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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리뷰: "잠시만요, 웃을준비 하고 가실게요" 작정하고 웃기는 스파이들

13.08.3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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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감독: 이호준
출연: 설경구, 문소리, 다니엘 헤니 외
 
 
충무로에는 몇가지 흥행 공식이 있습니다. 겨울에는 따뜻한 분위기의 멜로 영화가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때문에 정통 멜로는 보통 가을에서 초봄사이에 개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여름에는 로맨틱 코미디,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는 추격전이나 재난 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추석은 어떨까요? 추석에는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가 많은 관객들의 선택을 받습니다. 실제로 2001년 [조폭마누라]를 시작으로 2011년 [가문의 영광: 가문의 수난]에 이르기까지. 코미디를 중심으로 한 가벼운 영화들이 흥행성과를 이어나갔습니다. 이 흥행 신화를 올해는 [스파이]가 이어 갈 예정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파이 남편과 그의 정체를 모르는 아내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오아시스], [박하사탕]에 이은 설경구와 문소리의 세번째 조합이라는 점부터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지난 4일, 언론 시사회에서 드디어 정체를 공개한 영화 [스파이]. 과연 어떤 내용들을 담고 있을까요?
 

1. 철수와 영희,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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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와 영희, 부부가 되다?
졸리와 피트에게 '시월드'는 없잖아요!
 
철수와 영희. 대한민국 의무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국어 교과서에서 가장 많이 보았을 이름. 세대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이 쓰고 있는이 이름은 '가장 흔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순수한 소년 철수와 부끄럼 많은 소녀 영희는 어느덧 성장해서 취업을 했고, 결혼을 했고,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문제는 행복하기 위해 했던 결혼이라는 선택이 내 생에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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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얼굴에 늘씬한 몸매, 보는이에게 호감을 주는 미소까지 갖춘 영희(문소리 분)는 메이저 항공사의 잘 나가는 승무원입니다. 서비스직 종사자 답게 그녀는 남을 위한 배려와 매너가 몸에 베어 있습니다. 단 한사람, 그녀의 남편을 제외하면 말이죠. 영희에게 남편 철수(설경구 분)은 다음 생이 있다면 마주치고싶지도 않은 '웬수'입니다. 남편도 미워 죽겠는데 '시월드'까지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시어머니의 칠순잔치, 하루종일 아래로는 동서들에게 치이고 위로는 시어머니에게 구박 받으며 음식준비를 한 영희. 손님 초대까지 다 하고 한 상 거나하게 차려놨는데 남편이라는 작자는 저녁시간이 다 지나도록 연락 한통이 없습니다. 기다리는 손님들은 연거푸 헛기침을 해대고, 시어머니는 잔치상 앞에서 짜증이란 짜증은 영희에게 퍼붓습니다. 그런데 밤늦게 나타난 남편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걸신들린 것 처럼 밥을 먹습니다. 저 뒷통수를 확 갈겨버리고 싶은 영희입니다.
 
영희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을 동원하여 철수를 저주하며 전을 부치고 있던 그 시각, 철수는 직장(?)에서 근무 중이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대한민국 정 반대편의 소말리아에 '외근' 나가있는 중이였습니다. 해적들에게 납치된 우리 선원들을 구하기 위해서였죠. 자타공인 협상의 달인, 철수는 침착하게 해적 두목과 협상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지잉'하는 휴대폰의 진동이 울리기 전 까지는 말이죠. 모두가 총을 겨누는 일촉즉발의 상황, 철수는 울것같은 표정으로 전화를 받으며 말합니다. "어~ 여보~ 왜? 나? 부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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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부부가 상대방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스파이 활동을 한다는 설정의 영화는 많았습니다. 국내 영화로는 김하늘, 강지환 주연의 [7급 공무원]이 있고 헐리웃 영화로는 [트루라이즈]나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정도가 있는데요. 언뜻 비슷한 설정을 가진듯한 이 영화들에는 의외로 중요한 차이점 하나가 있습니다.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의 존과 제인, [트루라이즈]의 해리는 절대 '찌질'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대화 한 마디를 해도 카리스마 넘치고 섹시하죠. 심지어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의 스미스 부부는 부부싸움 조차도 화끈한 액션으로 승부합니다. [스파이]에서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섹시한 부부를 기대하셨다면 그 기대는 잠시 접어두시라 말하고 싶습니다. 단언컨데 이 영화에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는 없습니다. 그저 남편이 너무 미워 죽겠는 우리 시대의 흔한 아줌마 '영희'와 '마누라'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평범한 가장 '철수'가 있을 뿐이죠. 서로를 못잡아먹어 안달이지만 그래도 위급한 순간, 영희를 지키려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철수의 모습은 참 멋잇습니다. 영화를 연출한 이승준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최대한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도록 노력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독과 배우들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것 같습니다.
 

