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메소드] 방은진 감독, 두 男배우의 동성애 연기를 끌어내기 위한 그녀만의 전략
17.11.06 19:06
감독이기 이전에 90년대 활발한 연기 활동을 해온 그녀였다. 한국 영화에 몇 안 되는 여성 연출자이지만, [301 302] 같은 전설적인 작품에 출연하며 좋은 연기력을 보여준 바 있기에 개인적으로 방은진의 연기 복귀 시기가 궁금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녀의 연출작 [메소드]에 관해서만 집중적으로 물어봐야 했다. 배우 출신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연기자에 대한 애정과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던 연출자였기에 [메소드]는 그녀에게 있어 남다르게 다가올 작품이었을 것이다. 이번 영화에 대한 궁금증과 에피소드에 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눠봤다.
-영화를 본 소감은?
나는 결과물을 항상 봤다. (웃음) 큰 스크린으로 제대로 본 것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가 처음이었다. 스크린을 통해 보면서 내가 의도했던 사운드와 색채에 더 중점을 두고 관람했다. 편안하게 관람해야 할 상황에서도 설계자의 마음으로 감상해야만 했다. 같이 본 우리 배우들이 매우 만족해해서 다행이었다.
-연극 [언체인]과 두 남자의 사랑이라는 테마를 [메소드]로 연결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사실 연극 [언체인]은 곧 대학로에서 첫 선을 선보이게 될 창작 연극이다. 친한 후배가 대본을 쓰고 나에게 삼고초려 형식으로 연출을 맡아달라고 의뢰를 해왔다. (웃음) 브로드웨이 진출을 꿈꾸고 있어서 외국인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웃음) 이야기는 좋았는데, 내가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참 고민을 했는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만, 두 주인공에 여주인공 한 명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이 아이디어를 후배에게 이야기하고, 아직 연극으로 완성되지 않았으니, 영화 쪽에서 먼저 사용해도 되냐고 허락받고 영화 버전을 만들게 되었다. 대신 영화를 통해 원작 연극을 홍보해 주기로 했다. (웃음) 주인공으로 누구를 먼저 할까 생각했는데, 남성적인 면모가 강한 박성웅이 떠올라서 먼저 각본을 보여주었고, 삼 일 후에 승낙 전화가 와서 '앗싸!' 라고 외치며 제작에 들어갔다. (웃음)
-[메소드]는 퀴어 계열의 영화로 정의해야 할까?
충분히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고 본다. 포스터만 봐도 남남이니 그렇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웃음) 사실 이 영화는 퀴어물이라기 보다는 메소드 연기에 푹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로 봐야 한다. 박성웅 배우가 아니었어도 마초적인 인상이 강하고 누가 봐도 이성애자인 배우를 캐스팅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퀴어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지 않아서, 그분들의 감정과 정서를 잘 다룰 자신이 없었다.
내가 동성애자분들의 진심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영화가 퀴어물로 언급되는 게 좀 죄송한 느낌이다. 영화가 공개되기도 전에 여러 사람들이 퀴어물로 추측해서 부담이 큰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최근 [불한당] 같은 영화를 브로맨스물로 즐기며 좋아하는 관객들이 상당해서 그렇게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그건 관객분들이 편하게 평가해 주셨으면 한다.
-감독님도 배우 출신이기에 극 중 주인공들이 느끼는 연기적 고뇌를 잘 알 것 같다. 실제로 연기와 현실의 차이를 느낀 적이 있었나?
[메소드]를 구상하면서, 내가 연기 활동을 해왔던 시절을 여러 번 회상했다. 나는 연극배우 시절부터 연기를 시작해 왔다. 좀 잘나가는 연극배우였고, 상도 많이 받았고 쉬면은 불안해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면 연습 공연을 반복하고 10시간 이상을 연극 실에서 살 정도였다. 연극 끝나면 선배들의 회식도 가야 하니, 그러다가 어떤 게 진짜 나인지 모를 때가 있었다. 일상의 내 모습보다는 무대의 내가 더 만족스러워 보였다. 작품을 할 때는 행복한데, 무대를 내려오고 나서는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일상의 내가 지치는 모습을 볼 때 마다 '나는 누구인가?' 라며 스스로 되물었을 정도였다. 그다음 다시 충전해서 연기에 집중할 때는 힘이 났다. 캐릭터 완성과 그들의 일화를 만들때는 나와 다른 배우들이 실제로 겪었던 일화를 참고했다. 재하가 체중을 불렸다 뺐다 하는 에피소드는 설경구의 이야기이며, 숲속에 홀로 들어가 캐릭터를 완성한 내용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에피소드다. 교도소 면회와 메소드 연기 노트는 내 경험이다. (웃음) 메소드 연기 노트는 그 인물에 관한 이야기로, 대본에 나와 있지 않은 캐릭터의 자아와 이야기를 내 스스로가 완성한 것이다.
