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혜수가 요즘 아이들에 충격을 받은 이유 "꿈이 건물주라니…"
18.12.10 13:14
<국가부도의 날>을 통해 당찬 한시현 캐릭터를 훌륭하게 연기한 김혜수와 영화의 비하인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슴 아픈 IMF 시절의 이야기부터, 실제 사료로 남겨진 굴욕적인 회의 장면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뱅상 카셀과의 만남 등에 대해 듣게 되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각본을 받았을 때 소감은?
여러 장을 넘길 때 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이 느껴졌다. IMF를 겪어봤지만, 시나리오를 통해 접한 IMF는 우리가 알던 사실들과 너무 달랐다. 그래서 궁금해서 모르는 것들을 검색했다. 영화 속 인물 간의 스토리는 가공되었지만 협상 장면은 가공 되지 않은 진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협상 내용은 정말 너무했던 것 같다.
-외워야 할 경제적 용어가 많아 공부를 많이 했을 것 같다.
공부에 손을 놓은 지 오래되었다. (웃음) 무슨 지수 등 너무나 어려운 용어들이 많아서 영어 암기하듯이 경제 용어를 배웠다. 제작진에서 경제 용어를 따로 정리해서 테이블에 마련해 줬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한참을 봐도 너무 어려웠다. 50개 보며 딱 2개만 외울 정도였다. (웃음) 그래서 따로 강의 요청을 했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경제 전문 교수님께 강의를 들었는데, 그 내용도 너무 어려워서 실제 금융권에서 종사하는 젊은 분께 강의를 듣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극 중 영어 연기가 꽤 좋았다. 발음이 너무 좋았 보였다.
(크게 웃음) 어떻게 보면 경제적 지식보다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다. 뱅상 카셀이라는 엄청난 배우를 영어를 통해 상대해야 했으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 모습이 한시현이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자료를 종합하고 데이터를 분석해서 결론을 만드는 캐릭터이기에 그에 맞는 인물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전문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해야 했다. (웃음) 진심을 실으려면은 그에 따른 지식과 정확한 상황을 알아야 하기에 전자의 준비 과정을 걷혀야만 했다. 영어 선생님이 따로 계셔서, 그 선생님과 함께 경제 공부를 하면서 영어 대사를 이해하고 만들어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님께 참 감사하다. 경제학 자문분께 직접 양해를 구하면서까지 대사를 만들어 주신 모습이 너무나 멋있었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한시현이라는 캐릭터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경제 부처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우리가 몰랐던 충격적인 장면들을 마주했을 것이다. 가장 소름이 느껴졋 던 대목은?
영화 속 협상 장면은 새료를 기반으로 완성했다. 돌이켜보면 지금 국민들이 알아야 할 내용인데, 그 내용이 이제서야 알려진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가 돈을 받아야 할 입장이어서 그 불합리한 조건을 수용했어야 했다지만, 그렇게까지 부당한 요구를 받는 것은 안되었다. 최소한의 국민을 보호하는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버린 것이다. 그 부분을 읽을 때 어찌 보면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서민들이 시작도 하기 전에 고통을 느끼게 된 게 이것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소름보다는 피눈물을 흘리는 감정으로 이해했다.
-IMF 당시 일들이 기억나시나?
파편적으로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일을 하고 있었고, IMF 전만 해도 모든 것이 참 좋은 시절이었다. 개성이 부각되고, 문화도 풍요로운 시기였다. 그러다가 IMF가 느닷없이 찾아 온 것 같다. 어지 지나갔던 뉴코아 백화점이 갑자기 부도가 났는가 하면, 삼성, 현대, 대우 같은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대기업들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운 감정이 느껴졌다. 그때는 도산, 화의신청 이런 말도 몰라서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유학 갔다 온 분들이 외화 부족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해야 했고, 일할 곳이 없어진 사람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야기도 들었고, 먹을게 없어서 개 사료를 먹었다는 사연을 듣고 너무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 이야기가 먼 사람도 아닌 내 주변인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동안의 내 경제적 습관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고, 금 모으기 같은 국민적인 행사에 동참하려고 했었다. 우리가 IMF를 빨리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국민적 참여와 단합 덕분이었다고 한다. 그로인해 우리나라가 IMF를 겪은 국가중 가장 빨리 극복한 유일무이한 나라였다고 한다.
