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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리뷰: 소름과 연민을 불러오는 설경구의 '죽여주는' 열연 ★★★☆

17.09.0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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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2017]
감독:원신연
출연:설경구, 김남길, 설현, 오달수, 길해연, 황석정

줄거리
예전에는 연쇄살인범이었지만 지금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병수. 우연히 접촉사고로 만나게 된 남자 태주에게서 자신과 같은 눈빛을 발견하고 그 역시 살인자임을 직감한다. 병수는 경찰에 그를 연쇄살인범으로 신고하지만 태주가 그 경찰이었고, 아무도 병수의 말을 믿지 않는다. 태주는 은희 곁을 맴돌며 계속 병수의 주변을 떠나지 않고, 병수는 혼자 태주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록하고 쫓지만 기억은 자꾸 끊기고, 오히려 살인 습관들이 되살아나며 병수는 망상과 실제 사이에서 혼란스러워진다. 다시 시작된 연쇄 살인사건, 놈의 짓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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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지만,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원작의 형태보다는 [구타유발자] [세븐 데이즈]를 통해 서스펜서 스릴러에 일가견을 보인 원신연 감독만의 스타일과 개성이 강하게 묻어난 작품이다. 

원작 소설이 문학, 종교관(불교의 반야심경)을 바탕으로 알츠하이머에 걸린 살인자의 내면을 심도있게 담았지만, 이를 그대로 영상화했다면 일반 관객에게는 추상적인 작품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다. 원신연 감독은 원작이 지니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인 소재적 장점을 서스펜서물의 전형으로 대입시켜, 완벽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한 장르 영화로 재해석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원작과의 비교보다는 서스펜서 스릴러 장르 내에서 평가해야 한다. 

단점을 먼저 언급하자면 원작의 1인칭 시점을 그대로 이어받은 탓에 주인공 김병수의 시선으로만 진행되는 이야기와 내면 묘사가 고정적 이어서, 다양한 흐름의 묘미가 담긴 스릴러물의 흥미를 반감시킬 위험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알츠하이머라는 특수한 병에 걸린 주인공의 심리적 혼란과 이를 표현하려는 반복적 상황이 다소 지루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 때문에 이 영화를 흥미롭게 즐기고 싶다면, 주인공의 입장과 내면에 감정이입을 해야 한다. 

원신연 감독은 김영하 작가가 냉정하게 묘사한 살인마 김병수를 선역에 위치한 인물로 바꿔 관객들이 그에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었다. 원작에서 다소 애매한 입장이었던 병수와 딸 은희의 부녀(父女) 관계를 강화해, 부성애와 가족애의 정서를 강조했으며, 알츠하이머로 인한 순간적인 기억 상실을 가족적 정서를 바탕으로 드라마틱하게 묘사해 안타까움의 여운을 남겼다. 무차별적 연쇄 살인을 저질렀던 김병수의 살인 행각은 '정의'와 같은 정당성을 부여했다. 원작 소설의 팬과 정통 서스펜서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클 수 있지만, 무난한 정공법으로 영화를 이끌어나가려 한 감독의 연출 의도로 봤을 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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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살인마 김병수가 100% 정의로운 선역이 된 것은 아니다. 영화는 그의 누이로 대변되는 종교적 정서와 알츠하이머의 원인, 그리고 과거 그가 저지른 살인 행각을 연계해 속죄와 심판의 메시지를 담아내 그의 행동을 옹호하려 하지 않는다. 그때문에 알츠하이머는 그의 업보이자, 그의 행동에 대한 영원한 형벌처럼 다가온다.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내면과 서글퍼 보이는 기억 상실을 시니컬한 유머와 서스펜서의 일부 요소로 재해석 한 점이 이 영화의 큰 특징이다. 병수는 자신과 같은 살인마의 기운을 느낀 '적수' 태주를 발견해 이에 맞서려 하지만, 젊고 유능한 태주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낸 뒤 시종일관 그에게 끌려다니게 된다. 

녹음기, 일기로 방금전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을 기록하며 태주를 상대하려 하지만, 태주는 그런 병수를 이용해 그를 구석으로 몰고 가기에 이른다. 병수의 1인칭 시점으로 영화를 감상한 관객 입장에서는 그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이야기가 망상(혹은 조작된 기억) 또는 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되고, 그와 관련한 반전 상황을 지속적으로 맞이해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알츠하이머 증상으로 인해 의도와 다른 엉뚱한 행동을 저지른 병수의 행동은 안타까움과 함께 연민을 불러오게 한다. 그때문에 시종일관 당하고 있던 그가 과연 반격 할 수 있을지 유심히 지켜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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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살인마를 애틋한 부성애와 영원한 심판을 받는 고통받는 인간을 실감 나게 연기한 설경구의 열연이 강렬하게 담겨있다. [불한당]에서 보여준 그의 개성적인 연기를 좋아했다면, 이번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보여준 그의 열연에 다시금 감탄하게 될 것이다. 기억을 잃을 때마다 얼굴 경련을 일으키며, 섬뜩함과 연민의 감정이 담긴 눈빛 연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의 맞수 문태수를 연기한 김남길은 무난했으며, 아이돌 적인 편견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김설현의 연기가 안정적 이어서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든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9월 6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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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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