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역도선수 제안, 번역, 시나리오까지 쓰는 뇌섹녀! [박열]의 최희서
17.06.28 10:57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 배우가 아닌 한국인 배우 최희서가 연기했다. 대중에게는 조금 생소한 이름이지만, 독립 영화계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였으며,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해 외국어 대사의 번역과 시나리오 작성까지 직접 하는 재능 많은 인재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자신의 생각을 진중히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영화속 가네코 후미코의 논리적인 모습이 절로 연상되었다. 그만큼 극중 인물에 대해 동경하며 그녀의 비극적 삶마저 공감해 하는 모습에서 이번 영화에 대해 많은 애정을 지니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연기만큼 수많은 지식과 재능을 지닌 그녀와 삼청동의 한 카페서 재미있고 유익한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본인 연기를 자평하자면?
총 세 번을 봤다. 사실 이번 영화는 내 연기만 볼 수 없었다. 초반부터 이 작품에 관여했고, 대본 작업과 번역에도 가담했다. 그래서 영화를 전체적으로 밖에 볼 수 없었다. 영화는 정말 좋았다. 그리고 내 연기 자체는 내 역할 중 가장 아쉬운 게 없는 작품이었다. 내가 생각하고 고민한 만큼 최선을 다한 작품이었다고 본다. 이제훈 씨도 그렇게 생각했다. 둘 다 최선을 다했고 아쉽지 않아서 좋았다.
-세 번째 외국인 연기다. 제안이 들어왔을 때 어떘나?
제작 전 이준익 감독님께서 나에게 먼저 후미코라는 캐릭터를 제안하셨고, 가네코 후미코의 자서전을 읽어보라 하셨다. 그녀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많은 감동과 영향을 받았다. 일본인이라는 관점을 넘어서 같은 여성으로서 동질감을 느꼈다. 만약 조용한 일본 여성 캐릭터였다면 아쉬울법 했지만, 가네코 후미코라는 여성 캐릭터가 너무나 멋있는 캐릭터여서 꼭 해보고 싶었다.
-가네코 후미코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가네코 후미코는 자서전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만약 시나리오부터 접했다면 그녀의 여러 모습이 단순한 멋있음으로 보였을 테지만, 자서전을 읽고 각본을 통해 만난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강렬했다. 자서전에는 80%가 그녀의 유년기를 담고 있는데, 그 시절의 삶이 너무나 슬퍼 보였다. 그녀가 왜 아나키스트가 되었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싸우려 했는지 공감하게 되었고, 그녀의 모든 삶 자체를 이해하게 되었다.
-가네코 후미코가 죽음을 무릎 쓰며 일제에 대항하려 한 패기와 용기의 원천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그녀는 일본인이었지만 최하의 빈민층이었다. 게다가 호적에도 없는 무적자였다. 또한, 당시 시대는 여성을 무시하는 시대였으며, 돈이 많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쉽게 착취당하는 시대였다. 그런 것을 직접 보고 자라온 그녀였기에, 그녀 스스로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아나키즘은 아마도 박열보다 더 원초적이었을 것이다.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갈망하며 죽음을 각오한 그녀였기에, 천왕이 사면장을 준 것은 굴욕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참된 아나키스트였다고 생각한다.
-연기 모습은 현대 일본 영화의 여성 캐릭터들을 연상시켰다. 그만큼 가네코 후미코가 현대적 여성임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완성했나? 참고한 캐릭터가 있다면?
일본 영화는 전혀 참고하지 않았다. 대신 감독님께서 따로 지정해준 영화 속 캐릭터들을 참고했다. 영화 [길]의 젤소미나,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트랄라, [길버트 그레이프]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어니가 감독님이 지정해준 캐릭터였다. 세 인물 모두 우울하지만, 천진난만함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순수하다. 그 순수함에서 보여진 감정을 포착하려 했다. 아이 같은 순진무구함은 시나리오에도 나와있지 않다. 그런면을 시나리오와 함께 보면서 우울해 보인 쿠미코의 캐릭터를 예측불허 적인 모습으로 만들려고 했다.
-논란이 된 '괴사진' 장면을 직접 재연했을 때의 기분은?
사실 그 사진이 어떻게 보면 슬픈 사진이다. 두 연인이 함께한 마지막 사진이기 때문이다. 슬프고 무거울 수도 있는 사진이지만, 찍을 때는 오히려 익살스럽고 개구지게 하자고 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이 장면을 친근감 있게 바라볼 거라 생각했다. 제훈씨도 같은 생각을 하며, 이들의 익살스러움을 그대로 재연하기로 했다. 그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었다.
-가네코 후미코에게 조국 일본이란?
