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rising

(인터뷰) [아이 캔 스피크] 이제훈, 반일 배우라는 타이틀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

17.09.17 22:52


7.JPG

[박열]에 이어 또 하나의 일제강점기 시절의 슬픈 역사를 다루는 영화에 출연했다. 본의 아니게 '반일 배우'라는 타이틀을 받게 되었지만, 이제훈은 오히려 그 타이틀에 개의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올바른 역사관을 장착한 청년이 된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한일 양국이 진실을 마주하고, 아직 살아계신 위안부 할머님들을 향한 사회공헌 적인 활동을 할 수 있기를 소원하고 있었다. 이제는 완벽한 개념 배우가 된 그와 [아이 캔 스피크]와 관련한 여러 비하인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소감은?

언론 시사 때 영화를 처음 봤다. 긴장을 많이 했는데, 한시도 눈을 못 때고 웃음과 눈물을 참지 못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나문희 선생님께 너무나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내가 출연한 영화를 처음 볼 때 평가하는 느낌으로 본다. 배우의 연기, 감독의 연출, 촬영 워킹, 음악 등등 어떻게 보면 스스로 평가하려는 자세로 어떤 점이 부족한지를 보게 되는데, 이 영화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진정성을 단번에 관통한 작품으로 이 영화에 출연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럼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이 있다면?

정말 많다. 그중 몇 개를 꼽자면, 염혜란 선배님이 선보이신 진주댁과 옥분이 함께 부둥켜 우는 에피소드다. 옥분의 사연을 접한 진주댁이 섭섭하다는 이유로 옥분을 멀리하다가 나중에 따지게 되는 장면이었는데, 그 부분에서 눈물을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옥분이 어머니 산소에 가서 넋두리를 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나문희 선생님은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누군가의 어머니 역할을 많이 하셨는데, 선생님이 누군가의 딸이 되어 넋두리하는 모습에서 그 캐릭터의 외로운 감정이 느껴졌다. 보는 내내 옥븐을 껴안아 주고 싶을 정도였다. 미국 청문회 장면도 압권이었다. 청중들을 상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장면이 너무 깊게 와닿았다. 그 외에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감동적인 장면이 많아서 이 영화가 너무 좋았다. 


-작품을 선택할 때 기준이 확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영화의 어떤 점이 좋았나?

우선 영화적 재미가 첫 번째다. 그리고 장르적인 쾌감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관객들이 돈 주고 잘 봤다는 심경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주변인들에게 추천하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전작인 [박열]을 선택했을 때 부터 그런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번 [아이 캔 스피크]가 그랬다. 나는 배우이니까 연기로서 참여할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물론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크지만, 이 영화는 이후에도 지속해서 기억되고 이야기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흥행에 대한 성과도 중요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작품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가치 있는 작품이면 참 좋지 않을까? 


-애초부터 이 영화가 위안부를 소재로 한 작품인 건 알고 있었나?

전혀 몰랐다. 시나리오가 도착하고 제목이 흥미로워서 읽어봤는데, 옥분이란 이름을 보면서 이 역할은 무조건 나문희 선생님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초반부터 티격태격하다가 영어를 통해 가까워지고, 동생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중후반에 옥분에 대한 자세한 사연이 등장하게 되면서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 이후부터 이 이야기가 어떻게 풀리는지 읽게 되었고, 책을 덮고 나서 너무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 작품이 지금 남겨진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 그리고 그분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감독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심재명 대표님과 같은 명성 있는 제작자분도 계셨기에 그분들에 대한 신뢰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8.JPG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나문희 선생님이 하는 건 몰랐나?

몰랐다. 아직 옥분역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제작사도 나처럼 나문희 선생님을 우선순위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주연으로서 극을 이끌고 나문희 선생님을 챙겨야 한다는 점에서 책임감이 컸을 것 같다.

내가 극 중 선생이어서 나문희 선생님과 어떻게 연기하고, 실제 리딩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선생님과 리딩을 했을때 부터 굳이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걸 느꼈다. 선생님의 연기를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내가 그대로 그 흐름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걸 알았다. 어떻게 연기해서 연기적 흐름을 짜낼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촬영현장이 참 즐거웠고, 따뜻한 분위기를 느끼며 작업할 수 있었다. 


-촬영 전 위안부 할머님들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고사 때 만났다. 할머님들에 대해서는 교과서로만 접하 상태라, 할머님들에 대한 정보와 인식이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때까지는 위안부에 대해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었다. 할머님들을 만나면서 "이분들이 내 친할머니였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래서 앞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우리가 해결하고 그분들을 위해 우리가 더 애쓰고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근 개봉한 [택시운전사][김광석]의 사례를 봤듯이, 근래 영화의 힘이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다. [아이 캔 스피크]가 어떤 반응을 불러왔으면 하는가?

아직도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들이 양산되고 부딪치고 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일본에 있는 기성세대와 젊은이들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피해자들에 대한 인식과 배움이 부족하다고 본다. 이 영화가 다큐가 아니지만, 우리가 할 이야기가 분명하게 잘 담겨 있다고 본다. 이 작품으로 인해서 마음적으로 동요가 되어서 거기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을 가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보통 위안부 소재 작품들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을 정공법으로 선보였다면, 우리 작품은 따뜻한 시선에서 우회적으로 다가가는 작품인 만큼 거기에 대한 울림 있는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9.JPG

-청년이 할머니와 어울린다는 설정을 어떻게 이해하려 했나?

옥분은 주민, 공무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자 블랙리스트다. 옥분의 시선에서 나의 융통성 없는 캐릭터가 신비해 보였을 것이다. 내 패션은 반듯하고 가르마도 5대5로 만들어서 옥분과 대치점을 만들려 했다. 옥분의 시선에서 최대한 싸가지 없어 보여야 하니까. (웃음) 그런 공무원이 영어를 너무 잘하니, 급 관심을 보이게 된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직접 다가오는 연기 장면을 너무도 잘해 주셨다.


