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왕] 리뷰_ 공감은 '최고', 이야기는 '글쎄'

13.10.10 19:30

[밤의 여왕]

감독: 김제영

출연: 천정명, 김민정 외

개봉: 2013년 10월 17일

"오빠, 핸드폰 좀 볼게"
"에이, 핸드폰은 왜. 오빠 그런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헐,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 오빠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단언컨대, 연애를 하는 커플이라면 한번쯤은 겪어 봤을 법한 상황입니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커플부터 수년째 연애중 인 장수 커플까지. 상대방의 사생활에 대한 궁금증은 사랑한다면 한 번쯤은 궁금해지는 '판도라의 상자'입니다. 그리고 그 사생활을 숨기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해명하지 못할 때 '사랑과 전쟁'은 시작됩니다. 전쟁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커플은 다시금 뜨거운 열정에 불타오르고, 그렇지 못한 커플은...... 안타깝게도 두 명의 솔로로 재탄생합니다.

그런데 여기, 열지 않았으면 좋았을 '판도라의 상자'를 연 남자가 있습니다. 법 없이도 살아갈 정도로 착하고 순진한 영수(천정명 분)는 세상에서 아내 희주(김민정 분)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마누라 바보'입니다. 예쁘고 착한데다가 번역 일을 할 정도로 똑똑한 아내는 영수의 자랑입니다. 남부러울 것 없었던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던 어느 날, 영수는 우연히 앨범 하나를 보게 됩니다. 그 안에는 천사 같았던 아내의 충격적인 과거가 들어있습니다. 이미 열려버린 판도라의 상자, 그 끔찍한(?) 진실 앞에서 과연 영수와 희주 부부는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요?

김민정과 천정명의 두 번째 만남으로 큰 화제가 되었던 영화 [밤의 여왕]. 영화는 연애해본 사람이라면 겪어보았을 '사생활'과 '의심'을 맞닥뜨린 남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미 2005년 드라마 '패션 70S'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춰 보았던 커플답게 두 사람의 케미(남녀주인공 사이의 화학적 작용을 이르는 말)는 가히 최고입니다. 신혼집의 배경으로 잠깐씩 비치는 영수와 희주의 결혼사진에 '진짜 잘 어울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연예계 대표 잘생기고 예쁘다고 손꼽히는 남,여배우인만큼 알콩달콩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 지어집니다.

여기에 김민정과 천정명의 연기변신도 다소 파격적이었습니다. [영광의 재인], [신데렐라 언니] 등에서 강인하고 반항적인 역할을 주로 맡았던 천정명은 이번 영화에서 힘을 쭉 빼고 '찌질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음식값을 아끼기 위해 소개팅 도중에 할인카드를 가지러 가는 만행(?)을 저지르고,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물쭈물 거절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했다며 괴로워하죠. 영화 속 대사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송아지 같은 눈망울을 하고' 상대방을 쳐다보는 영수는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남자입니다.

그런가 하면 김민정 역시 '흑역사를 가진' 현직 현모양처 희주를 맡아 변신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미 [음란서생]에서 색기 넘치는 후궁을 열연한 바 있는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 '색기'에 끼를 더해 전직 댄싱퀸으로 완벽하게 분합니다. 특히 이효리의 '텐미닛'에 맞춰 몸을 흔드는 김민정은 이전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 여배우가 맞나 하는 의심까지 들게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딱 여기까지'이라는 사실입니다.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기자기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을 그린 초반부는 참 예뻤는데, 중반부에 이르러 갈등을 겪게 되면서 급격하게 힘을 잃어 갑니다. 여기에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스토리 역시 예상했던 것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연출을 맡은 김제영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예쁘고 멋진 배우들과 함께 작업한 만큼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고 싶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연애하는 커플이 아닌, 결혼 3년 차 어느 정도 서로에 익숙해진 부부를 그리고 있는 만큼 조금 더 현실성 있는 에피소드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남편의 양복 주머니에서 클럽 전단이 수북이 나왔는데 눈물만 예쁘게 또르르 흘리는 아내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쯤되면, "너 죽고 나 사네"라던가 "더 이상은 못살겠네!" 혹은 "법원 갑시다." 정도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여기에 희주 역할이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그려졌다는 것도 영화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부분입니다. 시놉시스에서 희주는 3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여자입니다. 하지만 정작 영화에서는 이러한 모습들이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희주의 활약이 눈에 띄는 부분은 거래처의 사장에게 맞서는 장면뿐입니다. 그나마도 친구들의 도움을 받죠. 희주의 캐릭터가 조금 더 구체적이고 능동적으로 그려졌다면 영화의 흐름이 예측 가능한 곳으로 흐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진하게 남깁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판도라'는 금단의 상자를 열어 인류에게 질병과 죽음을 안겨줍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요. 가장 가까운 관계인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도 분명 몰랐다면 더 좋았을 불편한 진실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고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면 솔직하고 용기 있게 맞서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 속의 영수와 희주처럼 말이죠. 여러 가지로 아쉬운 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이 영화에 공감하는 것은 영수와 희주의 이야기가 연애하며 혹은 결혼 생활에서 한 번쯤은 겪어보았던, 너와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밤의 여왕]은 오는 17일 관객들을 찾아옵니다.

*단평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했던 로맨틱 코미디!

비주얼:★★
연기: ★★★
스토리:★★★
연출력:★★

총점:★★☆
(But TV,VOD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