-레오 카락스 감독이 [폴라X]를 만들 때 두 배우의 실제 정사신을 리얼하게 끌어내기 위해서 두 사람이 서로 친해질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처럼 [메소드]의 박성웅과 오승훈의 감정을 리얼하게 끌어내기 위해서 의도한 부분은 없었나?
박성웅이 계속 인터뷰하면서 말하는 내용이 '내가 방은진 누나의 작전에 휘말렸다' 말하고 있는데, 그 작전이 바로 내가 의도한 에피소드다. (웃음) 첫 번째 작전은 신예 오승훈과 박성웅을 호의적인 관계에서 대면시키는 거였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갖고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우선 공식 캐스팅이 확실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승훈이에게 '너의 상대 배우는 박성웅이다'라고 언질을 해줬다. 그러다 나중에 사무실을 찾아온 박성웅에게 들었는데, 승훈이가 화장실에 가는 길에 자신을 보고 씩 웃었다고 말하는 거였다. (웃음) 성웅이는 승훈이의 그런 천진난만한 모습이 좋았다고 한다. 두 번째 작전은 역시나 술이다. 리딩 작업이 끝나자 마자 바로 회식을 했는데, 두 사람이 친해져서 2차까지 같이 갔다고 한다. (웃음) 사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런 방식이 배우의 감정 연기를 끌어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성웅이는 원래부터 잘했고, 승훈이가 기대 이상으로 열심히 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극 중 영우의 행동이 시종일관 호기심과 의문을 불러온다. 우선 첫 번째로 재하의 연기를 본 후, 순간적으로 빠져든 대목이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영우는 애초부터 동성애적인 본능을 가졌던 것인가? 그때 당시에는 재하의 연기에 매료되었던 것인가?
그 부분은 [위플래쉬]에서 스승이 독설을 통해 제자를 압도하며 카리스마를 뿜어낸 대목과 비슷하다. 영우는 재하의 연기에 경도된 것이다. 그것은 사랑과 같은 감정적인 부분이 아니다. 그때부터 영우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재하 입장에서는 배우를 바꿀 수 없기에 그렇게라도 해야 영우가 연기에 빠져들거라 생각하며, 몰아붙인 것이다. 사실 그때 오승훈이 눈물을 흘린 장면은 의도하지 않은 진짜 감정이었다. 이후 영화는 배우의 연기를 보고 감동을 하게 되는 경외에서, 천천히 흠모하게 되는 과정을 유심히 담아낸다.
-캐릭터에 몰입하는 영우의 노력은 재하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인가? 아니면 스스로 그런 천재성을 갖고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모방적 예술이라고 봐야 한다. 처음에는 '연기 재미있을까요?'라고 회의적이었던 애였는데, 이제는 경외하게 되는 재하를 보면서 서서히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보폭을 따라가는 것이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기 위해 보폭을 맞추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영우도 재하에게 속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무대에서 키스를 하게 되면서 그를 뺏어야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다. 영우의 그런 진심이 다가오면서, 자신도 혼란을 느끼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사랑과 연기가 주도권 싸움 또는 게임처럼 그려진다. 무대의 주인이던 재하가 영우에게 서서히 밀리듯이 그려졌다.
그러니 재하가 연극에 집중 못 한 것이다. 재하의 메소드 노트가 비어 있는 것을 봤듯이 영우의 메소드는 하나의 큰 복수다. 영우가 위험천만한 연기를 펼치는 것도 결국 복수이자 게임인 것이다. 마지막 연극에서 박수받는 것은 결국 영우이다. 여성들은 사랑을 느꼈지만, 그게 소홀하면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한다. 나두 약간은 로맨티시스트라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사랑을 믿지 않는다. (웃음) 연기도 그거와 같다.