-공무원 연기를 너무 잘해준 것 같다. 

촬영 때 내가 올 때마다 실제 공무원분들이 환대해 주셨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미원을 해결하고 마주하는 실제 공무원들의 모습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만큼 실제 공무원분들이 민재라는 캐릭터를 보며 자랑스러움을 느끼셨으면 한다. 


-극 중 정연주가 연기한 아영이 민재에게 들이대는데, 민재는 작업이라는 걸 눈치 못 챘을 정도로 융통성이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일부러 무시한 거라 봐야 할까?

진짜로 눈치를 못 챈 거다. (웃음) 식당에서 아영이 자기 혼자 의미심장하게 이야기할 때, 민재의 반응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야?"라는 반응이었다. (웃음) 눈치 없는 민재 입장에서는 연주의 그 이야기가 너무 뜬금없어 보였을 것이다. 현장에서 연주씨가 캐릭터를 너무 엉뚱하고 기발하게 연기해줘서, 유쾌했다. 앙영은 김현석 감독님 특유의 유머 코드를 발휘하는 캐릭터다. 그래서 참 사랑스럽다. 감독님의 대표적인 유머 코드가 담긴 장면을 이야기하자면, 극 중 시장에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활용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러한 아재 개그가 돋보이기 위해서는 담백하고 뻔뻔하게 연기해야 한다고 감독님께서 주문하셨기에, 최대한 거기에 수긍하려 했다. (웃음) 


-후반부 하이라이트인 옥분의 영어 연설 장면을 직접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다. 보는 사람으로서의 기분은? 

나도 [박열]에서 법정신을 해봐서 사실 걱정이 되었던 장면이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기대 이상으로 너무나 훌륭하게 잘 해주셨고, 현장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10.JPG

-마지막 옥분이 문제의 욕을 하는 장면은 애드립이었나? 아니면 설정이었나?

그거 설정이다. (웃음) 사실, 그 장면에서 내가 문제의 욕장면을 가려야 했는데, 실제 촬영에서 몇 번이고 막질 못했다. 한두 테이크에 그 장면이 그대로 노출되어서 너무나 웃기면서도 통쾌했다. 일본 정치인들과 일본어로 당당하게 싸우는 모습에서도 짜릿함을 느꼈다. 
 
 
-이제훈 입장에서 연륜의 배우와 함께 한 게 이번이 처음이지 않은가? 

거의 그렇다. 이번이 처음이다. [탐정 홍길동] 때 박근형 선배님과도 함께 호흡을 맞췄지만, 선배님께서 너무 젊게 행동하시고 분장을 멋지게 하셔서 나이 드셨다는걸 느끼지 못했다. 박근형, 나문희 선생님을 연달아 만나게 되면서 나중에 이런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문희 선생님과 주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나?

연기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며 조언을 구했다. 재미있는 사실이 선생님이 영어를 어려워하실 줄 알았는데, 남편분께서 영어를 가르치신 교수님이셨고, 자녀분들도 미국에 계셔서 어느 정도 영어에 능통하신 거였다. 처음에는 내가 잘 알려드리고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웃음) 현장에서 항상 먹을것과 맛있는 걸 갖다 주셔서 선생님께서 정말 정이 많으신 분이라는 걸 느꼈다. 촬영 내내 좋은 말씀을 해주시고, 잘대해 주셔서 기분 좋은 마음에 어리광을 피웠고, 막내 아들, 손자가 된 기분으로 선배님께 다가갔다. 


-공교롭게도 반일 배우가 된 것 같은데?

그런가? 너무 그런 이미지만 보이면 안되는데…(웃음)


11.JPG

-그런 부분에 있어서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지 않은가?

많은 사람에게 나에 대한 존재로서 사랑받기 원하지만 나는 대한민국의 배우다. 그렇기에 나는 모든 사람을 대표해 우리의 할 말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 차인표 선배님께서 [007 어나더 데이]의 왜곡이 심한 북한군 캐릭터 역할을 거절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것에 대해 매우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배우로서의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 영화에 출연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아마 그렇기에 나 또한 다른 쪽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차기작 소식이 없는데 이후 작품 활동은 쉬는 건가?

지금 계획이 아무것도 없다. 너무나 좋은 세 작품을 연달아 했고, 힘들었지만 보람을 느꼈다. 지금은 계획된 게 아무것도 없으며 홍보에만 몰두할 예정이다. 


-그럼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은?

1년 동안 일을 너무 많이 해서…(웃음) 극장을 한번 가고 싶다. 좋아하는 영화들이 너무 많고, 빨리 취합을 해서 IPTV로 봐야 할 것 같다. (웃음) 보고 싶은 작품들이 너무 많아서 관객으로서의 재미를 느끼고 싶다. 


-영화 외적으로 위안부 할머님들을 위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아직 계획은 없지만, 할머니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년 전 또 다른 위안부 할머니께서 별세하시면서, 학생들을 위해 재산을 내놓으셨다는 것을 보면서 크게 감명을 받았다. 배우로서 활동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펼칠 수 있다면 나도 열심히 활동해야겠다 다짐했다. 구호단체, 봉사활동의 홍보대사로서 우리나라의 알고자 하는 활동이 있다면 얼마든지 하고 싶다. 

[아이 캔 스피크]는 9월 21일 개봉한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무비라이징 바로가기 www.hrising.com/movie/
미디어라이징 바로가기 www.hrising.com/

(사진=리틀빅픽처스/영화사 시선/명필름)
※ 저작권자 ⓒ 무비라이징.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new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