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비하인드] 이분이 50대? 인종 편견을 깬 전설의 흑인 섹시 스타 할리 베리
17.11.24 15:14
[킹스맨:골든서클]과 [키드냅]을 통해 오랜만에 국내 관객들과 만남을 가진 할리 베리와 관련한 흥미로운 비하인드를 모아봤다.
본명:할리 베리 (Halle Berry, Halle Maria Berry)
생년월일:1966년 8월 14일
신장:166cm
출생지: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halleberry/
1. 미인대회의 레전드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미인으로 주목받았던 그녀는 17세 때 '미스 틴 올아메리칸' 이라는 미인대회에 우승한다. 다음해 미스 오하이오 USA 대회에 우승하게 되고, 1986년 미스 USA 2등, 미스 월드 대회에서 6위를 차지하며 모델 분야에 진출하게 된다. 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의 미스 월드 진출 입상자로 기록된다.
2. 다사다난한 결혼 생활
할리 베리의 사생활은 다소 복잡한 편이다. 1993년 야구 선수 데이빗 저스티스와 결혼햇으나 4년 만에 이혼했다. 두 번째 남편인 유명 가수인 에릭 베넷과 결혼하게 되지만, 이마저도 4년을 넘기지 못하고 종지부를 찍게 된다. 에릭 베넷이 여러 명의 여성과 바람을 피우게 되어 불화설로 불거졌는데, 할리 베리는 에릭의 변심을 용서하고, 함께 섹스 중독 치료를 받기까지 했지만, 이마저도 그의 바람기를 막을 수 없었다. 2013년 세 번째 남편인 배우 올리비에 마르티네스와 결혼해 아들까지 뒀으나, 얼마 안 가 이혼하게 된다. 이후 최근까지 세계적인 탑 모델인 가브리엘 오브리와 연인관계를 유지하며 슬하에 딸까지 두게 되지만, 결혼까지 가지 못하고 결별하게 된다.
3.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실은 혼혈
할리 베리는 종종 자신을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대변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는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이다. 그럼에도 자신은 미국내 흑인을 대표한다고 자부하며, 흑인 인권 개선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4. 재미있는 '할리' 이름의 뜻
이름인 '할리'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담겨있다. 흔히들 ’할리우드’(Hollywood)에서 빌려온 이름으로 알고 있으나, '할리'는 그녀의 고향인 클리블랜드에 있는 백화점 건물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가장 화려한 상징이 되길 바라는 부모의 깊은 뜻이 담긴 이름이었다.
5. 아버지에 대한 분노
소중한 뜻을 지킨 이름을 지어준 부모님이었지만, 두 분의 관계는 그리 좋지 못했다. 할리 베리가 4세인 시절,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되고, 어린 딸이 보는 앞에서 술주정을 하며 엄마를 폭행했다. 유년기의 할리 베리에게 그 장면은 충격적인 잔상으로 다가왔다. "그 당시 나는 어머니가 폭행당하는 것을 가만히 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아무 이유 없이 어머니를 때렸고, 그 행위가 우리 가족에게 미친 악영향은 너무나 컸다"라며 당시의 충격을 회고한 할리 베리는 2003년 아버지가 파킨슨병으로 돌아간 후에도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았다.
6. 노숙자가 된 사연은?
미스 월드 대회에도 참여한 미국 최고의 미인이 대회 이후 길거리 노숙을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시는가? 과거 할리 베리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와의 인터뷰에서 "21세 때 배우 활동을 하기 위해 집을 나왔지만, 돈이 없어서 한동안 노숙자 보호시설에서 생활해야 했다." 라며 어두웠던 과거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시 할리 베리는 독립을 위해 무작정 집을 나오려다가 어머니와 말다툼을 한 상태.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알아서 해결하든지 집에 오든지 해!" 라는 말이었다. 할리 베리는 당시 어머니의 행동에 너무나 화가 나 1년 반 동안 말도 하지 않았다고 회상하며,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나를 독립시키기 위한 방법 이었음을 깨달았다"라며, 어머니의 결정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노숙 생활은 할리 베리에게 강한 '멘탈'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으며,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을 돌보는 법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7. 성공적인 스크린 데뷔를 위한 그녀의 파격 행위
80년대 말 [리빙 돌스] 라는 TV 시리즈를 통해 첫 연기 데뷔를 하게 된 그녀는 1991년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영화 [정글 피버]를 통해 첫 영화 데뷔를 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마약중독자를 연기한 사무엘 L.잭슨의 여자친구 역을 맡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캐릭터 또한 마약중독자였다. 설득력 있는 마약중독자로 보이기 위해 할리 베리는 10일 동안 샤워와 양치를 하지 않았고, 헝클어진 헤어스타일 그대로 촬영장에 나타나 실감 나는 중독자의 모습을 선보이게 된다. 이 때의 경험이 그녀가 연기파 배우가 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된다.
8. 연기 인생의 전환점 [도로시 댄드리지]
[정글피버]의 데뷔 이후 여러 영화와 TV 드라마에 연이어 출연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9년 그녀의 첫 번째 연기 전환점을 맞이하게 하는 인생작인 TV 영화 [도로시 댄드리지]에 주연으로 캐스팅된다. 인종 차별이 심했던 1950년대 영화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실존 여배우 도로시 댄드리지를 아름답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재해석 해 최고의 연기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할리 베리는 이 작품으로 골든글로브와 에미상의 여우주연상을 받게 된다. 도로시 댄드리지는 평소 할리 베리가 존경하고 이상향을 꿈꾼 배우였다고 한다.
