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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똑같을 수가!" 실재인물 VS 배우, 싱크로율 3부

13.07.18 17:39


1.존 레논-애론 테일러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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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우)
그의 직업을 하나로 정의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하다. 비틀즈의 멤버이자 탈퇴후 뮤지션으로 그리고 반전-평화운동가,예술가,음유시인 등등 그가 현대문화 예술계와 인류에 끼친 영향은 대단했다. 비틀즈의 일원인 당시 레논은 폴 매카트니와의 공동 작곡을 통해 "로큰롤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음악을 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그는 영국 싱글 차트에서 폴 매카트니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장 성공적인 작곡가로 기록되어 있다.

비틀즈의 다른 멤버들과 함께 대영 제국 훈장 5등급(MBE)을 받았는데, 대중음악가로서는 이례적인 서훈이었으나 영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후에 이 훈장을 반납해 논란이 되었다. 존 레논은 음악과 영화, 책, 회견과 인터뷰 등을 통해 반항적인 성향과 통렬한 재치를 드러냈으며 평화 운동과 그림 작품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비틀즈 해체 이후 레논은 [John Lennon/Plastic Ono Band]와 [Imagine]의 성공적인 솔로 경력을 쌓았다. 1973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1978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고 1976년부터 1980년까지 육아를 위해 휴식기를 가진 이후 앨범 [Double Fantasy]를 발표하며 컴백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도 안 되어 1980년 12월 8일 뉴욕에서 과격 팬 마크 채프먼의 총에 암살당한다.
 
레논의 마지막 앨범은 '올해의 앨범 상' 수상작으로 선정된다. 사후인 1987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994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08년에는 100명의 위대한 영국인을 묻는 BBC의 설문조사에서 8번째로 선정되었다.

애론 존슨(좌)
영화 [존 레논 비긴즈-노웨어 보이즈]는 사춘기 시절의 존 레논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오늘날의 존 레논이 있게만든 이 중요한 사춘기 시기를 연기한 배우는 [킥애스]로 우리에게 잘알려진 애론 존슨 이다. [킥애스]에서 키만 큰 소심하고 건들거리는 청년을 연기했던 그는 이 영화에서 반항기많고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춘기의 존 레논을 연기했다.
 
영화속 레논은 유년기를 엄격하고 보수적인 이모밑에서 보내다가 다시 재회한 생모를 통해 음악을 배우고 그녀의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은 음악과 사랑하는 사람의 만남을 의미있게 일치시켜 주는 장면이었다. 애론 존슨의 '사춘기 존 레논'은 이처럼 눈빛과 진심어린 표현으로 연기되었다. 존슨은 "레논이 한평생 사랑한 오노 요코를 바라보는 모습을 생각했고 내 감성과 마음에 따라 연기했고 모든것을 맡겼다"며 연기 방식에 대해 말했다. 이처럼 존 레논은 자유롭고 즉흥적이면서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짧은시간 존슨은 전설적인 뮤지션을 완벽하게 소화할수 있었다.
 

2.아론 랠스톤-제임스 프랑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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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랠스톤(좌)
엔지니어,산악인 그리고 작가이자 강연가. 그가 작가-강연가가 될수 있었던 계기는 2003년 4월 유타주의 한 협곡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다. 그는 취미로 등반과 협곡 여행을 즐기는 모험가 였는데 어느날 '말발굽 협곡'이란 장소에서 바위와 함께 추락해 바위에 팔이끼는 사고를 당한다. 6일간 사막에 갇혀 갈증과 추위에 싸우던 아론은 결국 자신의 오른팔을 끊고 사막을 횡단하다가 발견되 병원에 옮겨졌다. 그는 왜 자신의 오른팔을 절단하려 한것일까? 하지만 그 이후 아론의 인생은 바뀌었고 그 어느때 보다 당당하고 열정적인 사람이 되며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있다.
 
제임스 프랑코(우)
이때 까지만 해도 [스파이더맨]에서 질투 많은 피터 파커의 부자 친구 '해리 오스본'으로 잘 알려진 배우였으나 영화 [127시간]의 출연이후 그 또한 배우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아론 랠스톤을 연기한 그는 아론이 당시 팔이 끼었을때 남긴 촬영 영상을 연구하며 외형적인 모습을 비롯한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간의 내면까지 완벽하게 연기한다.
 
