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스타 비하인드] 근육과 두뇌도 섹시한 사나이 빈 디젤의 놀라운 비하인드
17.05.03 12:27
개봉을 앞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의 목소리 출연과 [분노의 질주:더 익스트림]의 제작자이자 주연으로 출연해 흥행을 주도하고 있는 빈 디젤과 관련한 흥미로운 일화와 비하인드를 정리해 봤다.
1. 본명이 빈 디젤이 아니다
빈 디젤이란 이름은 그의 본명이 아니다. 진짜 본명은 마크 싱클레어 빈센트 (Mark Sinclair Vincent) 이다. 성인 '빈센트'의 약칭과 어렸을적 친구들이 끊임없는 에너지를 가진 그에게 붙여준 별명인 '디젤'을 더해 빈 디젤이란 명칭을 만들어 활동하게 되었다.
2. 나이트클럽 경비원, 텔레마케터, 전구 판매원을 경험하다
▲왼쪽이 십 대 시절의 빈 디젤
흥미롭게도 빈 디젤이란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한 시기는 영화판이 아닌 아르바이트였던 나이트클럽 '기도' 시절 이었다. 넉넉지 못한 가정환경 탓에 십 대 시절 클럽 '기도' 부터, 텔레마케터, 전구 판매원으로 일하며 스스로 용돈 벌이를 해야 했다. 나이트클럽 기도 아르바이트를 지속하기 위해 빈 디젤은 지금의 상징같은 근육질 몸매를 키우게 되었고, 이는 지금의 근육질 스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텔레마케터 시절 번 돈은 신인 배우 시절 그가 제작, 감독, 주연작을 직접 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빈 디젤은 훗날 기도 시절 겪었던 여러 경험적인 사건을(친한 친구가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이 있었다.) 바탕으로 [도어맨] 이라는 작품의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지만, 바쁜 신인 시절의 일정으로 영화화는 무산되었다.
3. 복잡한 집안 혈통과 쌍둥이 형제
▲빈 디젤과 그의 어머니 델로 (사진출처:2020 is Coming)
빈 디젤의 인종적 혈통은 다소 복잡한 편이다. 1967년 7월 출생했지만, 아버지는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이탈리아계, 아프리카계 아메리칸 혼혈, 남미 히스패닉, 쿠바계가 섞인 것으로 추정할 뿐 그 스스로도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확실하게 정의하지 못했다. 어머니인 델로라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점성술사였으며, 빈 디젤의 유년시절 배우, 연기 강사, 극단 매니저인 어빙을 만나 결혼했다. 예술인인 계부 어빙으로 인해 빈 디젤은 뉴욕 맨해튼의 예술인 마을인 그리니치 빌리지에 거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다양한 문화, 예술과 관련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
▲빈 디젤의 쌍둥이 형제 폴 빈센트(오른쪽)
흥미로운 또 하나의 사실은 그의 아래로 세 명의 남녀 동생이 있는데, 그중 쌍둥이 동생인 폴 빈센트가 있었다. 지금의 빈 디젤과 다르게 대머리가 아닌 탓에 그의 주변인들이 그가 가발을 쓴 것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폴은 현재 영화편집일을 하고 있다.
