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담한다, 이 배우 뜬다! '죄 많은 소녀'의 전여빈
18.09.24 13:05
<죄 많은 소녀>에서 놀랄 만큼 혼신의 열연을 펼친 전여빈. 이미 여러 편의 독립 영화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등장해 익숙해진 만큼, 그녀의 주연 소식과 연이은 연기 호평이 이상하리만큼 반갑게 느껴졌다. 이미 여러 영화 관계자들로부터 이름이 언급되었을 정도로 기대되는 신예인 만큼 그에 따른 부담감도 컸을 테지만, 전여빈은 자신이 그런 주목을 받은 사실조차 모른채 오로지 자신의 배역만 생각하고 있었다. 캐릭터에 대한 남다른 자기 해석과 영화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만큼, 전여빈은 <죄 많은 소녀>의 출연을 인생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연기 데뷔와 출연작은 많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본격적인 주목을 받은 만큼, 그녀에게 있어 <죄 많은 소녀>는 본격적인 시작과 같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결과물을 본 소감은? 자기 연기를 자평하자면?
(웃음) 아직까지도 자평하기는 어렵다. 아주 어려운 소재를 가지고 모두의 뜨거운 마음과 시간이 합쳐져서 소중한 영화로 탄생하였다고 생각한다.
-선역과 악역도 없는 모호한 작품이자, 파괴의 형상이 강하게 담겨있다. 이 영화를 간략하게 정의한다면?
사실 영화제 때도 우리 영화를 소개하면서 잘 설명하고 싶었는데…우선은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란 어렵다. 완전한 선인도, 악인도 없는 세상에서 한계를 가진 인간들이 어떻게든 발버둥 치는 모습들이 솔직하게 그려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 속 역할을 겁나지만 감당하고 싶었다고 언급했었다. 그 용기는 어디서 나왔나?
사실 내가 캐릭터를 선택할 수는 없었다. 나는 우선 1차 오디션에서 시나리오를 읽지 않은 상황에서 연기를 해야 했다. 2차 오디션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대본을 읽으면서 연기를 했다. 대본을 읽자마자 이 시나리오가 가진 절망적인 상황과 이상한 그림들이 오갔다. 그때는 어떤 역할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든 이 영화를 함께하고 싶었을 뿐인데, 주인공 영희의 역할을 제안받았을 때에 이 영화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했다. 이 영화 자체는 어려운 건 맞다. 하지만 영희라는 역할이 큰 선물이라 생각했고, 신인배우이고 여성 배우이기에 쉽게 찾아오는 기회는 아니라고 봤다. 깊고 세밀하고 끝없이 레이어를 쌓아가는 이 연기를 할 기회가 다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강렬한 연기를 보여줬다. 영희는 앞으로 전여빈의 대표적인 인생 캐릭터로 남지 않을까?
할머니가 될 때까지 연기를 한다면 영희를 가슴안에 두고 살면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인물이지 않을까? (웃음)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다. 사회적 관점도 명확하면서도, 소녀들 개인의 이야기도 분명하게 담고 있다. 어떤 점에서 이 영화가 강렬하게 다가왔나?
사람들은 아픔보다 기쁨을 더 좋아한다. SNS만 봐도 슬픈 이야기를 올리는 사람들이 있을까? 모두 자기들의 빛난 순간만 올리려 한다. 분명히 인생에는 명암이 있고, 공존하는데 말이다. 이 영화는 각자가 가진 처참한 순간들을 계속 보여주는 영화로 미사여구 없는 아픔들을 표현하고 있다. 그 점에서 이 영화가 가장 끌렸던 것 같다.
-오디션 과정은 어땠나?
<죄 많은 소녀> 쪽에서 먼저 오디션 제안이 왔었다. 그래서 오디션을 봤는데, 1차는 조감독님 앞에서 다양한 역할을 연기했다. 영희라는 주인공을 걸어둔 게 아닌 극 중 여고생 캐릭터 모두를 열어놓으신 거였다. 2차 오디션은 감독님 미팅이었고, 그제서야 진짜 영화 대본을 받게 되었다. 무려 세 시간이나 대화를 나눴는데,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기,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었다. 대화 중간마다 감독님이 영희의 대사와 상황을 던져주셨고, 이 문장을 이해했냐는 식으로 물으셨다.
-매 신이 심리적으로 압박이 강한 장면들이다. 가장 압박이 컸던 대목은?