특히 모두가 의문이었던 아론이 자신의 오른팔을 자르기 까지의 과정을 담은 내면적 변화와 실제로 일을 시행하는 '충격'적인 장면은 아론의 심경을 그대로 대변한듯 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제임스 프랑코와 실제 주인공 아론 랠스톤이 만나는 장면은 높은 싱크로율을 보는듯 했다. 외형은 다르지만 당시의 극한 내면의 세계를 공유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두 사람 이었기 때문이다.
 

3.에일린 워노스-샤롤린즈 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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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린 워노스(좌)
1956년 미국 미시간 주의 로체스터에서 태어난 그녀는 애초부터 불행하게 태어났다. 아버지는 수감 중이었으며 15살에 결혼한 어머니는 남편과 이혼한지 오래였다. 워노스가 4살 때 어머니는 그녀를 외조부모에게 맡긴 채 떠났고 14살이 되었을때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아버지가 교도소에서 자살했다. 그녀를 보호하고 사랑해줄 부모의 부재는 그녀의 사춘기를 송두리째 망가뜨린다. 11살 때 학교에서 담배와 마약을 얻으려고 성행위를 했다가 적발됐고 외할아버지한테 성추행을 당했으며 15살 때는 외할아버지의 친구한테 성폭행을 당해 출산까지 하고 아이를 입양기관에 맡기게 된다.

외할머니가 죽자 외할아버지는 그녀를 집에서 쫓아냈다. 그때부터 거리를 떠도는 창녀가 된 워노스는 콜로라도주와 플로리다주 등지를 오가며 갖가지 문제로 경찰에 여러 번 체포됐다. 이러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워노스는 마음속에 큰 분노가 자라게 되고 결국 1989년부터 1990년 사이 7명의 남자를 권총으로 쏴 죽이면서 미국 전역을 들끊게 한 연쇄살인범이 된다. 연쇄살인범이 된 그녀는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서 일어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지만 유죄가 확정되면서 2002년 사형집행을 받았다.
 
태어나자마자 괴물 취급을 받아야 했고 괴물로 자랐으며 괴물로 죽어야 했던 그녀의 삶은 너무나 불행했다. 그녀의 주변에는 진정 그녀를 사랑으로 보다듬어 줄 사람은 없었던 것일까?

샤롤린즈 테론(우)
헐리웃의 미녀 배우이자 모델이었던 남아공 출신의 '샤롤린즈 테론'은 당시까지만 해도 연기와는 거리가 먼 그저그런 여배우 였다. 그녀가 에일린 워노스의 연쇄살인 과정을 담은 영화 [몬스터]를 연기한다 했을때 당시의 반응은 의외였었다. 실제 에일린 워노스와 샤롤린즈 테론의 외모는 천지 차이였고 분노와 미움이 가득찬 그녀의 표정을 재현하기란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샤롤린즈 테론은 이 영화를 위해 '쌩얼' 그자체에 특수분장을 감행했고 여배우 에게는 매우 잔혹한 30kg이 넘는 체중을 늘려야 했다. 한 평생 사랑받지 못하고 불행속에 살아야 했던 그녀를 완벽하게 연기한 샤롤린즈 테론은 이 영화로 2004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고 그녀의 연기인생과 대우는 크게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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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앤디 카우프만-짐 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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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카우프만(좌)
1970년대 활동한 미국의 전설적인 코미디언. 슬랩스틱 코미디의 제왕이자 남다른 특징과 개성이 담긴 캐릭터들을 연달아 창조해내기도 하였으며 방송 시트콤과 관련해 수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는 코미디의 다양성을 위해 온갖 실험과 시도를 다했는데 특히 그가 연기한 프로레슬링 개그는 미국 방송가와 사회계의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온갖 기행과 엽기 행각은 대중에 비호감을 사게되고 결국 그는 방송가와 무대에서 퇴출 된다.1984년 34살의 나이로 페암으로 삶을 마감하기 까지 그는 대중에 기호에 마친 개그가 아닌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코미디와 개그를 선보였고 이는 향후 많은 코미디언 들에게 귀감이 되는 참고사례가 되었다. 그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안타까운 천재였던 것이다.  

