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발발 63주년 특집] 6.25 전쟁을 그린 한국영화들
13.06.25 11:27
오늘은 6.25 전쟁이 발발한지 63주년 되는 날입니다. 반백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분단의 흔적은 우리 사회 곳곳에 가슴아프게 남아있지요. 안타까운 것은 젊은 세대들에게 '동족 상잔의 비극'은 너무나 먼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25일 이데일리의 보도에 따르면 남북한의 20대들은 6.25전쟁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심지어 절반에 가까은 45%는 6.25전쟁이 언제, 왜 일어났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6.25전쟁은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없었던 동족상잔의 비극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생각해 볼만한 요소가 많은 소재이기 때문이죠. 오늘은 전쟁 발발 63주년 특집,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소개해 드리는 영화들 모두 어느 쪽 이념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우리가 그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하는지 이야기할 뿐이죠. 아래 영화들을 보시면서 반백년 전의 비극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 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1. 태극기 휘날리며 (2004)
감독: 강제규
출연: 장동건, 원빈, 이은주, 공형진 외
개봉: 2004.02.05
이미 10년이 다 되어가는 영화이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사내가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처럼 엉엉 눈물을 흘립니다. 그의 앞에는 이미 백골이 되어버린 한 구의 시체와 죽는 순간까지 품에 꼭 가지고 있었던 만년필 하나가 있습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전쟁의 참혹함을 형제를 통해 더욱 잘 보여준 작품입니다.
1950년 6월. 종로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진태(장동건 분).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그는 약혼녀 영신(이은주 분)과의 결혼과 가장 소중한 동생 진석(원빈 분)의 대학진학을 위해 활기차고 밝은 생활을 해 나갑니다. 그러나 그들 형제의 행복은6월 25일, 한반도에 전쟁 발발하며 끝나버립니다. 어찌어찌 대구까지 피난을 가지만 만 18세로 징집 대상이었던 진석은 강제로 군용 열차에 오르게 되죠. 진석을 되찾기 위해 열차에 뛰어오른 진태 역시 함께 낙동강 방어선으로 투입됩니다. 진태는 어떻게든 진석을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대대장은 그런 진태에게 훈장을 받으라고 지시하죠. 진태는 점점 피에 미친 전쟁영웅이 되어갑니다.
애국 이념도 민주 사상도 없이 오직 동생 하나만을 위해서 전쟁터에 뛰어든 형과 자신과 형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해져야 함을 깨달은 동생. 최후의 전투에서 두 사람은 적이 되어 만납니다. 애타게 형을 부르는 진석의 모습에 드디어 살인기계였던 형의 정신이 되돌아옵니다. 그러나 애틋함도 잠시, 형은 또 한번 동생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6.25전쟁 발발 50주년을 기념하며 만들어진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 전쟁 영화사상 최초로 1174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크게 성공합니다. '형제의 상'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이 작품은 서서히 퇴화되고 있는 6.25전쟁의 의미를 부각시켰다는데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이전까지 '잘생긴 배우'의 대명사였던 장동건은 청룡영화산 남우주연상을 거머쥡니다. 또한 4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을 받는 영예를 누리게 됩니다.
2. 월컴 투 동막골 (2005)
감독: 박광현
출연: 정재영, 신하균, 강혜정, 임하룡 외
개봉: 2005.08.24
전쟁은 발발했고 3.8선 언저리에서는 매일 수십, 수백명이 죽어났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살기 위해 아둥바둥 노력했습니다. 학교들은 최후의 보루였던 부산에 분교를 열었고 전쟁중에도 아이들은 태어났으며 사람들은 천막을 치고라도 살아갔었죠.
