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정민 "김고은이 내 글쓰는 재주를 훔치고 싶다고? 그렇다면 나는…"
18.07.23 14:05
<변산>을 통해 원탑 주연배우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박정민. 이 영화 이후로도 그가 주연을 맡은 수많은 개봉예정작과 출연작이 대기 중일 정도로 박정민은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열일하고 바쁜 배우이다. 그런 일정 속에서도 어렵게나마 인터뷰 시간을 마련해 영화와 연기관에 대한 진솔함을 나누고 싶어 했다. 연기와 랩 모두 잘해야 했던 그만의 고충부터,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만의 어두운 흑역사까지…그리고 절친이자 후배인 김고은을 향한 그만의 제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자신의 랩 실력을 냉정히 평가하자면?
부끄럽다 (웃음) 내가 래퍼가 아니니까.. 사실 래퍼들이 자신 목소리 찾는 데만 몇 년 걸린단다. 그러기에 몇 개월 밖에 안 한 내가 엄청 잘하는건 불가능하다. (웃음) 관객분들이 보셨을때 어느 정도 납득이 갈 만큼 해야 했지만, 프로 래퍼분들처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랩은 학수의 독백 같은 거기에 기교보다는 가사 전달에 중점을 뒀다.
-랩 연습 비하인드가 있다면?
처음에 어떻게 트레이닝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게다가 바로 두 달 만에 노래 네 개를 만들어 랩을 해야 해서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가사를 쓰면서 연습이 동시에 이뤄져야 했다. 결국 여러 번 녹음하고 부딪치게 서서히 이해하게 괴었고, 녹음한 걸 들으면서 하니 금방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컨디션이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어떤 날은 녹음이 잘되었다가, 다음날은 의도에 맞지 않게 안되는 일이 빈번하게 생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여러번 랩 녹음하러 녹음실에 오게 되니, 자연스레 앨범 한번 내볼까? 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웃음) 내가 또 언제 다음 작품에서 이 정도 노래를 해보겠나?
-연습하면서 동경하게 된 래퍼나 좋아하는 뮤지션이 생겼다면? 참고가 된 래퍼가 있었나?
우선 모든 음악 창작자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웃음) 작사, 작곡, 가수 등등 이게 내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배우로서의 감각이 무뎌지게 되었다. 잠시나마 뮤지션을 해보면서 이 일도 연기 못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상당히 들어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참고한 래퍼들은 너무 많다. 랩 스킬 보다는 그 사람들의 성향과 인생사에 더 공감하게 되었다. 특히 넉살씨 같은 래퍼에게 더 공감이 갔다. 외국 힙합은 잘 안들었는데 이번에 들으면서 첸스더 랩, 제이쿨, 제이지를 좋아하게 되었다.
-단독 주연작이기에 더 기억에 남을 작품일거 같다.
맞다. <변산>은 나에게 있어 애증의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웃음) 너무 힘들었다. 1년 동안 음악 만들고 랩 하고 거기에 뮤직비디오까지 만들고 홍보까지 해야했으니, 거의 쉬지 못하고 매달린 작업이었다. 사실 나는 주인공을 연기할 위치의 배우가 아니었는데, 이준익 감독님이 믿고 맡겨주셔서 하게 되었다. 단독 주연이라고 인지를 못한 상태서 이번 영화를 하게 된 것이다. 촬영할 때는 주인공이니 주인공으로써 할일을 했지만, 개봉일이 다가오니 부담감이 엄청났다. 지금 이렇게 인터뷰 하는것도 사실 부담이 크다. 그 와중에 감독님은 "나 오늘 낚시가!" 라고 자랑하시니, (웃음) 나도 가고 싶다. (웃음) 그래서 그 분이 인터뷰 일정을 앞당겼나 보다. (크게 웃음) 그래도 참 감독님이 대단하신데 노는 것 좋아하셔서 일터마저 놀이터로 만들어내는 분이셨다. 그래서 모두가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일터를 놀이터로 만들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이준익 감독님이 굉장히 즐겁게 촬영을 하신다. 감독님께서 스트레스받으면서 하지 않으시려고, 모든 스태프를 믿고 일을 맡기신다. 스태프들이 알아서 하면 감독님은 오로지 모니터만 보신다. 물론 신경을 쓰지만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작업하니 모두 다 신나서 일할 수 밖에 없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감독님이 힙합을 전혀 모르신다. (웃음) 그럼에도 감독님은 전부 전문가와 우리에게 맡기시고 그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으셨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는 다 함께 술 마시고 낚시하러 놀러 나갔다. 그러니 모두가 이준익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한다.
