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웹툰: 예고살인]리뷰_ 참신함 그러나 2% 아쉬운
13.06.17 18:54
올 여름, 극장가를 강타한 소재는 바로 '웹툰'입니다. 500만 관객을 넘어선 [은밀하게 위대하게]부터 아빠의 청춘을 그린 [전설의 주먹], 다음 최다 조회수에 빛나는 [미생]까지. 영화는 웹툰을 그대로 차용 해 오기도 하고 아예 다른 스토리라인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가령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경우에는 몇몇 장면에 배우들 뒤에 웹툰 그림이 등장하곤 하죠. 그러나 위 영화들에서 '웹툰'은 원작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하지만 [더 웹툰: 예고살인]은 좀 다릅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바로 웹툰 그 자체입니다. 참혹한 시체가 발견된 의문의 사건 현장. 아무런 단서도 없어서 모두 자살이라 결론짓지만 담당 형사인 기철(엄기준 분)은 본능적으로 타살임을 감지합니다. 조사 중 그는 공포 웹툰의 교주로 불리는 작가 지윤(이시영 분)의 웹툰 그대로 살인이 발생한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창작에 대한 스트레스로 끔찍한 환영에 시달리던 지윤. 그는 자신의 웹툰은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며 사건과는 거리가 멀다고 혐의를 부인합니다. 그러나 곧 두 번째 피해자가 나타나고 희생자를 막기 위해 병원을 찾았던 지윤은 졸지에 살인범으로 몰립니다. 그러나 조사를 거듭할 수록 점점 사건은 미궁속에 빠져들고 희생자는 늘어나는데...... 과연 이 사건의 배후에는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는 걸까요?
1.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파노라마처럼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이 펼쳐진다고 하죠. 그 중 가장 오랜 시간 생각나는 장면은 어떤 것일까요. 행복했던 순간? 아니면 가장 슬펐던 순간? 모두 답은 다르겠지만 저는 '가장 죄스러운 순간'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미안함이라는 감정은 나의 과실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죠.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잘못을 하며 살아갑니다. 상대방이 얻는 피해는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그 순간의 죄의식은 그 잘못이 크건 작건 같을거라 생각합니다. 끝내 고백하지 못한 죄들은 가슴 속에 남겠지요. 그리고 세월이 지나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희석될겁니다. 내가 받은 피해는 절대 잊지 않아도 내가 누군가에게 준 피해는 잊는 것이 우리 대다수의 특성이니까요. 그런데 이 죄의식이 부메랑이 되어 여러분께 돌아온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다 잊었다, 아무도 모른다 생각했던 나의 치부가 제 3자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면. 그리고 그 날의 기억이 나의 목숨을 노린다면.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욕심'이지요. 가정을 만들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싶다는. 그 욕심은 그들에게 '정당함'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유혹을 합니다. "그래, 이 정도 했으면 할만큼 했다. 그러니까 이번 한번만 눈감으면 된다. 나만 모르는 척 하면 된다." 그 욕심은 비단 희생자 뿐만 아니라 주인공 기철과 지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욕심을 냈습니다만, 그 욕심은 결국 자신을 옭아매는 올가미가 되죠. 가령 잘나가는 웹툰작가 지윤의 삶은 언뜻 보기에 부러움을 살만 합니다. 실내 수영장까지 갖춰진 넓은 집에 웹툰 그리기에 딱 맞게 꾸며진 환경, 그녀의 작품만을 기다리는 팬들까지.
하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지윤은 썩어가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악몽을 꾸고,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를 듣고, 살인범으로 몰리면서 말이죠. 얼마나 끔찍한 고통일까요. 눈 앞에서 죽음을 목격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오히려 지윤은 '행복맨션'에 살 때가 더 행복했을 겁니다. 비록 지저분한 공간에 수입도 없었지만 그 시절에는 꿈이 있었고 창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고, 무엇보다 '친구'가 있었으니까요. 다 쓰러져가는 빌라지만 그 안에는 진정한 '행복'이 있었기에 '행복맨션'이라 이름붙여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2. 웹툰, 양날의 검
'웹툰'은 참신한 도전임과 동시에 관객들의 공포감을 극대화 시켜주는 소재이기도 했습니다. 중간중간 오버랩되는 웹툰과 현실은 관객으로 하여금 보여주는 것 이상의 참혹한 살인사건 현장을 상상하게 했으니까요. 공포감을 조성하기에도 압권이었습니다. 특히 첫 번째 피해자인 포털사이트 편집장이 죽는 장면은 '웹툰'이라는 영화의 소재를 가장 잘 활용한 사례라 생각합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컴퓨터가 혼자 켜지고 그 안에서 웹툰이 자동 재생됩니다. 컴퓨터 화면에서 순간 순간 바뀌는 웹툰의 장면,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을 때 공포에 질리는 편집장의 얼굴. 이미 잠겨버린 문으로 달려가는 편집장, 현실의 그녀와 똑같이 "살려달라"외치며 문을 두드리는 웹툰 속 주인공. 장면들이 절묘하게 오버랩되며 공포를 만들어냅니다. 영화 초반의 이 장면은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빨아들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자 시사회 당시 몇몇 분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기도 했고요. 단순히 웹툰을 영화로 옮겨놔서 많은(?) 혹평을 받았던 [은밀하게 위대하게]와는 사뭇 다른 행보였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 역시 많습니다. 영화는 중반부를 지나며 다른 공포 영화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스토리로 변합니다. 지윤의 과거와 일련의 사건 사이 개연성을 설명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고는 하나 그 '사연'은 너무나 스테리오타입화 되어 있습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웹툰'을 소재로 했을 뿐 친구 사이의 치정을 그렸던 [여고괴담]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라고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웹툰'은 너무나 좋은 소재입니다. 현실성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잔인하고, 더 상상력을 자극하며, 더 참혹한 그림과 사건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영화는 공포영화의 한계를 드러내고 맙니다. 이전까지 숨가쁘게 달려오던 영화는 이 시점부터 한 템포 느려집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순간 공포는 사라지고 결말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져 버립니다. 지윤의 사연을 다른 이야기로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3. 그래서 결론은?
다섯 글자로 영화를 표현하라면 '볼만한 영화'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가지 아쉬움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꽤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 영화임은 분명하니까요. 공포영화를 썩 즐기지 않으시는 분들도 2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보실 수 있을겁니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포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김용균감독의 바람처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호러 스릴러' 영화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헐리웃 블록버스터들과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버티고 있는 극장가에서 얼마나 티켓파워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평점:★★
TV.VOD 평점:★★★☆
(별 다섯 만점을 기준으로 수정되었습니다.)
TV.VOD 평점:★★★☆
(별 다섯 만점을 기준으로 수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