사실 본인이 보는 국가조차 거부한 여성이었기에 악마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떤 절대 권력이 소수 계층을 지배하는 것은 그녀와 박열 자체에게는 순리에 어긋나 보였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한 것인데, 일본은 그것을 거부하고 천왕을 신처럼 모시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그녀에게 숙적이었을 것이다.
-가네코 후미코도 박열 못지않은 드라마틱한 인물. 만약 그녀의 단독 영화였다면 어떤 점을 부각하고 싶은가?
그녀가 저항심을 갖게 된 계기는 조선에서 보낸 유년기의 삶이다. 영화에서는 생략되었지만, 그녀의 조선에서의 삶도 주목받아야 한다 생각했다. 가네코가 조선인에 대한 동정심을 느끼게 된 것은 조선인들이 본인처럼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 부분에 동감했기 때문이다. 가네코는 십대 시절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죽으면 나를 죽인 사람들에 대해 말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며, 나보다 약한 사람을 위해 싸워야 한다 생각했다. 내가 살아야 한 이유, 권력에 대한 저항이 바로 그 시절에 나왔다. 가네코 후미코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는다면, 그 부분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네코 후미코는 홀로 인생을 개척한 여성이다. 그런 여자가 박열이란 남자에게 동거를 제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후미코가 저항심이 있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을 거라 본다. 자기 주변에는 평범한 일본인 들 뿐이었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저항심이 강한 조선인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러다 '개새끼'라는 시를 쓴 반역적인 박열의 정서를 접하며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 시를 보고 이 사람이 한 것을 내가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로 내가 원하던 게 저거였다." 라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결국 가네코는 박열과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그래도 여자로서 박열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을까?
두 사람의 대사 중에 웃으면서 넘어가는 부분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 거지 같은 모습 그대로야" 라는 부분이다. (웃음) 그 모습은 꾸미는 모습이 아닌 그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박열이라는 남자는 그날 살고, 그날 먹을 수 있는걸 먹고, 집 잃은 강아지처럼 전전하지만 기죽지 않고 당당한 모습이 그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 부분은 나와 후미코와 매우 비슷하다. 멋있지 않지만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서 나 또한 이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웃음)
-박열이 조선인을 대표했다면, 가네코는 아나키즘과 페미니즘을 대변하는 근대적인 여성관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가장 입체적인 부분이 많은 인물을 연기한 탓에 기존의 정치, 철학적 부분에 많은 영향을 줬을것 같다.
원래 나도 아나키즘과 페미니즘에 문외환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준비하다 보니 나 또한 변했다. 먼저 여자와 남자에 대한 길들여진 상식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 한번은 내가 남동생에게 "남자가 그 정도는 해야지" "남자가 왜 이래?" 라는 말을 생각 없이 내 뱉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왜 그랬을까?"라며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남성이란 것에 대표되는 힘, 용기를 내가 무의식적으로 남사친, 남동생에게 강요한 것도 안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성에 대한 문제도 있다. [박열]을 촬영하고 나서 모든 남녀에 대한 편견, 차별을 받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 영화를 많은 여성, 남성 관객분들이 보시고 그 점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가네코 후미코의 사후와 관련한 미스터리가 크다. 그녀가 정말 자살했다고 생각하나?
기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웃음)
-당시의 억압적인 일본 사회의 분위기와 당당했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려 볼 때 타살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웃음) 나는 마지막 나래이션이 그녀의 자살을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산다는 것은 나의 의지에 의한 것이다"라는 부분이다. 그녀에게 있어 죽음은 부정이 아닌 긍정일 거라 생각한다. 일제가 강제로 가네코에게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것은 억압이라 느꼈을 것이다. 그녀가 쓴 수기를 잃어본다면 그녀가 자살을 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녀에게 있어 내 자신의 생명을 결정하는 것도 그녀의 의지라 생각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박열과 그녀는 완전히 생이별한 상태다. 서로에 대한 소식과 생사도 모른 상태였기에 그녀는 지금까지 박열과 함께한 삶을 아름답게 보존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행히 영화는 그 부분을 확실히 정의 내리지 않은 채 다양한 열린 결말의 여지를 남겨주었다
-박열은 교도소 출소 이후 다른 여성과 결혼하고 납북되는 등 치열한 삶을 살다 결국 북한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저승에 먼저 있는 가네코 후미코가 박열과 재회하게 된다면 어떤 말을 건넷을거라 보는가?
