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 리뷰: 우아한 복수극 OR 섬뜩한 소시오패스 드라마 ★★★★
17.06.13 18:22
[엘르,2016]
감독: 폴 버호벤
출연: 이자벨 위페르, 로랑 라피트, 앤 콘시니, 샤를스 베르랑
줄거리
언제나 당당하고 매력적인 여인 미셸(이자벨 위페르)의 집에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이 침입한다. 경찰에 신고하라는 주변의 조언을 무시한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 미셸. 하지만 계속되는 괴한의 접근에 위기감을 느끼고, 곧 자신만의 방식으로 범인을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다시 괴한의 침입이 있던 날, 감추고 있던 그녀의 과거와 함께 복수를 향한 욕망도 깨어나는데…
영화는 주인공 미셸이 복면을 쓴 강도에게 강간당하는 충격적인 오프닝으로 포문을 연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강간당한 이후 피해자가 보여야 할 반응 (경찰 신고 등)이 나와야 하는 게 상식이지만, [엘르]는 그러한 상식을 넘어선 장면을 선보이며 이 영화가 심상치 않은 작품임을 암시하게 한다. 강간당한 후 아무렇지 않게 목욕을 즐기고, 일상적인 생활을 맞이하며, 자신의 주변인들에게 강간당했음을 고백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애처로움보다는 어딘가 모를 섬뜩함이 느껴진다.
이 영화가 [원초적 본능]의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임을 알게되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간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그로 인한 인간성 상실이 야기한 사이코패스와 같은 어두운 본능을 섬뜩하게 다뤘던 그의 전력을 생각해 본다면 [엘르]는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서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원초적 본능]이 샤론 스톤이 분한 캐서린을 통한 특별함을 자아냈듯이, [엘르]는 독특한 성향을 지닌 주인공 미셸을 통해 특별한 정서를 강조한다.
게임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라는 화려한 직함을 지닌 커리어 우먼이란 점에서 미셸은 당당한 여성의 이상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활동하는 일터와 주변 환경은 그녀에게 가혹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성적인 모욕과 자존감을 건드리는 남성 부하 직원들, 아버지의 원죄로 인해 그녀에게 따라다니는 꼬리표, 강간범의 재침입 위기 등 현실의 잠재된 위험이 그녀를 옥죄고 있다.
미셸에 한정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이것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성적인 억압과 시선을 대변하는 장면처럼 보여질 수 있다. 여기까지 [엘르]가 미셸에 대한 묘사를 그렸다면, 이 영화는 맹목적 피해자인 여성의 그저 그런 복수극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폴 버호벤은 그녀의 내면에 다양한 양면성을 부여하며 미셸이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다양한 방면으로 해석 가능한 인물임을 암시하며 예측불허의 전개를 이어나간다.
무능한 아들, 동업자 남편과의 불륜 관계, 성적 욕망을 불러오게 하는 이웃집 남자 등 특별한 관계의 사람들을 마주할 때 마다 미셸은 카멜레온처럼 자신을 바꿔나간다. 자녀를 책임지는 어머니이자, 성적인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본능적인 여성의 모습을 오가다가 결국에는 깊은 내면에 숨겨진 섬뜩한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에게 성적 모욕을 준 직원에게 내린 특별한(?) 처벌과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었던 아버지의 과거와 그녀와의 관계, 자신의 강간을 상처가 아닌 쾌감으로 느끼는 듯한 장면을 등장시킴으로써 미셸이라는 여성이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암시한다. 우아하면서도 통쾌한 복수극을 넘어서 소시오패스 적인 면모를 지닌 한 인간의 섬뜩한 일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며, [엘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게 된다. 때문에 [엘르]는 조금만 관점을 바꿔보면 복수극, 여성 드라마, 사이코 심리물로 보여질 수 있다.
이런 와중에 그녀를 다시 강간하려는 복면을 쓴 남자와의 긴장관계와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엘르]는 스릴러물 특유의 기본적인 장르성을 충실하게 이어가며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이자벨 위페르의 속내를 알 수 없는 내면 연기는 [엘르] 만의 우아함과 섬뜩함을 연출해, 이 영화의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엘르]는 6월 15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소니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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