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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쉬 걸] 리뷰:'그'가 '그녀'가 되기까지의 아름다운 여정★★★★

16.02.1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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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쉬 걸,2016]
감독:톰 후퍼
출연:에디 레드메인, 알리시아 비칸데르, 엠버 허드,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줄거리
1926년 덴마크 코펜하겐. 풍경화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에이나르 베게너(에디 레드메인)와 야심 찬 초상화 화가인 아내 게르다(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부부이자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파트너이다. 어느 날, 게르다의 아름다운 발레리나 모델 울라(엠버 허드)가 자리를 비우게 되자 게르다는 에이나르에게 대역을 부탁한다. 드레스를 입고 캔버스 앞에 선 에이나르는 이제까지 한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날 이후, 영원할 것 같던 두 사람의 사랑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고, 그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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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성전환자 에이나르 베게너의 이야기를 영화화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토마스 알프레드슨과 [초콜렛]의 라세 할스트룀 감독이 이 작업에 도전하려다 실패한 바 있었으며, 니콜 키드먼, 마리옹 꼬띠아르, 샤롤리즈 테론 등 유명 여배우들이 이 배역을 탐냈지만, 번번이 그녀들의 손을 떠나야만 했다. 남성에서 여성이 된 베게너의 이야기는 분명 매력 있는 소재지만, 이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정의하느냐는 분명 민감하면서도 부담이 가는 내용이다.  

바톤을 이어받은 톰 후퍼 감독은 에이나르 베게너에 대한 정의를 색다른 관점에서 다루려는 기교를 부리거나 확실한 주제관을 드러내지 않은 채, 오로지 그녀의 시각에 담긴 이야기를 전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자연히 그 역할은 주연인 에디 레드메인과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몫이 된다.   

[대니쉬 걸]이 취하는 이야기 형식은 에이나르와 그의 아내 게르다의 시점을 오가는 방식이다. 에이나르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는 그만이 지닌 섬세한 정서와 감성을 시각화해 서서히 본인의 '성(性)정체성'을 찾게 되는 여정에 초점을 둔다. 반면 게르다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는 로맨스에 가깝다. 에이나르를 여장화한 그림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예술인으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지만, 사랑하는 이의 고통과 최후를 멀리서 지켜봐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정체성 드라마와 로맨스 장르가 이중 변주되는 [대니쉬 걸]의 이야기는 애틋함을 더해주는 동시에 극 중 배역들의 감성 연기에 자연히 빠져들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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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옷을 만지작거리며 느끼던 호기심을 자아를 발견하는 용기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섬세하게 표현한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는 이 영화의 전체적 전개를 압축한 것 과도 같다. 여성의 옷, 나신, 행동을 연구하며 스스로 여성임을 자각하는 과정은 내면까지 여성화가 되어가는 그의 심리를 치밀하게 반영한 장면이다. 

단순한 여성 분장에 그치지 않고, 내면의 성(性)까지 바꿔버린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는 그 자신은 물론 남성인 에이나르를 완벽한 여성 릴리로 변환하는데 성공한다. 극 중 릴리는 수술이라는 과정을 통해 여성이 되었지만, 스스로가 선택한 신념을 지키려는 강인한 정신력을 강조하며 내면적으로 여성이 되었음을 증명해준다.  

이에 비견되려는 듯 사랑하는 아내의 시선에서 남편의 혼란을 바라봐야 하는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열연과 그녀가 창조해낸 게르다의 존재도 꽤 흥미롭다. 게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야만 하는 비운의 여성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예술적 명예를 지키려다 남편의 성전환에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면서, 그의 정체성을 돕는 유일한 벗이기도 하다. 어쩌면 에이나르와 게르다의 관계는 부부인 동시에 서로의 운명을 결정지은 '운명 공동체적'인 관계로, 에이나르 본인의 내면에 속한 여성성의 또 다른 자아처럼 느껴진다. 

이렇듯 서로의 아픔을 감싸며 운명을 받아들이는 두 연인의 순응하는 과정을 통해 [대니쉬 걸]은 '사랑'에 대한 정의를 다르게 표현하려 한다. 남녀간의 섹스와 서로를 아끼는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닌 이해와 공감을 통한 정신적인 사랑이 이 영화가 강조하고 싶었던 본 메시지일 것이다. 

그 점에서 본다면 [대니쉬 걸]의 주제관은 에디 레드메인의 전작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연상시킨다. 사랑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와 '마음의 벽'을 허물지 못한 채 각자의 길을 선택하게 되는 부부의 선택을 아름답게 그려낸 연출의도와 스티브 호킹과 에이나르 베게너라는 실존 인물의 시선을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의 존재는 두 영화를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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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적인 20세기 초반 코펜하겐의 풍경, 당시 예술인들의 혼이 깃든 그림과 세트장을 통해 인물의 감성과 정서를 대변하는 미장센은 [대니쉬 걸]의 가장 눈 여겨야 할 부분이다. 특히 에이나르가 그림으로 남긴 고목(古木)과 오랫동안 응시한 바닷가의 경치는 그 또는 그녀 자신이 오랫동안 남기고 싶어 한 아름다움으로 상징된다.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정서가 담긴 [대니쉬 걸] 이지만,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 소재를 정서적 관점으로만 추구했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면서 냉철한 관점을 무시한 것은 누군가에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에이나르가 자신의 남성성과 게르다가 아내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과정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논란이 될 만하지만 이를 감성적으로 넘기려는 방식도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서적인 측면을 통해 정체성과 내면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와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연기는 [대니쉬 걸]의 단점을 충분히 덮어줄 장점으로 기억 될 만 하다. 에이나르를 더는 남성이 아닌 여성 릴리로 기억하듯이 말이다. 

[대니쉬 걸]은 현재 절찬리 상영 중이다.  
 
☞관련기사: [대니쉬 걸]의 비화! 실제 이들의 운명은?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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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UPI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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