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비하인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남자! 주윤발
18.10.19 12:05
영원한 '따거' 이자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상징적인 존재 주윤발과 관련한 비하인드를 정리했다.
본명: 주윤발 (저우룬파, 周潤發, Chow Yun Fat)
출생: 1955년 5월 18일
신장: 186cm
출생지: 홍콩
1. 흙수저 스타
어린 시절 무척 가난하게 자라 중학교를 중퇴하고 상점 직원과 집배원 등의 일을 하다가 친구의 권유로 1972년 연극배우로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홍콩의 지상파 TV 방송국인 TVB의 연예인 훈련반에 합류해, <민간전기> 시리즈의 단역으로 브라운관 데뷔를 하게 된다.
2. 첫 인생작은 <영웅본색>이 아닌 <상해탄>
우리에게는 <영웅본색> 시리즈를 통해 스타가 되었지만, 홍콩에서 유명해진 건 1980년 드라마 <상해탄>을 통해서였다. 20세기 초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로 한 조직의 두목 역할을 맡아 상징과도 같은 특유의 카리스마를 선보여 인기스타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1984년 영화 <등대여명>으로 대만 금마장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게되고, 전설적인 드라마 <소오강호>에 출연해 주인공 영호충을 맡게 된다.
3. <영웅본색> 캐스팅 비하인드
가난하게 산 어린 시절 탓에 스타가 되자마자 불우하게 사는 아이들을 지원했다. 그러한 미담이 홍콩 내에서 화제가 되어서, <영웅본색>을 준비하고 있는 오우삼 감독에게까지 전해지게 된다. 그의 미담을 들은 오우삼은 영화 속 캐릭터 마크로 그를 염두에 뒀고, 직접 주윤발과 만남을 갖게 된다. 훗날 오우삼은 그와의 첫 대면에서 "따뜻한 마음씨와 현대에 잃어버린 의협과 기사도의 풍모를 지닌 사람이다."라고 평하며 그에게 캐스팅 제안을 하게 된다. 이후 주윤발은 <영웅본색>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오르게 되었으며, 영화에서 선보인 쌍권총 액션과 패션은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에 패러디, 오마주 되었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장국영이 부른 <영웅본색> 주제가 '당녕정' MV (한글해석)
4. 그는 액션 전문 배우가 아닙니다.
<영웅본색> 시리즈 그리고 <첩혈쌍웅> 같은 액션물로 유명해진 탓에 액션 스타로 인식되었지만, 그는 액션 전문 배우가 아니다. (재미있게도 그는 폭력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다.) <영웅본색> 이후 <도신> 시리즈 같은 도박 영화와 멜로, 코미디, 사극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해 좋은 연기력을 선보였다. 고독한 누아르 세계의 영웅 캐릭터 외에도 풍부한 표정과 유머러스한 입담을 지니고 있어 코미디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다. 국내 팬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홍콩의 사극 드라마에서 악역을, 1987년 작품 <몽경영웅>에서는 악질적인 부패 경찰역을 맡아 연기파 배우다운 면모를 보여준 바 있다.
5. 아쉬움이 남는 할리우드 진출
아시아에서의 성공으로 1998년 본격적인 할리우드 진출을 하게 된다. 데뷔작은 <리플레이스먼트 킬러>로 당시 영어 실력이 부족했던 주윤발은 과묵한 킬러로 출연한다. 영화는 어느 정도 흥행했지만, 주윤발의 연기적 재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컸었다. 1999년 <애나 앤드 킹><커럽터> 같은 작품에서 조디 포스터, 마크 월버그와 같은 스타들과 호흡을 맞추며 좋은 연기력을 선보였으나 아쉽게도 흥행과 평가에서 실패하고 만다. 그나마 <와호장룡> 같은 중국어 연기를 통한 작품을 통해 흥행에 성공했으나, <방탄승>의 실패와 <캐리비안의 해적><드레곤볼 에볼루션> 등의 낮은 비중 때문에 할리우드 에서의 인지도적인 부분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훗날 주윤발은 인터뷰에서 "할리우드는 나를 쌍권총 쏘는 살인 기계로만 취급한다"라며 미국 진출 시절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6. 삼국지 주유의 후손
'삼국지'로 유명한 오나라 수군 제독 주유의 후손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인연 때문에 오우삼은 <적벽대전>에서 주윤발에게 주유를 맡기기로 했었는데, 개런티, 촬영 일정 문제로 하차하게 되면서 제갈량을 연기하기로 했던 양조위가 주유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주윤발은 영화 <조조-황제의 반란>에서 조상 주유의 적인 조조를 연기했다.
