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섹시한 꼰대' 이준익 감독이 제시한 청춘, 꼰대 세대의 기막힌 공존 방법
18.07.23 10:20
<변산>으로 돌아온 이준익 감독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곧바로 휴대폰 번호를 저장할 정도로 정겨운 사람이었다. 영화가 공개된 이후 '꼰대'와 관련한 불편한 질문이 오갔는데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으며 청춘과 꼰때 세대들만의 공존을 제시하며 인터뷰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변산>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와 비하인드 그리고 그의 흑역사와 같은 데뷔작 <키드캅>에 대한 비화까지…자신의 굴욕마저 유쾌한 대화거리로 만들어내는 그와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인터뷰 기사로 정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완성된 <변산>을 본 소감과 청춘 삼부작을 마감한 감회는?
일단 마감이 아니다. 사실 '청춘 삼부작'이란 말은 마케팅팀이 컨셉으로 짜둔것이다. 이 인터뷰를 통해 청춘 삼부작이 마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바이다. (웃음) 애초부터 <동주><박열>을 찍을때부터 몇 부작을 기획한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배우들이 젊어서 그랬던것 같은데…결론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간질하는 마케팅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웃음)
-두 편의 작품이 시대극과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현대 배경의 창작물이다. 이유는?
<사도><동주><박열>등 시대극을 찍었지만, 여전히 현시대와 호흡하면서 살고 있었다. 세 작품 모두 어두운 공기 속에서 생각한 작품이었다 보니, 좀 더 유쾌한 기분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작품들이 격을 갖춰야 하는 작품이었다면 이번 <변산>은 그 격을 무너뜨리는 영화와도 같았다.
-힙합을 심경 표현의 나래이션으로 그려냈다. 그래서인지 <변산>은 힙합을 위한 뮤비 같았다. 한편으로는 <동주><박열>에 이은 청춘 시인들에 대한 현대 버전을 취하려는 것 같았다. 이러한 설정으로 기획한 의도와 준비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힙합이라는 장르는 미국에서 들어왔지만 타이거 JK가 있었던 드렁큰 타이거 시절부터 지금의 '쇼 미더 머니'라는 대중 오디션 프로그램이 말해주듯이 힙합은 이제 대한민국의 젊은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아웃 오브 퀀텀><8마일> 처럼 찍으면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 좀 더 창의적이면서 한국적으로 그리려면은 잘 나가는 래퍼의 이야기보다는 '쇼 미더 머니' 같은 오디션에 계속 떨어지는 힙찔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힙찔이가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극복하는 과정은 일반 나래이션 보다는 그의 음악 세계와 철학을 보여주는 랩으로 표현해야 더욱 드라마적인 감정 라인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는 영화인 만큼 우려되었지만, 일단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과감하게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촬영하니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웃음) 보고 나서 언론 시사 반응을 보고 어색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만약 영화와 힙합이 안 어울렸다면 비난의 화살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현대의 청춘을 이야기하면서 고향으로 대변된 <변산>의 정겨움과 촌스러움을 담아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변산이라는 지역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변산>은 4년 전 제안받았던 작품이었고, 그때도 제목과 배경이 변산이었다. 당시 원작은 분위기와 설정 자체가 너무 낡은 데다, 주인공이 래퍼가 아닌 단역배우여서 식상하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다시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시나리오 속 대사인 "내 고향은 폐항..." 이라는 문구가 너무 강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시를 영화 안에서 정말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심했고, 힙합의 랩으로 표현하면 특별한 하모니가 나올 거라 생각했다.
-전작 <동주>의 송몽규에 이어 이번 <변산>에도 그렇듯이 이준익 영화에서 박정민 배우는 매우 감수성 어린 캐릭터로 그려진다. 배우 외에도 여러 대외적 활동을 하는 배우라는 점에서 어울리는 설정이지만 그에게서 어떤 특별한 모습을 발견했었나?
<동주> 찍을 때 박정민이 송몽규 역할을 너무 훌륭하게 해서 그해 각종 영화제의 신인상을 휩쓸었었다. <동주>에서 보여준 박정민의 잠재력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저 친구에게 다른 역할을 맡겼을 때 어떻게 구현해 낼지 궁금했고, 그가 가진 잠재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극 중 부자(父子)가 여러 번 충돌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다가 후반 막판에 결국 물리적 충돌로 이어진다. 보통 한국 영화제 가족의 물리적 충돌을 잘 보여주지 않는 편인데, 이러한 긴장 관계와 마무리를 설정한 이유는?
