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싱글라이더] 이병헌 "이번 영화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17.03.08 10:54
언제나 멋진 슈트 차림으로 우아한 카리스마를 선보인 이병헌은 [싱글라이더]에서도 멋진 슈트 패션을 선보이지만, 이번의 모습은 '멋있음'과는 거리가 먼 '슬픔'에 가까웠다. 고독하고 슬픈 가장이자 방황하는 그의 캐릭터는 소중한 것을 잃고 앞만 보며 살아온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한 비극적인 인물을 직접 연기한 이병헌에게 있어 [싱글라이더]의 재훈은 어떤 의미의 캐릭터였을까? 그와 관련해 일문일답을 나눴다.
-이제 정장입은 모습은 이병헌의 상징이다.
거기에 대해선 특별한 생각은 없다. 촬영 당시 정장을 입고 촬영하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달콤한 인생]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웃음) 근데 아니나 다를까 영화를 본 사람들이 [달콤한 인생] 이야기를 하더라. (웃음) 장르도 다르고 캐릭터도 다르지만, 굳이 연관 지을 수 있다면 한 남자의 심리를 따라간다는 게 비슷했다.
-어떤 요소 때문에 [싱글라이더]에 끌렸나?
영화 전체가 주는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더 개인적으로 매료되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걸 보면 뒤통수를 맞지 않는 깨달음을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표현이나 정서가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면이 좋았다.
-대사가 많지 않았는데, 내면 연기에 몰두하느라 힘들지 않았나?
대사도 별로 없고 걸어 다니고 관찰만 하는 역할이다. 그래서 농담처럼 이렇게 걸어 다니는 장면만 찍으면 이 영화 끝난다고 농담했다. (웃음) 실제로 그렇게 하다 보니 표정보다 관객에게 더 큰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매우 힘든 부분이 있다. 표정이라는 것은 굉장히 주관적인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왜곡될 수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왜곡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 지점이 참 힘들었다.
-극 중 재훈은 왜 아내의 행동을 관찰만 했나?
어떤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만약 그런 상황이면 들어가서 난리 치고 멱살 잡았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재훈의 심리적 상태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어떤 감정이 극에 달하다 보면 화가나고 온 몸에 열이 생기는 것과 완전 반대 상황이 벌어진다. 아마도 나는 재훈의 그런 심리에 많이 닮은 것 같다.
-평소 능숙한 영어 실력을 보여줬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그게 더 힘들지 않았나?
힘들지는 않았다. 재훈은 정말 괜찮은 대학을 나왔지만, 영어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평소 영어를 생활화하는 직업군이 아니기에 일상적으로 대학 나온 남자의 한국인의 액센트가 섞인 느낌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스터]에서 필리핀식 영어를 하는 것 보다 쉬웠다, (웃음)
-각본에 가장 공감이 가던 내용은?
자신의 목표를 통해 살아가는데, 그로 인해 앞만 보게 되는 모습이 우리의 현실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재훈처럼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 [매그니피센트 7]과 [마스터]를 연달아 해서 가족을 못 보던 내 상황이 생각났다.
-최근 행보를 보면 쉬지 않고 일하는 모습이 재훈과 많이 닮았다. 강재훈과 이병헌을 비교하자면?
일단 지금까지 밟아온 것을 보자면 어쩌면 강재훈보다 더 바빴지만 마음은 혼자 있는 것 같다. 최근 3, 4년 동안 다작을 했던 것 같았다. 최근 행보를 보면 정신이 없다. 그래서 '나를 돌아봐야 한다' 다짐했다. 의지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필모를 보면 거대 권력의 몰락(또는 파멸)에 일조했거나 그 위치에 선 캐릭터다. 이번에는 우수한 금융인이었다가 순식간에 몰락한 인물이다. 몰락하는 설정에 관심이 있으시나?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듣고 보니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일단 첫 번째 이유는 그런 종류의 시나리오가 많은것 같다. 시나리오를 쓰신 분들이 나보다 그런 설정을 더 좋아한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드라마틱 한걸 내가 선호한 것 같다.
-연기를 하며 지향하는 것은?
기본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 내 역할을 생각하고 내 역할을 중심으로 읽는게 아니고 되도록 객관적인 입장에서 소설을 읽듯이 읽는다. 그러면 인물이 입체적으로 형상화 된다. [마스터]의 진회장 시선에서만 읽게 되면 글쓴이의 입장을 놓칠수도 있다. 그래서 되도록 기본에 맞춰 인물 중심으로 읽으려 한다. 캐릭터를 한 가지 성격으로 규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나에게 필요한 캐릭터를 끄집어내려 한다.
-촬영장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낸다 하는데, 비결은?