-당시 김혜수는 <미스터 콘돔><찜><투 다이 포 투 다이> 등의 다양한 영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 배우로서의 활동을 돌아보자면?
굉장히 죄송스럽게도 당시 나는 IMF와 개별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배우로서 일로써 하는 것은 큰 변화가 없었다. 어찌 보면 실물경제가 급속하게 나빠졌기에 좀 더 가볍고 명량한 것에 주력한 시기였다.
-극 중 장면 중 허준호가 아들에게 말하는 "너만 생각해야 해" 라는 대사가 있다. 그 대사를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실제 당시의 아버지들은 한시현의 20년처럼 자기 자리서 변방을 지킨 사람이었다. 실제 모두 안정적인 중산층이 되기 위해 피눈물을 흘렸다. 그 당시 80%가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했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제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뽑고, 회사가 돈이 없으면 쫓겨나는 시대다. 그로 인해 십 대 아이들이 인생의 관문인냥 공부를 하던 시기가 되었고, 내 아이들에게 안정적 기반을 마련해 주지 못한것에 대해 부모 세대들이 죄책감을 느껴야만 했었다. 지금은 중산층이라는 개념 자체도 없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사회에 진출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좌절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만들어 이익을 번 유아인의 윤정학 캐릭터를 한시현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아마 현실의 나라면 그런 감각도 없었다. 아마도 윤정학의 캐릭터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며, 한편으로는 왜 나는 저런 감각이 없을까 나처럼 원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이 요즘의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요즘 초등학생들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유투버랑 건물주라고 한다. 그건 우리가 탓할 수 없다. 결국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준 것 아닐까? 그것도 참 마음이 아프다. 어찌 보면 나는 연예인이고 내 능력에 비해 잘살고 있어서 내가 감히 이야기할 말이 아니다. 이런말 하는것도 어떤 이들에게 경제적 박탈감을 줄까 죄송할 따름이다. 지금도 우리 현실에서 그런 기분을 느낄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 영화가 답을 주지 않지만 극중 협상장면이 말해주듯이 우리 인생은 선택의 순간이기에 우리 마음대로 될 수 없는 것이다. 내 양심에 반하는 선택을 해야 하고, 자신 없는 선택이지만 그때의 선택이 지금의 우리를 만든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당찬 한시현이지만 여성 비하와 관료 사회의 분위기라는 현실의 벽에 번번이 부딪치고 만다. 연기를 하면서 어떤 기분이 느껴지셨나?
한시현은 모범적이고 전형적인 인물이다. 재미없을 수도 있는 캐릭터다. 그래서 이 캐릭터의 진심을 전하는데 집중했다. 당시 사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보수적인 시대로 실질적으로 여성을 향한 비하도 일상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의 금융 조직은 매우 보수적이었으며, 실무를 맡은 여성 직원도 없었다고 한다. 한시현은 이 영화이 주인공이지만, 나는 이 캐릭터를 여성으로 정의하려 하지 않았다. 이 캐릭터는 성별을 떠나 원칙과 소신을 지닌 인물로 정의할 수 있다.
-뱅상 카셀과의 호흡은 어땠나?
정말 다채롭고 강렬한 배우다. 이분이 출연하신 이유는 단순히 한국 영화여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사실이 참 감사했다. 시나리오를 보고 작품에 출연하기로 한 해외 배우라 해서 너무나 새롭게 다가왔다. 같이 호흡을 맞춰 보니까 역시 대단한 사람이었다. 배우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영화 마지막 허준호 배우와 함께 마주한 장면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 장면을 촬영했을 때의 소감은?
한시현은 정말 일에만 매진한 사람이라 개인적인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이 여자는 보시다 싶이 아직은 자기 가정이 없는 여성이다. 나중에야 가족이 나를 찾아온 걸 보면서 내 자신이 내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좌절했을 것이다. 내가 내 가족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엘리트들 사이에서 일하고 있지만, 노동자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다. 오빠와 조카들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큰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바로 그런 기분이 느껴졌다. 피눈물을 쏟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에필로그 장면을 통해 봐왔듯이 그녀는 변방이지만, 자신의 본분을 위해 싸우는 뚝심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모습이 참 멋있었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영화사 집/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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