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를 기억해] 이유영, 매번 극한 상황에 놓인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이유는?
18.04.29 17:26
매번 그녀가 선택하는 작품 속 캐릭터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인생의 끝자락에 매달렸거나, 사랑과 같은 애정을 갈구해야만 살 수 있는 역할로, 다른 배우라면은 다시는 연기하지 못할 캐릭터지만 이유영은 이번에도 최악이 상황에 놓인 인물을 연기했다. 그녀에게 있어 연기란 극한 직업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럼으로써 더욱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애절함, 간사함 그리고 자신감을 보여주며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그녀와 <나를 기억해>와 관련한 비하인드와 연기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영화 속 본인 연기를 자평하자면?
영화가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었다. 무거운 소재만 다루고 있어서 지루할까봐 걱정했는데, 뒷부분의 전개가 빨라서 재미가 있었다. 내 연기는 형편없었다. (웃음) 내 연기를 볼 때마다 항상 아쉬움을 느낀다. 연기에 대한 욕심이 커서 그런거 같다.
-어떤 점에서 이 작품이 끌렸나?
여자 중심의 캐릭터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점이 끌렸다. 주체적으로 사건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우리 일상에 무시무시한 범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사실 이 영화는 많이 무겁지만 밝은 세상이 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참여하게 되었다.
-김고은 배우가 연락한 게 출연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맞다. 고은이가 연락을 해서 "언니, 그 영화 시나리오 받았다며?"라고 물었다. 당시 나는 출연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고은이가 "희원 선배님이 언니가 꼭 했으면 좋겠다라고 하더라." 라는 말을 바로 전해 듣고 출연하기로 결심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 출연에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마주한 여성 캐릭터를 한다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근래 들어 미투운동이 생기고 사회 전반적으로 뒤숭숭한 분위기가 영화 속 분위기와 맞물려서 절로 부담감이 생겼다.
-영화 속 일부 묘사 장면에서는 불쾌감을 불러오는 부분이 일부 있었다. 실제로 가장 불쾌감을 느꼈던 부분은 어디였나?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가 피해자를 향해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는 대사가 다소 불편했다. 그런 아무렇지 않은 말들이 주인공에게 자살 충동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 말을 듣고 캐릭터의 감정을 떠올렸고, 제정신이 아닌 서린의 모습으로 표현해야겠다 생각했다. 아마도 왜 내가 이런 남자를 만났는지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매작품속 캐릭터들 모두 쉽지 않은 소재와 배역들이다. 이 캐릭터들을 연이어 선택하는 이유는?
의도치 않게 된 거라, 사실 이번 작품의 캐릭터는 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해왔던 캐릭터와는 달랐다고 본다. 사실 영화 초반부 고등학생이던 어린 시절을 내가 할 거라는 기대도 있었는데, 다른 배우에게 맡긴다고 들어서 좀 아쉬웠다. (웃음)
-전작 드라마 <터널><그놈이다> 같은 범죄 추적극이 이번 영화 출연에 영향을 줬나?
전혀 없다. 캐스팅 제의가 들어온 작품을 눈여겨보다가 이중 사연이 많은 캐릭터를 선택하려고 했는데, 알게 모르게 이 캐릭터에 끌렸던 것 같다. 그런 비도덕적인 상황을 마주하면 책임감이 쏟아오는 것 같다.
-원래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선택인가?
그렇긴 한데...막상 그런 상황이 생기면 선뜻 나서지 못한 편이다. (웃음)
-촬영이 끝나고 나서 연기적 트라우마는 없었나?
힘든 일을 겪었을 때를 떠올렸다. 정신적으로 힘들거나 심해지면 호흡곤란이 올 때가 있다. 그런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연기했고 이것을 10년 정도 달고 온 병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공황장애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으면서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 밝은 성향의 TV 단막극을 촬영했는데 집에 오니 이상하게 우울감이 몰려왔다. '작품을 하는게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구나' 라는걸 알게 되었다. 힘든 역할을 하면 그 감정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편이어서, <나를 기억해>를 촬영할 때는 빨리 잊었는데 단막극은 너무 좋아서 잊어버리기 어려웠다.
-다른 성폭력 주제의 영화와 달리 주인공의 반격과 상처 앞에 무너지지 않으려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담긴 영화다.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부분은 있었나?
아무래도 사건 당사자를 만나 물리적인 응징을 하는 부분에서...(웃음) 그런 장면이 있어서 통쾌했다. 너무 속시원했고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웃음) 액션 스쿨 다니면서 액션을 배웠는데 갑자기 하면 웃기니... (웃음)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이 지속하는 영화다. 주인공은 앞으로 사람을 잘 믿으며 살아갔을까?