4. 재능있는 브레이크 댄서였던 빈 디젤
빈 디젤은 십 대 시절 지금의 체격과는 정반대인 호리호리한 체격의 소년이었는데, 이 시절의 그는 화려하고 절도있는 브레이크 댄스까지 추던 고수급 실력자라고 한다. 얼마나 잘 췄는지 브레이크 댄스 교본 비디오에도 직접 출연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헤어스타일과 마른 모습이 너무나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빈 디젤이 출연한 브레이크 댄스 교본 비디오
5. 드라마틱한 연기와의 첫 인연
▲어린 시절의 빈 디젤 (사진 출처:Full On Pics)
빈 디젤의 정식 데뷔는 일곱 살 때였다. 첫 연기 데뷔를 하게 된 계기가 다소 황당한 이유였는데, 바로 벌칙이었다. 빈은 동생인 폴과 친구들을 이끌고 뉴욕 씨어터에 몰래 들어가 그곳 무대를 엉망으로 만들기에 이른다. 결국, 이 무리들은 당시 무대를 지나고 있었던 무대 감독인 크리스털 필드에 의해 발견돼 모두 붙잡히게 된다. 하지만 마침 아동극인 [다이노소어 도어]를 준비 중이었던 그는 아역 배우들이 모자른 사실을 이유로 빈과 폴 친구들에게 큰 벌을 받지 않는 대신 연극에 출연할 것을 제안하게 된다. 이때부터 빈 디젤은 연기에 대한 매력을 느끼며 헌터 칼리지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10년 동안 극장을 오가며 연기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6. 문신 즐길줄 알았죠? 전혀 안했어요
할리우드 스타들은 유행, 멋, 사랑을 이유로 여러 화려한 문신을 남기고는 한다. 여러 작품에서 화려한 문신을 선보이며 터프한 남성미를 선보인 빈 디젤 또한 실제로도 문신을 즐기는 스타 같지만, 놀랍게도 그의 몸에는 단 하나의 문신도 없다고 한다. [트리플 엑스]와 [분노의 질주]에서 보여준 문신은 모두 잉크로 형상한 것들이다. 터프하고 거칠어보인 외형과 달리 빈 디젤은 예상외로 건전한 생각을 가진 배우로 문신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며, 영화 속 캐릭터에 대한 '오픈된 性 가치관'에 대해서도 보수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편이라 한다.
7. 가장 많은 페이스 북 친구를 보유한 할리우드 스타
▲페이스북 CEO 마크 주카버그와 함께
빈 디젤이 보유한 흥미로운 기록 중 하나는 할리우드 스타 중 최초로 페이스북 1억 팔로워를 달성한 기록이다. 이는 가수 샤키라,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에 이은 세 번째로 1억 명을 돌파한 사례다. 평소 SNS를 통해 영화팬과 적극 소통하는 면을 가지고 있어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그의 게시물 중 제일 많은 '좋아요'를 받은 게시물은 동료 배우 폴 워커에 대판 추모 글로 800만 이상의 '좋아요'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8. 멋진 목소리로 성공한 일화
▲빈 디젤이 목소리 연기를 맡은 [아이언 자이언트]
근육 다음으로 그만의 특별한 상징이 있다면, 굵은 저음이 담긴 그의 목소리일 것이다. 텔레마케터로 활동할 당시에도 그의 특유의 목소리가 장점이 되어 제품 판매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1년 넘게 일하면서 5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여기에 성우로도 활동한 기회가 생겼는데, [인크레더블][미션 임파서블:고스트 프로토콜]의 브래드 버드 감독이 연출을 맡은 초기작 [아이언 자이언트]에서 주인공 로봇인 아이언 자이언트의 우람한 목소리를 연기해 큰 호평을 불러온 바 있다.
9. 신인시절 부터 감독, 프로듀서, 각본, 주연을 맡은 팔방미인
80년대 후반 청년 빈 디젤은 무작정 할리우드로 날아가 배우가 되기 위한 오랜 무명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텔레마케터 일도 이때부터 시작하였고, 틈날 때 마다 오디션을 봤지만 외면당하기 일수였다. 결국 1992년 L.A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자신이 왜 연이어 실패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엄마로부터 선물 받은 [중고차 값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법 (Feature Films At Used Car Prices)] 이라는 책을 읽게 되고, 이를 기초로 단편 영화의 시나리오를 한 달 만에 완성해 아르바이트로 모은 3,000달러의 제작비로 제작, 연출, 주연을 맡게 된다. 그렇게 완성된 단편 영화의 제목은 [멀티 페이셜]. 할리우드 시절 여러 영화사의 오디션을 보고 다니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으로, 애매한 인종적 위치에 놓여 번번이 오디션에 탈락한 배우 지망생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청년 빈 디젤의 첫 무모한 도전은 결국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된 전환점이 되기에 이른다. [멀테 페이셜]은 1995년 칸 영화제의 단편 영화 부분에 초청받아 많은 관계자와 영화팬들로 부터 큰 호응을 얻는 데 성공한다. 첫 도전의 성공을 계기로 빈 디젤은 텔레마케팅으로 번 5만 달러의 예산으로 첫 장편 연출, 주연작인 [스트레이즈]를 연출해 1997년 선댄스 영화제의 경쟁 부분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무모하다 싶은 청년 배우 지망생의 3년간의 도전은 결국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된 전환점이 된다.
