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 리뷰: 악녀의 무차별 광기와 폭주가 만든 '피의 축제' ★★☆
17.05.31 15:42
[악녀, 2017]
감독:정병길
출연:김옥빈, 신하균, 김서형, 성준, 조은지
줄거리
어린 시절부터 킬러로 길러진 숙희. 그녀는 국가 비밀조직에 스카우트되어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얻는다. “10년만 일해주면 넌 자유야. 하지만 가짜처럼 보이는 순간, 그땐 우리가 널 제거한다” 살기 위해 죽여야만 하는 킬러 숙희 앞에 진실을 숨긴 의문의 두 남자가 등장하고, 자신을 둘러싼 엄청난 비밀에 마주하게 되면서 운명에 맞서기 시작하는데...
[올드보이]의 장도리 액션신을 연상시키는 밀폐된 건물에서 진행되는 총기 액션 오프닝은 단연 압권이었다. 영화 [하드코어 헨리]와 게임 [헤일로]를 연상시키는 1인칭 화면에 총과 칼의 난도질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화면의 주인공 숙희의 숨 가쁜 숨소리가 긴박감을 더해준다. 하지만 혼을 빼놓은 현란한 액션에 다시 정신을 차리기까지에는 단 5분이면 충분했다. 화끈한 비주얼과 액션신이 같은 패턴의 화면을 유지하며 다소 어지러운 화면 구도를 지속하면서부터 영화에 대한 불안감이 언습하기 시작했다.
산만하고 정신없는 화면 구성이 카타르시스를 불러오는 장치가 되지만, 그런 구성은 [하드코어 헨리] 같은 현란함 영상미에 컨셉을 둔 영화에 어울린다. 반면 [악녀]와 같은 정적인 이야기 구도를 추구하는 영화에는 그러한 시도는 방해가 될 따름이다. 아무리 액션 대가의 철학이 더해졌다 한들 자신의 영화가 지닌 컨셉의 기본부터 이해하지 못한 채 무작정 화려한 것만 추구하려 한다면 그것은 패기가 아닌 무모한 행위로 연결되며, 영화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우리는 액션배우다]로 액션 영화에 대한 나름의 소신과 철학을 밝힌 정병길 감독은 [악녀]를 통해 지금껏 한국 영화에서 다뤄지지 않은 카메라 구도와 패기 넘치는 역동적인 액션신을 선보이며, 한국 액션 영화의 발전을 한 단계 진일보 시킨 점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주연인 김옥빈을 통해 직접적인 스턴트 액션을 연기하게 함으로써 실감 나는 액션과 몰입감을 높혀주는 화면 구성은 이후의 액션물에서 감히 시도하기 힘든 역사적인 장면으로 남겨질 만했다. 여기에 총소리와 칼이 부딪치는 리듬감, 핸드헬드 촬영의 움직임 같은 세 개의 합을 통해 실감있는 액션을 선보이는 섬세한 계산은 정병길 감독이 왜 액션의 마스터 인지를 증명시켜 주었다.
문제는 그의 장점인 액션에 치중돼 튼튼한 뼈대가 되어야 할 이야기 구성이 부실했다는 점이다. [악녀]의 이야기는 뤽 베송 감독의 1990년대 작품 [니키타]와 [네이키드 웨폰] 시리즈 같은 홍콩 액션 영화에서 쉽게 접할수 있는 오래된 여성 킬러물의 전형적인 이야기 라인이다. 물론 기본 줄거리는 충분히 비슷할 수 있으며, 다소 촌스러워도 상관없다. 전형성에 담겨진 이야기를 색다르게 해석할 흥미로운 전개 방식과 구도만 있다면 이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유니버셜 솔저]와 같은 오래된 줄거리와 이야기 구도를 1인칭 액션과 순차적 전개를 통해 풀어나간 [하드코어 헨리]의 파격적인 방식처럼 색다른 시점을 지녔거나, 무난함을 위해 안정된 각본을 추구했다면 그나마 괜찮은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악녀]의 이야기 전개와 구성에는 그러한 혁신성과 안정적인 요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비밀 정보 기관, 복수, 배신 같은 전형적인 이야기는 둘째 치더라도,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뒤죽박죽으로 만든 이야기 전개와 산만함을 더해준 편집이 문제였다. 과거에 대한 회상적 이야기는 현재 이야기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 무의미한 분량 낭비에 가까웠으며, 편집은 인물의 감정선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관객이 공감할 수 없게 만들었다. 숙희의 사연과 그녀의 행동을 일일이 설명하기 보다는 근래 영화들이 추구하는 암시와 미장센을 통한 표현을 통해 축약적으로 설명했어야 했다.
숙희와 현수(성준)의 러브라인 구성은 남녀의 역할을 바꿔놓은 듯한 풍자적 이야기로 간략하게 표현해 로맨스 장르에 대한 B급적인 묘사로 그리는 편이 나았다. 누가 봐도 전형성에 가까운 이 로맨스를 색다르게 구성했더라면 이 영화의 분위기와 어울렸겠지만, [악녀]는 무슨 의도인지 이 로맨스를 진지하게 다루려 한다. 이는 강렬 액션을 추구하는 영화의 분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은 구성으로, 정병길 감독 본인에게는 다소 무리한 접근 구도였다.
어설픈 로맨스와 드라마의 난립보다 큰 문제는 [악녀]의 실질적인 악역에 대한 오래된 부재다. 줄거리는 신하균이 연기하는 중상이 실질적인 악당이지만, [악녀]는 그가 이 영화의 진짜 악당임을 영화 후반부 들어서야 공개한다. 그 전에 누가 숙희의 상대이고 적인지를 분명하게 다루며 그녀의 잔혹 액션에 동기부여를 줘야 했으나, 영화는 숙희의 처절한 액션에 그럴만한 정서와 이유를 주지 않는다. 애초에 중상이나 혹은 다른 인물이 그녀의 적임을 분명히 하여 긴장감을 높였다면 어땠을까? 액션 대가의 장인 정신은 높이사지만, 그것을 영화라는 이야기와 영상미가 결합된 작품으로 완성하는데 있어서는 좀 더 연구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주연인 김옥빈의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과 한국 영화에서 드문 여성 캐릭터의 품격있는 카리스마를 선보인 김서형의 연기는 액션 다음으로 이 영화가 자랑해도 좋을 안정된 요소이다.
[악녀]는 6월 8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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