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브이아이피] 이종석, 잔혹한 연쇄살인범 역할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17.09.02 12:40
스크린에서 피를 맛보며 즐겁게 미소짓던 [브이아이피] 김광일의 미소를 삼청동의 카페에서 다시 마주하니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천사 미소를 짓고 해맑게 웃고 있는 청년이 180도 다른 연기를 할 수 있다니…배우란 직업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대중들 사이에서는 호불호를 불러오고 있는 영화지만, 배우 이종석에서 있어 이번 영화속 연기는 오랫동안 고민해온 연기에 대한 갈망을 해갈해 줄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배우가 갖고있는 연기적 갈망과 고민이란 무엇인지 사뭇 궁금해졌다. 어려운 연기를 할수록 해소되는 배우의 길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러한 고민에 대해 이종석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눠봤다.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은?
사실은 굉장히 불안했었다.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톤으로 연기를 해서 영화를 보기 전까지 겁이 났었다. 마치 [관상] 촬영 때 선배님들이 대사 연기를 하시던 중간에 내가 등장해 흐름을 방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브이아이피] 때도 선배님들과 작업을 하면서 혹연히 내가 흐름을 깨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막상 보니 비교적 잘 나온 것 같아 다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영화는 평소 우리가 알던 이종석과 어울리지 않아 색달라 보인다.
평소 누아르를 하고 싶었다. 나도 내 이미지를 알고 있었기에 관객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다행히 이번 영화는 내가 가진 장점을 무기로 삼을 수 있었서 좋았다.
-악역 연기를 잘 했으니 남성적 이미지가 담긴 역할도 해볼 의향이 있나?
아직은 아니다. (웃음) 예를 들어서 내가 만약 김명민 선배님이 연기한 채이도를 했다고 생각해보자. 비주얼적인 면도 그렇고, 대사를 하는 모습이 선배님이 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객관적으로 내가 나를 봤을 때 아직은 물음표가 생긴다.
-[브이아이피]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우선 소재 자체가 할리우드에서 보기 힘든 소재였다.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이자 각자의 이해관계가 모인 캐릭터들이 모인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사실 시나리오보다 완성된 결과물이 더 재미있게 다가왔다. 시나리오는 좀 복잡하고 어려웠는데 영화는 그나마 이해하기 쉬운 편이었다.
-첫 살인 장면이 예상외로 충격적이다. 촬영하고 나서 기분은 어땠나?
그 장면은 나도 힘들었다. 같이 촬영한 배우들도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피를 많이 봐서 그런지 속도 매우 불편했다. 한동안 머리가 띵해서 멍하게 있었다. 그 장면이 김광일이 어떤 인간인지를 보여준 설명과도 같은 대목이며, 그 장면 덕분에 캐릭터들이 김광일에게 분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김광일은 어떻게 살인범이 되었을까? 선천적인 살인범이었을까? 그가 여성 살해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이라 보는가?
그건 나도 궁금한 대목이었다. 그래서 감독님께 물어봤다. 사실, 김광일의 범죄는 여성에게 한정적이지 않다. 그는 북한에서 다양한 범죄를 저질렀고, 남녀를 가리지 않고 죽였다. 이 부분에 대해 감독님은 그의 범죄를 취미 생활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귀족으로 살아온 사람이며, 집의 재산인 가축을 죽이면 혼나지만, 하인을 죽이면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 인식한 부패한 부르주아다. 나 자신도 공감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너무나 기괴한 캐릭터였다.
-북한 사투리에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사실 전작 [코리아] [닥터 이방인]에서도 북한 사투리를 했다. [브이아이피] 때도 자신 있게 북한 사투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감독님께 지적을 받았다. 북한말투 특유의 마지막 말을 흐리는 부분을 하지 말라 했다. 김광일은 북한서 자랐지만, 해외 유학까지 갔다 온 세련된 인물이며, 그렇기에 북한어와 남한어 사이의 언어를 구사하라 해서 너무 어려웠다. (웃음)
-도시적 이미지가 강한데, 북한 출신 캐릭터 제안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그러게 말이다.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르겠다. (웃음) 그런데 사투리 연기가 굉장히 매력 있는 것 같다. 감정 연기 하는 데 있어서 드라마틱한 부분이 많다고 할까? (웃음)
-현장에서 많은걸 내려놨다고 했는데,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나?