그것은 보는 입장에 따라서 달리 보일 것이다. 학수의 감정 몰입에서 보는 청춘의 입장에서는 학수가 아버지를 때리는 장면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 세대 입장에서 본다면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에게 맞고자 애원하는 씬으로 보일 것이다. 학수의 아버지가 "쳐라!"라고 말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학수가 용대에게 끌려다니고, 계속 화해의 손을 뿌리치는 모습이 끊임없이 그려진다. 그런 학수의 모습이 후레자식처럼 보이니, 선미가 "너는 문제를 정면으로 보지 않아!"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화해를 외면하니 아버지가 너를 외면한 것처럼 너도 똑같은 놈이라는 이야기다. 결국 그것이 큰 울림이 되었고 주먹까지 휘둘리게 되었다. 두 부자의 대립과 폭발은 선미가 말한 문제와 마주친 순간이다. 학수가 선미에게 따지는 부분에서 선미가 학수의 순수하던 시기를 이야기 하게 되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의 애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뒤늦게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것을 역지사지이며,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역지사지일 것이다. 일상에서도 이것을 싫어하고 살아가는 것은 도의 경지라고 본다. 아버지가 제발 용대에게 당하지 말라 하면서 나를 쳐라고 말하는 것은 그렇게 보여진다. 아들이 아버지를 때린다는 것은 일반적인 관점 포인트가 아닐까? 학수 아버지 입장에서 이 영화를 봤다면 꽤 자랑스럽게 느껴질 장면일 것이다.
-학수의 렉카 3인방과 용대의 금은동 삼인방 캐릭터는 두 주요 인물을 빛내주는 대비를 이룬다. 세 명은 단순한 설정인가? 나름대로 감독의 숨겨둔 의도가 담긴 캐릭터인가?
아무런 의도도 없었다. (웃음) 그것은 곧 자연스럽다는 의미이다. 그나마 의도를 담았다면, 꼬붕과 오야붕의 관계를 그렸다고 할까? (웃음) 아버지에게는 중식이라는 꼬봉이 있고, 용대에게는 금은동이 있듯이 이것은 꼬뿡과 오야붕으로 볼 것인가? 공존하는 공동체로 볼 것인가의 차이다. 나는 이것을 서열이 아닌 역할론으로 봤다. 중식이 자기가 왜 아버지의 꼬붕으로 사는지 모른다고 말하듯이,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내가 작업한 영화들을 청춘 삼부작이 아닌, 인생 삼부작 시리즈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웃음)
-극 중 학수와 갈등이 있었던 인물들은 다 화해하게 되는데, 교생 원준은 왜 끝내 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나?
그 원준과 함께한 장면이 편집되었다. 나중에 감독판이 나오면 따로 올릴 생각이다. 혹시 봤는지 모르겠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인물들이 춤을 출 때 원준이 나와서 박수를 친다. 원준이 갖고있는 원죄는 바로 학수의 시를 훔친 것이다. 결국은 나서지 않았지만 그 장면을 통해서라도 동참은 한것으로 표현하려 했다. 원준이 나서서 그 신안에 크게 어우러지면 약간 강요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화해를 위한 화해를 강요한 영화처럼 보였을 것이다.
-김고은의 선미는 <동주>의 동주 혹은 송몽규,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 같은 존재처럼 느껴진다. 주인공에게 영향을 받거나 무한한 애정을 쏟아 부어주는 존재인 만큼 두 관계를 사랑으로 결실 맺게 하려는 것 같았다.
이 영화는 과정이 목적인 영화다. <동주>를 보러 갔더니, 송몽규가 돋보였고, <박열>을 보러 가니 가네코 후미코가 있듯이 이것이 바로 이준익식 내러티브라 보는게 좋다. 그것이 바로 나만의 패러다임이라고 해야 할까? <변산> 또한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선미가 주체가 되지 않았나? 보이지 않은 드라마 라인이란 이런 것이다. 이것은 감독이 갖고 있는 개성으로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그것을 역지사지의 훈련이라고 말한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그럼 이해 못할게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역지사지를 한다는 것은 정말 도의 경지일 따름이다. (웃음)
-그 점에서 본다면 선미, 용대, 원준 모두 주인공을 해도 괜찮은 존재감 있는 캐릭터들이다. 이들 중 딱 한명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기획한다면 누구를 주인공을 하고 싶은가?
(오랫동안 생각하며) 글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만약 하게 된다면 용대의 이야기를 기획할 것 같다. 어려서 빵셔틀을 당하고, 콤플렉스를 이기려다 조폭이 되었듯이, 그 빵셔틀 당한 놈에게 셔틀로 복수하는 내용이 재미있게 그려질 것이다.