(크게 웃음) 사실 나는 이 질문이 왜 안나오나 했다. 지금까지 인터뷰하면서 이 질문을 물어봐주신 기자님들이 안 계셨는데, 기자님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물어봐 주셨다. 재미있는 질문이다. 실제 박열 열사께서 출소 후 장의숙 여사와 결혼하시고 슬하에 자손들 남기셨다는걸 알게 되었다. 마침 그 손자분도 이 영화를 보러 오셨다고 한다. 아마 가네코는 박열이 재혼을 한 것에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결정한 것이고, 박열은 22년을 감옥에서 더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외롭게 싸운 박열에게는 가족이 필요했을 것이다. 박열이 그렇게 가정을 만들고 자손을 남긴 것에 가네코는 "잘했어, 우리 열이" 이랬을 거라 생각한다. (웃음)
-[동주] [박열] 등 강점기 배경 영화의 일본인 여성 역할을 연이어 연기해서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두 일본인 여성에게 윤동주와 박열이라는 조선인 남자들은 각각 어떤 남자들이었을까?
[동주]의 쿠미는 철저히 윤동주의 시에 반한 일본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허구적 인물이다. 국적과 민족성을 떠나 재능있는 그의 모습에 동경과 선망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는 그와 반대로 박열의 모습에서 자신과 함께 꿈을 이룰 수 있는 동지애를 느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다 시를 읽고 반했다라는 공통점이 있다. 쿠미는 자신이 못 이룬 시인의 꿈을 윤동주가 이뤄냈으면 하는 팬의 마음이며,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을 통해 자아를 발견한 여성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최근 한국 영화에서 [미씽:사라진여자] [싱글라이더]와 같은 능동적인 여성 주인공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어찌 보면 [박열]의 여주인공도 그런 부분을 같이하고 있는 캐릭터다.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나는 반대로 생각했다. (웃음) 그런데 듣고 보니 꽤 많다고 본다. 나는 앞으로도 그런 캐릭터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대중 예술이기에 대중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이런 상호작용을 볼 때 앞으로 다가올 현실에 대한 위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여성들이 좀더 능동적으로 사회에 공헌하고, 업적까지 아니더라도 생각을 전하고 행동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만큼 관객분들이 영화를 많이 봐주셨으면 한다. 앞서 이야기한 영화들을 관객들이 많이 못 봐준 게 좀 아쉽다. 그 점에서 박열은 300만 명 이상 봐주셨으면...(웃음)
-희서씨의 필모그래피를 보면서 이분도 가네코 후미코 만큼 나 홀로 성장한 분이구나 라는걸 느꼈다. 이 캐릭터를 만나면서 그러한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나?
우선 기질 자체가 비슷한 것 같다. (웃음) 본인의 삶을 본인이 결정한다는 삶.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나 또한 누구에게 구속하거나 사상을 복종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인지 가네코 후미코는 외국인 여성이라기보다는 왠지 알 것 같은 친구처럼 다가왔다. 무엇보다 내가 어렸을 때 일본에서 살아왔기에 일본인들의 문화적, 정서적인 부분을 많이 이해하는 편이다. 그 점이 그녀를 이해하고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재주가 많다. 연기자가 되겠다는 꿈은 언제부터?
어렸을 때부터 갖게 되었다. 초등학교부터 연극을 하게 되면서 배우를 꿈꾸게 되었고, 대학교에 가자마자 연극동아리에 입회해 쉴 새 없이 활동했다. 그때마다 연기하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 일반 회사에 들어갔으면 영어와 일본어를 다방면으로 활용을 못 했을 것이다. 회사원이 아닌 배우로서 살아 숨 쉬는 캐릭터로서 다양한 언어를 접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데뷔작인 [킹콩을 들다] 시절 너무 잘해서 역도선수 제안도 받았다는데?
그건 홍보팀이 그런 건데...(웃음) 좀 과장한 거다. 잘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역도 선수 수준까지는...(웃음) 내가 원래 시키는 건 잘한다. 뭐든지 시켜만 주셨으면 한다.
-버클리대 공연예술 공헌상은 어떻게 받게 되었나?
그것은 1년 동안 공연을 열심히 한 친구들에게 주는 상이다. (웃음) 너무 민망해서 포털에도 지워달라 했는데, 아직 안 지워졌나 보다. (웃음) 신인 시절 어떻게든 내 자신을 어필해 보고자 학창시절 받은 상을 추가한 거였다. 이제는 연기파 배우로 알려지도록 노력하겠다. (웃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가?
진정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 많은 분이 공감하고 내 역할을 보고 믿고 봐주셨으면 하는 배우로 남겨지고 싶다. 예전 어느 평론가와 함께한 대화에서 "여자 송강호가 되고싶다" 라고 했는데 그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 나 또한 배우로서 여자 배우라는 타이틀을 넘어서 "저 배우가 한다면 보고싶다" 라는 인상을 남기고 싶다. 좋은 작품에 출연해서 믿을 수 있는 연기를 남기는 배우가 되겠다.
[박열]은 현재 절찬리 상영중이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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