[브이아이피] 만큼 계산하지 않고 연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 전에는 잘하고 싶어서 많이 준비했는데, 이번에는 선배님들과 감독님을 믿고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런 내려놓는 마음가짐으로 할 것인가?
그럴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이 가능했던 것은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커서 그런 것 같다. 감독님께 거의 연기 처음 하는 사람처럼 많은 걸 물어봤고, 덕분에 초심으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박훈정 감독님이 종석 씨에 대한 칭찬을 자주 했다고 하는데?
원래 감독님이 칭찬을 잘 안 하는 양반이다. (웃음) "어, 그래 잘했어" 이게 그분의 최고의 칭찬이다. (웃음) 그래도 약과 같은 간식도 많이 사주셔서 좋았다.
-감독님이 특별히 강조한 연기 주문은 뭐였나?
그냥 대충해 이거였다. (웃음) 근데 진짜 대충하면 '컷' 하신다. (웃음) 디렉션이 워낙 추상적인 분이라 그분이 원하는걸 맞추느라 애썼다.
-다른 선배들을 다 만나본 소감은?
선배님들 모두 각각 개성이 있고 매력이 있는 분들이다. 장동건, 김명민 선배님은 실질적으로 쓸수 있는 연기방식에 대해 많은 조언을 주셨고, 희순 선배님은 조언대신 행동으로 많은걸 가르쳐 주셨다. 희순 선배님과의 긴 대화는 없었지만, 카리스마적인 성격을 지닌 분이셔서 촬영내내 형같은 기분을 느꼈다.
-[다크나이트]를 보면 조커는 배트맨을 자신의 놀이 대상으로 인식하며, 그와의 대결을 즐긴다. 마찬가지로 [브이아이피]에서의 조커 같은 존재인 김광일에게 있어 채이도, 박재혁, 리대범중 누가 가장 갖고 놀기 좋은 캐릭터였을까?
아마 채이도였을 것이다. 계속 귀빈으로 살았고, 모든 이가 내 발밑에 있는데, 그런 상하 구분을 짓지 않는 채이도는 왠지 모르게 새로운 존재였다. 그런 채이도가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서 김광일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하게 된다. 그러니 김광일은 채이도를 갖고 놀면서 복수하고 싶었을 것이다.
-김광일이 후반부 바다에서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를 연상시키는 패션으로 등장한 것은 어떤 이유인가?
아, 그 코트 때문인가? (웃음) 그건 감독님이 심혈을 기울이시면서 구해 오신 거다. (웃음) 그게 그렇게 보였나? 아마도 VIP 였던 김광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본인이 김광일 연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격적인 변신을 원했나?
그것보다는 내가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고 싶었다. 사실 나는 남자답고, 마초같은 캐릭터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고, 평소에도 누아르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는데, 아직도 의문이다.
-액션 연기를 할 때 맞는 연기도 잘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맞아주는 연기를 잘 한 것 같다.
김광일은 분명히 나쁜 놈인데 계속 맞으니 "나 정말 나쁜 놈 맞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웃음) 마지막에는 김광일의 악행을 잊어버리고 생각해 보니 내가 참 불쌍해 보였다. (웃음) 선배님들의 액션 스타일도 다 달랐다. 장동건 선배님은 나와 첫 대면이라 촬영할 때는 얄짤없이 하셨다. 김명민 선배님과 연기 할 때 감독님께서 "너 단단히 각오해 야해" 라며 겁을 줬는데, 마음에 준비를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괜찮았다. 박희순 선배와의 작업도 괜찮았는데, 내 머리를 잡을 때 너무 아팠다. (웃음)
-남자, 여자 배우들과 각각 합을 잘 맞췄다. 자신에게 잘 맞는 합은 무엇이라 보는가?
둘 다 좋은데, 선배님들과 함께 하는 게 참 좋았다. 이번에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작업 하면서, 김원해 선배님과 함께 하며 많은 걸 배웠다. 가벼운 코미디 같지만 실제로 보면 인간미와 묵직함이 담긴 코미디 연기였다. 그런 연기의 톤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매 작품을 하면서 다른 느낌을 받는 것 같다.
전에는 연기를 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고 정확히 이야기하면 결과물을 볼 때 행복한 쾌감을 많이 느꼈다. 칭찬을 많이 받았지만 그럴수록 더 잘해야겠다는 욕구가 점점 커졌고, 그만큼 압박감도 컸다. 이번 영화는 그것을 내려놓았더니 많이 편했다.