▲빈 디젤의 단편 연출, 주연작 [멀티 페이셜]
10. '신인 빈 디젤' 스티븐 스필버그를 사로잡다
칸 영화제의 화제작이 된 [멀티 페이셜]은 할리우드의 영화 관계자들의 입소문을 타게 되었고, 그 입소문은 [쥬라기 공원]의 스티븐 스필버그에게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멀티 페이셜]을 본 스필버그는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년 빈 디젤에 모습에 큰 감명을 받게 되고, 차기작에 빈 디젤을 추가 캐스팅하기로 결정하며, 각본 작업을 진행 중인 작가에게 그를 위한 새로운 캐릭터를 완성하라고 지시한다. 그 영화는 다름 아닌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였고, 빈 디젤은 이 작품에서 어린 소녀를 구하려다 독일 저격수에게 죽임을 당한 카파조 일병을 연기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1세였고, 그의 첫 할리우드 장편 데뷔작이었다. 이 영화를 시발점으로 빈 디젤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며 본격적인 할리우드 진출을 이뤄냈다.
11. 영화 제작사, 비디오 게임 회사, 레코드 회사의 소유주
빈 디젤은 자신의 제작사인 '원 레이스 필름스(One Race Films)’을 비롯해 게임 제작사와 음악 레코드 레이블을 추가로 소유하고 있다. 원 레이즈 필름스는 자신을 월드 스타로 만든 [트리플 X]를 비롯해 [분노의 질주][리딕] 프랜차이즈를 연달아 제작한 할리우드에 큰 위치에 놓인 제작사가 되었다. 게임 개발사인 타이곤 스튜디오(Tigon Studios)는 그가 출연한 [리딕]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비디오 게임 시리즈를 제작했으며, 레이스트랙 레코드는 빈 디젤이 좋아한 프리스타일 래퍼 들이 주축이 된 레코드 레이블 회사로 원 레이스 필름스에 분사한 자회사였다. 안타깝게도 레코드 회사의 운영이 제대로 되지 못해 현재는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2. 세 아이의 아버지
빈 디젤은 2007년에 만난 멕시코 출신의 모델 팔로나 히메네스와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2008년 첫째 딸 하니야를, 2010년에는 둘째 아들인 빈센트를, 그리고 2015년에 셋째인 딸 폴린을 낳게 되는데, 이 이름은 2013년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절친' 폴 워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13. [리딕]을 위해 집 담보와 카메오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빈 디젤
[트리플 엑스][분노의 질주] 못지않게 그가 가장 애정을 가진 또 다른 프랜차이즈가 있다면 바로 [리딕] 시리즈다. 2000년부터 동료 감독인 데이빗 토히와 함께 2013년까지 세 편의 [리딕] 시리즈를 내놓았다. 앞선 프랜차이즈들 만큼의 파급력 높은 흥행력을 보이지 못했지만, 빈 디젤은 이 영화의 직접적인 제작사로 참여해 지속적인 시리즈 화를 주도했다.
▲[분노의 질주:도쿄 드리프트] 특별출연 장면
영화 제작을 위한 빈 디젤의 보이지 않는 눈물겨운 노력들이 있었는데, 3800만 달러의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담보로 내세웠던가 하면, 자신이 출연하지 않은 [분노의 질주:도쿄 드리프트]에 카메오로 깜짝 등장해 유니버셜로 부터 [리딕]의 판권을 양도받게 되었다. 빈 디젤은 현재 [리딕]의 네 번째 시리즈도 기획할 예정이라 한다.