동막골은 전쟁 상황과 더 전쟁같은 현실 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유토피아였습니다. 태백산맥 줄기를 타고 함백산 절벽들 속에 자리 잡은 마을은 마치 다른 세계처럼 평화롭습니다. 연합군 스미스가 추락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동막골 공식 미친년 여일(강혜정 분)은 그를 마을로 데려옵니다. 그러나 조용한 마을에 손님은 스미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인민군 리수화(정재영 분) 일행과 병력에서 이탈한 국군 표현철(신하균) 일행까지 동막골에 오며 긴장감은 극에 달하게 되죠. 물론 그들(군인들)에게만요.
밖에서 전쟁이 났는지 모르는 동막골 사람들에게 특수장비들은 그저 신기한 물건일 뿐이었습니다. 파란 하늘과 때묻지 않은 초원, 너무나 순수한 사람들 속에서 그들도 잠정적인 휴전을 합니다. 군복을 벗은 그들은 모두 10대~20대의, 같은 고민을 하는 한 민족일 뿐이었으니까요. 우정은 깊어졌고 동막골에도 행복이 찾아오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불행은 늘 행복의 절정에서 찾아오는 법이죠. 미군은 추락한 비행기를 북한의 소행이라고 결론짓고 숨어있을 북한군 소탕을 위해 마을을 파괴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 유토피아인 동막골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만의 연합군을 결성합니다.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현철은 수화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말고,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우리 진짜 재미있었을텐데... 안 그래요?"
전쟁영화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동막골에는 전투 씬이 없습니다. 참혹한 시대적 상황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동막골과 그 공간에 동화되어가는 다섯 젊은이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죠. 그래서일까요? 그들의 아픔은 더 진하고 아프게 다가옵니다. 영화는 입소문이 나며 800만 관객을 동원하여 흥행도 크게 성공합니다. 또한 대종상, 청룡영화상, 대한민국 영화대상 등 그 해 모든 영화제를 휩쓸며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습니다.
3. 작은 연못(2010)
감독: 이상우
출연: 문성근, 전혜진, 신명철, 문소리 외
개봉: 2010.04.15
[작은 연못]을 소개하기 전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에 대해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1950년 7월, 한국전쟁 당시 미군측에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 피난민으로 위장한 적군이 침투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됩니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였지만 극도의 혼란 속에서 미군은 저지선으로 접근하는 피난민을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들은 완벽한 적(적이라고 생각했던 양민들) 소탕을 위해 마을 소개명령을 내리고 피난민들을 경부선 철도로 유도합니다. 그리고 비행기로 무차별 폭격을 가하죠. 살아남은 300여명의 사람들은 개근철교 (쌍굴다리)로 피신합니다. 하지만 미군은 앞 뒤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굴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합니다. 단 3일의 시간동안 노근리에 떨어진 총탄의 개수는 12만개, 살아남은 사람은 단 25명이었다고 합니다. 참전했던 한 병사는 "아이들이 있었음에도 계속 발포 명령을 받았다. 여덞살이든 여든살이든, 맹인이든 불구자든 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영화 [작은 연못]의 시작은 여느 전쟁 영화처럼 평화롭습니다. 아이들은 전쟁보다는 전국 노래 경연대회가 더 중요하고 어른들도 하루 하루 살아가기에 바쁘지요. 계속되는 패배로 전선이 충청도까지 내려오자 이 평화는 순식간에 깨집니다. 마을 소개령에 따라 피난가게 된 사람들. 그러나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미군들은 총부리를 돌려 마을 사람들에게 총을 난사합니다. 왜 죽는지도 모른 채 마을사람들은 죽어나가죠.
특히 쌍굴 학살 씬에서 영화는 여과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비춰줍니다. 어른이건 아이건 기관총의 위력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나갑니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 상황은 영화보다 더욱 참혹했다고 합니다. 생존자 양해찬씨는 인터뷰에서"다리 밑은 모래와 자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빗발치는 총알을 피하기 위해 맨 손으로 구멍을 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바리케이트처럼 쌓아 그 뒤에 숨었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죽은 줄도 모르고 계속 울었습니다. 아기 우는 소리를 듣고 또 다시 사격이 가해지자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개울물에 넣어 질식시켰습니다"고 증언했습니다.