-이 영화는 자신의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자는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일부 관객은 그러한 설정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다 자기의 상처를 묻어두고 산다. 나도 그렇다. 아예 없었던 일처럼 살지만, 문뜩 나도 모르게 그 흑역사와 상처가 생각날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따로 있다. 만약 학수와 아버지가 헤어지고, 학수가 지금처럼 구질구질하게 살았다면, 만들 이유는 없었다. 이 영화는 판타지 영화다. 학수가 이 영화에서 했던 모든 선택은 다 자기 때문이다. 아버지와의 관계, 아버지와 싸우는 것 하나부터 모든 게 다 자기 때문이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학수는 영원히 어영부영 홍대 클럽에서만 랩을 하고 살 게 뻔하다. 자기도 솔직한 음악을 하고 싶은데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똑같은 인생을 살 뿐이다. 학수 또한 어쩌면 아버지와 잘 해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선미는 학수의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었고 그를 도운것이다. 영화의 모든 것은 학수가 하고 싶었던 선택이다. 그러면서 학수는 더욱 더 성숙해지고, 선미와도 좋은 결말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게 다 아버지를 향한 복수였다. 아버지가 잘사는데 복수라고 말하셨던 건 바로 그런 의미였다. 이 영화는 이렇게 구질구질 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영화가 가야 옳은 것이다. 휴직계 낸 여자, 전직 깡패, 친구들 모두다 부족해 보이는데 이들이 모이면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이를 통해서 이 영화가 말하는게 무엇인지 봐야한다. 물론 이 영화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안다. 시사회 직후 나에게 비슷한 이메일 문의를 한 관객도 있었다. (웃음) 오히려 나는 깊이 있게 영화를 봐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다.
-자신과 학수의 공통점을 찾자면?
성격이다. 뭔가 다정다감하지 못한 게 있고, 친하고 편한 사람에게 퉁명스럽게 대한다. 학수라는 인물이 내가 연기한 캐릭터 중 박정민이라는 사람이 많이 투영되었다. 그 친구가 겪었던 고생은 내가 고생했던 시기와 비슷했기에, 그 부분에서 동질감이 많이 느껴졌다.
-영화 속 아버지와 대립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전 인터뷰에서 자신을 불효자라고 말 한 내용이 기억났다. 연기하면서 부모님에 대해 많은 걸 느꼈을 것 같다.
맞다. (웃음) 어쩔 수 없이 그 기억이 절로 떠올랐다. 나도 아버지와 살갑게 이야기한 사이가 아니고 서로 무뚝뚝하게 싸웠기에, 조금만 틀어져도 싸우기 십상이었다. 어쨌든 아버지 덕분에 눈물도 많이 났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더 감정이 올라온적도 있었다. 그래서 참 죄송스러웠다. 그렇다고 너무 갑자기 변하면 아버지도 어색해 할 것이다. (웃음) 우선은 마음만 그런 상태다.
-다작이 취미가 아니라 했는데, 현재 <사냥의 시간>부터 <타짜 3> 소식이 들려왔다. 과거 <변산> 때 정신적으로 조금 힘들어 하는 모습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제 괜찮아 진 건가?
그때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 <변산> <사바하> <사냥의 시간>을 하면서 많이 치유되었다. 오히려 현장이 재미있다는 걸 배우게 되었다. 나도 이런 일이 처음이다 보니 지친 면이 없지 않았다. 어쨌든 변산 찍고 나서 현장이 재미있다는 걸 느꼈다. 지금은 오히려 기다려진다. <타짜 3> 촬영도 기대된다.
-<그것만이 내세상><염력><변산>에서 맡은 캐릭터들을 연계해 본다면 사회적으로나 지위적으로나 '을'의 위치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런 캐릭터를 하면서 느낀 바가 있다면?
내가 느낄려고 한 건 아닌데, 어쨌든 그런 연기들을 하다 보면 을의 사회적 위치 보다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되는 사람들의 존중심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분들을 화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권 변호사, 오진태 같은 서번트 친구들, 가족, 복지사 같은 분들이 이 영화를 봤을 때 화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변산>을 하면서도 창작자들에 대한 존중심이 절로 생기게 되었고, 그 분들을 자극하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그분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보다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선 그분들이 설득되어야 관객들이 설득되기 때문이다.
