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간위의 집] 김윤진, 그녀가 미드 역사에 남긴 놀라운 업적
17.04.06 17:50
'월드스타' 라는 수식어가 그냥 붙은 게 아니었다. 인터뷰 장소에서 만난 김윤진의 모습에서는 여유로움과 자부심이 한데 섞인 품위가 느껴졌다. 얼마전 방영을 종료한 [미스트리스]에서의 자신감 넘치던 카렌의 모습이 일상속 그녀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녀만이 갖고있는 이러한 자신감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다. 그 해답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애정과 지금까지 해온 모든 작업을 귀중한 업적처럼 생각한 것에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모두가 놀랄만한 업적이 있었지만, 이처럼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의미있는 순간으로 기억하는 자세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렇기에 이번에 개봉한 [시간위의 집]도 그녀에게 있어서는 의미 있는 작품 중 하나였다.
다음은 영화와 그녀의 연기관에 대한 일문일답.
-이번에도 어김없이 김윤진표 모성 스릴러로 장르를 구축했다. 그것이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기준인가?
그렇게 들으니 박찬욱 감독님의 복수 삼부작을 지향한 것 같다. (웃음) 마치 계획된 것처럼 너무 멋있을 것 같다. 한 번 따라 해 볼까? (웃음) 시나리오 보는 기준은 정말 단순하다. 관객이 되어 영화관서 그 영화를 본다는 기분으로 시나리오를 읽는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지만, 관객이 소중한 시간을 친구와 남편과 편하게 볼 수 있을지에 기준을 두었다. 그리고 함께 식사하며 즐길 수 있는 영화인지를 본다. 그런 관객의 마음으로 영화를 보고 선택한다. 이번 영화는 최근에 개봉한 영화들과 달리 약간 신선한 느낌이 있어서 좋았다. 여러 가지 기대가 많이 된다.
-대부분 연기한 캐릭터가 싱글맘 또는 결혼 생활을 온전하게 하지 못한 캐릭터들이다.
캐릭터가 온전하면 스릴러가 아니지 않은가? (웃음) 갈등 요소가 있어야 드라마틱 하고 그런 갈등이 풀어내야 쾌감이 있지 않을까? 영화의 캐릭터를 만드는 한 과정은 인물의 극적인 요소를 포착하는 거라 생각한다. 내가 여태까지 연기한 인물 중에 행복한 인물들이 없었다. 그나마 긍정적 캐릭터는 [국제시장]의 영자인데 그것도 남편이 떠돌아다니는 거다. (웃음) 꽃길만 가는 캐릭터는 조금 밋밋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난 그런 특별한 캐릭터가 좋다. 개인적으로는 첫사랑 연기를 해보고 싶은데 이제는 못하게 되어서 아쉽다.
-중년의 러브스토리를 해보면 되지 않은가?
그거 하면 대부분 불륜이잖아. 싫다! (웃음)
-시나리오 보고 '앗싸'라고 환호 했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나??
(웃음) 솔직히 말하자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앗싸' 까지는...(웃음)
-[시간위의 집]의 매력 포인트는?
여태까지 본 한국 영화 대본 중 이런 느낌의 영화는 처음이었다. 스릴러를 넘어서 공포물, 미스터리, 가족드라마를 오가는 여정이 넘치지도 않고 소름 끼치도록 신파적이지 않았다. 잘 비벼진 비빔밥 같았다. 이런 대본 받기는 힘들다.
-영화의 판타지적 요소가 있는데, 그런 요소를 좋아하나? 몰입하는데 어렵지 않았나?
정직한 메이킹 장면으로 보자면 나 혼자 몰입하는 장면이 많았다. 관객들이 볼 판타지 장면은 CG로 구성되었다. 만약 이 영화에 모성애 코드가 없었다면 영화 속 판타지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엄마의 간절함 때문에 신의 선물을 받은 느낌이라 할까? 모성애가 깔리지 않았으면 판타지도 말이 안 됐을 것이다. 얼마 전 개봉한 [어바웃 타임]만 봐도 말도 안 된 설정이잖아. (웃음) 근데 그 영화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 덕분에 그 황당한 설정이 이해가 된 것이다. 포인트는 이 남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계속 시간 이동을 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시간위의 집]의 판타지도 바로 그것과 같다.
-만약 이 영화가 '모성애'가 없는 완전한 호러물이면 출연했을 것인가?
