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소원: 평범한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
13.09.24 14:40
[소원]
감독: 이준익
출연: 설경구, 엄지원, 이레 등
개봉일: 2013년 10월 2일
122분 동안 스크린을 가득 채운 이야기가 끝나고 극장에 불이 들어왔을 때 여기저기서 박수 세례가 터져 나왔습니다. 꽤 많은 영화 시사회를 다녔지만 이처럼 '박수가 나오는' 영화는 처음이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눈화장이 다 번질 만큼 러닝타임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영화였습니다. 스크린을 가득 채웠던 파란 하늘처럼, 절망의 끝에서 찾은 한 줄기의 희망은 보는 이들의 가슴까지 따뜻하게 만들기 충분했습니다. 영화 [소원]은 우리 사회가 보듬지 못했던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을 담고 있었습니다.
1. 예고 없이 닥친 고통, 그보다 더한 현실
이제 겨우 아홉 살, 소원(이레 분)이는 산수 문제가 어렵고 같은 반 친구 영석이가 좋은 평범한 소녀입니다. 딸과 놀아주는 것보다는 소파에 누워 야구 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아빠와 공과금 고지서를 보며 잔소리하는 엄마.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었던 가족의 평범한 일상은 비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소녀 성폭행", "범인과 피해 아동의 집은 1km 반경에 위치", "피해 아동 중태"
기삿거리를 잡은 언론은 조금이라도 더 자극적인 사진을 찍으려 벌떼처럼 몰려들었고 뉴스에서는 고통스러운 단어들을 아무렇지 않게 나열했습니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법은 '말도 안 되는' 조항들을 들며 피해자들을 또 한 번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벅찬데 가족들은 그보다 더한 '현실'까지 감내해야 합니다. 아이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뭐라 변명할지를 걱정하고 아빠는 감당하기 힘든 병원비에 자존심까지 버립니다.
2. 고통의 끝에서 희망은 피어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아름다운 것은 절망의 끝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난 사람은 소원의 엄마 미희(엄지원 분)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코코몽 인형 탈을 쓰고 춤을 추는 엄마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주변 사람들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습니다. 영석 엄마는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는 미희를 대신해 두집살림을 감내하고 얄밉던 같은 반 학부모들은 모금에 기꺼이 동참합니다. 이번에는 아빠 동훈(설경구 분)의 차례. 딸에게 그리 친절한 아빠가 아니었던 동훈은 아이의 웃음을 위해 기꺼이 코코몽 탈을 뒤집어씁니다. 부끄러워 어찌할지 모르면서도 아이의 미소 한 번을 위해 기꺼이 점심도 거르고 달려가는 '코코몽'은 눈물과 웃음을 함께 자아내기 충분합니다.
이 과정에서 배우들은 온전히 역할에 자신을 녹여냅니다. 영화에 배우 설경구와 엄지원은 없습니다. 오직 아이의 고통 앞에서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동훈과 미희만 있을 뿐이죠. 특히 설경구는 전작의 카리스마와 코믹한 이미지를 모두 지운 채 평범한 대한민국의 아버지로 분합니다. 아역배우 이레 역시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3. "괜찮아, 다 괜찮아"
때로는 "괜찮아, 다 괜찮아."라는 한 마디가 세상 그 어느 말보다 큰 위로로 다가옵니다. [소원]은 러닝타임 내내 우리에게 말합니다. "괜찮다, 정말 다 괜찮다"고.
2008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조두순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등굣길의 초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 평생 가져가야 할 상처를 남긴 범인의 만행에 온 국민이 치를 떨었습니다. 극악무도한 범죄 행위에도 불구, 조두순은 고작 12년 형을 선고받으며 모두를 경악게 만들었습니다.
영화 [소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조두순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때문에 개봉 전 부터 아동 성폭행 피해자들의 상처를 들쑤시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대신 '피해자들의 내일'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을 택합니다.
스크린 속 아홉 살 소녀는 말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소녀의 바람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도 변한 것은 없습니다. 대신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인 방법으로 아픔을 극복해 나가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든 것을 시간에 맡긴 채 하나 되어 서로 치유하는 가족의 모습은 최고의 명장면이자, 영화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러닝타임 내내 배우들을 쫓던 스크린 밖 관객들에게는 어느새 이런 바람이 생깁니다. 유독 웃는 얼굴이 예쁜 소녀와, 법정에서 끝내 아이를 안고 오열하던 아버지가, 무거운 몸으로 코코몽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엄마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그들의 작지만 큰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불편하다고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저 역시 2년 만에 상업영화로 복귀하는 이준익 감독이 왜 이 주제를 택했을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으니까요. 러닝타임 내내 참 많이 안타까우실 겁니다. 아마 자녀가 있는 부모 관객이라면 더욱 보기 힘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슬픈 영화가 아닙니다. 적어도 소원이네 가족들의 '내일'은 비빔국수 말며 투닥거리고 소파에 길게 누워 야구 보던 몇 달 전의 어느 날과 다를 바 없을 테니까요. 이준익 감독의 말처럼 눈물과 함께 '피식' 나오는 행복한 웃음을 막지 못하실 겁니다.
비주얼:★★★
연기(목소리):★★★★
스토리:★★★★
연출력:★★★★☆
총점:★★★★☆
연기(목소리):★★★★
스토리:★★★★
연출력:★★★★☆
총점:★★★★☆
관객취향: 올 가을, 따뜻한 감성이 필요한 당신이라면!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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