-고향으로 대변된 과거의 상처 극복이 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다. 하지만 달리 보면 그 상처를 마주하기보다는 벗어나고 피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아버지나 몇몇 사람의 관계를 보면 학수에게 못된 짓을 한 사람들이 많다.
당연하다. 사실 영화라는 것의 판타지적 허용치는 매우 크다. 나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웠던 순간에서 벗어나려다 정착한것이 지금의 영화감독이라는 자리다. 기자님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도 아무리 멀리 가려 해도 제자리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또 현실로부터 돌아가려 할 것이다. 영화는 바로 그 불편한 순간과 부딪치는 것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내가 학수처럼 불편한 순간을 마주하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것이 바로 영화가 던져줄 수 있는 좋은 질문이라고 본다. 좋은 답을 주는 영화는 없다. 이 영화는 계몽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웃음)
-타 매체와 가진 인터뷰를 보면 감독님에게 '꼰대'와 관련한 질문이 많이 오고 있다. '좋은 꼰대'가 되는법, '나쁜 꼰대'가 되지 않는 법 등 이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어떤 기분이 들으시나?
당연히 나는 꼰대다. (웃음) 자신의 세대를 부정하거나 역행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고 본다. 세대적으로 꼰대인건 맞지만, 꼰대라는 단어로 그 시대를 회귀하는 것도 오류라고 본다. 꼰대는 다 그래라는 통용된다면 청춘은 다 그래라는 부작용을 불러오게 된다. 청춘이 획일화 되지 않고 각자의 모양대로 다양함을 존중받듯이 꼰대들도 다양한 모습과 색깔로 인정해 줬으면 한다. 예를 들어서 우리 아버지는 꼰대가 아닌데 내 친구 아버지는 꼰대야 라는 식으로 비교 단정 짓는 것도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청춘과 꼰대는 상호보완이지 배타적 관계는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되면 서로 패자가 될 뿐이다. 어차피 동시대를 살아가는 각자의 소중한 역할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예전 꼰대들은 약간 혐오적인 면이 강했는데, 꼰대라는 단어를 많이 소화하다 보니 꼰대가 귀여운 맛이 있는것 같다. 그래서 소비주의(자본주의)관점에서 좋은게 있다면 뭐든게 쓰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꼰대라는 단어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이 질문을 드리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웃음) 개인적으로 감독님의 데뷔작 <키드캅> 개봉 세대이며 그 영화의 팬이다. <키드캅>에 대한 비화가 있다면 듣고 싶다.
(크게 웃음) 정말인가? 반갑다. 그때 그 영화를 찍었던 나름의 동기가 있었다. 지금도 변한 건 없지만 여름, 겨울 방학만 되면 어린이들이 미국 영화를 보는게 연례행사였다. 이번에 개봉한 <쥬라기 월드:폴른 킹덤>이 보여주듯이 말이다. 영화인으로서 생각해 본다면 이건 화가 나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우리나라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는 무용담을 보여줘야 하는데, 서양의 노랑머리, 파란 눈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를 이식시키고 있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나도 어렸을적 봐온 TV 애니메이션이 우리껀줄 알았는데, 나중에 일본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배신감이 컸다. 그래서 우리 자식 세대에세는 우리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여줘야 한다는 열망이 있었다. 그런데 알다시피 결과적으로 '폭망'했고, 그 다음부터는 안찍기로 했다. (웃음) 결국 우리 아이들은 할리우드를 봐야 하는게 정답이었나 보다. (웃음) 그런데 그걸 기억하다니, 당신 혹시 몇 살인가? (웃음) 그 영화를 보고 자란 사람이라면 자식이나 조카들에게 <쥬라기 월드>같은 영화를 보게 할 것인가? 아니면 한국 어린이 영화를 보여주게 할 것인가? (웃음) 나는 실패했지만, 당신이라도 꼭 성공했으면 한다.
-앞으로 반성하겠다. (웃음) 사극, 시대극을 비롯해 현실에 대한 풍자에 능통하신 만큼, 근래 관심을 두고 있는 과거 시대나? 사회적 배경이 있다면?
아무래도 일제 강점기 시대 배경 영화를 많이 찍은 탓인지, 아직도 강점기 시대에 대한 관심이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간직해야 할 영화적 공간이라 생각한다. 동북아 정세가 급변 중이니 더욱더 그 시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방금 하신 답변을 통해 감독님의 차기작을 추리해 보도록 하겠다.
푸하하 (크게 웃음)
이준익 감독의 <변산>은 현재 절찬리 상영중이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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