14. 故 폴 워커 어머니와 관련한 일화
폴 워커의 갑작스러운 사망 사건이 있었던 2013년 빈 디젤은 폴의 가족을 만나 직접 위로를 전달하려 했다. 폴의 어머니 셔릴과 직접 마주친 빈 디젤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고, 셔릴은 그런 빈을 껴안으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에 빈 디젤은 “왜 그러시냐, 왜 어머님이 저에게 사과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너는 반쪽을 잃었잖니”라고 답했다.
15. 유년시절 절친한 한국인 친구 안태영
2002년 [트리플 엑스] 홍보를 위해 내한했을 당시의 이야기. 빈 디젤은 그리니치 빌리지에 살았던 유년시절 집 근처에 살았던 한국인 친구에 관해 이야기했다. 친구의 이름은 안태영이며, 어머니가 일 때문에 저녁을 챙겨주지 못할때 마다 태영의 집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지금처럼 잘 자랄 수 있었다며, 안태영 가족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16. 교통사고 가족을 구한 진정한 히어로
[트리플 엑스] 촬영 당시 빈 디젤은 모터사이클 훈련에 매진했고, 이후 모터사이클 운전을 취미와 생활화할 정도가 되었다. 영화 촬영을 마친후 할리우드 근처의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퇴근하던 디젤은, 도로 끝에서 화염이 치솟는걸 보게되고 곧바로 문제의 장소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화염에 쌓인 뒤집혀 있는 자동차를 발견한 디젤은 재빨리 자동차로 달려가 뒷좌석에 있는 아이를 먼저 구한 다음 부모인 운전자를 구해내 그들의 생명을 구했다.
17. 결혼하기전 화려했던 연애사
자유분방하고 자신감 넘치는 이미지답게 결혼 전 빈 디젤의 연애사 또한 화려하다. 배우이자 TV 쇼 진행자였던 서맨다 필립스가 그의 첫 공식적인 연인이었으며, 모델 출신의 배우 샤넬 라이언, 썸머 앨티스와 캐린 스테판스와 같은 모델들과 연인 사이를 유지했다.
▲미셸 로드리게즈
▲아시아 아르젠토
이후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함께 출연한 미셸 로드리게즈와 사귀기도 했지만, 지금은 친한 동료 관계를 유지하며 [분노의 질주] 시리즈 작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트리플 엑스]에서 함께 작업한 아시아 아르젠토와도 연인 사이였다. 아시아 아르젠토는 빈 디젤에 대해 "그의 가장 섹시한 부위는 근육이 아닌 두뇌였다."라고 말하며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을 칭찬했다.
18. [분노의 질주] 원래 주인공은 빈 디젤이 아니었다
▲우측이 [분노의 질주] 주인공이 될 뻔한 티모시 올리펀트
제작자인 닐 모리츠에 의해 밝혀진 [분노의 질주]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 사실 주인공인 도미닉 토렌토 역의 캐스팅 0순위는 빈 디젤이 아닌 티모시 올리펀트였다고 한다. 잘생긴 외모와 유머러스함을 지닌 라이징 스타였기에 당시 관계자들 모두 그의 캐스팅이 제격이라 생각했지만, 티모시 올리펀트는 이 제안을 단번에 거절했다. 결국 제작사는 캐스팅 대안을 찾던 도중 스티븐 스필버그가 주목했던 신인으로 이름이 알려진 빈 디젤을 만나게 된다. 닐 모리츠는 신인인데도 불구하고 스타처럼 자신감이 넘치는 빈 디젤의 태도에 신뢰감을 얻게 되고, 그를 캐스팅 하기로 결정한다. 그날의 결정이 오늘날의 대스타 빈 디젤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자료참조:thrillist.com, therichest.com, 허핑턴 포스트, IMDB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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