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친근한 쓰레기 오빠에서 정의의 변호인으로 돌아온 [재심]의 정우
17.02.19 23:06
"제 이미지가 정말 뭐죠?"
인터뷰 도중 정우가 기자에게 물었다. 배우 자신이 보여줘야 할 이미지를 타인에게 묻는다는 게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 나도 궁금했다. 정우는 대중에게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와 같은 친근한 캐릭터로 인식되어 있지만, 그 이전에 영화 [바람]을 통해 폼나는 청춘의 이미지도 있었다. 좋게 보면 다양한 이미지를 지닌 배우라 할 수 있겠지만, 다르게 보면 아직까지 자신을 대표하는 배우만의 색채를 찾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정우는 이제 막 대중에게 존재감을 알리는 중이다. 자신의 색채를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더 많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그 점에서 지금의 이러한 고민은 연기자로서 그의 행보를 더욱 성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은?
생각보다 따뜻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촬영할 때는 정말 무겁고 진지한 느낌이 강했다. 촬영현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매번 유쾌하고 밝지 않았다. 영화 초반은 유쾌했고, 중후반부터 긴장감이 살아나고 브로맨스가 더해져서 재미있었다. 우정 멜로물 같다고 해야 할까? (웃음)
-처음 시나리오를 마주했을때 부터 무게감이 있을거라 예상했나?
나는 시나리오를 선택할 때 내가 이 이야기에 설득이 될 수 있는지에 우선을 둔다. 그 다음 캐릭터에 대해 얼마만큼 매력을 느끼고 공감하느냐를 본다. 이번 [재심]은 이야기와 캐릭터 면에서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기에 처음에는 좀 무겁게 생각했다. 다행히도 완성된 영화가 보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여서 너무 좋았다.
-캐스팅 됐을 때만 해도 법정물 특유의 변론 장면을 상상했을 텐데 그 부분이 많지 않다.
변론이 있었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보면서 '변론 장면이 왜 없지?' 라며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 부분이 없었어도 우리 영화는 충분히 큰 장점과 재미를 지닌 작품이었다.
-실제 사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나?
사실 이 사건에 대해 잘 몰랐다. 나중에서야 실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약촌오거리 사건 피해자의 심정을 잘 담았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읽다가 가족과 어머니에 대한 부분이 진하게 와 닿았다. 그 부분이 참 울컥했다.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님의 마음이 많이 속 타셨을 것이다.
-실제 주인공인 변호사분이 어떤 조언을 주셨나?
당연히 연기적 조언보다는 영화 속 내 역할을 존중해 주시면서 실제 사건과 관련한 몇몇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다. 매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하다보니, 실제 인물을 많이 만나 그분들의 행동과 감정을 연구한다. 그 분들의 모습을 새롭게 연기하는 게 바로 내 역할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변호사님이 너무 유쾌하고 재미있는 분이셔서 만나는 내내 즐거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분을 뵐 때마다 이상하게 뜨끔거렸다. (웃음) 정말 난 잘못한 게 없는데 변호사님 이어서 그런지 계속 긴장했다. (웃음) 그걸 아시고 나를 아주 편안하게 대해 주셨고,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작품을 위해 참고하거나 영향을 받은 캐릭터는 없었나?
원래는 비슷한 류의 장르 영화를 잘 보려 하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그것이 연기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도 봐버렸다. (웃음) 촬영 전 [변호인]을 다시 보게 되었고, 송강호 선배님의 위대함을 절로 느끼게 되었다. 참고보다는 선배님의 연기에 또 감동하게 된 시간이었다.
-강하늘 씨의 현우는 정우 배우가 [바람][짝패]에서 보여준 반항적인 청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현우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 할 때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지지 않았나?
맞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기 하면서 지나왔던 시간을 떠올린 적은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날 촬영을 하면서 내가 누군가를 안아주고 위로하고 있는 게 너무 신기했다. 내가 벌써 이런 나이가 되었나? (웃음) 그동안 내가 누군가에게 안겼는데 이제 내가 누군가를 안아줄 때가 되었다니 기분이 묘했다.
-매번 작품에서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친근한 '동네형'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것 같다. 아마 그건 실제 내 성격 때문일 거다. 이번 작품의 경우에는 영화가 조금 무거운 색채가 강하다 느껴져 관객들이 이야기를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 평소 모습이 강하게 투영시키려 했다. 그러한 유쾌한 정서는 영화를 좀 더 공감 있게 그려줄 거라 생각했다.
