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감독, 평론가를 했어야 할 그녀…'데자뷰'의 남규리
18.05.29 17:26
가수 출신 연기자로 인식된 그녀였지만, 오늘 처음 만난 남규리는 화면에서 보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연기자였다. 작품에 대한 솔직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부터 (그 부분은 배우의 요청으로 기사에 싫지 않았다.) 남달랐는데, 자비에 돌란으로 대변된 예술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과 평소 생각해온 배우관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부터 놀랄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는 마니아 수준을 벗어나 전문가 급으로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다면 누구나 반전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찌보면 영화 감독과 평론가를 해야 했을 그녀와 본의 아닌 영화 동호회(?) 모임을 갖게 되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결과물을 본 소감은?
잘 봤다. 영화는 언론시사회를 통해 처음 봤다. 예전의 나였다면 본 사람들 붙잡고, 어땠냐고 물어보면서 여유를 만끽했을 텐데, 너무 오래간만에 참석한 언론시사회라 긴장했다. (웃음) 내가 원한 기대치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일희일비 하고 싶지 않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게 없지 않지만, 지민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며,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데자뷰>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그냥 물 흐르듯이 제안이 왔었다. 그리고 나서 각본을 읽고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지민이라는 캐릭터가 좋았고, '데자뷰' 라는 소재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약을 먹고 데자뷰를 겪는 캐릭터에 대해서도 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다가왔다.
-스릴러물이지만 공포영화를 연상케 하는 기법이 가득한 영화였다.
원래 시나리오상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그것 또한 감독님의 생각이었기에 그거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다.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 관객들이 좋아하는 방향성에 갔다면 연기적 욕심으로서는 내려놓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살이 많이 빠졌다고 하던데...
그렇다. 연기를 하면서 살이 많이 빠지는 것 같았다. (웃음) 캐릭터가 워낙 집중해야 하는 캐릭터이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신경이 쓰였다. 가수 활동할때만 해도 어떻게든 살을 빼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는데, 드라마 <49일>을 찍은 이후부터 연기하는데 몰두하면서 살이 빠지는 버릇이 생겼다. (웃음) 실제로 내 얼굴을 자세히 보면 둥글둥글하게 생겼다. 그래서 사진 플래시를 받으면 광대 부위가 부각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그 윤곽을 보면서 내가 살이 빠졌는지 안 빠졌는지를 확인하는 것 같다.
-극 중 지민은 환각에 빠지고 약에 시달리는 정서적으로 불안한 캐릭터다. 그래서 힘든 점은 없었나?
<데자뷰>를 찍고 나서 모든 게 더 편해졌다. 내 자신을 던지면서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드라마였던 <무정도시>도 충분히 그런 여운이 남긴 작품이었지만, 그 영화는 남성 캐릭터가 더 부각되는 영화였다. <데자뷰>는 나를 더 성장시켜 줄 수 있는 작품이었고, 덕분에 다음 작품을 만나게 해준 계기였다. 아쉬운 점은 지민이의 역할이 후반 들어서 더욱 역동적으로 그려지는 대목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심의로 인해 편집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지민은 과거의 기억 외에도 일상 속 남성들의 편견 어린 시선과 폭력에 노출된 여성이다. 그 때문에 심리적 압박감도 컸을 것 같다.
몰입하는 순간에는 그런 압박감이 느꼈지만, 그렇다고 일상에 지장을 줄만큼은 아니었다.
-원래 시나리오상에는 지민과 세 남자 간의 감정적 부분이 더 주목받았다고 들었다.
그 부분이 너무 아쉽다. 언론 시사회전에 씨네 21 화보 촬영을 했었는데, 화보 인터뷰 기사를 위해 기자분들이 먼저 영화를 보셨다고 한다. 그때 기자님들이 보신 영화가 원래 우리가 의도한 장면들이 담긴 편집본이었다. 그 편집본을 보고 난 이후의 씨네 21 기자님들이 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바뀔 거라고 응원도 해주셔서 너무 가슴 뭉클했었다. 그런데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아쉽게도 그 장면들이 심의에 걸려 편집해야 해서 너무 아쉬웠다.
-액션 연기를 하다가 뇌진탕과 같은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향후 다음 작품에서 액션 연기를 요구한다면 할 의향은 있는가?
작품만 좋다면 무조건 할 수 있다. 이번 영화서 다쳤지만, 그렇다고 두렵지는 않다. (웃음) 아무래도 오빠들이 나보다 체형이 크다 보니 내가 오빠들과 함께한 액션 동작에 많이 넘어졌던 것 같다. 덕분에 다음 영화의 액션씬에는 잘 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극 중 조한선이 매우 부담스러울 정도로 괴롭힌다. 그래서 실제 촬영 때도 시종일관 옆에 있었을 것 같던데, 에피소드는 없었나?
그런 건 없었다. 오빠와 드라마를 같이해서, 워낙 나를 이뻐해 주셨다. <그래, 그럴거야> 할 때는 친하지 않았는데 촬영하는 나를 보고 나서는 좋은 배우라고 칭찬해 주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래서 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사실 오빠가 우리 영화 속 캐릭터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사람이다. 너무 착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 부탁도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웃음) 그러한 성격이 나랑 닮았는데, 아무튼 우리 둘 다 너무 착해서 탈이다. (웃음)
-상당히 어두운 영화다. 촬영장 분위기는?
절대 밝지 않았다. 그래서 다들 몰입하며 연기할 수 있었다. 막연하게 즐겁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준비하는 느낌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
-즉흥적 방식이 도입된 장면은 없었나?
