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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곤지암' 정범식 감독 "속편은 日 아오키가하라 자살의 숲으로 해보고 싶다"

18.04.0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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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이상의 흥행으로 한국 공포 영화의 부활을 알린 정범식 감독. <기담>으로 공포 영화의 새장을 열었던 '호러 장인' 답게 이번 영화에서는 파운드 푸티지 방식을 접목해 그동안 한국 영화서 보기 힘든 볼거리를 선보이며 입소문을 자아내고 있다. 이쯤 되면 남다른 공포를 만드는 그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곤지암> 촬영의 비하인드와 그만이 지니고 있는 공포 철학에 대해 직접 물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결과물을 본 소감은?

촬영과정과 후반과정이 힘들었지만 의도했던 대로 잘 나왔던것 같다. 그 전에 했던 작품들과 다른 방식의 작업을 해왔기에 여러 제약을 받을법했지만, 다행히 그런 제약없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어서 편하게 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파운드 푸티지 방식이 독특해서 연출에 있어 자율성을 보장받기 어려웠을텐데?

호러 영화 이기에 어느정도 무서운 장면에 대한 컨셉이 확실하면, 나머지에 대해서는 관대해지는 편이다. 아무래도 그 점을 강조했기에 이 영화의 자율성을 보장받을수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계속 연출해도 된다는 의사를 받았다.


-<기담> 이후 활발한 작업을 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연출작이 뜸할 정도로 오랫동안 연출일을 하지 않으셨다. 이유가 있으신가?

사실 제의가 들어온 작품들은 많았는데 엎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기담> 이후 새로운 시도의 작품을 할 기회도 있었지만 상업영화 내에서의 제약 탓에 결국 포기해야만 했던 작품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기회를 놓치게 되었고, 그 대신 코미디 영화와 <무서운 이야기> 같은 옴니버스 영화의 각본과 일부 에피소드 연출을 맡으며 감각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본인의 장기인 호러 영화로 돌아온 것은 반가운 행보지만, 파운드 푸티지라는 특수한 장르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현재의 영화 시장 상황을 봤을 때 미묘한 사실을 발견했다. 전 세계 영화 시장에서 호러 영화는 흥행 추세인데, 유독 한국 호러 영화만 침체 중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의 호러 영화 관객층도 많아진 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호러 영화의 한 장르가 되다시피 한 파운드 푸티지는 현재 새롭게 진화하고 있는 중인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파운드 푸티지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관객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 만한 호러물이 나오고 있지 않다. 그래서 한국 호러 영화의 발전과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개척이 필요하다 생각해 2011년부터 <곤지암>이라는 영화의 기획이 진행되었다. 제작사 대표님을 통해 이 영화의 연출 제안을 받게 되었고, 페이크 다큐에 눈이 익숙해진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전에 촬영한 방식과는 조금 다른 촬영, 사운드 활용 방식을 기획해 좀 더 진일보된 호러를 만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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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 이전에 국내에서도 <폐가><혼숨> 같은 파운드 푸티지 작품이 있었다. 그 작품들이 빛을 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 보는가?

약간 인디 영화의 규모로 제작되다 보니, 상업 영화적 틀을 갖추는 데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 같다. 두 작품 모두 미국형 페이크 다큐를 지향하고 있는데, 이 페이크 다큐의 문제점은 리얼감이라는 이유로 과도한 쉐이킹(화면 흔들기)을 활용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은 흔들리는 화면을 마주해야 했고, 그로 인한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면 스토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이야기보다는 형식적인 걸 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래 트렌드인 유튜브 스트리머들의 활동 방식을 보면서 우리 영화에도 이점을 적용하는게 좋을거라 생각했다. 실시간 방송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본다면 안정적인 카메라 워킹과 전형적인 편집 방식을 사용해도 문제가 없을 거라 봤다. 먹방 같은 놀 거리와 구경거리가 유튜브의 인기 콘텐츠로 자리 잡았듯이 우리 영화는 호러라는 콘텐츠를 갖고 노는 방식에 초점을 두었다. 


-도움이 된 유튜브 영상들이 있었다면? 그리고 도움이 된 요소들은 무엇인가?

