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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 린제이 로한과 전미를 뒤흔든 논란의 사건까지… 감옥행 헐리웃 스타 3부

16.04.07 18:34


☞관련기사:'영원한 흑역사' 감옥에 갔다온 헐리웃 스타들 1부
☞관련기사:'영원한 흑역사' 감옥에 갔다온 헐리웃 스타들 2부

1."약이 문제야" 옷벗고 노래부르다 체포된 매튜 매커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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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그샷 출처: crime.about.com

헐리웃의 연기 천재 매튜 맥커너히도 젊은 시절 마리화나로 사고를 친 적이 있었다. 1999년 10월 25일 텍사스주 오스틴. 매튜의 이웃은 그의 집에서 너무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며 경찰에 신고한다. 당시 시간은 새벽 2시, 신고받은 경찰은 그의 집에 주의를 주려다가 황당한 모습을 보게 되는데, 매튜 매커너히가 친구들과 알몸 차림으로 봉고 드럼을 연주하며 노래 부르고 춤추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행각의 원인은 마리화나였으며, 이로 인해 매튜는 경찰에 체포되다 50달러를 내고 감옥을 나와야 했다. 


2.배우자를 학대한 미키 루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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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시절의 크게 추락하다 다시 멋지게 재기한 미키 루크에게 있어 가장 지우고 싶은 오점을 묻는다면 아마도 둘째 부인인 캐리 오티스를 폭행한 사건일 것이다. 캐리 오티스와는 1989년 작품 [와일드 오키드]에서 함께 공연한 배우로, 출연 이후 염문설을 뿌리게 되지만 당시 아내가 있었던 미키 루크는 불륜을 저지른 것과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혼 후 1992년 캐리 오티스와 재혼하게 되지만, 1994년 오티스와 싸우다 폭행하게 되고, 경찰에 기소되고 만다.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상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이기에 당시의 일을 부끄럽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3.감옥에 까지 '민폐'를 끼친 '악동'중의 악동 린제이 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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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하면 빠질수 없는 유명인을 대자면 당연히 인물을 빼놓을수 없다. 스캔들 면에서 끊이지 않는 이슈를 생산하고 있는 그녀답게 감옥에 관한 일화 또한 흥미롭다.

2010년 약물중독 상태로 운전한 로한은 보호관찰 명령을 받게 되지만, 이마저도 위반하며 90일간의  징역형을 명령받게 된다. (당시 교도소가 꽉 찼다는 이유로 예정일 보다 14일 늦게 수감된다.)

그렇다면 그녀의 수감 생활은 온전한 편이었을까? 당시 로한의 소식을 전한 피플지의 기사에 따르면 로한은 감옥에서 다른 여죄수들과 다른 특별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죄수의 친척이 전한 소식에 의하면 "교도관이 린제이 로한에게 옷, 음식, 물건을 갖다 주거나, 로한 스스로 움직일 때면 나머지 죄수들은 활동금지 상태에 놓이며, 감방의 문을 잠가 버렸다."라고 폭로했다. 이 때문에 감옥내 여죄수들과 교도관들마저 그녀에게 짜증과 욕설을 내뱉으며 불만을 자주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특별대우 논란이 거세지자 경찰 당국이 전면 부인 하는 서명을 발표하면서, 한동안 그녀의 감옥 생활과 관련한 진실 논쟁이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린제이 로한에게 있어 감옥생활 자체가 고역이었을까? 수감생활 이후에도 여러 번 사고를 치며 사회봉사활동 명령을 끊임없이 받게 된 그녀는 "감옥에 가느니 자살하겠다.""감옥에 가느니 모나코로 가버리겠다."라고 말하며 감옥과 관련된 말이 나오면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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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감옥에 가기 전 촬영한 비키니 화보(출처:허핑턴 포스트)


4.의외로 사고를 많이친 아저씨, 우디 해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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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의 베테랑 배우 우디 해럴슨도 여러 번의 각종 사건사고의 중심에 놓인 인물. 대부분 큰 사고가 아닌 자잘한 사건들이 대부분 이어서 '악동'축에는 끼지는 못했다.

이중 가장 먼저 일탈한 1982년 저지른 사건이 조금 황당한데 죄목은 '무질서한 행위와 저항'이었다. 교통 체증이 한창인 오하이오주의 고속도로에서 해럴슨은 기분이 좋았는지 도로변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도로 한가운데 벌어진 그의 행동이 엄청난 교통 체증을 불러오자 수많은 시민들이 분노하기 시작했으며, 경찰은 이런 그를 제지하려다가 저항하는 그와 실랑이를 벌어야만 했다. 

이후 1996년에는 마리화나를 재배하다 체포당했으며, 2002년에는 영국 런던에서 운전하다 택시와 부딪힌 후 도주하다 체포당하게 된다.

