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나는 왜 [퍼시픽 림]을 보며 '감격' 했나?
13.08.01 11:49
*모든 영화의 시작, '재미'와'신비감'
나에게 있어 영화의 재미를 처음 알려준 작품은 김청기 감독의 1986년작 [외계에서 온 우뢰매] 였다. 지금보면 너무나 조악한 특수효과에 어처구니 없는 어색한 스턴트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그 당시 어린이들에게 만큼은 [스타워즈] 못지않은 시각적인 재미와 인기를 얻었던 시리즈였다. 이처럼 대부분의 영화팬들이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를 묻게 된다면 대부분 '신비감'과'재미'에 기원한다. 그것은 영화의 시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최초의 영화인 뤼미에르 형제의 1895년작 [열차의 도착]이 처음 등장했을때 사람들은 흰색 화면에 진짜 열차가 오는것을 보고 기겁해서 도망가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이는 곧 '신비함'과'재미'로 다가오며 하나의 오락거리로 발전할수 있었다. 이후 최초의 SF 영화인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상상속의 세계를 실현시켜주는 신비의 매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우뢰매,후뢰시맨,바이오맨 같은 어색하지만 실사를 추구했던 어린이 로봇 영화들을 비롯해 스필버그와 조지루카스가 선보인 SF 영화들의 특수효과는 초기 영화가 추구한 '신비함'을 그대로 전해주며 현세대 들에게 영화의 참된 의미(?)를 전달해준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나에게는 거대한 로봇,괴물들과 그리고 드넓은 우주의 세계가 그런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존재들이면서도 거대한 크기의 크리쳐들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 영향 탓인지 내가 유년시절 부터 지금 까지도 가지고 있는 '나쁜 버릇'중 하나가 혼자 있을때 손짓 발짓 다하며 파괴하는 소리를 내며 우주 전쟁과 대괴수의 침입을 상상하는 버릇이었다.(그래서 자페아로 잠깐 의심을 받아본 아픈기억도 있었다.) 그 정도로 나는 거대한 상상속 스펙터클함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성인 영화팬들도 이와같은 공통점을 가지며 만화 영화에 대한 애정을키우며 자라왔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성숙해야 하는게 세상의 이치. 만약 성인 남성이 아직도 로봇,괴물과 우주의 세계를 상상하고 좋아하고 있다면 [19곰 테드]의 주인공 처럼 '애 어른'이나 '덕후'취급 당하며 비웃음을 당하기 마련이다. 특히, 나같은 비평가가 "인생 최고의 영화가 뭐였어요?" 라고 물을때 "[쥬라기 공원],[스타워즈],[후레쉬맨]"이라고 답하는 것보다 "그리스의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님의 [영원과 하루] 입니다."라고 말해야 대중들로 부터 신뢰감을 얻을수 있는 것처럼 성인은 성인다워야 하는것이었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 주는 세상이라 하지만 아이의 감성을 가지며 '애 취급' 받는건 더더욱 싫기 때문이다.
*[퍼시픽 림]을 보는 주변의 시선
[퍼시픽 림]의 언론 시사회를 다녀온 후배에게 기대에찬 마음으로 영화의 반응을 물었고 곧바로 들려온 대답은…
"특수효과와 영상은 근래들어 최고예요. 근데 이야기가 영…"
한마디로 까인 것이다.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처음 이 영화의 티져 예고편이 공개되었던 1월 초, 80m가 넘는 로봇이 그와 맞먹는 괴수에게 들려 무역 항구로 내동댕이 당하는 영상을 보며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신비 스러움'을 다시 보는 것 같아 다시 아이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후배의 현실적인 평을 들었을때 역시나 했다. 그러한 반응은 후배만 보였던건 아니었다. 시사회에 참석한 기자들과 평론가들의 평도 이와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수효과와 CG는 좋았으나 이야기의 허점이 많다' 심지어 한주간 개봉영화를 소개하며 재미있는 포인트만 집어줬던 금요일 아침 뉴스 마저도 [퍼시픽 림]의 줄거리를 지적하고 넘어갈 정도였다. 그리고 영화 개봉후 이 영화를 여자친구와 보고 왔다는 친구들의 반응은 너무나 유치했다는 이야기가 대다수 였다. 이러한 여러 악평을 들으며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또 2억달러를 갖고 '덕후'질을 했구나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달리 생각해 보았다. 스토리가 별로면 무조건 재미없는게 영화였나? 분명 다른 시각에서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수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초기의 영화들이 스토리가 아닌 영상과 화면의 '신비함' 그자체로 출발했던 것처럼 [퍼시픽 림]이 예고편을 통해서 강조한 거대함의 스펙터클은 분명 그 점을 의도하고 만들었을지 모른다. 스토리 또한 중요하지만 다른 부분에 재미가 있다면 굳이 그것을 따질 필요는 없다. 영화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비평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영화를 즐길줄 아는 방법도 필요하다. 만약 그러한 장점도 없다면 이 영화는 정말 최악인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방식을 제시해야 하는게 우리 비평가들의 또다른 자세 아니었을까?