9. 연기력 만큼 주목받은 섹시한 몸매와 외모
연기도 훌륭했지만,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했던 만큼 섹시한 몸매와 외모도 그녀가 배우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소였다. 1991년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액션 스릴러 [마지막 보이스카웃]에서는 매혹적인 스트리퍼로 출연했고, 1994년 가족 영화 [고인돌 가족]에서는 글래머한 몸매를 선보여 성인 영화로 착각하게 했다. 2001년 작품인 [스워드 피쉬]와 [몬스터 볼]은 그녀의 올노출 장면으로 크게 화제가 된 바 있다.
10. 보너스를 받고 가슴을 노출한 사연
[스워드 피쉬]에서는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그녀의 가슴이 적나라하게 등장해 주연인 휴 잭맨을 놀라게 한다. 할리 베리의 몸매가 화제가 되자, 제작사가 그녀에게 50만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그녀의 상반신 노출을 요구했고, 배리가 그에 응해줬다.
11. 그녀가 인종차별에 민감한 이유는…
할리 베리는 유년기부터 십대 시절까지 백인들과 함께 다니는 학교에 다녔다. 당시 백인들이 많이 다녔던 탓에 할리 베리와 유색인종 친구들은 심한 인종차별과 모욕적인 언사를 들어야만 했었다. 그때의 치욕적인 순간을 잊지 않은 할리 베리는 유명인이 된 뒤로부터 유색인종의 인권 향상과 미국 내 인종 차별을 없애기 위한 운동에 힘썼다.
12. 웨슬리 스나입스에게 맞아 청력을 잃은 사연
첫 영화 데뷔작인 [정글피버]에 함께 출연한 웨슬리 스나입스와 짧게나마 사귄 적이 있었다. 당시 웨슬리 스나입스와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는데, 스나입스가 홧김에 할리 베리를 폭행하면서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고 한다. 유명 스타 남친에게 맞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이 문제를 조용히 덮어두었고, 그 때문에 그녀의 다음 남친인 크리스토퍼 윌리엄스가 본의 아니게 할리 베리를 때린 인물로 지명되기에 이른다. 결국, 그녀의 늦은 고백으로 윌리엄스의 누명은 벗겨질수 있었다.
13. 그녀가 놓친 작품 [스피드]
할리 베리는 사실 더 일찍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 1994년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스피드]의 여주인공 제안을 받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이 영화에 합류하지 못하게 된다. 그녀가 맡기로 한 역할을 거머쥔 이가 바로 산드라 블록 이었다.
14. 논란이 된 자동차 사고
큰 사건, 사고를 일으킨 적 없었던 그녀도 딱 한 번의 큰 사고를 쳤다. 2000년 에미상 수산 뒤 차를 몰고 떠나다가 그만 자동차 사고를 냈는데, 현장에서 바로 도주한 것이었다. 이 일로 그녀는 법정에 서게 되고, 200시간의 사회봉사와 13,500달러의 벌금을 부과받기에 이른다.
15.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아카데미 여우 주연 비백인 수상자
2002년 파격 노출과 섬세한 내면 연기를 선보인 영화 [몬스터 볼]을 통해 7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게 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는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한 해티 맥대니얼이 흑인 배우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이래, 74년 만에 흑인 여배우가 세운 의미있는 기록이었다. 이 역사적인 순간에 코닥 극장 안에 있는 모든 영화인들이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고, 할리 베리는 감격에 겨워 울먹이며 수상소감을 발표해야 했다. 그녀의 울먹이는 수상 소감 장면 또한 큰 화제가 되었다. 이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허리케인 카터]의 덴젤 워싱턴이 선정돼, 흑인 남녀 배우가 나란히 아카데미상을 든 의미 있는 시상식으로 기록되었다. 할리 베리 수상 이후 새로운 흑인 여우주연상 수상자는 아직까지 없다.
▲할리 베리의 수상소감 장면
16. 최악의 영화 시상식에 직접 참여한 강철 멘탈
최초의 여우주연수상 만큼 또 한 번 화제가 된 순간이 있다면 2005년 최악의 여우주연상 수상을 직접 받으러 온 순간이었다. 2004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히어로 영화 [캣우먼]에 출연했으나, 결과는 모두가 알듯이 대실패였다. 결국 아카데미 시상식 전에 열리는 최악의 영화 시상식인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최악이 여우주연상에 선정되었는데, 할리 베리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듯이 쿨하게 이 시상식에 참석해 직접 상을 수상하는 대인배 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배우가 시상식에 참석해 직접 상을 받은것은 이 시상식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하니, 그녀로서는 세 번째 대기록을 세운 셈이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최악의 배우가 되지 않으면 최고의 배우가 될 수 없는 거랍니다"라는 수상소감을 남겨 시상식장을 방문한 모두에게 기립박수를 받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분발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2011년 [더 콜]로 다시 한 번 최악의 여우주연 후보에 오르는 굴욕을 맛보게 된다.
▲골든 라즈베리 수상소감 장면
자료참조:uselessdaily.com, ppcorn.com, fame10, IMDB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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