슬래셔 무비만 아니라면 출연했을 것이다. 어떤 영화를 지향하든 이 영화를 볼 관객들이 재미있어야 한다 생각한다. 관객들이 즐기고 좋으면 그만이다. 아직 우리 영화가 할리우드랑 비교해 부족한 게 많다. 그래서 그런지 딱 한 개의 장르적 요소만 들어가면 부족하므로 다양한 요소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위의 집]의 이야기는 다양한 정서를 담고 있어,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을 거라 본다.
-요즘 여주인공이 나오는 한국 영화들이 흥행하기 어렵다. 그나마 김윤진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들이 흥행을 주도한 편이다. 자부심을 느끼는가?
그런 자부심은 당연히 있다. 그리고 초조함도 있다. 남자 주인공들이 네 명씩 영화에 나오면 아무래도 흥행이나 관객층들이 두터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작품 선택을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 최소한 내가 나오는 작품이라면, 그 책임감을 감독이 아닌 배우도 함께 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흥행에 신경 써야 한다. 자부심이 있기에 작품 선택에 더욱 조심하려 한다.
-이번 영화에서 노인 분장을 꽤 오랫동안 소화했다. 노년 배우가 되어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가?
미국에서의 드라마 작업이 끝나고 공백기가 생기니 이제 영화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영화작업이 참 반가웠고, 오랫동안 연기하면 행복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어서 다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관객들이 나를 원해야 계속할 수 있는 거다. 계속해서 배우를 할 수 있다면, 나문희 선생님처럼 좋은 연기를 보여주며 오래 하고 싶다.
-같은 모성애 연기를 보여줘도 예전과 다른 것 같다.
전작과 달리 캐릭터의 상황이 다르다. [심장이 뛴다] [세븐 데이즈] [이웃사람] 캐릭터 모두 다른 상황과 처지에 놓여있는 엄마들이었다. 나름대로 시나리오를 선택할 때 같은 엄마여도 다른 색깔의 엄마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미희와 나이든 미희를 연기하는 데 있어서의 심리적 변화는?
극 중 미희의 수감 생활 기간은 정말 길었다. 게다가 너무 괴로웠을 것이다. 거짓말처럼 사라진 아이를 몇 십 년 동안 생각했으니 너무나 절박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감정을 그대로 가져가기 위해 진짜 나이든 느낌으로 분장하려고 노력했다. 이번에는 [국제시장]과 달리 실리콘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내 피부를 갖고 분장을 했다. 내 스스로가 얼굴을 만들어야 하니 있는 주름 없는 주름 다 사용해야 했다. 목소리 연기에도 신경을 썼다. 원래 현실적인 연기가 중요하다 생각해서 60대 할머니들 실제 목소리를 연구하고 노력했다. 대본에 없었던 후두암 설정은 내가 제안을 해서 생긴 설정이었다. 아마도 그것이 미희의 간절함을 더 극적으로 만들어줄 효과라 생각했다. 이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이번에는 진짜 후두암 환자분들의 목소리를 녹음해 연구했다. (후두암 목소리를 직접 재연하며) 이렇듯이 진짜 후두암 말기 목소리를 하자면 정말 안 들린다. 기계음은 쓰지 않고 순수한 내 목소리로 만들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미드에서의 작업과 한국 영화 작업에 대한 만족감이 다를 것 같다.
캐릭터의 차이인 것 같다. [미스트리스]는 우리나라에서 절대 등장할 수 없는 역할이다. 굉장히 도발적이고 섹시하고 유능하고 모든 남자들이 반할 수 밖에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현실적인 나잇대에 맞는 역할의 차이인 것 같다. 뭐랄까? 40대 여배우가 그런 역할로 한국에 나오면 욕 많이 먹었을 것이다. (웃음) 그래도 미국은 그 폭이 넓다 보니 40대인 내가 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었다.
-여배우들이 나이를 먹으면 '누구의 엄마'로 그려지게 되는 설정이 아쉽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렇다. 그래서 나 또한 최선을 다하려 한다. 같은 엄마라도 다른 느낌의 엄마를 선보이려 한다. 근데 그것도 다양하지 않더라. (웃음) 미드에서 다양한 여성 역할을 할 수 있으니 그 점에서 연기적 갈증의 아쉬움을 풀 수 있었다고 본다.
-이병헌씨는 할리우드에서 연기할 때 마다 너무 힘들고 긴장된다고 이야기한다. 배우님은 어떠신가?
