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긴 여운] 성폭행 당한 여학생과 가해자의 부모가 만난다면? [상담]
17.12.27 17:35
[상담, 2017]
감독:김재혁
출연:고주영, 노윤정
줄거리
성폭행당한 여학생과 가해자 어머니의 만남을 그린 단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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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어쩌면 이 기사의 제목이 이 영화의 묘미인 결말을 미리 '스포' 하는 나쁜 요인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느낀 것은 이 영화의 결말 부에 드러난 진실이 핵심이라는 점과 이러한 특정한 상황을 미리 알리는것이 이 영화를 보게 만드는 호기심적인 요인을 부각해 주는 동시에 핵심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해주는 장치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회면 뉴스를 통해 성폭행과 관련한 기사를 한 번이라도 읽었다면, 너무나 의아한 내용을 확인했을 것이다. 분명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한 사건이지만, 조사가 시작되면 서로의 입장이 뒤바뀐 듯이 전개된다. 사건을 저지른 가해자 측과 그 가족이 피해자의 태도와 평소 행실을 문제 삼으며 오히려 잘못은 피해자에게 있다는 식으로 몰고 가려 한다. 평소 사회의 정의를 외치며 잘못된 관행에 불만을 제기하는 개인이라 해도, 내 가족과 자신이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다면, 그 자신 또한 비겁한 인물이 될 수밖에 없다. [상담]은 피해자의 입장을 들어주고 그의 편에 서야 할 상담사가 가해자가 자신의 자녀임을 알게 되면서 모순된 행동을 하게 되는 상황을 통해 우리 사회와 인간의 비겁한 이면을 부각한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한 여학생이 긴장된 목소리로 상담사를 마주한다. 여학생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적 있으세요?"라며 상담사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단순한 연애상담인줄 알고 여학생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상담사는 그다음 이어지는 그녀의 핵심적인 고민에 놀라게 된다. 학생이 좋아했던 남학생이 그녀를 성폭행 한 것이다. 같은 여자로서 그녀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 상담사는 함께 이겨내자고 말하며 가해 학생에 대한 자세한 신상에 대해 묻게 된다.
여학생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임기태'. 순간 상담사는 전보다 충격을 받은듯한 표정을 짓게 된다. 그녀의 표정은 큰 무언가에 맞은듯한 느낌으로, 들고 있던 펜을 떨어뜨릴 정도였다. 상담사는 바닥에 떨어뜨린 펜을 주우면서 책상에 놓여 있는 아들과 함께 찍은 앨범을 여학생이 보지 않게 반대 방향으로 돌린다. 상담사의 표정과 행동이 말해주듯이 임기태는 그녀의 아들이었다.
상담사는 다시 침착한 목소리로 여학생을 대하지만, 목소리의 톤과 그녀의 말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지금 여학생을 다그치려 한다. 방금전 까지만 해도 적극적으로 신고를 주장하던 그녀는 진실을 가리려는 듯 창문의 커튼을 치며 사건을 조용히 덮으려는 쪽으로 몰고간다. "증거가 있느냐?" "너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사건이 벌어진 것 아니냐?" 여학생의 편을 들어줘야 하는 상담사는 가해자의 부모가 되어 따지듯이 여학생을 몰아세운다.
결국, 여학생이 사건의 증거인 음성파일을 공개하자 가해자의 부모인 상담사는 증거를 보관하겠다며 여학생의 휴대폰을 가져가지만, 그녀의 행동은 증거를 은폐하려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증거를 맡기고 상담실을 나가려는 여학생에게 상담사는 추가 증거가 없는지 물어보며, 몸을 잘 추스르라고 충고하지만, 여학생은 회심의 한방 같은 인사말을 남기며 밖으로 나간다. 아들이 가해자라는 사실과 자신의 모순된 행동에 혼돈을 느낀 상담사는 여학생의 말 한마디에 얼어붙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심한 혼돈에 빠지게 된다.
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과 한정된 공간이라는 설정 속에서 [상담]은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위선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짧은 시간과 제한된 상황에서 최대치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느낄수 있었던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부모가 마주한다는 특수한 설정 때문일 것이다. 초반까지만 해도 협력적 관계를 지니고 있었던 두 사람이었지만, 진실이 드러나게 되면서 대립의 관계가 된다. 달라진 극의 분위기와 상반된 인물 관계로 인해 이후의 전개는 예측불허로 이어지게 된다. 달라진 분위기에 따라 인물의 표정을 다양하게 담아내는 카메라의 앵글과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두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인 흐름을 완성한다.
결과적으로 피해자인 여학생의 복수극과 반격의 드라마로 마무리되지만, 영화가 주시하고 있는 시선은 가해자의 어머니인 상담사의 모습이다. 약자와 피해자의 편에서 그들을 도우려 하는 이상적인 인물이지만, 가족과 아들로 대변된 '핏줄'이 가해자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영화는 그러한 그녀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며, 이것이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여운을 남긴다. 이상적인 사회와 정의를 주장하지만, 개인적인 상황에서는 비겁해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전자서 언급한 뉴스 속 '의아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 아닐까? [상담]이 말하고자 한 숨겨진 메시지는 우리가 원하는 진실과 정의는 바로 우리 자신의 '아픈 희생'을 통해 완성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또다른 추천 단편 '사진작가의 추악한 비밀' [캔디드 샷]
[캔디드 샷, 2017]
감독:강민지
출연:류경수, 방태원
줄거리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진작가 희준은 개인전을 앞두고 화려한 사진에 감춰진 비겁한 자신을 마주하게된다.
[상담]과 같은 위선적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피사체가 된 대상을 몰래카메라 처럼 촬영해 내는 캔디드 샷의 정의를 활용한 이야기로, 습관적으로 캔디드 샷을 찍어온 사진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위선적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의 사진이 완성되는 순간과 작품과 인간의 정의 사이에 갈등하는 듯한 모습을 통해 심리극을 완성했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 영상=퍼니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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