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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아이피] 리뷰: 북한 연쇄살인범이 남한과 미국을 갖고노는 '웃픈' 현실 ★★★

17.08.21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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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아이피, 2017]
감독: 박훈정
출연: 장동건, 김명민, 이종석, 박희순, 피터 스토메어

줄거리
국정원과 CIA의 기획으로 북에서 온 VIP 김광일(이종석)이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본능적으로 그가 범인임을 직감한 경찰 채이도(김명민)가 VIP를 뒤쫓지만 국정원 요원 박재혁(장동건)의 비호로 번번이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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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를 통해 묵직한 누아르 물을 창조하는 재주를 선보인 박훈정 감독이 신작을 갖고 돌아왔다. [브이아이피]는 북한, 국정원, CIA 등의 국제적 문제를 다루는 기관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첩보물의 형태를 예상하게 했지만, 이번 영화 또한 그의 장점인 누아르의 분위기가 잘 묻어난 스릴러였다. 

[브이아이피]는 시작부터 이 영화의 진범을 공개한다. 북한에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고위층의 자제 김광일의 모습을 여과 없이 담아낸 오프닝과 그다음 이어진 남한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을 통해 이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이 영화의 주 감상 포인트는 범인으로 확실시된 용의자와 이를 체포하려는 경찰들 간의 대결. 하지만 이들 사이에 예상치 못한 기관이 등장하니 다름 아닌 국정원과 미국 CIA다. 

연쇄살인이라는 일반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두고 있지만, [브이아이피]는 용의자인 살인범에 특정 신분, 출신을 부여함으로써 이로 인해 얽히게 된 특정 인간 군상들이 펼치게 된 대립의 드라마를 진행한다. 경찰은 유력한 살인 용의자인 김광일을 심문하고 체포하려 하지만, 이보다 더 높은 기관인 국정원이 이를 저지한다. 김광일은 국정원의 비호 속에 경찰을 비웃으며 예상치 못한 돌발적인 행동을 지속해서 저지른다.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 같지만, 현재의 남북한과 미국의 관계, 원칙을 무시하고 권력에 순응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의 현실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법한 설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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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 관계의 설정만큼 이 무대의 중심에 놓인 캐릭터의 개성도 영화만의 긴장감을 높여주는데 큰 한몫을 한다. 경찰청의 문제아이자 다혈질의 성격을 지닌 김명민의 채이도는 어두운 이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캐릭터다. 그동안의 작품에서 반듯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연기한 그가 이번 영화서 시크한 말투에 욕설과 폭력을 남발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묘한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시종일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정치적 신분을 이용해 사고를 치는 김광일은 이 영화의 예상치 못한 긴장감을 전달하게 한다. '미소년'의 이미지가 강한 이종석의 마스크와 쉰 목소리에 진행되는 북한 사투리를 쓰는 모습은 여느 연쇄 살인 작품서 보기힘든 독특한 캐릭터를 형성해 흥미를 가져다준다. 

장동건의 박재혁은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지만, 두 사람의 대립 사이를 중재하다 심리적 변화를 느끼게 되는 예측불허의 캐릭터를 재연하며, 마지막에 들어서는 이 영화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마침표를 찍게 된다. 세 사람의 묘한 삼각관계 속에 중후반에 등장하는 북한 보안성 요원인 박희순의 리대범도 극의 흐름에 반전을 불러오며, 이 영화가 캐릭터의 개성과 성격을 통해 전개되는 작품임을 강조한다. 

개성적인 캐릭터들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쾌감만큼 예상외의 잔혹한 묘사도 [브이아이피]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중요 장치가 된다. 김광일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공포 적 여운과 함께 이 영화가 추구하고 있는 하드보일드한 분위기까지 더해주는 요소가 되지만, 지나치게 디테일한 살인 묘사는 일반 관객이 보기에 버거운 느낌을 전해준다. 

[브이아이피]는 대립과 갈등이 해소되어야 하는 후반부에 들어서도 일관된 톤의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하다 다소 느린 전개를 이어나가게 된다. 여기에 정치적, 사회적 현실풍자에 대한 메시지가 강하게 베인 의미 있는 결말을 전하려 한 탓에 좀 더 치밀하게 다뤄졌어야 할인물간 대립 관계가 다소 급진적으로 이뤄진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누아르의 전형을 넘어서 이 영화의 표본인 스릴러물다운 엎치락 뒤치락 하는 반전의 묘미와 긴장감에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전작인 [신세계]가 큰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물에 대한 적절한 사용과 스릴러 적인 긴장감과 반전의 묘미를 절묘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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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에 들어서 인물들의 역할보다 그들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다루려 한 탓에 이야기의 흐름이 늘어져 버리는 단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지만, [브이아이피]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특징을 갖춘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첩보물로 그려질 수 있는 국제적인 소재를 도시 괴담 같은 연쇄 살인극과 어두운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버무린 독특한 정서, 각기 다른 자신만의 확고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 그리고 현재의 남북한과 미국의 정치적 관계를 암시하는 풍자성이 짙은 상징적인 대목이 그것이다. 

큰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남북한 정권과 미국의 비호 속에 보호받는 살인 용의자 김광일의 존재는 오늘날 미국과 한국도 어찌하지 못하는 북한 독재정권을 절로 떠올리게 하며, 국정원 요원인 박재혁을 단순 경호원과 심부름꾼으로 무시하며 자기들끼리 거래를 하는 폴과 김광일의 모습은 국제적 정서 속에서 미국과 북한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한 시선을 최근의 북핵 문제로 연결해 본다면, 너무나도 공감되고 '웃픈' 현실 풍자처럼 느껴질 것이다. 

절대 권력 속에 보호받는 악당임을 알면서도 두려움 없이 김광일과 맞서려는 채이도와 리대범은 남과 북의 부조리한 현실 속에 외면당하는 오늘날의 정의와 원칙을 상징하는 인물들로, 무기력하게 조직의 명령과 김광일을 보호해야 하는 박재혁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그 점에서 보면 [브이아이피]는 김광일을 제외한 세 남성의 보이지 않는 존중과 진한 의리를 담은 작품으로 박훈정 감독이 완성한 또 다른 [신세계]임을 느끼게 한다. 

[브이아이피]는 8월 24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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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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