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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VS현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13.08.05 11:15

어릴 적 읽었던 '신데렐라' 이야기의 끝은 '해피 앤딩'입니다. 새언니들과 의붓엄마의 모진 구박을 이겨낸 신데렐라는 우여곡절 끝에 왕자님을 만나 결혼에 골인합니다. 동화는 여기서 끝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왕비의 자리에도 오른 신데렐라의 앞길이 장밋빛일 것은 분명합니다.
 
'왕자와 공주는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는 동화가 가장 좋아하는 결말입니다. 위기를 극복한 왕자와 공주는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사랑을 맹세합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악당'입니다. 동화는 악당이 나쁘다는 것에는 초점을 맞추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나빠져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습니다. 가령 신데렐라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만일 신데렐라의 새언니들이 어릴적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면. 예쁘지 않은 외모 때문에 늘 무시당해왔다면, 우연히 왕자를 먼저 만나 사랑에 빠졌다면. 왕자와의 결혼을 향해 집착하는 것도, 아름다운 신데렐라를 구박하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갔을 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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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드라마와 영화들은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악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가령 최근 종영한 인기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이하 너.목.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너.목.들]의 악인은 '민준국'입니다. 앞에서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뒤에서는 살인을 저지르는 그의 모습은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공포감을 조성합니다. 이에 반하여 주인공 '수하(이종석 분)'와 '장 변호사(이보영 분)'는 사람들과 정의를 지키려 뛰어다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끔찍한 민준국의 살인 행각에도 이유는 있었습니다. 수하 아버지가 저지른 비리로 아내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법정에서 어린 장 변호사가 목격자 진술을 하는 바람에 그는 감옥에 가야 했고 치매에 걸린 노모와 이제 막 걷기 시작했던 어린 아들은 굶어 죽었습니다. 한 가족이 풍비박산 났는데, 법은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직접 복수하기로 합니다.
 
이는 영화 [더 테러 라이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테러범은 왜 이런 짓까지 하는지에 대한 윤영화(하정우 분)의 물음에 이렇게 답합니다. "아무도 내 얘기를 듣지 않잖아. 윤영화 당신도 마포대교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내 얘기 안 믿었잖아." 가장 낮은 곳에 있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까지 보듬어 안아야 하는 국가는 그들을 못 본 체 합니다. 언론도, 대중도, 그리고 국가도 그들을 지켜주지 않습니다. 결국, 테러범의 범죄 행각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처절한 외침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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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국가는 그들의 사연에 귀 기울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와 영화는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목들]에서 유일하게 민준국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차 변호사(윤상현 분)는 검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만일 23년 전에 누군가 민준국의 이야기를 들어만 줬더라면, 민준국에게도 지켜야 할 누군가가 남아있다면 저렇게 짐승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드라마 속의 '황달중 사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최후 변론에서 장 변호사는 '사법부는 쉽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며 '판결을 뒤집기 위해서는 일 년 아니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진술합니다.
 
이는 [더 테러 라이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을 불러오라'고 다소 황당한(?) 요구를 하는 테러범. 그러나 정부 관료들은 여전히 고압적인 태도만을 취합니다. 우리가 모두 한 번쯤은 뉴스에서 봤던 이야기들이 영화에서도 등장합니다. "지금 나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우리가 당신을 못 찾을 줄 아느냐?" 글쎄요. 잘못했으면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교 입학도 전에 배웠던 것 같습니다만, 권력을 얻을수록 사람들은 이 간단한 도덕을 잊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국가는 절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민심이 유리한 방면으로 돌아설까를 끊임없이 고민할 뿐이죠. 영화 [웩 더 독]에서 사상 최악의 대통령 스캔들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언론을 조작하여 민심을 돌려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부조리한 사회에서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선택지가 남습니다. 첫째,[너목들]의 민준국이나 [더 테러]의 테러범처럼 권력에 단독으로 맞서거나 둘째, 보고도 못 본 척, 당하고도 아닌 척 참고 지내거나. 그도 아니라면 셋째, 사람들을 모아 들고 일어나거나.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폭발해버린 민심, 우리는 그것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최근 작품 중 혁명을 그린 것이 바로 [엘리시움]과 [설국열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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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설국열차]는 17년째 핍박받으며 살아온 꼬리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빙하기가 다시 찾아온 지구, 사람들은 살기 위해 끝없이 달리는 기차에 탑승합니다. 머리 칸에 탑승한 1%의 사람들은 술과 마약,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부를 누립니다. 그러나 꼬리 칸의 사람들은 최소한의 인간대접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욕이나 의료지원은 물론이요 최소한의 먹을 것 조차 그들에게는 배급되지 않습니다. 결국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를 중심으로한 꼬리 칸 사람들은 기차 내 계급을 폐지하고 우리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는 주장을 하며 앞 칸으로 전진을 시작합니다. 사정은 [엘리시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너져가는 지구, 선택받은 1%의 권력층은 지상 낙원 '엘리시움'으로 이주합니다. 그러나 지구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만 기다릴 뿐입니다. 파괴된 지구에서 죽으나 권력에 맞서다 죽으나 결론은 정해진 상황, 맥스(맷 데이먼 분) 일행은 엘리시움으로의 침투를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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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는 철저히 소외당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부조리한 사회를 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시각을 따라가며 엘리시움과 지구, 기차를 보는 관객들은 사회가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혁명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죽어 나가지만 우리는 그들을 '나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처했던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더 테러 라이브]의 테러범과 드라마 [너목들]의 민준국 역시 말미에 그들의 사정을 이야기 합니다. 전반부에서 그들이 냉혹한 '사이코패스'로 비춰졌다면 후반부에서는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동정심을 유발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신데렐라를 읽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신데렐라'를 읽으며 대부분의 어린이는 새언니들과 의붓엄마를 나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아주 어릴 때부터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해 배워왔기 때문이지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옳지 않은 행동은 어떤 이유를 갖다 대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옳지 않은 일을 했던 이유에 부조리에 대한 다수의 '침묵'이 있었다면 우리는 누구를 더 나쁘다고 해야 할까요? 과연 끔찍한 행위를 그 혼자만의 범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사진=SBS콘텐츠허브, 소니픽쳐스릴리징월트디즈니스튜디오스 코리아, 롯데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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