2. 캐릭터의 힘, '빵 터지는 영화'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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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 왜 이제서야!
다크호스 라미란, 야쿠르트 아줌마 없었으면 어쩔뻔
 
사실 [스파이]의 스토리는 어느정도 예측 가능한 편에 속합니다. 추석을 겨냥하여 만들어진 가족 코미디에 철학적인 메세지나 비극적인 스토리가 나올리 만무하니 말입니다. 자칫 단순해 질 수 있었던 영화를 살린 것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였습니다. 설경구, 문소리, 다니엘 헤니와 같은 주연배우부터 고창석, 한예리, 라미란 등 조연배우들까지. 모두 자신이 맡은 역할의 100%, 아니 120% 이상을 해 냅니다.
 
멜로면 멜로, 스릴러면 스릴러 못하는게 없는 설경구는 이번 작품에서 전작의 카리스마와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힘을 뺀 연기를 선보입니다. 국가와 아내. 둘 다 지켜야 하는 그는 러닝타임 내내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지경으로 뛰어다닙니다. 여기에 다른 남자에게 한눈 팔려있는 아내를 보면서도 신분의 특수성 상, 벽 뒤에 숨어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는 철수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줍니다. 아, 마냥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대다수의 우리나라 남자들 처럼 아내 앞에서는 애정 표현은 커녕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지만 사고치는(?) 아내의 뒷수습을 묵묵히 해내는 철수의 모습은 꽤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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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하면 데뷔 13년만에 처음으로 코믹연기에 도전한 문소리는 압도적인 코믹연기를 선보입니다. 기자간담회에서 그녀는 '관객분들이 코미디 연기를 어떻게 봐 주실지 모르겠다'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스스로도 자신의 변신에 놀라고 어색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이 여배우는 누구보다 완벽하게 대한민국의 평범한 '마누라' 영희를 소화 해 냅니다.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을 때에는 구수한 사투리를 쓰다가도 라이언 앞에만 서면 반짝반짝 초롱초롱 요조숙녀가 되는 그녀의 모습은 두 얼굴의 사나이 그 이상입니다. 여기에 술에 잔뜩 취해 라이언(다니엘 헤니 분)에게 업혀가는 모습은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마치 개그콘서트 '뿜 엔터테인먼트'의 "이건 제가할게요! 느낌 아니까~" 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동안 [오아시스], [가족의 탄생], [우리 생에 최고의 순간] 등의 영화에서 다소 캐릭터 강한 역할들을 도맡아 했던 문소리. 그녀의 놀라운 연기 변신은 왜 이제야 코믹 연기에 도전했는지 아쉬울 정도입니다.
 
의외의 주역은 바로 라미란이었습니다. 극중에서그녀는 이름 한번 불리지 않는 요원이지만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며 미스테리한 매력을 뽐냅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야쿠르트 아줌마'는 나중에는 그 등장만으로도 웃음을 유발합니다. 특히 라이언의 신체(?)를 보고 감탄한 나머지 "제가 잡아 오겠습니다"라고 외치는 장면은 관객들을 빵 터지게 만들기 충분합니다. 이 밖에도 대한민국을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아넣는 라이언 역의 다니엘 헤니는 '여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코미디 장르의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코믹하지 않고 멋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우수에 젖은 눈빛에 긴 팔다리로 총구를 겨누는 모습은 여심을 사로잡기에 충분 해 보입니다. 사건의 시작인 백설희 역의 한예리와 약방의 감초 고창석 역시 자신이 맡은 것 이상의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3. 그리고…, 진정 영화를 즐기고 싶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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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기대하기, 있기 없기?
단언컨데, 신나게 웃을 수 있는 영화
 
[스파이]는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웃길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이 영화 곳곳에서 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곳곳에 조금은 '무리다' 싶은 스토리가 전개되기도 합니다. 또한 스파이 영화의 효시라 불리는 [트루라이즈]와 스토리 전개가 유사하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를 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실제로 몇몇 장면은 [트루라이즈]의 장면이 연상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는 추석 극장가를 사로잡기에 충분한 영화입니다. 빵빵 터지는 웃음 속에는 2013년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씁쓸한 부분들도 과하지 않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일을 하면서도 5만원짜리 간이 영수증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말에 기뻐하는 철수나 시월드의 구박과 미운짓만 골라하는 남편때문에 속 터지는 영희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지요. 아마도 올 추석, 또 따시 허리 한 번 못펴고 전을 부쳐야 할 주부들에게 웬수같은 남편의 뺨을 때리고 배를 가격하는 여장부 영희의 모습은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우리, 잠시 엄격한 심사의 잣대는 내려놓는 것이 어떨까요? 작정하고 웃기기 위해 만든 영화이니만큼 다른 것은 잠시 접어두고 2시간동안 신나게 웃다 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것이 영화 [스파이]를 즐기는 진정한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비주얼(스케일):★★★☆
연기:★★★★
스토리:★★
연출력:★★
 
총점:★★★
이런 관객 추천: 올 추석, 빵 터지는 영화가 그리운 당신이라면!
 
 

(사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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