감독님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셨다. 오히려 감정 연기를 하고 있으면 바로바로 컷 하실 정도로 정도를 지키며 계획대로 하시는 분이시다. 슬픈 연기를 하면 잔상이 남기 마련인데, 그런 것을 넘어가셔서 오히려 부탁해서 컷을 빨리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웃음) 배우들은 그러한 감정 연기의 잔상을 통해 연기하는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남규리 배우는 연예계에서도 소문난 영화광이라고 들었다. 어느 정도라고 봐야할까?
영화 보는걸 정말 좋아한다. 하루에 많이 보면 8편도 볼 정도다. (웃음) 공백 기간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낼때가 많았다. <서칭 포 슈가맨><로렌스 애니웨이> 같은 작품을 좋아하며, 자비에 돌란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들 대부분을 좋아한다. 돌란 감독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양하게 부각하고, 정의하며 이를 훌륭한 미장센과 연기력으로 감각적으로 풀어내는 감독이라 생각한다. 한때는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키아누 리브스와 알 파치노가 나왔던 <데블스 애드버킷>을 유심히 봤는데, 갑자기 선과 악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 시선이 남다르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비평가가 되어볼 생각은 없으신가?
(웃음) 자랑은 아닌데... 실제로 내가 어떤 영화의 시나리오를 놓고 감독, 작가님들과 회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각본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과 분석을 정리해서 설명드렸더니, 감독님과 작가분들이 분석을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 주시는 거였다. 그러고 나서 내가 언급한 분석 내용이 유명한 영화 감독님께서 지적하셨던 내용과 똑같다는 언급을 해주셨다. 얼마후 캐스팅 제안이 들어온 작품의 영화 시나리오를 보고 냉정하게 평했는데, 제작자분들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삐지시는 거였다. (웃음) 원래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고, 그 덕분에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 눈이 남달랐던 것 같다. 그래서 부모님이 내가 공부를 좋아할 거라 기대하셨다는데, 이렇게 연예인이 되었으니... (웃음)
-그러고 보니 예전 스마트폰 영화제에서 <속삭임> 이라는 작품으로 연출 경험을 쌓은바 있다. 다시 연출할 기회가 온다면?
연출보다는 스태프로 참여하고 싶다. (웃음) 연기를 잘하는 선배님들의 모습을 바로 앞에 보고 싶은데 그게 슬라이트 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슬라이트를 쳐보는게 내 꿈이다. 아직 연기자라는 길 한곳만 가기에도 버거운데, 창작까지는 힘들 것 같다. (웃음) 배우는 배우로서 살아봐야 하는 게 원칙인 것 같다.
-그렇다면 만약 영화를 제작할 기회가 온다면 어떤 류의 영화를 제작해 보고 싶은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 작품에서 특별히 아름다운 사랑 작품을 만나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로맨스 영화 주인공보다는 어떤 장르물에 부합된 인물로 많이 소비되었던 것 같았다. 나는 사랑은 숭고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늘 진지하거나 나와는 맞지 않은 사랑을 해왔던 것 같다. 물론 성숙한 사랑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잔상이 남은 사랑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와 관련한 아름답고 아픈 기억이 몇 개 있다. 이재한 감독님이 연출했던 <사요나라 이츠카>가 그런 성향에 어울린 작품이었다. 그런 깊이있는 사랑이 담긴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제작해 보고 싶다. 물론 내가 출연해도 좋을 것 같다. (웃음)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추천하는 영화가 있다면?
<노트북><오만과 편견> 그리고 프랑스의 전설적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전기를 담은 <라비앙 로즈>를 추천한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마리옹 꼬띠아르를 굉장히 좋아한다. 이 배우는 자신이 가진 느낌을 시나리오 보다 한 단계 더 끌고가는 연기자라고 해야할까? 엄친딸로 유명하지만, 언제나 여유로움 속에 깊이있는 표정 연기와 감성을 선사하는 루니 마라의 출연작들도 좋아하는 편이다. 키이라 나이틀리도 너무 좋아하는데, 그녀가 석고상을 바라볼 때 턱을 올리는 그 부분이 참 인상적이다. 그래서 작품 활동을 할 때마다 그런 느낌을 완성하려고 노력한다.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공백 기간의 고충을 이야기하다가 말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라는 말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우수개소리로 사람들이 하는말이 세상에서 제일 쓸때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라고 하는데, 어제 그 인터뷰 기사 내용을 읽다보니 연예 분야가 얼마나 냉정한 곳인지를 알것 같았다.
(크게 웃음) 연예인의 삶 또한 일반인들의 삶 못지않게 굉장히 힘들다. 예를 들어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브라운관 일일 드라마에 지속적으로 출연하면 자연스럽게 영화계에서는 더이상 그 배우를 쓰려고 하지 않는게 보이지 않는 원칙이다. 그럴때에는 막연하게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 그 와중에 부모님도 도와 드리고 해야 하니 정말 쉽지가 않다. 일반인들은 월급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지만, 우리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며, 경제적 어려움을 떠나서 이 분야에 있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래서 한때 노래하고 춤추던 그때가 그리웠던 적도 있었다. (웃음)
-꼭 깨고 싶은 자신의 고정관념이 있다면?
새침한 거? (웃음) 사람들이 나를 공주처럼 오해할 때가 많은데...(웃음) 아시다시피 나는 원래 그렇지 않은데, 새침한 모습 때문에 오해하시는 것 같다. 나는 그 반대 성향을 지닌 사람이다. 아무래도 내가 그 버릇을 깨도록 노력해야겠다. (웃음)
-차기작인 <질투의 역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 부탁드린다.
미스터리 멜로물이다. 그리고 좀 더 내가 원한 영화에 가까운 느낌이다. 나의 일반적인 느낌을 많이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며, 파격적인 설정도 담겨져 있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스톰픽쳐스코리아/㈜원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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