영화 [작은 연못]은 참혹한 노근리 사건을 처음으로 조명한 영화로서 주목받았습니다. 문성근, 고 박광정, 강신일, 문소리와 같은 유명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참여하였고 한국 영화계 최고 스텝들이 동참했습니다. 노근리 사건이 영화화되기 까지는 8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정부와 미국이 쉬쉬하는 사건이니만큼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이 영화는 결코 어떤 이념이 옳고 그르다를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단지 참혹한 이념갈등의 현장 속 에서 억울하게 죽어갔던 그 영혼들을 기억 해 달라고 말할 뿐입니다.
4. 포화속으로 (2010)
감독: 이재한
출연: 차승원, 권상우, 최승현(TOP)외
개봉일: 2010.06.16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포항여중 전투에서 전사한 이우근 학도병의 품에서 발견된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입니다. 한 통의 편지는 4000명의, 군번도 이름도 없이 쓰러져 간 학도의용군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영화 [포화속으로]는 포항여중 전투에서 장렬히 싸운 71명의 학도의용군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영덕시를 초토화시킨 북한국 진격대장 박무랑(차승원 분)이 이끄는 766 유격대는 당의 지시를 어기고 영덕을 거쳐 포항으로 방향을 틉니다. 포항여자중학교에는 총 한번 잡아본 적 없는 71명의 학도의용군만 있는 남아있었죠. 그러나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싸웁니다. 비록 결말은 비극일지라도 그들의 숭고한 희생은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과 부산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5. 고지전(2011)
감독: 장훈
출연: 신하균, 고수, 이제훈 외
개봉일: 2011.07.20
1953년 2월, 휴젼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교착전이 한창인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전사한 중대장의 시신에서 아군의 총알이 발견됩니다. 상부에서는 최전방에서 적과의 내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심하며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 분)에게 동부전선으로 가 조사하란느 임무를 내립니다. 애록고지로 향한 은표는 그 곳에서 죽은줄 알았던 친구 수혁(고수 분)을 만납니다. 심지어 수혁은 2년사이에 이등병에서 중위로 특진해 악어중대의 실질적 리더가 되어있었죠. 살아 돌아온 친구, 북한군 군복을 춥다고 덧입는 이상한 병사들이 있는 악어중대.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은표는 서서히 애록고지의 실체를 마주하게 됩니다.
종전 협정 직전 53년의 최전방을 그렸다는 점에서 영화의 시작은 여타 전쟁영화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악어중대에 도착하고, 묘한 이질감을 느끼는 은표의 시각은 사실 관객의 시각이기도 하지요. 가령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막내가 저격수 2초(김옥빈 분)에 의해 저격당하자 그들은 미련없이 성식을 2초를 잡는 미끼로 사용합니다. "네가 성식을 죽인거다" 라며 분노하는 은표 앞에서 수혁은 차분하게 말하죠. 전쟁이 죽인 것이라고, 그리고 매일 수십, 수백명의 성식이가 죽어나간다고. 수혁의 말을 통해서 영화는 전쟁의 잔인함를 단편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영화는 중반부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되어버린 인간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2초에게 노출 된 상황에서 중대장 수혁의 명령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러면 반은 살수 있다"였습니다. 절반쯤은 필연적으로 죽어야 하고 아무도 구해 줄 사람은 없다는 것을. 내가 죽지 않으려면 남이 죽어줘야 한다는 잔인한 현실은 영화는 이야기합니다.
많은 관객들이 영화 [고지전]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고수, 신하균, 류승룡 등 쟁쟁한 배우들을 내세웠지만 300만 정도의 관객동원에 그치고 말죠. 이 영화는 가슴 절절한 휴머니즘을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3년의 기간동안 전방의 사람들이 어떻게 미쳐갔는지, 전쟁이 왜 참혹한지를 보여줄 뿐이지요. "너무 오래되서 전쟁이 일어난 이유조차 기억 나지 않는다" 던 북한군 지휘관의 읊조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