P.S: 우디 해럴슨의 아버지는 유명한 살인 청부업자인 찰스 해럴슨으로 1979년 연방법원 판사를 살인한 혐의로 콜로라도의 슈퍼맥스 감옥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다 2007년 감옥에서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5.역사에 남을 도주극과 희대의 판결을 남긴채 몰락한 O.J 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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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J 심슨(본명:어렌셀 제임스 심슨)은 1970년대 최고의 미식축구 스타로 미국 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당시 그의 인기가 너무 높은 나머지 비시즌 중에는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는데, [타워링][카프리콘 프로젝트][리벤저][카산드라 크로싱][총알탄 사나이]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헐리웃 최고의 스타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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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브라운과 함께 (출처:피플)

심슨은 1980년 선수 생활에서 은퇴하게 되고, 1985년 웨이트리스 출신의 금발 미녀 니콜 브라운과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첫째 아내와는 셋째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이혼했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결혼 생활은 1992년 이혼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2년 후인 1994년 6월 13일 0시 9분. L.A 최고급 주택가들이 즐비한 브랜트우드 콘도미니엄에서 요란하게 울부짖고 있는 개들의 소리에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게된 동네 주민들이 개들이 짖고 있는곳으로 달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끔찍하게 난자당한 백인 여성과 남성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여성은 심슨의 두 번째 전처 니콜 브라운이었으며, 남자는 그녀의 연상 애인 로널드 골드만 이었다. 

국민적 스타의 전처와 그녀의 애인의 죽임이라는 이슈만으로도 매스컴의 관심은 급격하게 높아졌고, 취재 경쟁도 치열했다. 자연히 그 시선은 O.J. 심슨에게도 이어지게 되는데,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생방송으로 보도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런 와중에 밀도 높은 과학 수사를 진행한 경찰이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혈흔과 증거물을 토대로 심슨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자, 심슨은 자신의 차를 타고 도주한다.

하지만 헬기를 동원하면서까지 그의 일상을 감시한 뉴스 매체들이 이를 실시간으로 중계했고,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이 도주극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경찰과의 기나긴 도주극을 벌인 심슨은 결국 체포되었고,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정해진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듯했다.

▲CNN을 통해 방영된 'O.J.심슨 도주극' 편집분(체포 과정까지 등장)

그러나 심슨은 이에 지지 않으려는 듯 당시 금액으로 최고액인 600만 달러로 미국 최고의 변호인들을 고용해 형사 재판에서 무죄를 끌어내려 한다. (드림팀으로 불린 이 변호인단에는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변호사 로버트 카다시안이 있었는데, 바로 킴 카다시안의 아버지로 심슨의 절친한 친구였다.)

경찰과 검찰이 내세운 과학적인 증거는 심슨이 유력한 용의자임을 증명하고 있었기에 변호인단은 이 사건을 다른 관점으로 몰고 가려 했다. 

당시의 과학적 수사가 기술적으로 처음 시도한 부분들이 많았기에 이 부분에 대한 오류를 내세우며 과학수사의 가치를 떨어뜨리게 된다. 그러면서 변호인단은 당시 수사관들이 인종차별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폭로하며, 흑인인 O.J. 심슨을 모함하기 위해 증거물을 조작했다고 여론몰이에 나서게 된다. (당시의 수사를 진행한 수사관의 과거 흑인 용의자 폭행한 전과와 평소 발언이 이 여론 몰이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현장서 발견된 심슨의 것으로 추정되는 장갑은 법정 현장에서 심슨이 직접 착용했으나 맞지 않았고 이 또한 경찰이 사건을 조작했음을 보여준 단서가 되었다.)

이러한 변호인들의 의도는 사건에 관심을 갖게된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거센 논란을 불러오게 된다. 변호인단의 의견에 동조한 흑인들이 O.J. 심슨의 무죄를 주장하는 운동까지 진행하기에 이르렀고, L.A . 폭동에 이은 흑인들의 대규모 움직임을 우려한 미국 내 사회 여론도 심슨에 대한 동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심슨은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으며 감옥을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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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현장에 발견된 장갑을 착용하는 O.J.심슨(hellogiggles.com)

하지만 니콜 브라운에 대한 지속적인 폭행과 그로 인한 은폐 행위까지 알려지게 되면서 그의 인기와 명예는 실추된다. 이 사건으로 헐리웃과 연예계는 더 이상 그를 캐스팅하거나 부르려 하지 않았다. 

니콜의 유족들은 민사 소송을 통해 심슨을 고소했으며, 1997년 민사 배심에서 만장일치로 구타와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수많은 금액을 물어줘야만 했다. 이로인해 심슨은 빈털털이가 되었으며, 생계를 위해 강도질 까지 하는 몰락한 스타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국민 스타에서 밉상으로 전락한 심슨은 이후 여러 번의 기행으로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자신이 니콜을 죽였다는 뉘앙스가 담긴 실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3월 심슨이 살았던 옛집에서 피 묻은 흉기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사건에 대한 재조명이 다시금 이뤄지는 듯싶었으나, 헌법에 규정된 '이중 처벌 금지의 원칙'에 의해 심슨을 다시 기소하기란 쉽지가 않은 상황이다. 

P.S: 당시 심슨의 사건을 무죄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인물은 대만 출신의 뉴헤이븐대 헨리 리 교수였다. 심슨 사건 외에도 케네디암살사건 진상 재조사위원회에 참여한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니콜 브라운 살해 사건의 진범으로 심슨의 아들(첫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당시 심슨의 아들은 심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으며, 폭력적인 성향도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당시 발견된 장갑과 DNA 증거들 모두 아버지 심슨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아들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었다. 프로파일러 표창원 교수와 과학수사 전문가 유제설 교수도 '한국의 CSI'(출판사:북라이프)라는 도서를 통해 심슨의 아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니콜 브라운과 로널드 골드만 살인사건의 진범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자료참조
crime.about.com
www.jonhs.com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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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rime.abou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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