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여교사]의 김하늘 "영화속 효주, 나에게 있어 너무나 가슴 아픈 캐릭터다"
17.01.05 13:35
아마 본 기자와 같은 또래의 영화팬이라면 [여교사]의 김하늘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로망스]의 첫사랑 여선생을 떠올렸을 것이다. 청순과 발랄함의 상징이었던 그녀는 15년 전 그 당시의 아름다움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발랄했던 첫사랑을 대표했던 그녀였기에,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무미건조한 한 여성의 불안한 내면을 표현하는 영화속 모습은 더욱 애잔하게 느껴졌다.
그런 애잔함은 주인공 효주를 연기한 그녀 자신에게도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았다. 1년 전 연기한 캐릭터였지만, 그동안 연기한 캐릭터중 이렇게 불쌍하고 슬픈 캐릭터는 없었다며, 자신이 연기한 효주의 마음을 쓰담고 있는듯했다. 한편으로는 인터뷰 내내 웃음기 대신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며, 영화와 캐릭터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는 모습은 과거의 발랄함과 달리 나날이 성숙한 연기를 선보이며 발전해 나가는 희망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그동안 김하늘이라 생각한 기존의 이미지를 바꾸는 강렬한 캐릭터다. 힘들지 않았나?
사실 이 영화의 각본을 처음 접했을 때, 재미는 있었지만, 작품에 대한 느낌이 많이 불편했다. 캐릭터 자체가 모멸감의 감정이 너무 깊어서 내가 하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가 연기할 때는 시나리오상의 감정을 느끼며 연기하기에, 이런 감정을 느끼며 작업하는데 너무 싫었다. 아무래도 내가 20년 동안 너무 사랑받는 역할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웃음) 공포 스릴러도 했지만 이렇게 외면받았던 역할은 아니었으니까. 이 작품은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으며, 별로 느끼고 싶지 않았던 감정이었다.
-과거 드라마 [로망스]의 이미지를 깨기 위해, 출연을 결심했나?
그렇지 않다. [로망스]를 많이들 좋아해 주셨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깨고 싶지 않았다. 연기적인 욕심이 컸던 거지 그걸 깨려고 하는 의도는 없었다. 아마도 이번 영화가 [로망스]의 내 이미지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많이들 당황하셨을 것이다.
-최근에 방영된 드라마 [공항 가는 길]이 그런 이미지를 깨주지 않았나?
[공항 가는 길]은 [여교사]의 연장선이라고 봐야겠다. [여교사] 이후에 작업한 작품이며, 나에게는 멜로물로 다가온 드라마다. 감정적인 표현이 있었기에 연장 선상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김하늘과 많이 다르다. 어떤 감정으로 연기한 것인가?
이 작품을 파격으로 많이 인식하고 있어서, 외적으로 그 부분으로 보시는 분들이 많다. 내 친구들도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너무 무섭다고 하더라. (웃음) 친구들이 영화에 대한 잔상 때문에 많이 놀랬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연기적 선이 매우 애매하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효주의 감정적인 부분과 내 생각이 많이 달랐다. 감독님은 효주의 행동을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하고 연기하라 주문하셨지만, 그 부분에 공감할 수 없어서 감독님과 많은 논의를 나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니 내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삶에 지치고 기댈 곳이 없는 상황에서 효주의 유일한 희망은 정규직 교사가 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재하는 삶의 자극적인 요소였을 것이다. 처음 효주의 감정에 이입할 때는 열린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감종의 소용돌이로 빠지게 되었다.
-남자 감독님이 연출을 하다 보니 여성의 감정을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서 이해가 안 갔을 수도 있었겠다.
효주를 연기하는 입장이었기에 연기적인 부분에 있어서 감독님께 적극적으로 의견을 드렸다. 감독님이 완성하신 이야기지만 현실 속 여자들의 심리는 각본과 다르다. 그래서 여성들의 감정과 심리를 감독님께 이야기했고, 감독님께서 내 의견을 많이 수용해 주셨다.
-김태용 감독은 누구나 다 아는 김하늘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다고 한다.