나는 이번에 그러한 방법을 찾아보기로 계획 했고 오랜만에 영화를 혼자보기로 했다.
*나는 왜 [퍼시픽 림]을 보며 '감격'했나?
개봉당시 1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를 모았던 초기와 다르게 현재는 이 영화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는 시기다. 그래서 인지 텅텅 빈 객석에 조금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내 옆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4명의 남녀 아이들이 앉아있었고 이 아이들 때문에 제대로 감상이 될지 걱정이 되었다.
영화가 시작되며 나는 비평가가 아닌 영화팬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기위해 집중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어려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스토리와 같은 세세한 부분을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영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형체의 크리쳐 캐릭터들의 형상에 빠져 재미를 느끼고 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3D 아이맥스에 철저하게 잘 촬영된 영상, 입체적으로 선명하게 잘 부각된 거대한 카이주와 예거의 형체,거대한 파급력을 느끼게하는 거대 생명체들의 격돌장면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예거 들의 무기와 카이주들의 변신 장면까지…특히 바다에 등장해 땅을 기던 카이주 '오타치'가 '집시 데인저'를 번쩍 들어올린 다음 날개를 펴 하늘로 상승하는 장면에서는 묘한 쾌감과 전율이 느껴졌다. 그것은 킹콩이 금발의 미녀를 손에 쥔채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올라간 장면과 비견된 괴수물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80m가 넘는 괴물이 80m가 넘는 로봇을 들어올렸다는 것은 영화사상 다시는 보기 힘든 명장면 이었다.
이 장면을 통해 잠시나마 예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후레시맨,바이오맨 류의 로봇 비디오 영화들에 있었던 구성이 연상되었다. 이 영화는 바로 이러한 어린이 매카닉 장르와 괴수물이 가지고 있는 흥미있는 구성 방식의 일부를 차용했으며 이를 영화적 방식으로 재정리한 것이었다. 이 영화에 스토리를 문제 삼으며 오타치의 변신 장면이 황당하다고 평한 비평가는 아마도 그러한 괴수물 장르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것 같았다.
길예르모 델 토로는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SF 장르에 대한 덕후적인 관점을 가진 연출자다. 그에게 있어 재패니메이션식의 매카닉 영화와 괴수물은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드라마와 스토리를 강조하려는게 아니라 초기 영화팬들이 느꼈던 '신비'와'재미'의 관점을 그만의 방식으로 다시 부각하려 한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이영화에 크게 신경을 쓴 것은 바로 거대함에 체감효과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영화는 그점에서 완벽하게 성공했다.
특히 카테고리별로 구성된 예거와 카이주들의 종류별 특징에 예거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선명하게 움직이는 부속품들의 묘사와 엄청난 타격으로 박살나는 기계의 파편과 카이주의 피부 그리고 건물들의 파괴장면은 단순한 치장을 넘어 매카닉과 괴물을 사랑한 '덕후'가 아니고서야 만들수 없는 지독한 집중력의 결실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다가온것은 아이맥스의 넓은 화면과 3D 촬영기술이 더해지며 생생하게 다가온 괴물 카이주와 로봇 예거의 얼굴을 정면으로 부각시켜 관객과 대면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유년시절 만화를 통해 만날수 있었던 괴물과 로봇을 현실에서 마주한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그동안의 SF 크리쳐들이 CG의 조악한 기술을 숨기기 위해 얼굴의 정면을 뿌옇게 처리한것과 다르게 [퍼시픽 림]은 진정한 꿈속의 캐릭터와의 대면을 실행해준 최초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한 거대한 영상물로 부활한 생명체들의 격돌에 나는 생애 처음 느꼈던 영화의 '신비감'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예거가 두 주먹을 움직이며 카이주의 얼굴과 머리에 타격을 줄 때 나의 두 손도 함께 움직이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은 바로 내옆에 있었던 4명의 아이들도 함께 행동하고 있었다. 예거가 두명의 파일럿과의 정신적인 교감을 우선으로 두었던 것처럼 나와 아이들은 어느새 영화에 완벽하게 동화가 된것이었다.
"내가 이런 영화를 보며 자라왔구나"
소년은 거대한 존재들을 보며 전율을 느꼈고 언젠가 자신도 그 거대한 존재와 같은 거인이 되는 것을 꿈꾸며 동경했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뒤로하며 오랜만에 나는 유년기의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이 영화를 즐기는 것을 떠나 잠시나마 예전의 아이로 돌아온 나에게 이 영화는 조금 엉뚱할 수도 있지만 '감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아직도 '큰 어른' 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꿈 많은 아이'였던 것이다.
