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긴 여운] 홍상수 방식대로 영화를 찍었더니 남녀가…[홍상수 영화를 찍기로 했다]
17.09.01 16:02
[홍상수 영화를 찍기로 했다, 2016]
감독:김정민
출연:남진복, 양희우, 장지훈, 조윤정
줄거리
영화감독 김성남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 위해 홍상수 영화와 똑같은 영화를 찍으려고 한다. 주인공인 영화감독이 남자배우의 애인인 여배우를 꼬셔 몰래 잠자리를 가진다는 내용이다. 김은 친구인 배우 박경수를 캐스팅하고, 그날 밤 박의 애인 윤희정과 합석하여 순대전골에 소주를 많이 마신다. 많이 취한 박은 먼저 집에 가고, 김은 윤을 집에 바래다준다. 김은 윤에게 시간이 있냐고 넌지시 물어보지만 윤은 김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러자 김은 갑자기 윤의 동네인 아리랑고개를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한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다시 한 번 이어진다. 여기서는 김이 보이지 않고, 박은 감독이며, 배우가 아니라던 윤은 배우가 되어있다. 둘이 돌아다니는 데는 비슷한데, 여기선 여자가 아리랑도 부르고 그런다.
프리뷰
영화팬이라면 홍상수 감독의 작품적 특징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적인 카메라 앵글, 설정된 상황속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즉흥 연기와 언제나 빠지지 않는 술자리 장면과 그로 인한 남녀의 이야기는 그의 영화의 기본 공식과 같다.
연출을 맡은 김정민 감독은 이러한 홍상수 감독의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편의 흥미로운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홍상수 작품 세계에 대한 오마주와 패러디 적인 면모를 가득 담아내며, 예술과 인생의 갈림길에 선 청춘 예술인의 고민을 인상 깊게 그려내려 한다. 홍상수 영화의 팬이라면 이번 영화는 너무나 재미있고 귀여운 영화처럼 느껴질 것이다.
소박한 음악을 배경으로 의미심장한 그림과 손글씨가 등장하는 오프닝은 홍상수 영화의 기본 오프닝 장면을 비트는 대목으로 시작부터 웃음을 불러오게 한다. 이어지는 인물 간의 대화와 이야기 전개 장면에서는 홍상수 영화속 특유의 즉흥 연기 방식과 정적 구도의 카메라 앵글이 등장한다. 약간의 클로즈업과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까지 홍상수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착각을 불러오게 할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홍상수 스타일로 완벽하게 재연하려 했다. 물론, 100% 그의 영화 속 장면과 똑같지 않지만 이를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에서는 특유의 세심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영화가 홍상수 영화 스타일에 가장 맞닿는다고 느끼게 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그것은 본질을 드러내는 영화 속 캐릭터들의 모습과 평행 세계를 보는듯한 시점과 공간을 바꾸는 홍상수 특유의 실험적인 이야기 구도를 계승하는 방식이다.
주인공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나래이션, 술자리에서 예술관을 토로하는 대목, 눈앞에 보인 이성 앞에 본능을 느끼지만 망설이고만 있는 지질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홍상수 영화세계의 기본적인 모습이다. 어느 영화감독의 일상의 이야기가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그의 영화속 장면인 동시에 여주인공의 실제 이야기인 듯한 방식으로 그려져 다르지만 같은 세계라는 착각을 불러오게 한다. 그러한 과정이 반복적으로 다음 에피소드로 이어져 다르게 재해석되는 흥미와 남녀로 대변되는 인간의 양면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렇듯 홍상수가 추구하는 외형적인 스타일을 따라 하는데 치중한 영화 같지만, 영화의 주제와 메시지가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감독만의 스타일이 강조된다. 그동안 중년 남성, 젊은 여인의 시선으로 진행되었던 홍상수의 방식이 새로운 꿈을 꾸고, 방황하는 청춘에게 적용되었다는 점이 색다르다. 그 때문에 부정한 사랑과 어긋난 길을 가는 인물이 아닌, 조금은 때가 덜 묻은 청춘들의 모습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건전한(?) 홍상수 영화를 보는듯한 기분을 불러오게 한다.
무엇보다 홍상수 본인이 아닌 다른 이의 시선으로 그의 영화를 새롭게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평소 우리가 생각한 홍상수 영화의 인식과 일상에 대한 솔직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는 단순한 오마주 작품이 아닌 의미 있는 우리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홍상수 영화를 찍기로 했다]는 바로 아래 영상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결정적 장면
# 카페에서의 대화 (57초~3분 46초)
전반부의 주인공인 김성남과 박경수가 만나는 장면. 홍상수 감독 영화만의 정적인 화면 구도가 의미있게 담겨진 장면이다. 솔직한 속내를 이야기하는 나래이션이 재미있다.
# 술집에서의 말싸움 (5분 9초~8분 40초)
김성남과 박경수가 예술관에 대해 다투는 장면. 예술에 대한 모든 고민과 논쟁은 홍상수 외의 모든 영화인들의 고민일 것이다. 언제나 술집에서 본심이 등장하는 홍상수 영화 특유의 설정이 담겨진 대목. 갑자기 흥분한 김성남의 모습은 오랜만에 여자와 술자리를 나눠 흥분한 그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장면으로, 윤희정에 대한 남모를 욕망을 느낀 그의 본모습을 의미한다.
# 아리랑 고개에서의 대화 (13분 40초 ~16분 45초)
희정과 어떻게든 시간을 더 보내려는 김성남의 욕망이 등장하는 장면. 조금은 찌질한 홍상수 영화속 인간 군상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 보다는 뜸들이고, 돌려말하는 모습이 웃음과 공감을 유발한다. 물론 여주인공의 마음은 철벽이다.
# 전혀 다른 술집 상황 (22분~27분 4초)
두 번째 이야기로 넘어온 상황. 전반부의 에피소드와 같은 술집이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박경수가 연기하는 감독은 전반부의 김성남과 달리 크게 인정받고 있으며, 이번에는 윤희정이 감독에게 속마음을 드러낸다. 전반부에서 김성민이 박경수를 배우로 캐스팅하고, 희정과의 이야기를 영화줄거리로 삼겠다는 말을 생각해 볼 때 이 장면은 김성남의 욕망이 투여된 영화 속 장면으로 생각될 것이다. 전반부 술집과 같은 구도를 갖고 있지만 다른 상황이 재미를 불러오게 한다.
# 정릉 동네에서의 대화 (31분 13초~33분 57초)
어쩌면 이 이야기가 김성남의 영화가 아닌 윤희정의 현실 속 이야기일 수 있다는 추측을 남기는 대목. 박경수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난데없이 진도 아리랑을 부르더니, 급기야는 즉흥적인 삼각관계가 형성되는 난장판이 벌어진다. 홍상수와 김정민 감독의 스타일이 묻어난 절묘한 장면이다.
▲[홍상수 영화를 찍기로 했다] 감상하기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 영상=씨네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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