그때그때 다르다. [내부자들] 경우 워낙 영화 장르와 캐릭터가 코믹하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스펙터클한 상황이 많이 나와서 그 상황에 맞게 애드립이나 아이디어를 추가할 수 있다. 하지만 [싱글라이더]나 현재 촬영 중인 [남한산성] 처럼 실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대사 없이 진중한 영화에서 아이디어나 애드립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워낙 완성도가 있는 각본이기에 추가적인 아이디어는 방해만 된다.
-근래 한국 영화 속 가장, 남성중심주의의 몰락이 그려지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나주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러한 변화에 대한 느낌이 어색하거나 이질감이 느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과거에서 미래를 본다면 지금의 시대가 너무 다르다고 느껴지겠지만, 나 또한 지금의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아주 특이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의 반전 장면을 각본을 통해 직접 접했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
너무 놀라기도 했지만 쓸쓸한 기분이 느껴졌다. 앞만 보고 미래의 목표만 본 인물의 이야기이기에 소소한 행복을 놓치는 자기 자신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생각하기 쉬운 아이디어인데 왜 이게 이렇게 울림이 클까 생각했다.
-그런 힘든 마음을 극복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가족이 아닐까? 요즘 바빠서 다 볼 수 없으니 틈틈이 같이하려 한다. 가족과 있을 때 참 많은 것을 한다.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아내와 대화하는 시간이 나에게 있어 참 소중하다.
-연기 선배 이병헌의 시선에서, 후배 공효진, 안소희는 어땠나?
효진이는 말할 필요가 없다. 언제나 그렇듯 긴장하는 법이 없는 친구다. 평소 성격도 그렇다. 쿨하고 세련된 부분이 많고 그게 참 매력적이다. 소희에 대해서는 정말 궁금한 게 많았었는데, 말이 많이 없어서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웃음) 그런데 연기만 하면 누구보다 더 말이 많고 수다스럽게 변한다. 그리고 자기 연기가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나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까지 했다. 연기에 대한 욕심이 대단하며 표정과 달리 굉장히 생각이 많은 친구다.
-안소희 배우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었나?
생각과 하고자 하는 의지가 많은데, 자기 안에서 그걸 깨기 시작하면 굉장한 가능성을 발견하는 배우였다. 그래서 언제든 폭발력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걸 감춰둔것 같았다. 그래서 그걸 깨라고 했다.
-91년부터 영화계 데뷔를 했다. 한국 영화계가 많이 변하고 내가 이 정도까지 왔나라고 생각날 때가 있나?
글쎄… 영화계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는데 분명히 변하고 있는 건 맞다. 제작에서부터 할리우드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영화 자체가 가진 의미보다 숫자와 성적을 따져야 하는 현실이 조금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싱글라이더]의 작품 자체 보다 성공과 실패를 따지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12시간 노동시간을 지키는 법의 도입은 우리 영화계의 엄청난 변화라 생각한다. 덕분에 촬영장의 시스템과 문화가 많이 변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느낌인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촬영장에 들어서면 내가 스트프들에게 인사를 하고 들어갔는데, 이제는 스태프와 배우들이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제 촬영장의 스태프들이 어려진 거였다. 아마도 그것은 이제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그로 인해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이 작업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본다. 감독을 비롯해서 카메라 감독, 스태프, 실장들 모두 나이가 어려졌다. 그런 것들이 큰 변화 인 것 같다. 그리고 배우가 감독 프로듀서도 하는 그런 것 조차 헐리웃과 닮아가는 걸 느낀다.
-연출을 해보실 생각 없으신가?
능력이 된다 판단되면 하고싶다. 할 수 있을까라는 자신감은 같이 따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연출을 하는 배우들이 부럽다. 그런 생각을 행동에 옮기는 모습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런걸 이행하는것이 참 힘들지 않은가? 아직 구상되는 이야기는 없지만 만약 만들게 된다면 판타지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판타지를 좋아한다. 여기서 말하는 판타지는 [반지의 제왕] 같은 스케일 큰 영화가 아닌 [번지점프를 하다][재킷][존 말코비치 되기]같은 판타지 드라마를 말한다
-현재 촬영 중인 [남한산성]에서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하고 있다.
처음 배우들이 모였을 때만 해도 어색하고 긴장되었다. 그래서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기분이었다. 김윤석, 고수, 박해일, 박희순 모두 처음이다. 그런데 그 긴장감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대감으로 변했다. 우리가 잘 어우러져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생각했다. 지금 60% 정도 왔는데 촬영장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설정상 대부분 촬영장면이 산속이어서 힘들지만, 모두들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주)퍼펙트스톰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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