사실 영희를 둘러싼 공기의 무게, 영희 자신이 가진 죄책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영희는 그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고 변호를 하고 아닐 거라고 말하지만, 그녀 자신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 촬영 내내 그 공기와 압박감 등 세상의 무게를 전부 감당하려 했던 것 갔다. 그런데 영희뿐만이 아닌 극 중 모든 인물이 각자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 죄책감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는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었다. 결국 매 신 모두가 압박이었고 그것을 감당하려고 버텼다.
-폭탄 돌리기의 표현처럼 극 중 주인공의 자살이 타인들에게 죄책감이라는 바이러스로 전염된다. 자기 파괴와 타인을 향한 파괴가 강하게 담겨있는 이 영화가 개인에게 영향을 준 게 있다면?
이 역할을 받게 되면서 어떤 상대방과 상황을 이해했다는 것에 대한 물음표를 갖게 되었다. 그 인물을 연기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성향과 마음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악하다고 느끼겠지만, 사실 인간은 부정적인 감정이 있는 사람이다. 영희를 연기하면서 머리로는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 전보다는 인간과 삶의 명암을 더 분명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일당백 폭행장면이 <올드보이> 다음으로 처절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일당백 액션이라 생각했다. (웃음) 소녀가 세상과 홀로 싸우는 장면으로 비쳤는데, 너무나 리얼하고 처절했던 이 장면의 비하인드가 있었다면?
(웃음) 그 장면은 아주 철저히 준비된 장면이었다. 여성 무술 감독님과 합을 짜서 만든 장면이었는데, 우린 분명히 합을 맞추고 준비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서로 감정이 들어간 액션 연기를 선보이게 되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배우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멍이 든 건 기본이며, 발톱이 빠지는 부상도 있었다. 서로 안전하게 촬영하자며 보호장비도 착용했는데, 다 소용이 없었다. 완성된 장면을 보니까 정말 살벌하더라. (웃음) 나도 그 장면을 보면서도 놀랐다. 개인적으로 참 아팠던 장면이다. 가학적이자 은유적인 폭력이었지만...서로가 죄책감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데 그 폭력이 직접 드러나다 보니 마음이 참 아팠다. 장면을 찍고 나서는 폭력이 무섭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 극중 폭력은 시각적인 폭력이지만, 이 세상의 폭력은 너무나 알게 모르게 난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액션 연기는 잘할 자신있다. (웃음) 이 영화를 통해서 몸 훈련을 많이 하게 되었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을 했다. 배우가 자신의 몸을 스스로 다스려야 한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는 소녀들 간의 사랑 같은 감정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영희는 이성에 관심이 없는 존재라고 봐야 할까?
영화 속 세상은 중성 사회라고 봐야 한다. 그곳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성의 공간이 아니라 신화적인 공간이라 설정했고, 그 사람에게 키스신같은 어떤 장면들이 나오면 호감의 표현이라고 정의했다. 영희는 여자가 아닌 한 인간(남자와 여자)이 가진 감정을 지닌 존재라 봤고, 두 개의 성을 오가는 캐릭터로 정의했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감독님이 우리 여성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이런 감정이 맞냐고 여러 번 질문을 하셨다.
-그녀가 수화로 이야기한 죽음의 의미는 어떤 의미라 보는가?
영희가 말한 죽음의 의미는 자신만의 정리라고 봐야 한다. 다시 살아난 거 자체가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났다고 모든 게 없던 일이 된 게 아니다. 죄가 더욱 죄로 돌아서서 결국 돌고 도는 것이다. 그것들을 보면서 더 마음을 정하게 되었다고 봐야 한다. 영희는 오히려 더 살기 힘들었을 거라고 본다. 학교 사이에서도 죄가 계속 왜곡되어서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이상한 행동을 가하게 되는 비현실적인 모습들이 영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거기다 경민 엄마까지 지속적으로 나를 보러 왔으니, 영희는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아마도 영화 마지막에 등장한 대사는 자기 자신에게 한마음의 표현이자, 다시 살아난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영화 속 장면은?
개인적으로 영희가 맨 마지막 터널을 지나가는 뒷모습을 봤을 때 마음이 아팠다. 쏟아져 버린 피 같은 것들이 생각이 났다. 그 아이가 돌아가서 가는 모습에서 그 인간의 군상이 담겨져 있기에 너무 버거워 보였다. 단순히 걷기보다는 영희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걸었고 그래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연기가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경민 엄마가 경민의 길을 쫓으려고 잡으러 올 때 경민 엄마와 마주한 장면도 아팠다. 둘의 상황이 너무 처참했기 때문이다. 둘 다 죄가 없는 사람들인데 그런 상황까지 간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함께 출연한 고원희, 전소니 하고는 전작에서 많이 만난 사이다. (<여자들><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이들과 이번 작품에서 함께 또 호흡을 맞추게 되었는데, 에피소드는 없었나?