도움이 된 건 무서운 영상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레전드로 추대된 유명한 유머 영상들이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교감을 갖게 되는지를 연구했다. 우리 영화는 생생한 체험을 우선시하고 있기에 그러한 디테일한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극 중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듣고 멤버들이 숨는 장면이 그런 대표적인 설정이다. 


-'1979년 10월 26일'과 박정희 재임 시절 설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의도를 담으려 한 것이었나?

맞다. 곤지암이라는 실제 공간과 정신 병원은 실제 있는 장소이며, 원장 이야기는 괴담처럼 형성되었다. 실제 공간에는 그럴듯한 허구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대한민국 격동의 현대사와 그 시절 하면 생각나는 것들을 슬쩍 끼워 넣어서 허구의 이야기를 씌어 넣기로 했다. 모티브는 정신병원에서 나왔지만 그에 따른 시대적 영향을 이스터에그처럼 그려내고 싶었다. 


-곤지암외 다른 장소를 소재로 한 적은 없었나? 

없었다. 곤지암은 전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공간이다 보니 처음부터 기획할 때 부터 모티브는 곤지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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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질문이다. <곤지암> 시리즈가 잘 된다면 시리즈로 영화서 언급한 'CNN 미스터리 장소'들을 해보실 의향은 있으신가? 

안 그래도 우리끼리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잘되면 7대 섬뜩한 장소 다가냐거...(웃음) 만약에 하게 된다면 딱 한 개의 장소를 소재로 촬영하고 싶다.


-거기가 어딘가?

일본의 아오키가하라 자살의 숲이다. 7대 섬뜩한 장소라 해서 유심히 조사해 봤는데, 그 분위기가 묘했다. 작업하게 되면 재미있을것 같다. 


-연기 경험이 전무한 배우들에게 실제와 같은 상황을 연출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식으로 연기 주문을 했나?

그 부분이 참 어려웠다. 일반 영화라면 의도적인 효과를 활용했을 텐데, 우리 영화는 그럴 수가 없었다. 카메라를 바로 턱 밑에 두고 연기를 해야 했고, 음악과 임팩트도 배제해야 하니, 배우들이 연기 하기 힘들어했다. 그들에게 편하게 하라고 말했지만, 동선이나 감정의 밸런스를 다 맞추고 실제 상황 같은 연기를 하라니 말이 안되지. (웃음) 연기도 잘해야 하고 동선도 읽혀야 하니 배우들의 이중부담이 꽤 컸을 것이다. (웃음) 그런 것들이 초반의 문제였는데, 나중에는 이것에 익숙해졌다. 


-공포 영화 촬영장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귀신을 목격한 일은 없었나?

(웃음) 안타깝게도 없었다. 실제 촬영장(부산의 구 해사고등학교) 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촬영했다. 그러다 보니 낮에는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게 하기 위해 창문까지 완벽하게 차단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그 건물에 전기마저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을 갈 때 다같이 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게 익숙할때쯤, 어느날 제작팀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여기 부산구 해사고등학교 터가 곤지암 못지 않은 흉가라는 거 아셨어요?" 순간 제작진 모두 섬뜩해 했는데, 그곳에서 살고 계신 동네 주민께서 촬영종료하고 끝날때 동전을 던져주고 가라고 충고해주셨다. 그렇게 해야 귀신이 날라오지 않는다고...촬영 끝나고 스태프들과 동전을 던지면서 액땜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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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 그리고 <곤지암>까지 일반적인 호러물이 아닌 매 작품마다 실험성이 돋보인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각 시리즈마다 다른 형태의 호러를 지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원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약간 이질적인 것들을 합쳐 놓고 새로운 방식의 작업을 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이번 작품은 서사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체험형의 영화를 조성하고 싶었다. 


-고프로 카메라 화면을 연출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인물에 무언가가 있다는 설정이 눈에 돋보였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화면의 뒷부분이 신경 쓰였는데, 특히 병원의 천장에 구멍이 많이 뚫려있는 부분이 그런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실 그 천장은 우리가 다 일일이 뚫은 거였다. (웃음) 최대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미술적인 세팅이 필요했다. 우리 영화는 공간이 하나의 캐릭터이며, 40년의 세월 자체가 넘은 공간이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러한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기자님이 말씀하신 영화만의 섬뜩한 분위기가 완성된 것 같다. 