나는 조금 다른게 어렸을 때 이민을 가다 보니 그런 대사나 감정 표현에 있어서 어려운 게 없다. (웃음) 이병헌 선배님이 정말 고생이 많으실 것 같다. 그 마음 이해한다.
-여배우 주연 영화가 흥행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라 보는가?
이건 여배우들만의 고민은 아니라고 본다. 모든 배우가 노력하고 지향해야 할 부분이지 않을까? [미스트리스]가 종영되었다고 캐스팅 소식을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발로 뛰며 오디션을 봐야 한다고 본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의 2, 30대 여배우들이 조금이라도 폭을 넓혀야 한다. 김혜수가 [차이나타운]에서 악역을 한 것도 굉장히 새로운 역할이지 않은가? 우리 세대 여배우들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해야 한다. [시간위의 집] 같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다른 여배우들도 스릴러물에 출연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여자 중심의 영화가 제작될 수 있지 않을까? [쉬리] 이후 여배우들이 총 들고 나온 영화들이 많아졌다. 그처럼 판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자랑 같지만 [세븐데이즈] 를 촬영하기 전 스릴러는 한국에서 무조건 망한다라는 법칙이 있었지만, 이 영화가 성공한 이후에는 스릴러 영화들이 계속 나왔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직접 노력하는 것이다.
-한국 영화에서 [미씽:사라진여자][싱글라이더]와 같은 능동적인 여성 주인공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변화를 느끼는가?
맞다. 최근에 [미씽:사라진 여자]를 봤는데 공효진의 캐릭터가 너무 신선하게 느껴졌다. 모성애를 가진 엄마 이야기 이지 않은가? 그걸 보면서 우리 여배우들이 그런 역할을 다양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스트]의 여주인공이 순종적인 여성으로 그려졌다면, [미스트리스]의 여주인공은 그와 정반대인 커리어우먼이다. 이처럼 미국 드라마에서도 동양인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가?
맞다. [로스트] 출연만 해도 13년 전이다. 그때 당시 ABC 홍보팀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미국 드라마 역사상 주요 인물을 아시아인 두 명을 한 것은 최초라고 들었다. 당연히 자막을 깔아서 다른 언어로 42분 한 것도 최초다. 그것도 한국말로…그 후에 [그레이 아나토미] [히어로즈][워킹데드] 에도 한국인들이 연이어 출연했다. 이제는 미드에도 동양 배우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동양 배우의 출연과 자세한 고증은 이제 당연한 추세로 되어가고 있다. J.J 에이브럼스처럼 시야가 넓은 제작자가 있으니 그런 게 가능한 거였다. 원래 [미스트리스]의 카렌도 백인이었다고 한다. (웃음) 그런데 나 때문에 카렌 킴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웃음) 시스템적으로 눈이 넓은 제작진이 생겼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있었던것 같다. 내가 할 일은 오디션에서 기회를 줄 때 이 캐릭터를 한국 캐릭터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웃음)
-후배들 입장에서는 고마운 선배다. 후배들의 기회를 열어주지 않나?
물론 나는 큰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후배가 김윤진이 했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 자체를 준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할 일을 다 했다. 그렇게만 이라도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데뷔 20년이 넘었다. 배우 김윤진의 20년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웃음) 아니 왜, 벌써 그런 질문을? (웃음) 어제 VIP 시사회에서 [세븐데이즈]의 원신연 감독님과 박휘순씨가 와서 10년 전 우리가 같이 무대인사 했는데 벌써 시간이 지났나 라고 한다. 나도 절반을 미국에 나가 있으니 이렇게 나가서 우리만의 추억을 돌아보는것도 좋다고 본다. 우리가 하나의 큰 가족이라 생각한 거 보면 내 20년은 괜찮게 걸어온 것 같다. 그런 부분은 굉장히 힘이 된다.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쉬리] 시절 동료 배우들의 행보를 어떻게 보는가?
[쉬리] 찍으실 때만 해도 대선배님들이셨다. 그때 어떻게 찍었는지도 모르겟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분들과 호흡을 했는지 아직도 신기하다. 그분들이 정상위치에 있는 건 당연하다. 결국, 잘하는 배우들은 계속 계시는거다. 문득문득 시사회에 선배님들을 만나면 너무너무 반갑다. 그분들이랑 아직까지 함께하는 영화인이란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페퍼민트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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