원희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소니는 <여자들>에서 만났다. 같은 영화를 했지만 소니하고는 만난 적이 없었다. 원희도 한 번 부딪쳤지만 궁금한 배우였다. 이번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리딩을 위해서 마주칠때 마다 이상하리만큼 반가웠다. (웃음) 이미 내적 친밀감이 있다고 해야 할까? 함께 영화서 만나지 못했지만 영화를 함께 했던 동료였기에 너무 든든했다. 그 외에도 봄이, 태경이, 서영화 선배님 모두 든든한 동료였다. 특히 영화 선배님이 나를 많이 배려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부딪치는 장면이 많았는데, 끝날때 마다 손을 잡아주시면서 "안다쳤냐?"라고 물어보셔서 앞으로 이 분을 닮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 교장 선생님을 한 배우님들과 형사 역할을 한 유재명 선배님 모두 최선을 다해주셨다. 무엇보다 2학년 7반 친구들 모두 오디션을 함께한 동료들이었다. 같은 반에서 함께 모이고 장례식장면 함께 했는데 그 친구들의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너무 좋아서 그 사이에 있으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었다. 이 친구들이 준 에너지 덕분에 연기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동료들 모두 독립, 단편 영화서 주연들을 한 친구들이라 함께 있어도 힘이 되었다. 기억나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극 중 배역을 위해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 때 어떤 배우가 손에 초콜릿을 쥐여주고 "언니 먹어요"라고 가는 거였다. 너무 고마워서 일기에까지 기록을 했다. 나중에 다시 교복 입고 연기한다면 이 순간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이 다시 올까? (웃음)
-배우가 되기로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알고 싶다.
평범한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입시 준비 중이었다. 원래는 의대를 가려고 했는데, 입시에서 참혹하게 실패했었다. 그 절망감이 지금은 아무렇지 않지만 그때는 내 자신이 참 미웠다. 그럼에도 의지한 게 있었는데, 바로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취미나 특기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때 좋은 영화를 찾아보려고 했었고 시를 필사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성경책을 읽고 마음을 잡았다. 그러다 문득 중학교 때 읽었던 소설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다시 읽게 되었고, 영화를 20살이 되어서야 제대로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안에서 엄청난 충동이 왔었다. 내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면 '카르페 디엠' 이라는 말처럼 절대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영화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고 이 감정을 친오빠에게 터놓고 말하게 되었다. 그러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연극영화과 입시 준비를 하게 되었고, 학교를 가 연기 전공을 했는데, 연기라는 것을 접하면 접할수록 '이게 과연 뭘까?'라는 생각만 하게 되었다. 내가 단번에 배우가 되지 못하겠지만 분명 시간이 필요했고, 이를 통해 배우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쓰려고 했다. 대학로 연극하시는 선배 밑에서 스태프 일을 하게 되었고, 어깨너머로 연기하는 것을 배웠다. 26살이 되었을 때 이제 배우가 되어보자는 결심이 생겼다. 독립 단편을 함께하는 동료들을 만났고 그러면서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그로 인해 영화계로 진출할 수 있었다.
-평소 취미는?
산책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요가를 한다. 무릎이 좋지 않아서 집 뒤의 산에 오르는 정도로 등산을 한다. 또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하프 마라톤을 하는 것이다. 요즘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어서, 쉬지 않고 몇 바퀴를 도는 게 익숙해 지고 있다. 그래서 한번 해보고 싶다.
-현재 영화계의 주목받은 신예가 되고 있다. 기분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관심을 가져주고 있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느낌은 아직 잘 모르겠다. (웃음) 모든 스태프와 뜨겁게 촬영한 결과물이었고, 흥행 스코어는 잘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보러오신 분들은 뜨겁게 봐주실 거라 본다. 그래서 관객분들을 만나고 싶다. 초심을 유지할 생각이며, 그때의 기억을 되내려 한다. 이제 이 작품을 떠나보내면 "어떤 작품을 하게 될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상업 영화에서도 볼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웃음)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겠다. 이제 내 연기 인생에 있어서 시작이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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