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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많은 소녀' 리뷰: 세상의 모든 비난과 공격을 받는 소녀 ★★★★

18.09.10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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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많은 소녀,2017]
감독:김의석
출연:전여빈, 서영화, 고원희, 이봄, 전소니, 이태경, 유재명

줄거리
같은 반 친구 ‘경민’의 갑작스런 실종으로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전여빈)’는 가해자로 지목된다. 딸의 실종 이유를 알아야 하는 ‘경민’의 엄마,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하는 형사, 친구의 진심을 숨겨야 하는 ‘한솔’,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싶은 담임 선생님까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영희’를 의심한다. 죄 많은 소녀가 된 ‘영희’는 결백을 증명해야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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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많은 소녀>를 보면서 계속 생각이 나던 영화는 매즈 미켈슨이 주연을 맡은 2012년 덴마크 영화 <더 헌트>였다. 한 소녀의 사소한 거짓말로 인해 집단의 압박을 받게되는 덴마크의 중년남과 실종된 친구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모두의 의심을 사게 되는 대한민국 여고생의 이야기는 비슷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더 헌트>가 인간의 존엄성과 결백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면, <죄 많은 소녀>는 자기파괴의 과정까지 가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부각했다는 점이다. 

그 점에서 보면 불편한 작품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이야기와 배우의 매력이란 관점에서 감상한다면 영화적 흥미와 강렬한 메시지를 받게 될 것이다. 어두운 소재답게 시종일관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지만 '소녀의 실종'이라는 메인 테마를 미스터리적 정서로 끌고가면서 특유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인다. 경민의 행방이 불확실한 가운데 마지막까지 경민의 곁에 있었던 주인공 영희가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녀를 향한 주목은 의심과 분노다. <죄 많은 소녀>의 특징은 이러한 집단의 광기적 모습에 담겨있다. 

경민의 자세한 행방을 수소문하기보다는 자살 또는 타살에 초점을 맞추려는 경찰, 경찰 수사와 별개로 자신들의 피해를 줄이기기 위해 영희를 압박하는 학교, 그로 인해 영희를 의심하며 폭행까지 불사하는 학우들과 경민의 엄마까지…한 소녀를 향한 세상의 분노와 억압은 가혹하기 그지없을 정도여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전해준다. 억울한 개인과 이를 압박하는 타인이라는 구조는 <더 헌트>와 같은 집단의 이면을 그린 작품에서 흔히 사용되는 설정이지만, <죄 많은 소녀>의 구성은 이를 단순한 구도로 정의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희를 억압하던 타인들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일상에서 경민을 무시하고, 무관심하던 사람들이란 점이다. 경민의 실종과 그로 인한 불길한 일이 현실이 되자 그녀를 불편하게 생각한 타인들에게 죄책감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다음 행동은 회개와 반성이 아닌 분노의 대상을 찾는 식이다. 집단의 광기가 죄책감에서 시작된다는 설정도 인상적이지만, 이 여파가 선(善)이 아닌 악(惡)의적 행위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럴듯하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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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의 불완전한 심리는 이 영화의 대표적인 정서와도 같다. 억울한 심경 속에 집단의 무분별한 압박에 홀로 맞설 때 까지만 해도 긴장감이 감도는 미스터리 영화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지만, 영희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이후부터는 풍자와 깊이가 담긴 심리 드라마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그녀를 통해 드러난 진실은 소녀들만이 간직한 비밀로 순수하면서도 감수성 어린 그들만의 정서가 편견 어린 세상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영화는 영희를 무조건 적인 피해자이자 선역으로 정의하지도 않는다. 실종된 친구에 분노를 느끼며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다 마지막에 타인의 파괴를 유도하는 듯한 대목은 그녀가 이 이야기의 실질적인 악역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한다. 결국 이 영화는 죄책감이 만들어낸 여파가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며 인간 본연의 본질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무수한 사회적 메시지와 인간의 다양한 이면을 풍자와 심리극으로 다루는 김의석 감독의 재기 넘치는 편집과 연출력이 인상적이었지만, 다소 과하게 느껴지는 많은 메시지의 전파와 모호하게 정리된 미스터리에 대한 정의와 결말이 영화가 너무 깊이있게 나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전자서 언급한 대로 미스터리 장르 특유의 몰입감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해서 사건에 대한 의문점을 던지며 몰입도를 높인 방식은 일반 관객들도 부담 없이 이 영화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영리한 유인책이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과는 김고은, 박소담, 천우희, 한예리에 이은 또 한 명의 연기파 여배우 전여빈의 탄생을 알렸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단편, 독립 영화에 출연하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그녀는 나약함과 광기를 오가는 내면 연기와 속을 알수 없는 무표정한 모습을 통해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특유의 정서와 극의 분위기를 온전하게 전해줬다. <죄 많은 소녀>는 전여빈의 잠재력과 존재감을 대중에게 알린 작품으로 지금의 한국 영화가 왜 그녀를 주목해야 하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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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소재를 다루고 있는 <죄 많은 소녀>지만, 파격적인 시선과 연출력 그리고 주연인 전여빈의 열연과 신예 고원희, 전소니 이봄을 비롯해 서영화, 유재명, 서현우 등과 같은 베테랑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를 보느것 만으로도 한국 영화의 미래가 밝음을 보여주고 있어 한국 영화팬으로서 뿌뜻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죄 많은 소녀>는 9월 13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KAFA/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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