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리뷰: 치욕과 굴욕의 현장…그럼에도 계속보게 되는 이유는? ★★★★
17.10.03 11:39
[남한산성,2017]
감독:황동혁
출연: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조우진, 이다윗
줄거리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청의 대군이 공격해오자 임금과 조정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어든다. 추위와 굶주림, 절대적인 군사적 열세 속 청군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 대신들의 의견 또한 첨예하게 맞선다.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청의 치욕스런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그 사이에서 ‘인조’(박해일)의 번민은 깊어지고, 청의 무리한 요구와 압박은 더욱 거세지는데...
김훈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남한산성]은 조선 역사의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인 병자호란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한다. 원작의 핵심 요소를 계승한다는 점과 왜곡 없는 현실 역사 그대로를 받아들이려는 의도는 좋지만, 과연 그 부분을 일반 관객들도 부담 없이 수용할 수 있을까? [남한산성]은 그러한 우려를 불식하는 영화만의 각색을 통해 비극이 예정된 작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몰입감을 선사하며, 관객을 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인도한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사극이 거대한 스펙터클과 치열한 전투 장면이 담긴 볼거리를 보여주는 것과 달리 [남한산성]은 이를 뒤로하고, 산성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모여든 인간 군상과 그들의 내면적 변화에 집중한다. 이는 원작의 형태를 그대로 이어갈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영화 버전이 지닌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흥미 요소에 초점을 두었음을 보여준다. 그 흥미 요소는 바로 이병헌, 김윤석으로 대변되는 연기파 배우들의 재능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었다.
대의를 위해 화친을 주장하려는 이병헌의 최명길과 국가의 자존감을 위해 싸울 것을 주장하는 김윤석의 김상헌의 극 중 대립이 바로 그것. 그동안의 작품서 최상의 연기력을 보여준 두 배우가 극단의 위치에 놓인 자신의 신념을 위해 팽팽하게 맞선다. 그것도 단둘이 아닌, 왕과 신하들이 있는 공간과 나라의 운명이 걸린 상황이란 점에서 둘의 충돌은 더 큰 긴장감을 불러온다. 이는 17세기 당시 조선 시대 정치 구도의 모습을 보여주며 흥미를 유발한다. 다른 시대 다른 나라의 이야기인 [링컨]이 19세기 미국 의회의 진풍경을 보여줬다면, [남한산성]은 당시 조선 시대 신료들의 의견충돌과 대립이 담긴 진풍경을 의미심장하게 다룬다.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사와 유교적 신념과 예의를 강조하는 가치관의 충돌이 현시대의 관객에게는 꽤 생소하게 느껴질 광경이다. 유일하게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을 향해 대신들이 그의 목을 칠것을 주장하고, 왕이 극단적 주장을 막기 위해 이를 맞받아치는 장면도 꽤 흥미롭다. 팽팽한 대립과 이를 중재하는 모습이 교차하는 순간은 당시 정치 문화에 대한 묘사란 점에서 호기심 어린 재미를 전해주는 동시에 남한산성에 포위당한 사람들의 극한 심리와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박해일을 비롯한 이병헌, 김윤석, 송영창 등 베테랑급 단역 배우들이 함께 만들어낸 장면이란 점에서 더욱 깊이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이러한 정치적 대립 부분에만 영화 전체를 할애하려 하지 않는다. 성안에 갇힌 다양한 인간 군상의 심리를 담아내기 위해, 각기 다른 위치와 상황에 놓인 인물들에게 카메라를 비추려 한다. 전쟁의 상황에서도 신분 질서를 따지고, 그로 인해 각자만의 생존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충돌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은 [남한산성]이 '정지된 [설국열차] 버전'을 보여주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지배층의 답답한 처신으로 인해 희생당하는 군인, 백성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부족한 숫자의 군사를 이끌며 희생을 강요당하는 박희순의 이시백과 고수와 이다윗이 연기하는 대장간 의형제, 어린 소녀 나루의 이야기는 이러한 극박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려는 민초와 인간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장면이다. 시대의 병폐와 외적의 침략 속에서도 희망과 생존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백성의 모습은 탁상공론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대신들과 대비를 이뤄내며 이 영화가 전하려한 메시지와 정서적 감동을 강렬하게 전한다.
큰 규모와 화려한 볼거리를 불러오지 못하지만, 평지와 산지로 구성된 당시의 전투 현장을 사실감 있게 묘사한 액션신도 영화만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주요인이 된다. 기마전을 비롯해 서구에서 들여온 신식 대포로 무장하며 거대한 병력을 이끌고 오는 청나라 군대의 공격과 숲속의 지형을 활용한 게릴라전, 조총 공격, 공성전을 활용한 조선군의 반격이 공격과 방어의 상황에 놓인 각 군사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청나라 군대의 압도적인 공습이 주를 이루며, 천천히 진행되는 학살의 순간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조선군의 패배를 처절하고 애처롭게 그려내려 한다.
다양한 설정과 순간을 담아내려 한 시도는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남한산성]만의 독보적인 흥미 요소를 놓치게 되는 단점을 불러오는 역효과를 불러온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윤석과 이병헌의 대립이 좀 더 극의 중심에 위치하지 못한 느낌이 그것이다. 확실한 포인트와 관점으로 영화를 감상하려는 관객에게는 다소 아쉬운 대목으로 느껴질 부분이다. 대립, 민초의 이야기, 전투 등의 극한 상황이 오가는 전개 탓에 감성적인 정서가 담긴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도 크게 돋보이지 못한 채 조용히 묻혀졌다.
이처럼 몇몇 잠재된 위험 요소를 지닌 설정이 담겨있지만, 황동혁 감독은 이를 특유의 절묘한 편집과 각 인물의 개성과 인간성을 강렬하게 담은 상징적인 장면들로 대처한다. 정치 물에 대한 기대심리를 떨어뜨렸지만, 이를 드라마틱한 재미와 깊이 있는 메시지로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도한 감독의 짜임새 있는 연출력이 매우 돋보인다.
[남한산성]은 넓게 보면 과거와 현대 정치를 연결하는 풍자적인 드라마로 해석될 수 있지만, 이 영화가 가장 강조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시 성안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러 번의 굴욕적인 역사와 패배의 순간에도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고 있듯이, 아픔을 이겨내고 현재를 만들어 나간 백성들처럼, [남한산성]은 오늘의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소중한 작품이다.
[남한산성]은 10월 3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CJ엔터테인먼트/(주)싸이런 픽쳐스)
※ 저작권자 ⓒ 무비라이징.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