너무 좋았다. 김태용 감독님이 처음 나에게 대본을 주셨던 게 너무 궁금했다. 첫 만남때 왜 나에게 먼저 출연 제안을 했는지 물어봤더니 감독님이 나에 대해서 많이 모니터링을 했다고 하시더라. 나에게 관심을 끌게 된 계기가 '힐링캠프'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평상시 내 모습이 자기가 생각한 효주의 모습과 많이 비슷하다고 하셨다. 평상시 내 모습이 약간은 가라앉은 느끼었으며, 본인만이 느낀 그런 감정을 끄집어 내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 분이 나에게 관심이 있고, 내가 몰랐던 모습을 비춰줄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좋았다. 그래서 감독님을 믿고 작품을 하기로 했다. 감독님은 내가 가만히 있어도 의도했던 감정이 나오실 거라 하시더라. (웃음) 대표적인 장면이 효주가 혜영과 재하의 관계를 목격한 후 다음 날 아침 커피를 마시면서, 등교하는 재하는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거기서 내가 선보인 무표정한 모습이 기존에 보기 힘든 표정이라며 너무 좋아하셨다. 난 진짜 아무것도 안한 건데… (웃음)
-그 모습은 멜로 외에도 하늘 씨가 연기했던 공포, 스릴러물에서 보여준 서늘한 감정에서 나온 게 아닐까?
그럴 것이다. 하지만 감독님은 그런 장르물에서 보여준 연기적 느낌을 원하셨던 게 아니었다. 그냥 내 일상 속 모습을 부각하고 싶으셨다. 무미건조한 그런 표정을 보여주는 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극 중 효주와 자신의 공통점을 이야기 하자면?
사실, 나와 효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문제를 대처하는 방식도 현실의 나와 너무 다르다. 아마 현실의 나라면 바로 혜영과 친하게 지내거나, 완전히 그녀를 이해했을 것이다. 효주는 아등바등 하다가 결국 무릎을 꿇는다. 하지만 나중에야 이해가 갔던 것은 열등감, 자격지심, 질투의 감정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감정은 나한테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면이 사라졌지만, 어려운 현실에 놓여있는 효주이기에 그런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무릎 꿇는 장면이 이해가 가지 않다는 의견이 꽤 있다. 너무 극적이지 않은가?
그 부분은 원작 대본을 읽어본다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영화가 편집이 많다 보니, 설명이 필요했던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원래는 혜영이 나를 자극하는 장면이 너무 많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속 장면은?
많이 있는데,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으라면 영화 후반부 체육관에서 재하에게 모멸감이 담긴 말을 들은 효주가 혜영에게 찾아가 절박한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눈빛이 너무 절박해 보여서 개인적으로 아주 좋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마지막 부분에서 혜영이 나에게 재하와의 관계를 묻는 대목에서 보여준 내 목소리적인 반응이었다. 그게 참 디테일해서 좋았다. 내가 저런 목소리를 냈다니…(웃음)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았나?
아이러니하게도 [여교사]를 촬영했을 때가 아주 행복한 시기였다. 내 연기 패턴은 순간적으로 몰입하는 타입이다. 카메라가 켜지는 상황에서 좋은 감정으로 있으려고 한다. 안 그러면 집중을 못 한다. 어릴 때는 그런 감정 표현 방식을 잘 몰랐다. 슬플 때는 슬픈 생각을 하고, 기쁠 때는 기뻤던 순간을 생각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런데 막상 카메라 앞에 서면 그 감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에 나만의 노하우가 생기게 되면서 연기하는 게 능숙해졌다. 카메라 리허설에 들어설 때는 굉장히 몰입해서 표현을 하는 편이다. 효주는 그런 감정 상태가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런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내 체력과 정신도 건강해야 했다.
-[공항 가는 길][여교사] 때문에 제2의 전성기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 같다.
(웃음) 드라마 [온에어] 때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아마 그때는 30살이 됐을 때인데, 연기를 꽤 오래 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전성기의 마지막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또 듣게 되었네.(웃음) [블라인드] 때도 그런 칭찬을 들었는데, 계속 좋은 반응이 이어지니 앞으로가 희망적이다. 이번 [여교사]는 내가 출연한 영화 중 기자님들의 리뷰 기사가 가장 많았던 작품이었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고 자신감이 생겼다.