-방언하는 귀신이 <기담>에 이어 이번 영화에도 등장했다. 트레이드 마크로 남길 생각이셨나? 

나는 귀신의 존재라는 것이 시각, 청각적인 것에 공존해야 한다고 봤다. 일본 공포 영화들이 그런 시각, 청각적인 그로테스크함에 집중하는 편인데, 나 또한 그런 방식을 추구하는 편이다. <기담>이 귀신이 방언하는 방식이라면, <곤지암>은 빙의라는 차이점을 두고있다.   <기담>의 박지아씨가 그런 방언 귀신 역할을 잘해줬다면, <곤지암>은 박지현 배우가 그 역할을 잘 해줬다. 마침 박지현 배우가 스페인어를 전공한 이력이 있는데, 스페인어 자체가 말이 빠르듯이 이번에 빙의에 걸렸던 설정을 스페인어 형식으로 구사하도록 요구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게 당신의 시그니쳐요?' 라고 묻더라. (웃음)


-후반부 현실을 벗어난 판타지 설정에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사실 이 부분이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큰 고민이다. 성공한 파운드 푸티지 영화인 <블레어 위치><파라노말 액티비티> 1편이 마지막까지 현실적인 분위기를 유지했던 것을 생각하면 <곤지암>의 그러한 시도가 다소 아쉽게 느껴지고는 했다. 

사실 그 부분도 고려했었다. 하지만 <블레어 위치>와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첫 번째 시리즈였기에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영화는 충분히 다큐 형식으로 밀고 나갈수 있는 영화였지만, 우선적으로 관객들이 이 영화의 호러를 보고 즐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객들이 익숙하게 느낄만한 호러적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해 뒀다. 결국 판타지적인 초자연적인 현상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건물을 무너뜨릴까 고민도 했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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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원 배우의 샬롯은 외국 호러 영화에서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소리 지르는 캐릭터를 연상시켰다. 실제 외국에서 생활한 배우라 들었는데, 그 점을 의도한 것인가?

오디션을 할 때 역할에 어울린 26명을 따로 선정했고 거기에 4명으로 나눴다. 그러고 나서 심사에 나선 투자, 제작, 스태프 등이 연극 리허설하듯이 동선을 짜고 투표를 했다. <곤지암>의 배우들은 그렇게 해서 뽑혔다. 샬롯을 연기한 문예원은 특이하게도 영화 속 옷 그대로 오디션장을 찾아온 친구였다. 언급한대로 외국 생활을 오랫동안 한 친구이다 보니 샬롯 캐릭터를 잘 살려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 속 설정에 잘 어울렸다고 본다. 


-감독님이 지향하는 공포 철학 방식은 무엇인가?

철학이라기보다는 방법론에 가깝다. 보통 감독들이 공포물을 만들 때 약간 안정적인 선에서 멈추게 된다. 과유불급이 있듯이 미리 끊어놓은 형태로 영화를 가져가는 게 상업영화다. 나 같은 경우를 그 자신감을 끝까지 밀고나가는 방식이다. 나는 공포란 최대한 안 보여주고 미묘한 방식을 통해 섬뜩한 정서를 깔고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영화에서 탁구공 소리를 내거나, 귀신이 다가오는 소리만 강조하는 부분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공포 영화를 좋아하시고, 남다른 귀신 캐릭터를 완성하신 걸 보니, 실제로 귀신을 목격한 분인가 생각했다. 그런 적인 있으신가?

그런 적 없다. (웃음) 내가 어렸을 때 부터 짓궂은 장난을 많이 쳤다. 친척, 가족, 친구들을 일부러 놀라게 하는 식의 장난이었는데, 그게 버릇이 되어서 관객들에게 장난을 치는 것으로 이어진 것 같았다. 


-감독님의 공포 방식에 영향을 준 추천 영화가 있다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공포 영화를 무서워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공포 영화가 예술적으로 무엇보다 전위적으로 그려져야 한다고 봤다. 그런 전위 성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와 기이한 분위기가 공포를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공포 영화는 아니지만, <안달루시아의 개><오후의 올가미> 처럼 그로테스크한 장면과 불연속 편집이 주는 기이함이 내가 추구하는 영화의 비주얼을 완성하는 기반이 된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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