고 말하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연기에 너무 힘을 넣었나 생각했다. 그래서 [무뢰한] 때는 힘을 빼고 했는데, 이상하게 그때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판도라]난 재난이고 정서적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베테랑 선배님들이라면 능수 능란하게 연기했을 테지만, 나는 그렇게 못한 것 같다. 사투리 연기의 경우에도 오버가 심해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서울말 하는 경상도인으로도 고민했었지만 (웃음) 감독님이 사투리 하고 인간미 있는 재혁을 더 원하셨다. 그래서 팔도 사투리에 능한 연기 선배님을 만나 경상도 억양에 관한 조언을 구했다. 그분 조언이 경상도말 잘하고 싶으면 경상도 사람들과 말을 섞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어느 날은 부산 택시 운전 기사님에게 배웠던 경상도 사투리로 말씀을 드렸더니 곧바로 "서울분이시네요."라고 바로 맞추시더라. (웃음)
-제작보고회때는 추리닝 입는 동네 바보형이 될거라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닌거 같다. 웃음기가 많이 빠졌다는데, 그 이유는?
사실 이야기에 재미있는 게 많았다. 애드립 유머도 있었는데, 그럴 때 마다 서울말이 나오더라. 그래서 감독님께 많이 혼났다. 감독님께서 너무 과한 유머를 원하지 않으셔서 유머 부분에서는 조율이 있어야만 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동네형 처럼 순박한 사람들이다. 외골수 적이지만, 동네를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매사 투덜거리는 사람이 후반부에 "엄마"라고 부르며 울면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정말 짠하게 느껴졌던 건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영화이후 원전, 재난 등 가치관에 크게 변화를 느낀 부분은?
영화를 할 때마다 그런 것 같다. 가치관과 생각이 성숙해진다고 해야할까? 지진, 원전에 대해 전혀 몰랐고 관심도 없었지만, 이 작품으로 인해 이 부분에 대해 더욱더 관심을 끌게 되었다. 작품을 통해서 인간적으로 많이 성숙해지는 걸 느꼈다. 그걸 보면 완벽한 사람은 연기하면 절대 안되는 것 같다. (웃음)
-[무뢰한] 때도 성숙한걸 많이 느꼈다.
감사하다. [무뢰한]은 고전미가 느껴져서 좋았고, 캐릭터를 그렇게 만들어 보고 싶었다. 촬영 당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봤는데, 너무 좋았다. 한석규 선배님 연기를 보면서 공감한 게 많았고 그 느낌을 [무뢰한]에서도 살리고 싶었다.
-전 작품들과 지금의 [판도라] 그리고 개봉을 준비 중인 차기작에서도 대한민국 최고의 미녀 배우들과 연이어 연기한다. 비결이 뭐라고 보는가? (차기작인 [어느날]에서는 천우희,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설현)
비결이라 (웃음) 그렇게 말하니 너무 쑥스럽네! (웃음) 비결이라기보다는 내가 참 상대 배우 복이 많다고 보인다. 내가 잘해야 상대 배우들도 덕을 보고 나도 상대 배우들도 돋보이게 된다. 그만큼 나와 배우분들의 호흡이 잘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런 캐스팅 복이 있었던 것 같다. 이 말은 [무뢰한] 때 전도연 선배가 나에게 충고해 줬을 때 했던 말인데, 내가 그 말을 듣고 "나도 알아 누나"라고 맛받아쳤다. (웃음)
-그러고 보니 매년마다 작품이 나온다. 끊이질 않게 일하고 있는것 같다.
그렇게 보이는 게 개봉일이 늦어져서 그렇다. 대중들은 내가 공백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근데 가끔은 그런 모습도 필요하다. 이렇게 조용히 작업하면서 영화로 찾아 보는 것도 좋다. 그러다 보면 길거리에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지 않나? (웃음)
-그렇게 말하고 보니 배우가 아니라 일반인 같다.
그게 배우들에게 가장 중요한 거다. 배우의 연기가 왜 잘 안 되고 어려운지 이유를 아시나? 바로 일상에서 대중들과 잘 섞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무명 때는 그러지 못했는데,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게 되면서 나도 서서히 불편해 졌다. 사생활과 패션에 신경을 써야하니 너무 피곤했다. 나중에는 그게 귀찮아졌고, 연기를 좀 더 공감 있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대중들도 공감하는 연기가 나올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어제도 공중목욕탕에 가 때밀이도 부탁했다. (웃음)
[판도라]는 현재 절찬리 상영중이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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