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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종사]리뷰: '일대종사'에 감춰진 한 남자의 인생

13.08.1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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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종사]
감독: 왕가위
출연: 양조위, 장쯔이, 장첸, 송혜교 등

 
영화가 끝나고 스크린이 올라갈 때 느끼는 감정은 대게 두가지입니다. '재밌다'거나 '여운이 남는다'거나. 영화 [일대종사]는 그 중에서도 후자의 경우에 가까웠습니다. 내용에 완벽하게 공감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 깊이 남아 한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을 수 없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영화 [일대종사]는 왕가위 감독의 다른 작품들처럼 호불호가 크게 갈릴 것 같은 영화입니다. 또한 중국 무협 영웅을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에 무협 액션 씬이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 대사가 지나치게 철학적이라는 점 등은 일반적인 여성 관객들이나 청소년 층의 마음을 잡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절대 '액션'만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일대종사'란  '한 시대에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우러러 보는 인물'을 뜻하는 말로 뛰어난 스승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한 꺼풀 벗겨내고 보면 이 영화는 '일대종사'가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한 두 여자의 이야기도 함께 보여줍니다.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 격변의 시대에서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영화는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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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웅, 그리고 그 주변의 인물
 
주인공 엽문(양조위 분)은 남부 무술의 중심지인 광둥성 불산의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중국 무술 중 하나인 '영춘권'의 후계자입니다. 뛰어난 무술 솜씨를 자랑하는 그는 불산의 무인들과 종종 무술을 겨루며 영춘권 연마에 전념합니다. 그에게는 늘 자신을 믿고 따르는 아내 장영성(송혜교 분)과 사랑스러운 두 딸이 있습니다. 엽문의 회고처럼 남부러울 것 없었던 30년대 초반 그의 삶은 '봄'이었습니다. 하지만 3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일본의 중국 침략이 시작되며 그들의 생활도 파괴되고 맙니다. 그는 목숨보다 소중했던 두 딸을 잃었고 수 많은 친구들을 잃었으며 막대했던 가산도 탕진했습니다. 일본의 총칼 아래서 그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했던 무술 역시 한낱 쓸모 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소룡의 스승으로 유명한 '엽문'은 이미 홍콩에서 네 차례 영화화 된 바 있습니다. 엽위신 감독, 견자단 주연의 [엽문1, 2]와 구예도 감독에 두우항, 황추생이 각각 엽문을 맡았던 [엽문3, 4]가 바로 그 것이지요. 같은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으나 [일대종사]와 [엽문1, 2]사이에는 꽤 많은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2009년 개봉한 [엽문1]은 시대적 배경을 일본 침략기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주적 역시 일본군이지요. 이 영화에서 엽문은 능동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대중이 중국의 정신을 잊지 않고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도록 무예를 가르치며 무술로서 일본군 장교와 대적하여 무너진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기도 합니다. [엽문 2]에서는 해방 후 홍콩으로 간 엽문이 제자들을 양성하며 많은 무림 고수들과 대련하는 내용을 담고 이습니다. 영화 [일대종사]는 두 편에 달하는 내용을 한 편에 담다보니 스토리 전개가 훨씬 빠릅니다. 중간중간의 공백들은 독백과 서사적 구성을 통해 채워나가죠. '주적'이라 부를 수 있는 인물 역시 없습니다. 팔괘장 제창자인 '궁보삼'이나 그의 딸 '궁이'와의 대련은 사활을 건 전투가 아닌 무예 최 강자를 가리기 위한 대결일 뿐이죠. 불산이 일본에 함락되었을 대도 그의 태도는 소극적입니다. "저항하겠다"는 의사 표현을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저항했는지에 대해서는 그려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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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홍콩으로 건너간 엽문은 영춘권을 전수하며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홍콩에서 그는 10년 전, 자신과 무예로서 첫 교감을 나눈 여성 '궁이'(장쯔이 분)를 만납니다. 누구보다 뛰어난 무예 실력을 가진 궁이는 [일대종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치명적이도록 잔인한 무술인 파괘장의 연마자이며 가문의 무술인 궁가 64수를 익힌 유일한 인물이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후계자가 되지 못합니다. 자신을 대신해 후계자가 된 아버지의 제자는 변심하여 일제의 앞잡이가 되고 스승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급히 고향으로 돌아온 궁이는 아버지의 유언과 원로들의 만류에도 불구, 가문의 원수를 갚기로 결심합니다.
 
이 때부터 여자로서 '궁이'는 사라집니다. 엽문의 편지에 수줍게 웃음짓던 여인은 더이상 없습니다. 단지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만이 남아있을 뿐이죠. 그녀는 '결혼한 여자는 출가외인이기 때문에 가문의 일에 끼어들 수 없다'는 말에 과감히 혼례를 포기합니다. 무예 대련을 하며 합을 맞췄던 엽문을 마음에 담았지만 이 마저도 스스로 닫아버립니다. 그래서일까요? 훗날, 궁가 64수를 다시 보고 싶다고 말하는 엽문에게 "궁가 64수 같은 건 더이상 없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평범한 여성으로 살 수 없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조와 연민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갑고 강인한, 얼음꽃같은 궁이는 이 영화에서 딱 2번, 맑은 미소를 보입니다. 잔인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기 전, 남몰래 사랑했던 엽문에게 답장을 보낼 때,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고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을 풀어놓을 때. 그 미소는 치열하지도 아프지도 않습니다.
 