짐 캐리(우)
코미디 연기를 전문으로 한 짐 캐리에게 앤디 카우프만은 단연 우상과 같은 존재며 그를 연기한다는 것은 영광과도 같았다. 당연히 그의 외형적인 모습과 행동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닮아지기 위해 그는 영화 전체를 앤디 카우프만 식으로 꾸민다. [맨 온더 문]이 바로 그런 작품이었다. 영화의 초반 오프닝 부터 'SNL'을 보는듯한 인상을 주더니 앤디 카우프만이 자행하던 온갖 기행과 엽기를 그대로 재연한다.
 
특히 앤디 카우프만이 왜 이런 기행적 개그를 했는지에 대해 그만의 개그 철학을 대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는 개그가 선과악의 대결적 구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청자가 선역을 자신이 악역스러운 캐릭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의 악명높은 프로레슬링 몸 개그와 치고 박고 싸우는 슬랩스틱은 다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고 짐 캐리를 비롯한 전세계의 수많은 코미디언은 이를 리얼하게 재현한다. 모두의 아이콘이 되고 싶었던 이 남자의 꿈은 그의 후배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5.베티 페이지-그레첸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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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페이지(좌)
1950년대를 풍미했던 유명 섹시스타 베티 페이지. 그녀는 '밤의 마릴린 먼로'로 불리었고 영원한 섹스 심벌인 마릴린 먼로가 활동하던 1950년대에 파격적인 노출과 육감적인 몸매를 모두 드러내는 유명한 핀업 사진 모델로 활동하며 당시 전세계 모든 남성들의 눈길을 뜨겁게 달군 핀업걸이었다. 1923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절도죄로 수감되는 바람에 고아원에 맡겨지는 등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그런 그의 삶은 1950년 아마추어 사진작가를 만나면서 핀업걸로 데뷔할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보수적인 색체가 강했던 미국사회의 압박으로 여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고 의회 조사를 받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검은 뱅 헤어스타일에 도발적이면서도 에로틱한 그녀의 포즈는 이후 마돈나,데미 무어 등 많은 대중스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2008년 12월 향년 85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렌첸 몰(우)
헐리우드에서 단아한 아내의 역할로 잘 알려진 그녀지만 [노토리어스 베티 페이지]의 그녀는 완벽한 '베티 페이지' 였다. 섹시하고 글래머스한 몸매에 말광량이 같은 몸짓과 표정은 완벽했다. 영화 촬영내내 온갖 섹시,변태 의상을 소화했지만 가장 크게 인상을 남긴 부분은 보수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살았던 유년기와 배우생활 은퇴후 전도사로 새삶을 사는 단아한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인간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을때 가장 아름다운 것일까?
 

6.빌리 빈-브래드 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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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빈(좌)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전설적인 단장. 야구 선수 출신으로 은퇴후 스포츠 스카우터로 활동하다가 1998년 단장으로 취임한다. 당시 애틀레틱스는 오합지졸 그 자체의 구단이었고 예산도 부족한 최약체 였다. 취임후 그는 '세이버메트리션' 이라는 이론을 바탕으로 기존의 스타급 위주의 선수단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버리고 각종 통계와 성적을 추산해서 선수단을 구성하는 경제적 방식으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운영이었다.
 
이 방식은 초반 모험으로 끝날뻔 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 중 하나인 애슬레틱스를 2000년대 이후 거의 매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강팀으로 변모시키기에 이른다. 이러한 방식은 야구사에 한획을 그었고 그는 전설이 되었다.
 
브래드 피트(우)
외형가지 변할 필요는 없었다. 브래드 피트는 그 본연의 모습만 갖추기만 하면 됐었다. 물론 그도 최대한 빌리 빈을 닮으려고 노력했으나 그는 뭘해도 그 자신이었다. 하지만 브래드 피트는 메이저리그사에 미친짓이라 할수있는 이 과감한 모험을 하는 남자의 내면 연기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실패와 좌절감 속에서 사람들의 손가락질만 당해야 하는 혁신가들의 내면을 잘표현해 냈다. 그것을 브래드 피트와 같은 원조 꽃미남이 재연해 줬기에 그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가장 멋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러니 잘생긴 사람들 너무 좋은 역할만 하는거에 배아파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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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온라인 커뮤니티,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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