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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기다리며]리뷰:'연쇄 살인'에 집착한 한국형 스릴러의 재앙★☆

16.03.0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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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기다리며,2015]
감독:모홍진
출연:심은경,김성오,윤제문,정해균

줄거리
아빠를 죽인 범인을 쫓는 소녀 ‘희주’ 앞에 유사 패턴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15년을 기다린 희주의 계획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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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의 영상 콘텐츠는 '스릴러' 열풍에 빠졌다. 근년도 개봉한 작품들의 목록을 본다면 스릴러 영화들이 대다수이며, 인기리에 방영 중인 tvn 드라마 [시그널]도 추적 스릴러를 지향하고 있다. 

새로운 소재의 콘텐츠의 등장을 요구하는 젊은 관객과 시청자가 증가하는 추세이며, 그에 따른 기대에 상응하는 작품들이 연이어 기획/제작에 들어가고 있다. 스릴러는 이러한 기대치를 충족시켜줄 핵심적인 장르로 치밀한 이야기 전개, 다양한 인물구성, 시종일관 유지되어야 할 긴장감과 반전을 통해 완성도와 흥미를 높여준다. 

그래서 스릴러 영화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각본과 연출에 있어서 치밀함과 높은 완성도를 요구하는 만큼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많다. 그렇기에 스릴러 분야의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여러 번 각본 검토를 해야 하고, 감독의 연출이 잘 되고 있는지를 제작자와 프로듀서들이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한국형 스릴러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의 탄생을 반기는 측면에서 매우 반갑고 좋은 변화다. 하지만 이러한 열풍만큼 제작과정에 있어 아직 우리나라의 스릴러 영화를 만드는 제작,연출진에게는 신중함과 치밀함을 지녀야 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것 같다.

이를 반증하는 것이 근래 제작된 대부분의 한국형 스릴러 영화의 소재가 연쇄살인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2015년 3월에 개봉한 [살인의뢰]를 시작으로 [악의 연대기][오피스][함정][특종:량첸살인기][그놈이다]를 비롯해 상영중인 [섬.사라진 사람들]까지 1년 사이 개봉한 연쇄살인을 소재로 한 스릴러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연쇄살인을 소재로 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중에는 나름의 개성과 독특한 설정을 보인 작품들도 있다. 다만 지금까지 개봉한 이런 소재의 영화들이 보여준 색채와 방향이 너무 뻔하다 싶을 정도로 일관적이라는 것이다. 연쇄살인이라는 소재 작품이 지속해서 제작된 나머지 그 방식과 패턴에 관객들은 어느 정도 적응되었다. 결국, 특별하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이야기 면에서는 한계가 보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살인이 영상을 통해 그려진 비주얼에 더욱 집중될 수 밖에 없다. 

결국 비슷한 소재에서 튈 수 있는 방법은 더욱 자극적인 요소를 보여주는 방법이며 그로 인해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과 설정이 각본의 장점을 덮어버리게 된다. [널 기다리며]는 기본을 망각한 채 '연쇄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요소에 집착하는 한국형 스릴러가 TV의 '막장 드라마'처럼 종잡을 수 없는 기형적인 장르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재앙과도 같은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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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기다리며]는 연출을 맡은 모홍진 감독이 과거 각본을 맡은 [우리 동네]라는 작품을 연상시킨다. 

[우리 동네]의 줄거리와 인물 구도는 연쇄 살인범과 추리 소설가가 이를 모방해 살인을 저지르며 격돌한다는 내용을 갖고 있다. 악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는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 문제는 악인이 등장하는 영화인 만큼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인데, [우리 동네]가 다루는 대립 방식은 두 인물의 살인 게임이다. 

인물에 대한 정의와 특출난 개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강조하기보다는 누가 더 잔인하게 죽이고 잡히지 않냐는 식의 지나친 살의가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두 중심인물이 모두 광기와 살의에 빠진 인물인 만큼 이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주며 안정된 전개를 이어줄 캐릭터가 필요한데, 이 역할을 맡은 경찰 반장 캐릭터의 존재감은 미미하고 경찰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무능하다. 결국, 관객이 이 영화를 통해 흥미 있게 봐야 할 부분은 살의에 빠진 두 주인공의 잔인한 살인 게임이다. 

왜 살인을 하고, 이 살인 게임을 통해서 흥미 있게 봐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아무런 여운이나 철학, 메시지마저 없다. 오로지 누가 더 잔인한 살인을 하고 결국 누가 죽느냐에 긴장감을 갖고 봐야 한다고 보는 이를 고문시키는 거나 다름없다. 아무런 기분 나쁜 살인의 연속을 다룬다 해도 그 방식에 이유나 흥미로운 대립 설정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그런 거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애석하게도 [널 기다리며]는 [우리 동네]의 이러한 잘못된 방식만 빌린 확장판이라 해도 무관할 정도다. 