*'영화' 평가하지 말고 즐기자!
영화를 보고난후 상영내내 느꼈던 전율의 분위기를 잠재우고 다시 비평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어쩌면 왜 그들이 이 영화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는지도 이해가 갔다. 영화가 어린이들의 상상력에 기반을 두었다 하더라도 주인공과 등장인물은 어른들이다. 한마디로 어른의 시선에서 이들을 본다면 너무나도 매끄럽지 못한 인간관계와 드라마 형성이 섬세하지 못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즉, 괴물보다도 사람 캐릭터에 신경을 썼다면 이 영화를 부정적으로 볼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포스터와 예고편이 말해주듯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예거'와 '카이주'다. 이 영화의 드라마의 초점을 이 크리쳐들에 맡긴다면 매끄럽지 못했던 스토리와 드라마가 달리 보이게 된다. 그래서 [퍼시픽 림]은 재미있게 보는 방법이 필요했다. 사실 영화를 보기전 잠시 미국 영화 사이트에서의 해외팬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리고 의외의 반응을 보게 되었다.
미국 네티즌들로 부터 공신력 있는 평점 사이트로 인정받는 '로튼 토마토'의 평균 평점은 '신선한 토마토 지수 71%'였다.(최악의 경우 썩은 토마토 지수로 평가한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이 영화에 매우 좋은 평가를 내리며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심지어 한 평론가는 영화 시사회가 끝난후 트위터를 통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이며 감격까지 했을 정도였다.
"Just saw Pacific Rim. Thank you Guillermo del Toro, thank you."
물론 그들의 평을 자세히 읽는다면 우리나라 평론가들의 평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스토리와 드라마의 개연성을 지적했던 것은 마찬가지 였다. 하지만 그들의 최종 평가 방식의 기준이 재미있었다. 예를들어 '무비웹'이라는 온라인 매거진의 경우 스토리,연기,연출력,비주얼로 별점 평가를 나누며 이 영화를 평가하면서 스토리 쪽의 부실을 인정하면서도 비주얼이 충분히 이를 덮어줄만 하다며 총 평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스토리: ★★★
연기: ★★★☆
연출력:★★★★
비주얼: ★★★★☆
연기: ★★★☆
연출력:★★★★
비주얼: ★★★★☆
총평점: ★★★★☆
무려 별 넷반 이었다. 한국에서 많이 줘봤자 별 셋 정도 될 이 영화에 이들은 이렇게 후하게 평한 것이었다.
우리가 스토리와 구성등 여러 부분에 있어서 세세한 평가를 하는것과 다르게 영화의 장점과 주 포인트를 발견하고 어떻게 해야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수 있을지 정리 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이들은 이러한 평가를 내리기 위해 잠시나마 팬심의 마음으로 영화를 바라보고 그 포인트를 발견하고 어떻게 영화를 감상할 것인지를 제시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가 스토리와 구성등 여러 부분에 있어서 세세한 평가를 하는것과 다르게 영화의 장점과 주 포인트를 발견하고 어떻게 해야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수 있을지 정리 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이들은 이러한 평가를 내리기 위해 잠시나마 팬심의 마음으로 영화를 바라보고 그 포인트를 발견하고 어떻게 영화를 감상할 것인지를 제시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물론 해외의 방식이 답이라고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니다. 냉철한 평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것이 가장 기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비평가 이기 이전에 다음에 이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이 영화를 어떤 관점에서 봐야할지를 알려줘야할 '가이드'이기도 하다. 우리의 냉철한 평가가 비평의 한부분 이기 이전에 최종선택은 관객이 선택할수 있도록 재미의 관점을 제시하고 결론을 내야 한다. 그것이 영화를 가장 먼저 보는 사람의 예의가 아니었나 생각했다. 어쩌면 너무나 냉정하게 진행했던 여타의 평가방식들이 영화를 즐겨야 할 관객들 모두를 '재미없는 어른 비평가'로 만들어 버린거 아니었을까?
때로는 영화의 평점 기준 방식의 비평이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영화의 근원적 '재미'를 앗아간거 아닌가 생각해본다. 혹시나 여러분이 기대하고 있는 개봉예정작이 있다면 비평 보다는 즐기는 방법을 찾는 재미로 영화를 관람하기를 권하며 다양한 시각을 가진 평론가와 기자들의 비평을 비교하며 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장점을 찾아 그 관점에서 영화를 즐길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도 여러분에게 영화를 재미있게 즐기고 감상할수 있는 방식을 '가이드'하는데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 잠시나마 영화를 재미있게 즐길줄 아는 팬의 입장이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이다. [퍼시픽림]은 내가 잊고 있었던 영화의 근원적 재미를 찾아주었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