-한동안 소처럼 일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지금도 그런 거 같은데?
아마도 결과물이 좋아야 활력이 생기니까. (웃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서 1년 동안 공백기를 지닌적이 있었다. [닥터 이방인]이라는 드라마를 할 때였는데, 초반부에 칭찬을 많이 받았지만, 5부부터는 어느 순간 연기가 힘들어지는 거였다. 그나마 20부 까지 버틸 수 잇었던 것은 송강호 선배님이 보내주신 칭찬 문자 덕분이었다. 그리고 드라마가 끝나면서 조금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브이아이피]를 하기로 한 것은 내 연기적 돌파구를 위한 선택이었다. 공감이 안가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내가 괴로워 한 것들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덕분에 조금은 해갈이 되었던 것 같다.
-팬들이 종석 씨 연기를 어떻게 받아 줬으면 하나?
팬들은 어떤 걸 해도 응원을 해주신다. 다만 어린 팬들이 내 연기를 보고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얼마 전 그 친구들이 SNS로 "[브이아이피] 영화 너무 보고 싶다"는 쪽지를 보냈다. 원래 내가 소심해서 답장을 잘 안 하는 편인데,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응원해 줘서 고마워요. 어른이 되면 꼭 보세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웃음)
-쉽지 않은 캐릭터로 인해 내면적으로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풀었나?
첫 살인 장면을 찍고 나서 정서적으로 힘든 적이 처음이었다. 그 뒤에는 힘을 받아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었다. 다행히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정반대의 분위기인 드라마를 할 수 있어서 그 잔상에 오랫동안 빠지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종석 씨 광고 사진만 봐도 김광일이 떠올린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선배님들이 너 이 영화 때문에 광고 다 떨어질 거라 농담으로 말씀하셨다. (웃음)
-그동안 연기한 캐릭터 중 자신의 실제 성격과 가장 잘 맞는 캐릭터는?
없다. (웃음) 내 성격에 맞게 연기한 것은 없다. 그나마 드라마 [피노키오]의 캐릭터가 나와 조금 가까웠던 것 같다.
-요즘의 고민거리가 있다면?
우선 말을 잘하는 것에 고민하고 있다. 데뷔 시절 부터 인터뷰한 것을 참 좋아했다. 기자님들과 한 가지 주제를 갖고 계속 이야기하니, 나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었고, 정신적인 카운셀링을 받는 느낌이어서 너무 좋았다. 그런데 근래 내가 너무 말을 쉽게 해서 그런지 쉽게 말하면 문제가 된다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한동안 인터뷰를 피한 적이 많았다. 기자도 사람이어서 함께 교감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는데, 그게 문제가 되니 너무 혼란스러웠다. 사실 이 인터뷰도 너무 오랜만이라 어제 제대로 잠도 못 잤다. (웃음)
-장동건 씨가 종석 씨가 보낸 문자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감사의 메시지를 보낸 사연은?
정말? (웃음) 사실 선배님께 직접 표현하기가 좀 그랬다. 내가 연락을 잘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웃음) 함께 작업하면서 진심으로 감사한 일도 있었고, 무엇보다 인성적으로 배울 면도 많아서 그런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말 그대로 선배님에게 입덕하게 되었다. (웃음)
-계속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에게 엄격한 것 같다. 배우로서 지키고 싶은 것은?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배우가 가진 이미지,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미지가 있다. 나도 내 이미지를 알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남성적 영화를 하고 싶지만, 그러면 대중들 입장에서 좋아할까? 그래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면 좋은 모습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작가들이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밀어붙이듯이, 나도 내 자신을 최대한 밀어붙이려고 한다.
-남자 영화에 대한 열망이 크다. 이종석이 좋아하는 남자 영화는?
이무래도 감독님 전작인 [신세계]는 남자들이라면 몇 번씩 보고 좋아하는 영화이지 않을까? 그리고 [타짜]를 굉장히 좋아한다. 조승우 선배님의 연기가 너무 좋았는데, 여유 있고 능글맞은 '고니' 캐릭터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 나는 왜 저게 안 될까 고민도 해봤다. (웃음)
-이 영화가 어떻게 남았으면 하는가?
이종석을 위한 영화로 남았으면 한다. (웃음) 작품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작업을 하게 되면 기억에 안 남을 때가 있다. 이 작품은 그렇게 남았으면 좋겠고, 나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으면 한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YG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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