-실질적으로 이번 영화는 정우 배우의 역할이 큰 작품이다. 부담은 없었나?
촬영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그런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촬영 첫날, 스태프들을 비롯해 모든 카메라의 시선이 다 나에게 집중된 거였다. (웃음) 그 시선이 유독 다르게 느껴졌다. 그동안 나보다 경험많은 선배와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아무도 없고 나 혼자 등장하는 단독 촬영이 많으니 느낌이 남달랐다. 물론 [바람][스페어]와 같은 주연 작품도 있었지만 그때와는 규모와 관심도가 다른 작품이었기에 책임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인물을 만드는 데 있어 특별히 노력한 부분이 있는지?
변호사라 해서 아주 인텔리할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변호사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나중에 좀 더 알아보니 일반 직장인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다. 머리를 멋있게 세팅하기보다는 부스스한 모습을 강조에서 더 일상적인 인물로 그렸다. 셔츠의 단추가 약간 풀린 모습도 그런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외형적인 모습을 통해 인물의 개성을 보여주기 위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동안 강하늘과 많이 작업했다. 그래서 이번 촬영이 편하지 않았나?
하늘이와 많이 작업하다 보니 예전보다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평소에도 너무 예의 바른 친구여서 나한테도 너무 깍듯이 대하려 하는 친구다. 그래서 너무 예의 바르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하늘이도 이제 나를 많이 편하게 생각한 것 같다.
-작품마다 여러 배우와 함께 작업하며 인상적인 호흡을 보여주었다. 촬영장의 동료들과 쉽게 친해지는 비결은?
비결이라… 나는 아무래도 상대방의 감정을 잘 타는 것 같다. 상대방이 어색하면 나도 어색해진다. (웃음) 그래서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나도 달라진다. 그게 결국 연기에도 적용된다. [쎄시봉] 때 진구와 함께 연기했을 때가 기억난다. 진구는 참 멋있는 배우다. 나와 동갑이면서, 배우로서의 경험도 나보다 많다. 그래서 그 당시 연기가 진구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첫 만남 때부터 동갑인 걸 알아서 바로 먼저 말을 틀며 나와 친해지려는 모습이 너무 고마웠다. 하늘이도 [쎄시봉] 때 기타 연습실에서 처음 만났는데, 보자마자 머리가 땅바닥에 닿도록 인사하더라. (웃음) "형 팬이었어요. [바람]을 너무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긴장을 많이 했다는 게 느껴졌다. 남자에게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그 모습이 참 화사한 꽃 같았다. 이뻐 보였다고 할까? (웃음) 덕분에 나도 하늘이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려 했다.
-작품 내내 같이 있었던 이동휘는 어땠나?
생각보다 행동이 많이 느린 친구였다. 느림의 미학이 있는 배우라고 해야 할까? (웃음) 연기할 때 호흡하고 말하는 방식이 많이 느렸다. 의외로 천천히 하는 스타일을 지녔다. 알고보니 꽤 신중하고 천천히 연기하는 타입이라 한다. 실제로도 엄청 유쾌하고 재미있는 배우다.
-항상 비슷한 소재의 작품을 피하려 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비슷한 캐릭터를 계속 선보이면 나도 지루하고 관객들도 지루하지 않을까? 그래서 조금씩 변화를 주려 노력한다. 그것에 대한 강박관념은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내 이미지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친근한 이미지라는 건 잘 알겠는데, 아직 나만의 명확한 이미지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주변인들에게 자주 물어본다. 나만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말이다. 이 부분은 꼭 기사로 써주었으면 한다. (웃음) 관객분 들이 정말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개인의 이익 대신 공익을 위해 정의를 택하게 되는 사람들의 행동에는 어떤 이유가 있다고 보는가?
아무래도 사람 때문이 아닐까?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편안한 삶을 위해 살지만 우리는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된다. 상처를 받지만 결국 사람에 의해 위로받게 된다. 이 영화는 변론이 아닌 사람을 믿고 상처를 감싸주는 영화다.
-누군가를 감싸 안아 준 적이 있으신지?
(한숨 쉬며) 앞으로 누군가를 감싸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웃음) 아직 까지는 없네. (웃음) 그런 사람이 어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재심]은 30대의 나를 위한 성장 영화인것 같다.
[재심]은 현재 절찬리 상영중이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오퍼스픽쳐스)
※ 저작권자 ⓒ 무비라이징.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