-박정민 배우를 비롯한 <파수꾼> 출신의 배우들(서준영, 이제훈)이 잘 나가고 있다. 그래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그때를 다시 회상해 보자면?
이번에 작업한 <사냥의 시간>에서 제훈이 형, 윤성현 감독님과 만나서 기분이 남달랐다. 이미 제훈이 형은 그 영화로 위상이 높아진 상태였다. 어쨌든 지금 이렇게 다시 만나서 형과 감독님과 다시 작업 한다는 게 묘할 따름이다. 다들 같은 사람들과 하는데 스케일은 더 커졌고, 스태프들은 더 많아졌다. (웃음) 그래서 참 신기하고 뿌듯할 따름이다. 제훈이 형과 감독님이 내 걱정을 많이 해줬다. 지금이야 내가 대단한 건 아니지만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대해 주는데, 그때는 어쨌든 걱정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렇게 다시 만나서 너무 좋았다. 준영이는 지금 군대에 있다. (웃음)
-인문학 출신에서 한예종을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나?
원래 인문학부에 가려던 건 아니었다. 운 좋게 수능을 잘 봐서 가게 되었는데, 원래부터 인문학에 큰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웃음) 인문학부에 국어국문학과 같은게 있어서 영화감독 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박찬욱 감독님도 연극영화과가 아닌 철학과를 나오셨으니, 거기라도 나오면 감독은 무조건 할거라 생각했다. (웃음) 그런데 학교에 열심히 가지 않았다. 학점도 말이 안 되어서…(웃음) 내 생각인데 이제 와서 생각나는 게 학교에서 하라고 하면 하는 게 맞는 거 같았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시킨 대로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이라도 잘 배웠다면 더 잘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현재 현장에서 응용하는 모든 것들이 다 학교에서 배운 거였다. (웃음) 좀 더 응용력과 적응력을 창의력 다뤘다면 더 잘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아쉬웠다.
-한예종 시절을 다시 돌아보자면?
우선 고은이가 인터뷰를 통해 전한 나에 대한 칭찬은 전부 거짓말이라고 말하겠다. (웃음) 개인적으로 나는 학교에 대한 미안함이 참 크다. 사실 내가 한예종 역사상 타과로 전과를 한 첫 케이스다. 원래는 영화과 전공이었는데, 어떻게 돼서 그만 연기과로 오게 된 것이었다.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왔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불만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연기과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했고, 그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 때문에 내가 유령처럼 학교를 배회해야 했다. (웃음) 그 다음해 후배들이 들어와 나에게 선배님이라고 부르는데 너무 민망했다. 그래서 그 친구들에게 나에게 선배라 하지 말라고 부탁해야 했다. 그러한 미안함 때문인지 내가 아직도 한예종 졸업을 못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 졸업장을 가져와야지 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것은 민폐만 끼치는 일이다. 06학번이 18학번과 섞이는 건 누가 봐도 당연한 민폐이지 않은가? (웃음) 지금 학교 가면 나는 화석 취급을 당할 것이다. 사실 얼마 전 이정범 감독님을 만나서 다시 학교로 갔는데, 그때 영화과 학생들과 마주치게 되었고, 그 친구들이 유독 나를 격하게 환영해 줘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것을 보면서 한국 영화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웃음) 어쨌거나 이게 나에게 있어서는 <변산>과도 같은 일이었다.
-김고은 배우가 당신의 글 쓰는 재주를 훔치고 싶다고 한다.
가져가라고 전해라. (웃음) 나는 재주 없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글 쓰는 것도 사실 글이라 보기 어렵다. 내가 쓰는 것들은 거의 말에 가깝다. 글은 작가님들이 멋있게 문장을 통해서 쓰는 것이지, 내가 쓰는건 그냥 아무말 대잔치에 불과할 뿐이다. 의식의 흐름을 컴퓨터로 쓴 것이기에, 그것을 글이라 정의하기에는 너무 답답할 따름이다. 어쨌든 좋아하는 분들이 계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내 글 쓰는 능력을 갖고 싶다면 나는 김고은의 연기력과 거래해 보고 싶다. (웃음)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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