7. 슬픈 연애사
1978년 무명 시절부터 함께한 후배 여배우 진옥련과 오랫동안 교제했다. 이후 결혼까지 약속했으나, 1982년 진옥련 모친의 반대로 헤어지게 되자, 진옥련이 가정용 세제를 먹고 자살 시도를 벌인 사건이 발생한다. 충격을 받은 주윤발은 진옥련을 정성껏 간호하며 그녀의 쾌유를 도왔으나, 결국에는 헤어져야만 했다. 후에 주윤발은 "가슴 깊이 새겨둔 사랑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을 남기며 그녀와 헤어져야 했던 이유를 밝혔다. 그렇게 오랫동안 진옥련과의 좋았던 추억을 기억하는 듯 싶었으나 얼마 안 가 동료 배우 여안안과 결혼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너무 이른 만남과 그로 인한 결혼이었는지, 9개월 만에 이혼했다. 그 후 80년대 중후반 지금의 아내 진회련을 만나 행복한 가정생활을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8. 친자식이 없는 이유
1991년 아내 진회련이 유산을 하게 되자, 충격을 받은 아내의 정신적 건강을 염려해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다 2010년 "마음으로 낳은 자녀가 있다"라며 비밀리에 입양한 양아들의 존재를 밝혀 화제가 되었다.
9. 검소한 사나이
19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히트작과 광고모델을 해왔기에 벌어들인 수익도 엄청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산을 과시하지 않는, 검소한 생활습관을 지니고 있다. 아내에게 모든 재산 관리를 맡기고 있으며, 매달 용돈으로 1,000홍콩달러(14만 4,780원)를 받아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자동차도 없어서 평소에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다녀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 때문에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주윤발을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10. "사랑해요 밀키스" 한국과의 인연
<영웅본색>이 한국에서 대히트를 하자 직접 한국 극장을 방문해 관객과의 만남을 갖게되었다. 당시 주연급이었던 적룡도 함께 왔으나, 관객들의 이목은 주윤발에게 쏠려 있었다. 국내 최초의 외국인 CF 모델로 알려졌는데, 1989년에 제작된 밀키스 CF에서 화물트럭 컨테이너로 오토바이를 몰고 들어간 뒤 "사랑해요 밀키스"라고 외치는 광고가 방영돼 큰 화제가 되었고, 이는 곧 유행어가 되었다. 그 외에도 오픈카를 끌고 로맨틱한 모습을 보여주는 새로운 버전도 화제가 되었다.
▲'사랑해요 밀키스' 추격 버전
▲'사랑해요 밀키스' 로맨틱 버전
<드래곤볼 에볼루션> 촬영 당시 야무치로 출연하는 박준형이 한국인 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첫 만남에 "사랑해요 밀키스"라는 한국말을 건내 반가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2015년 12월 홍콩에서 열린 MAMA에 홍콩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대상 시상자로 출연했다. 이후 싸이의 무대에서 말춤을 같이 춰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참고로 싸이는 어릴 적 주윤발의 팬이었다고 하며 이후 주윤발의 영화 <도성풍운 3>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도성풍운 3> 싸이와 주윤발의 출연분
11. 최고의 매너남
훌륭한 인성을 지닌 만큼 중화권에서 가장 매너가 좋은 스타로 알려졌다. 특히 대부분의 스타들과 직접 접촉하는 항공사 스튜어디스들이 뽄은 기내 매너남에 양조위와 함께 선정된 바 있다.
12. '절친' 오맹달과의 일화
TV 신인 배우 시절부터 동료였던 오맹달과는 매우 절친한 사이. 오맹달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방황하던 시절, 친구로서 인생의 길을 도와준 주윤발의 행동에 감사함을 표한 적이 있었다. 오맹달이 왕년에 술, 여자, 도박 등 유흥에 빠진 바람에 30만 홍콩 달러의 빚을 져 삼합회의 협박까지 받게 된다. 결국 오맹달은 대스타가 된 주윤발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돌아온 답은 "네 문제는 네가 알아서 스스로 해결해라!" 라는 냉정한 답변이었다. 믿었던 친구로부터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한 오맹달은 그 후 독한 마음으로 연기 활동에 임했고 덕분에 새사람이 되어 빚까지 청산하게 되었다. 문제를 해결한 오맹달에게 주윤발이 찾아오게 되고, 친구를 진정으로 돕고 싶었던 마음에 도움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진심을 전하자 오맹달은 감격하고 주윤발과 화해하게 되었다. 오맹달은 "만일 그때 주윤발이 내게 돈을 줬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폐인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그의 결정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하며 변함없는 우정과 감사를 표했다.
13. 홍콩 민주화 운동 지지자
2014년 10월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홍콩 민주화 운동 시위가 진행되자, 언론을 통해 "홍콩 학생들의 용감한 행동에 감동했다."라고 소감을 밝혀 민주화 운동을 지지한 듯한 발언을 했다. 평소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에 반대적 시각을 지닌 그이기에 이걑은 발언이 나온것은 당연해 보였다. 주윤발의 이 같은 공개적 지지는 양조위, 유덕화등 인기 스타들의 지지로 이어지게 되었고, 시위대에 큰 힘이 되었다. 이로인해 공산당이 중국 본토 활동을 금지할것이라는 발표가 있었지만, 주윤발은 "그럼 돈을 조금 벌면 된다" 라며 언론을 통해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다행히 지금까지도 무난하게 중국 본토 활동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아무래도 주윤발이 지닌 국제적 명성 탓에 공산당 정권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듯 싶다.
14. 전 재산 기부 선언
그리고 최근 중국 매체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전 재산 56억 홍콩달러(한화 8,100억 원)를 사회에 환원할 생각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었다. 이어서 "그 돈은 내 것이 아니고,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해 대중들을 감동시켰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IMDB,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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