-영화 출연 이후로 비정규직, 계급 문제, 성차별, 같은 사회적 현실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많았을 것 같다.
그 부분은 뉴스와 주변 친구들을 통해 익히 듣는 내용이다. 같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일상의 친구들이 비슷한 처지에 놓였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보다 관객분들이 더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효주를 보며 [피아니스트][몬스터]의 캐릭터를 생각하는 기자들도 많다. 효주가 괴물 같다고 느낀 부분이 있었나?
전혀, 나는 괴물 같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효주는 너무 불쌍한 캐릭터다. 부모도 없고 그 흔한 친구조차 없는 외로운 존재다. 이 친구가 살고 있는 삶, 환경, 선생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학생들 등 그녀의 주변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효주에게 절로 연민이 가게 되었다. 내가 연기하는 주인공들은 이해가 가고, 설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항 가는 길]도 설득력 있게 연기하고 싶었다.
-극 중 효주처럼 실제로 모멸감을 느낀다면?
나는 직접 표현하는 편이다. 이게 내 길에 아니면 다른 걸 찾는다. 어찌 보면 단순하고 심플하다.
-극 중 남성 캐릭터들은 너무나 특이하다. 경제권이 없는 효주의 무능한 남친, 로리타가 되어버린 남학생 등 이 모습을 보며 어떤 기분을 느꼈나?
오전에 인터뷰한 20대 여기자가 그런 말을 하더라. 자기는 효주의 남자친구가 정말 이해가 안 간다고, 왜 그런 남친을 데리고 사냐고. (웃음) 나도 그런 남자 친구가 싫지만, 효주의 입장에서는 기댈만한 사람이 없기에 그런 남자에게라도 기대려 한 것이다. 효주가 떠나려는 남자친구를 잡으려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재하같은 캐릭터도 주변에서 보기 쉽지 않은 특이한 캐릭터다. 사실, 효주 남자친구 역할은 대본에서 아주 여성적이었는데, 희준 씨가 맡게 되면서 남성적인 캐릭터로 변했다. 원근이가 연기한 재하는 감독님의 노력으로 탄생된 특이한 캐릭터다.
-재하와의 관계가 깊이 있게 묘사되지 않아서 아쉽다는 의견도 있다.
오히려 나는 그런 깊이 있고 자극적인 묘사가 없어서 좋았다. 우리 영화 제목만 봐도 사람들이 이 영화를 섹슈얼하게 느끼고 있더라. 나는 그런 게 싫었다. 우리 영화를 감정적으로 봐주셨으면 됐지, 자극적인 작품이었다면 영화는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오히려 지금의 영화가 감정적으로 더 잘 표현되었다고 본다. 오히려 더 격정적인 장면이 없어서 더 좋았다.
-[미씽:사라진여자][판도라][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등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 속 여주인공들의 역할이 능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여교사]의 효주도 어쩌면 능동형 캐릭터인데,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보는가?
더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웃음) 우리나라 영화의 캐릭터들이 변하고 있다는 걸 평소에도 느꼈다. 데뷔 때만 해도 나는 청순하고 능글맞은 캐릭터였고, 그런 캐릭터들이 주를 이뤘다. 그러면서 점점 캐릭터들이 캔디지만 활동적으로 변하는 캐릭터가 나오는 등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온에어]의 캐릭터는 까칠했지만, 그럼에도 사랑받는 캐릭터다. 그렇게 캐릭터들이 변하는 것 같다.
-[공항 가는 길]의 수아, [여교사]의 효주는 본인에게 어떤 존재인가?
나를 성숙하게 해주는 캐릭터들이다. 특히 효주는 아마도 나에게 제일 아픈 손가락에 위치한 캐릭터 인 것 같다. [블라인드] 캐릭터는 어려움을 극복하려 노력하는데, 효주는 다른 곳에 빠지게 된다. 스틸 사진 하나만 봐도 아련하다. 너무 불쌍하고,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아프게 생각날 캐릭터일 것 같다.
[여교사]는 현재 절찬리 상영중이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필라멘트픽쳐스/(주)외유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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