글쎄...그 트라우마는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의심은 더 커질 것이고 기본 성격은 그대로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속에 있는 상처는 평생 가는 거라 생각한다. 서린은 이후에도 불안감을 안고 살아갈 것이지만, 그로 인해 성장할 거라 생각한다.
-김희원 배우와 함께하니 어땠나?
재미있으시고, 유쾌하셔서 좋았다. 초면에 낯가림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다가서려고 했었다. 그러다 선배님이 이야기를 자주 걸어주셔서 대화를 많이 했고, 금세 친해졌다.
-전작을 돌이켜 보면 눈빛 연기가 매우 돋보인 배우라는 걸 느꼈다. 전작 <간신>에서는 참 간사한 눈빛 이어서 인상이 강한 배우라 생각했는데, 이번 영화에서의 눈빛은 하염없이 연약해 보였다. 나만의 눈빛 연기의 포인트가 있다면?
그런가? 나도 내 눈빛을 잘 몰랐는데...(웃음) 눈빛을 어떻게 해야지라고 의식한적은 없었다. 아마도 내 눈 색깔이 다른 게 장점이었던 것 같다. 내 눈을 자세히 보면 옅은 색깔이어서,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너 무슨 생각 하니?"라고 물어봤을 정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연있어 보인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아무래도 그게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능 같다. (웃음)
-여성을 향한 성폭력 문제와 사이버 범죄의 폐해를 보여주면서, 십 대들의 일탈을 보여준 영화다. 경각심을 일깨워준 부분이 있다면?
결말 부분이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큰 충격을 받았다. 어른들의 문제를 직시해준 부분이었으며 교육과 환경을 잘 조성해 주는 게 중요하다라는 걸 깨달았다. 한 개인의 역할보다는 모두가 관심을 두고 노력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할 때마다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는 편인가?
사실 이번 <나를 기억해>가 사회기여 부분의 일부작이다. 아무래도 배우가 공익적인 주제의 작품에 출연해 연기해야 그것이 이슈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연기를 통해 사회에 기여해야 겠다 다짐했다. 다음 차기작인 <허스토리>와 <악질경찰>이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삼부작이다.
-극 중 십대들이 참 무섭게 등장한다. 이유영 배우의 십 대 시절은 어땠나?
(웃음) 나도 주인공들처럼 사춘기를 겪었다. 학교에서 정해진 과목만 들어야 하고 엄마가 주는 용돈만 받고 생활해야만 했던 시기에 불만이 있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했고 독립하고 싶다는 욕구가 컸다. 사실 그 전에는 말 한마디 하기 싫어하는 소심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 눈도 못 쳐다볼 정도였다.
-근데 어떻게 배우를 하게 되었나?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그때 내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정말 찌질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웃음)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내 안에 있는 내면을 표출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게 되었다. 아마도 연기를 하게 된 것이 큰 요인이 되었던것 같다. 사실 어렸을 때는 수학이 좋아서 수학 선생님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때 길거리 캐스팅을 받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내가 예쁘구나 라고 생각했는데...(민망한듯 웃음) 그러다 보니 연예계 쪽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에 연기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결국 무턱대고 한 시도가 여기까지 인도했던 것이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다 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할까?
-롤모델이 었던 배우는?
처음에는 전도연 선배님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롤모델인 선배님들이 너무 많아졌다. 문소리, 윤여정, 나문희 선배님등 나중에 나이 들어서 내 모습이 좋게 그려질 수 있는 배우가 되어야 겠다라고 생각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반짝스타가 아닌 얇고 오래오래 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 내 목표이다.
-실제 본인과 가장 밀접했던 캐릭터는?
딱 나 같은건 없었는데...그나마 나로서 연기했던 것은 홍상수 감독님의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그리고 최근에 출연한 단막극이었다.
-늦었지만 한예종 졸업을 축하한다. 졸업하게 된 소감은 어떤가?
너무 오래전에 학교를 끝마친 느낌이었다. 딱 한 개의 수업을 패스하지 못해서 그동안 졸업이 늦어졌다. '호흡과 발성'이라는 2학년 때 들었어야 했던 수업이었는데, 그게 이제서야 마무리되었다. 막상 졸업하기 전 연기자가 되다 보니, 연기 수업이 절로 그리웠다.
-그동안 연기한 캐릭터들을 보면 인생의 끝에 매달린 인물들이라고 할까?. 그런 캐릭터에 정감을 느끼는 편인가?
시나리오를 읽으면 그런 위태위태하고 불안한 감정이 너무나 잘 이해되었다.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서 계속하다 보니, 그들의 입장이 너무 잘 이해되었다고 할까? 그런걸 잘 이해해서 그렇게 사는 분들을 잘 대변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향후 도전해 보고 싶은 역할은?
너무 많은데, 하나 꼽자면 공효진 언니처럼 로맨스 코미디물의 주인공이 되어보고 싶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풍경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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