연기와 실제 감정을 착각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내가 제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 지나간 시간을 넘겨야 하듯이 사랑도 그런 거라 생각한다. 사람의 사랑이 설렘에서 집착으로 가듯이 그 감정은 변화무쌍하다. 배우들이 인물로서 사랑해야 하는 것도 아주 깨지기 쉬운것이다. 배우들은 악기의 족쇄가 잡힌 인생이란 점에서 불쌍하지만 그들은 인생을 걸고 연기에 매진하는 소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것들이 이 영화에 복합적으로 녹아들었다고 생각한다.
-방은진 영화의 여주인공들은 자아를 잃어버렸거나, 인생의 위기와 갈림길 앞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캐릭터들의 모습에 관심을 두게된 이유는?
자아를 잃어버렸다기보다는 어떤 상황에 처했을때의 인간이 반응하는 방식에 관심이 갔다, 우선 나는 사람이 어떤 부분에서 천재면 어떤 부분에서는 둔재라 생각한다. [오로라 공주]의 주인공은 프로패셔널한 사람이었는데, 아이를 잃어버리면서 변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도 모르는 이면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나는 관습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의 강인함과 의지가 할수 있는 극대치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었다. [집으로 가는길]의 경우는 조금 다른 케이스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프랑스 감옥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호기심을 느꼈다. 다 망한 상태에서 400만 원을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려는 마음에 공감이 갔다.
여자 캐릭터의 시선에 보면 어떻게든 돌아올 수 있었던 그녀의 모습을 통해 여자는 위약하지 않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용의자 X]의 경우는 원작자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와 인간의 감정을 버무리는 이야기에 반해서 시작했는데, 그러다 얼마큼 사랑하면 대신 내가 대신 죽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다가서게 되었다. 어찌 됐든 여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면 그것을 아는 순간 자수를 하려고 하다가 애매하게 끝이 난다. 나는 사람의 그런 마음에 연민이 적용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죄를 뒤집어쓰고 나왔을 때 화선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을 기다리는 것에 희망을 담고 싶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인간이 인간에 대해 숭고한 마음을 담고 싶었던 것에 대해 연민을 느꼈다고 본다. 나는 예의를 넘어서 인간 각자에게 그에 대한 숭고함이 있다고 믿고 있다.
-감독님을 처음 알게 된 영화가 배우로 출연하셨던 박철수 감독의 영화 [301 302] (1995) 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전설적인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 당시 연기 시절 기분과 감정은 어땠는지?
그 작품을 기억하나? 진짜 오래됐는데…(웃음) 그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아마 그 당시 미국의 유명한 비디오 체인점인 '블록버스터샵'의 리스트에 최초로 오른 한국 영화인 것으로 알고있다. 그 당시 박철수 감독님께 배운 게 많았다. 당시 내 영화 출연작이라고는 [태백산맥]뿐이었다. 그런데도 감독님이 나를 캐스팅 해주셨던 게 너무나 감사했다. 당시 여성 투톱 영화는 희귀했고, 박철수 감독님 영화를 좋아해서 기쁜 마음으로 하게되었다. 폭식증과 거식증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것만 해도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었다. 내가 연기한 송희는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음식을 만들었지만, 그것을 얻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이다.
나중에 이 여자가 고마움을 위해 토막살인을 하게 된다는 설정이 너무나 특이했다. 그때도 박철수 감독님은 평범한 인간에 관심이 없으셨던 것 같다. (웃음) 철수 감독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후에 회고전을 했는데, 그때의 내 모습을 보니 너무나 부끄러웠다. (웃음) 그럼에도 내가 이런 대단한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박철수 감독님은 미국식 독립영화 방식을 처음으로 한국영화에 접목한 뛰어난 연출자셨고, 그 분과 함께 작품을 한 것은 영광이다. 그분을 통해 연출과 영화 만드는 과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때 현장서 느끼게 된 것을 어느 정도 실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출자가 되었던 것 같다.
-정말 궁금한 건데, 감독님의 배우 복귀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아무도 캐스팅을 안 해줘서 준비하고 있지 않다. (웃음) 연기는 안 하면 녹이 슨다. 그래서 내 연기는 이미 녹이 슬었다. (웃음) 나를 걷혀가면서 나간 큰 배우가 한둘이 아니다. 조진웅, 이동휘 이런 애들하고 막상 하게 되면 애들이 내 연기를 노려보지 않을까? (웃음) 우선 내가 연출작으로 300만 명을 넘어보고 싶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인생을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캐스팅은 절대 안 들어올 것이다. (웃음)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엣나인필름/모베터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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