한편 엽문의 또  여인은 장영성(송혜교 분)입니다. 그녀는 엽문의 아내이자 그를 마음으로 이해하는 따뜻한 여인입니다. 실제 '엽문'의 부인이었던 '장영성'은 문화부 장관의 딸로서 아름답고 우아한 외모를 가졌으며 일제 강점기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았다고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녀는 엽문에게 가장 따뜻하고 행복했던 시절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아는 엽문은 결국 '일이 끝나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고향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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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사적 전개 그리고 흑백사진

시대적 배경이 20년 이상이고 다루는 인물들이 많다 보니 영화는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중간중간 나레이션이나 화면 전환과 같은 서사적 전개 방식을 사용합니다. 한 에피소드에서 다른 에피소드로 넘어갈 때, 인물들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전해야 할 때, 마지막으로 엽문과 궁이의 숨겨진 편지 내용을 전할 때 모두 이 방식이 사용됩니다. 검정 배경에 하얀 글씨, 세 줄을 넘지 않는 인물들의 뒷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큰 여운을 남깁니다. 가령 주인공 '엽문'과 비슷한 분량으로 영화를 이끌어나갔던 '궁이'의 결말을 영화는 시각화 해 주지 않습니다. 과연 러닝타임이 부족했기 때문일까요? 아마 답은 '아니다' 일 것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삶을 살았던 한 여인의 결말은 지독할 정도로 간략했습니다. 이는 '장영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엽문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이 여인의 결말 역시 궁이와 마찬가지로 검은 화면에 단 두 줄의 글씨로 정리됩니다. 그녀의 사연 역시 안타까운 것은 마찬가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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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특징은 흑백사진입니다. 영화 초반, 엽문은 장영성에게 '새 옷을 산 기념으로 가족사진을 찍자'고 말합니다. 자신들에게 닥칠 비극을 직감이라도 한 듯 카메라 앞에 앉은 아내는 눈물을 참고 있죠. 그들을 잡은 카메라 앵글은 이내 흑백으로 변하며 액자 속 사진이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무예를 겨루기 전 팔괘장의 제창자 '궁보삼' 이하 제자들과 엽문을 필두로한 일행은 함께 사진을 촬영합니다. 이 역시 이내 흑백 사진으로 바뀝니다. 홍콩으로 거취를 옮긴 후 제자들을 양성하며 함께 찍은 사진 역시 흑백사진이 됩니다. 여기서 흑백사진은 시대적 배경에 맞춘 소재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생각 해 보면 결국은 한 시대를 풍미하던 영웅들도 이제는 모두 흘러간 역사속의 인물이 되어버렸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예측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특히 제자들과 찍은 마지막 사진에는 전 세계를 풍미한 액션 스타, '이소룡'이 등장합니다. 엽문에게 일곱살 때부터 무예를 배웠던 소년은 훗날 절권도를 창시하고 영화배우와 무술가로서 모두 큰 성공을 거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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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액션 그리고 카메라
2시간이 넘는 [일대종사]에는 명장면으로 꼽을 만한 장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압권이라고 생각되는 장면은 엽문과 일선천의 빗속 액션 장면입니다. 특히 엽문의 빗속 액션씬은 양조위가 직접 대역없이 소화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촬영하는데 걸린 시간만 30일로, 한달을 꼬박 한 장면에만 집중했다고 합니다. 어두운 배경에 비 내리는 날씨, 엽문을 처치하기 위해 다가오는 무리를 그는 큰 움직임 없이 제압합니다. 중국 영춘권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이 장면은 영화 초반 관객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합니다. 물이 튀는 장면에서 물방울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해 내는 왕가위 감독의 표현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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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화면 기법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엽문과 궁이의 대결에서 두 사람은 격렬한 대결을 벌입니다. 그러나 한 발짝 떨어져 보면 두 사람의 합은 마치 아름다운 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합니다. 특히 대결 장면 중 두 사람의 입술이 닿을까 말까 하는 부분은 묘한 기류를 형성합니다. 자칫 스토리와 동떨어질 수 있는 장면을 감독은 특유의 영상 미학으로 우아하게 그려냅니다. 궁이가 가문의 원수와 대결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검정색 플레어 코트를 입은 궁이가 돌 때마다 코트 자락이 바람에 날리며 마치 한 송이의 얼음꽃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캄캄한 밤, 기차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액션씬은 가녀리면서도 세련된 비장미가 넘칩니다.
 
 
영화 [일대종사]는 왕가위 감독이 9년에 걸쳐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단순한 무술이 아닌 철학과 인간의 관계, 인간의 이치가 있는 무협의 세계를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독의 뜻은 충분히 이루어 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그들의 화려했던 액션보다는 명성 속에 감춰져 있던 그들 개개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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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스케일):★★★★
연기:★★★☆
스토리:★★★
연출력:★★★★
 
총점:★★★ (But 국내 흥행 여부는 미지수)
TV,VOD 평점:★★★
 

(사진=CJ무비꼴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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