두 살인범의 살인 게임에 부모를 잃은 소녀가 성장해 복수를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공소시효로 풀려난 연쇄살인범이 자신이 범인으로 몰리자 이유 없는 연쇄 살인을 저지른다. 세 명 모두가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는 피칠갑 설정과 묘사가 난무하는 가운데 이 영화의 흐름을 잡아줘야 하는 경찰 캐릭터 대영(윤제문)은 존재감이 무색한 인물이다.

추리나 근거로 사건을 수사하기보다는 오로지 직감만 믿고 폭력을 행사하는 감정적인 캐릭터는 차라리 없는 게 나을 정도였다. 살인범들의 살인 게임에 너무나도 쉽게 농락당하는 경찰들은 그야말로 무능한 존재들처럼 그려져 이들과 대립할 상대들로 볼 수 없을 정도다. 정상적인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는 이 영화에 볼 거라고는 세 살인범의 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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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과악 이분법조차 전혀 없는 이들의 무의미한 대결은 분명 흥미로운 설정이 될 수 있지만, 이상하리만큼 그러한 여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이 벌이는 살인이 서로를 잡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살의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동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무의미한 희생자들이 속출하게 된다. 살인에 대한 정의를 단순한 '게임'으로 만들어 버린 채 그에 대한 아무런 정의를 내놓지 않는다. 이들이 행하는 행위를 복수라고 정의하지만 캐릭터들 자체가 비정상적이고 너무나도 두서없이 진행된 탓에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복수를 위해 이 둘을 잡으려는 희주(심은경)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이 캐릭터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확실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 캐릭터의 무의미한 행동과 존재감에 의문만 느껴진다. 이 모호한 중심 캐릭터 설정 탓에 심은경의 연기마저 불분명하게 보여 [노다메 칸타빌레] 이후 최악의 선택이었음을 보여주었다. 

김성오와 오태경이 선보인 살인범 캐릭터는 분명 악랄했으나, 거기에서만 그치고 만다. 물론 살인범 역할에서는 충실했으나 그다지 새로웠거나 눈에 띄게 잘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이들이 돋보이기 위해서는 이들을 의심하고 추적해야 하는 윤제문이 연기한 경찰 반장 대영의 존재가 돋보여야 했지만, 전자에 언급한 대로 무능하고 감정적인 모습만 보여줘 극의 흐름에 방해만 주고 만다. 

그 때문에 관객들이 이들의 대결을 통해 느껴야 하는 것은 흥미나 카타르시스가 아닌 기분 나쁜 잔인성이다. 전자에서 언급한 대로 각본을 통한 긴장감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보다는 '자극'에 초점을 맞춘 잔인성에 신경을 쓴 것이 이 결과를 낳았다. 

아무리 잔인한 영화여도 어느 정도 긴장감 이라도 유지되어야 하는데, 이를 만들어 줘야 하는 각본은 수많은 허점을 드러내며 흥미를 잃어버리게 한다. 

경찰을 바보로 만들어버린 작위적인 설정부터, 대립해야 하는 두 인물을 동일한 싸이코로 만들어 버린 구도, 그리고 그 인물들 사이에서 정상적인 위치에 선 채로 안정된 이야기를 받쳐줘야 하는 중심 캐릭터의 부재로 인해 관객들은 108분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긴장감과 흥미라고는 전혀 없는 이 무의미한 살인 게임을 봐야 하는 불행한 희생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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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기사를 다소 길게 작성한 것은 [널 기다리며]와 같은 영화를 중소제작사가 아닌 메이저로 우뚝 선 NEW가 제작/배급을 맡았다는 점에서다. 나름 신중함을 보이며 CJ, 롯데, 쇼박스와 맞먹을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들이 어째서 이런 기본조차 되지 않은 작품의 제작/배급을 맡게 된 것일까? 그 정도로 한국의 영화 제작 시스템이 신중함과 치밀함을 상실했나? 물론 메이저 영화들이 배급을 한다고 해서 망작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사람인 만큼 실수하는 작품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높아진 관객의 수준과 경쟁자인 헐리웃 영화의 반격이 심해지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작품들을 만드는 데 신경을 써야 하는 와중에 [널 기다리며]는 메이저 제작사가 취할 수 있는 실수라 보기에는 힘든 선을 넘어버린 '낭비'에 가깝다.  

단지 연쇄 살인 이라는 설정이 담겨 있어서 이 영화에 관객들이 몰릴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톱 배우들을 캐스팅 했다고 해서 흥행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에 어울리는 완성도가 나와야 입소문을 통해 흥행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 블록버스터가 아닌 일반 영화들이 취할 수 있는 흥행 공식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좋은 각본과 좋은 연출자의 존재며 이를 발굴해야 하는 것이 영화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메이저 제작사의 또 다른 의무다. 

[널 기다리며]는 그러한 의무를 저버린 채 '연쇄 살인' 스릴러의 제작 열풍에 안주해 특별함 조차도 보여주지 못한 메이저 제작/배급사의 안일함을 보여준 사례다. 실패를 하더라도 무언가 얻을수 있는 교훈과 여지가 있어야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것 조차 발견할 수 없는 참담한 결과물이다. 

[널 기다리며]는 3월 10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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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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